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위하여 2권

도서정보 : 이문열 | 2020-12-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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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진정 제왕인가, 한낱 돈키호테인가!
아아, 제왕인 내가 천민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천민인 내가 제왕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이문열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좋은 소설이다.”
?김현(문학평론가)

이문열의『황제를 위하여』는 1982년 1쇄 발행을 시작으로 거의 40여 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표 장편소설이다. 출간 초창기에만도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그 후 출판사가 두어 번 바뀌면서도 40여 쇄 이상 발행해왔다.
이번에 알에이치코리아에서 표지를 새롭게 바꾸고, 내용 중 일부를 손봐 개정 신판으로 출간하였다. 이문열은 40여 년 전『황제를 위하여』를 집필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참으로 고단하고 막막하던 서생[文靑]이 하나 있었군.”이라며 감회를 밝혔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황제를 위하여』가 이문열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좋은 소설이라며, 전통적 문화에 대한 회귀 욕망과 거부 의지 사이의 섬세하지만 치열한 싸움의 무의식적 결과라고 평했다.

황제는 진정 제왕인가, 한낱 돈키호테인가!
우리의 스산한 역사를 재미있게 빗대어 엮다

『황제를 위하여』는 <정감록>에 예견된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할 것이다”라는 표현을 신앙처럼 믿으며, 자신을 황제로 여기며 산 한 인물의 이야기이다. 실제로 황제는 남조선이라는 왕국을 계룡산 기슭에 세운다. 그는 조선시대 을미사변이 일어난 1895년에 태어나 1972년에 생을 마감했다. 경술국치, 중국의 신해혁명, 청일전쟁, 일제 강점기, 삼일운동, 한국전쟁의 격전지 등 역사적 순간에 황제가 등장하고 황제로서 행동한다. 그가 황제인지 알아보는 이는 없었지만 그 자신은 누가 뭐라 해도 황제였고, 또 그런 황제를 옆에서 충심으로 보필하는 신하들로 마숙아, 우발산, 방량, 신기죽, 두충, 변약유가 있었다. 남조선 창건주인 황제의 일생은 <백제실록>으로 기록되어 보관되었고, 이를 취재차 나선 한 잡지 기자의 눈에 발견되면서 <백제실록>의 이야기를 연희 형식으로 다시 풀어낸다. 책 속 에피소드로 황제가 난생처음으로 기차를 봤을 때의 그의 반응, 주막에서 돈을 털릴 때의 황제의 유장함, 그리고 일본 순사를 만났던 바카야로 사건 등 황당무계하지만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우리나라의 스산한 역사적 사건들을 이문열 특유의 시각과 문체로 풀어냈다.
이문열은 이 소설을 낄낄거리며 썼다고 한다. “맑시즘인지 말오줌인지 내 알 바 아니지만” “지금 들리는 저 음(音)은 자지(재즈)라던가”라며 의뭉스럽게 말하는 등『황제를 위하여』는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 희극적인 즐거움이 담겨있다.
허상 위에 세워진 이상(理想)의 나라에서 황제는 어느 날 중얼거리면서 말한다. “아아, 제왕인 내가 천민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천민인 내가 제왕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문학평론가 김현의 평문에 따르면,『황제를 위하여』는 제왕의 도와 장자의 무위를 이상으로 제시하는 척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비판하고 있는 모순의 소설이며, 그것은 이문열이 지금까지 쓴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로, 한국소설이 오래 기억할 만한 소설이다.

