아씨와 안잠이

윤기정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0년 06월 0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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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여보게 게 있나? 세숫물 좀 떠오게."
여태까지 세상모르고 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깨서라도 그저 이불 속에 드러누워 있을 줄만 안 주인아씨의 포달부리는 듯한 암상스런 음성이 안방에서 벼락같이 일어나 고요하던 이 집의 아침공기를 뒤흔들어 놓았다.
“내! 밥퍼요.”
새로 들어온 지 한달 쯤밖에 안 되는 노상 앳된 안잠재기가 밥 푸던 주걱을 옹솥 안에다 그루박채 멈칫하고서 고개를 살짝 들어 부엌 창살을 향하고 소리를 지른다.
“떠오고 나선 못 푸나 어서 떠와 잔소리 말고.”
먼저보다도 더 한층 독살이 난 째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지간히 약이 오른 모양이다.
“내 곧 떠 들여가요.”
젊은 안잠재기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바로 옹솥 옆에 걸린 그리 크지 않은 가마솥 뚜껑을 밀쳐 연 다음 김이 무럭무럭 나는 더운 물을 한바가지 듬뿍 떠가지고 부엌문턱을 넘어설 제 슬며시 골이나 해가 일고삼장해 똥구멍을 찌를 때까지 잘 적은 언제고 이렇게 물이 못나게 재촉할 적은 언제고 하고 혼자 입 안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얼굴이 비치도록 길이 번들번들 들은 뒤주와 찬장 사이 틈에 끼워둔 놋대야를 집어가지고 급하게 재촉하는 품 봐서는 바가지의 물을 그대로 불까 하다가 혹시 먼지라도 뜰라치면 가뜩이나 심사가 뒤집힌 판이라 더욱 펄펄 뛰며 쨍쨍거릴까봐 얼추라도 한번 부시려고 마루 끝으로 나오니 마루 끝으로 나오니 마루 반을 넘어 들이비친 가을볕으론 유난히 쨍쨍하고 두꺼운 광선이 잘 닦아 번쩍거리는 대야에 가 반사되어 으리으리하게 번쩍거린다.
“뭘 그렇게 꿈지럭거려 굼벵이 천장하듯 어서 들여오지 않고.”
안방에서는 여전히 톡 쏘는 듯한 아씨의 날카로운 음성이 또 화살처럼 안 잠재기의 귀를 따갑게 드리 쏜다.
“내 지금 곧 들여가요.”
안잠재기도 약간 짜증이 난 듯한 말씨였다. 허나 남한테 맨 목숨이라 꿀꺽 참고서 안방미닫이를 조심성스럽게 연 다음 간반통 이간이나 되는 덩그런 방 한가운데다가 물대야를 갖다 놓고 나니 아랫목 쪽으로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삼십이 될락말락한 어느 모에 내놓든지 미인이라고 할 만한 제법 요염하게 생긴 주인아씨가 뾰로통한 얼굴을 해가지고 살기가 등등한 눈초리로 안잠재기를 갈아 마실 듯이 노려보면서
“자네꺼정 내 속을 태나, 왜 그리 꿈지럭거려……에이 화나 죽겠네 죽겠어. 자네마저 내 맘을 편치 않게 해주려거든 오늘이라도 썩 나가게 썩 나가.”
하고 대야를 와락 잡아 당기다가 물이 좀 방바닥에 엎질러졌다.
공연히 생트집을 해가지고 사람을 들볶는 것이 몹시 배리가 꼴려 견디다 견디다 못해 여볏 입에서 뭐라고 말대답이 터져나올 듯한 것을 삽시간에 생각을 돌려 꿀꺽 참았다. 요 때만 지나 성깔이 꺼질라치면 그야말로 정답게 살을 비어 맥일 듯 하고 싹싹하기 봉산 참배같은 아씨의 성미를 들어 온 지 얼마 안된 터이지만 잘 아는지라 가슴에서 금방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꿀꺽꿀꺽 참고서 윗목 한구석에 틀어 박힌 걸레를 얼핏 집어다가 방바닥에 튄 물방울을 그저 잠잠히 훔치고만 있었다. 아무 죄 없이 뿌옇게 몰려댄 안잠재기가 아까 푸다가 내버려둔 밥을 마저 푸려고 부엌을 향하여 발을 옮기면서 하루 이틀 밤도 아니고 사흘 저녁씩이나 나가 잤으니, 그것도 딴 계집에 미쳐 다니는 줄 번연히 아는 아씨로서 골을 내는 것은 그럴 법도 한 노릇이지만 제 남편 안 들어온 화풀이를 나한테 하는 것은 여간 거북한 일이 아니며 살이 내리도록 성가신 노릇인걸 하고 생각한 다음 상을 약간 찌푸렸다.

저자소개

일제강점기 「새살림」, 「양회굴둑」, 「거울을 꺼리는 사나이」 등을 저술한 소설가.비평가.

목차소개

<작가 소개>
아씨와 안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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