『황제를 위하여』의 집필 동기 2가지를 알아야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문열은 당시 초판 서문을 통해 『황제를 위하여』를 집필하게 된 동기 두 가지를 소개한 바 있다. 그 하나는 금세기의 한국 역사가 보여주는 의식 과잉 내지 이념에 대한 과민 반응을 역설적으로나마 지워보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날이 희미해지고 멀어져가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는 것이었다.
그는 “가만히 돌이켜보면 멀개는 개화파와 수구파의 투쟁에서, 가깝게는 민주?공산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근세사에 있어서 가장 격렬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은 모두 이념의 부재에서가 아니라 과잉에서 왔고, 옛것 또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집착보다는 새것 또는 서구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민감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나는 그 모든 것들 ? 과학과 합리주의, 갖가지 종교적 이념, 그리고 금세기를 피로 얼룩지게 한 몇몇 정치 사상 등등 ? 이제는 거의 아무도 그 유용성이나 정당함을 의심하려 들지 않는 것까지도 순전히 동양적인 논리로 지워보려 애썼다”라고 말한다.
이문열은 덧붙여 말한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는 읽으면서도 사서삼경은 낡았다고 읽지 않고, 보들레르에게는 감탄하면서도 이하(李賀)를 아는 이 드물다. 니체에게는 심취하면서도 장자를 이해하려 들지는 않고, 로버트 오웬은 알아도 허자(許子)는 낯설어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세워야 할 문화의 유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동양적인 것과 새롭고 활기찬 서구적인 것의 조화에 있지, 어느 한편에 대한 일방적인 배척과 다른 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나 몰입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인 사대주의의 부활이라는 비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나치리만치 자주 중국의 고전들을 인용하였다.”

『황제를 위하여』는 중국 고전들의 인용이 다수 담겼다.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서 재미있게 읽었다, 라는 독자 평이 있을 만큼 생경한 단어와 한자가 다수 있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이문열의 해학과 비판적 시각을 읽어내다 보면 40여 년간 이 책이 독자의 손을 떠나지 않고 사랑받아온 그 진가를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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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점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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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으련 하다가 채 못 깊고 새는 게 첫여름의 가냘픈 새벽이다.
밤은 대전역(大田驛) 그 근처서부터 벌써 동이 트더니, 호남선으로 선로가 갈려들어, 촌 정거장을 세넷 지나 K역을 거진 바라볼 무렵에는 연변의 농가에서 마침 연기가 겨루듯 솟아오르고, 두어 장 구름이 잠자던 동녘 수평선 위로 불그레 햇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차는 유축 없이 그대로 세차게 달리고……
경희는 차창 앞으로 바투 다가앉아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에 한동안 무심하다.
끝없이 퍼져나간 넓은 들이 창밖에서 커다랗게 회전을 한다. 들바닥에는 오늘도 날은 좋으려는지 엷은 안개가 조용히 잦아졌다.
잘 갈아서 잘 태운 마른갈이 논이 자꾸자꾸 잇대어 있는 사이사이로, 바다 가운데 작은 섬 같은 못자리판이 물을 그득 싣고, 모는 이쁘게 푸르다.
논도 못자리판도 모내기를 앞에 두고서 마침 서로 대기를 하고 있는 체세다.
조그마한 야산(野山) 산발을 타고 모퉁이를 돌아 나서면, 얕은 언덕을 의지 삼고 다섯 채 열 채 농가가 들어앉은 촌락이 으레껀 기다리고 있다. 울타리도 앞뒤 언덕도 모두 푸르다. 그중에 보리밭만 보리가 익어서 누렇게 고스러졌다.
언덕과 촌락이 다하면 다시 들판이 넓고, 들판을 한동안 잊고 달리느라면 어느새 또 비슷 같은 언덕과 촌락이 나오고……
평범하다 할지언정 별반 탐탁스럽게 아름다운 경치는 아니다. 그러나 그만해도 벌써 육칠 년 전, 그때까지는 일 년 두고도 몇 차례씩 고향을 오고가고 하면서 자주자주 대하던 연변의 풍경이요, 그러한 만큼 어쩌면 모두가 낯에 익은 듯, 또 어쩌면 생소한 듯한 것이 모처럼 반가와서 좋고 겸하여 비록 교외에서 거처는 했다지만 그와는 정취가 달라, 아낌없이 개방적인 첫여름 전야(田野)의 아침이 신선해서 또한 좋았다.
차안의 자리는 이제는 차라리 적적할 만큼 성글어, 경희가 앉았는 좌석에도 아까 어디께선가 타던 촌 영감이 마주 편안히 혼자 앉았을 뿐이다.
밤새도록 눈도 제대로 붙이지 못한 경희는 비로소 좌석이며 주위가 단출하고 한 김에 문득 잠을 청해보느라고, 고개를 반듯이 뒤로 기대고 조용히 눈을 내려감는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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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간 몸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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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마루에서 시뻘건 해가 두렷이 솟아오른다. 들 위로 얕게 덮인 아침안개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누른 볏목들이 일제히 읍을 한다.
약오른 풀끝에 맺은 잔이슬들이 분주히 반짝거린다. 꼴을 먹는 소 목에서는 끊이지 않고 요령이 흔들린다.
쇠고삐를 잡고 앉아 명상에 잠겼던 견우는 걷어올린 맨 다리를
“딱.”
때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쇠파리가 침을 준 것이다.
“아니 오나?”
견우는 혼자 중얼거리면 동리 앞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한다.
××의 비단 짜는 직공으로 뽑히어 늘 새벽차에 떠난다는 직녀를 다만 먼빛으로라도 한번 바라보려고 견우는 첫새벽부터 소를 끌고 나와 꼴을 먹이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아니 왔으면 가지 아니하는 것이니까 도리어 좋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도 속은 초조하였다.
견우는 허리띠와 염낭을 만지어보았다. 직녀가 밤으로 집안사람의 눈을 피하여 가며 정성과 정을 다 들이어 만들어 준 추석선물이다. 그리고 필경 이것을 울타리 터진 구멍으로 주고받고 하다가 직녀의 집안사람에게 들키어 이 애달픈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직녀의 부모는 그까짓 남의 집에서 소 부리는 놈한테 딸을 준단 말이냐고 그들의 사이를 가르기 위하여 근읍 어느 친척의 집으로 직녀를 보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마침 ××에서 비단 짜는 여직공을 모집하러 온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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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분리기

도서정보 : 김형준 | 2020-12-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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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전에 지구로 망명한 외계인들로 인해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피지배 계급으로서 노예보다 못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구로 도망쳐 왔음을 알렸고 각 나라의 정부는 그들과 모종의 계약을 맺는 조건으로 망명을 받아주었다. 그로부터 십일 년쯤 지난 어느 날 세계 곳곳에 운석으로 가장한 미사일이 날아왔다. 저쪽 태양계에 있는 지배 계급 외계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구 침공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의 미래를 걱정한 인간들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전쟁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한 나라는 기존에 있던 징병제를 고쳐서 전 국민을 예비군화시키려는 계획을 실행했다. 남녀 구분 없이 십팔 세가 되면 입대하여 일 년 간 군 생활을 한 뒤 십구 세에 제대하는 식으로 고친 것이었다. 미르 병장은 만기 제대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인간과 외계인의 혼혈인 곰솔 병장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곧 전투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진짜로 외계인의 공습이 벌어진 것일까? 진실을 알아내기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

구매가격 : 3,500 원

도야지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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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하수인이었다던 이가 해방 후 애국애족을 외치며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 모습을 그린,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대적 현실을 묘사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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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새벽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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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조용하진 못한 마나님인데 겸하여 역정이 난 참이고 보니 그 야단스런 품이 미상불 생철동이를 뚜드리는 만큼이나 자못 시끄럽다.
“아니 그래…… 어떡허면 그래……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동네가 벌컥 뒤집하게 목소리만 큰 것이 아니다. ‘절구통마나님’이라고도 또한 별명하는 그 육중스런 몸집을 연해 휘둘러싸면서 푸짐한 넋두리가(아들 준을 두고 하는 넋두리가) 한바탕 벌어지던 것이다.
“으응?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그래…… 어떡허면 그래…… 고따위루 응? 고따위루……”
마침 메주를 쑤었다. 큰 가마솥에다 큰 대시루를 걸고 푸욱신 삶은 메주콩을 바가지로 퍼억퍽 큰 대소쿠리에다 퍼담는다. 허연 김이 뭉게뭉게 피어나오고 집 안팎으로 구수한 메주콩내가 흥건히 풍긴다.
마나님 ? 강부인 ? 은 일변 메주콩을 퍼 담으면서 일변 넋두리로 입은 쉴 새 없이 바쁘면서, 이윽고 소쿠리가 수북하게 차자 불끈 집어들고는 쭈르르 마당으로 달려나온다. 거뜬거뜬한 게 뚱뚱한 체집 보아서는 딴 사람 같다. 몸도 연가벽거니와 소쿠리 밑에서 메주물이 찌르르 함부로 쏟아지건만 그 한 방울도 치마 앞자락이나 버선등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새색시 적부터도 일솜씨 깔끔스럽기로도 고을 일판에서 소문 있던 부인이다. 나이 오십이로되 젊었을 적 솜씨가 여전하고 가시지 않는다.
마당에는 절구와 절굿대, 안반 등속 메주 찔 채비를 마침 다 차려놓았다.
“대체 어떡허다 이 내 속에서 그런 자식이 나왔드란 말인고? 으응?…… 천하 농통허구, 근경속 없구, 잔망스럽구……”
당자 준은 고사하고 옆에서 누구 한 사람(하다못해 귀덕어멈이라도) 듣고 있는 이조차 없건만, 그러니 매양 강 건너 눈흘기기요 혼자의 푸념이건만, 그런 건 다 상관 아니었다.
들고 온 메주콩을 메 소쿠리째 절구에다 엎는다.
“제발 좀 외탁을 하겠지? 외탁을 했으면야 사람녀석이 고대두룩야 농통스렀으리 ?…… 세상 주변성 없구, 고정하기만한 즈이 으런 승미 고대루 닮어가지구는…… 그 으런은 그래두 고집이나 없었지! 고집이나……”
좌우를 휘휘 둘러본다. 당연히 등대하고 있었을 귀덕어멈이 간 곳 없고 보이지 않는다.
“아 귀덕어머엄 ?”
불러도 대답하고 나오는 싹도 없다.
“방정이 그새 어디루 또 싸아나갔담 ?”
조금 역정이 더했고, 그 길에 절굿대를 치켜들려다가 또 생각이 나서 일단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시추뚜껑을 덮어놓는다.
“야숙한 놈! 천하에 모질구두 매정스런 놈!…… 그 놈이 비상보담두더 독한 놈이어든!…… 제가 그러구서두 복을 받을까?”
부엌을 다녀와서는 서슴지 않고 곧 절굿대를 집어들고 메주방아를 찧기 시작한다. 부자는 아니라도 오륙백 석 추수를 하여 쓰고 밀리는 성세요, 편안히 지내도 좋을 팔자이었지만,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 메주방아쯤 찧기를 주저치 않는다.
젊은 장정 못지 않게 절굿대가 기운차게 오르내린다.
“싯 싯.”
그리고 무딘 절구 소리가 그에 화할 뿐, ‹두리가 잠깐 끊긴다.
서향한 옆채의 처마 끝에 수정 발을 드리운 듯 주렁주렁이 매달린 고드름이 맑은 햇빛에 영롱히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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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호일단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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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야기가 끊기고.
모본단 보료를 깐 아랫목 문갑 앞으로, 사방침에 비스듬히 팔꿈치를 괴고 앉아서 주인 박(朴)주사는 펼쳐 든 조간신문을 제목을 훑는다.
잠잠한 채 방안은 쌍미닫이의, 납을 먹여 마노빛으로 연한 영창지가 화안 하니 아침 햇볕을 받아 눈이 부시게 밝고 쇄려하다.
주인 박주사는 방이 밝고 쇄려하듯이 사람도 또한 정갈하고 호사스런 의표와 더불어 신수가 두루 번화하다. 기름을 알맞추, 반듯이 왼편에서 갈라 빗은 짤막한 머리가 우선 단정하다. 마악 아침 소쇄를 하고 난 얼굴이 부윳이 희고 좋은 화색이다. 마흔여섯이라지만 갓 마흔에서 한두 살이 넘었다고 해도 곧이가 들리겠다. 코 밑으로 곱게 다듬어 세운 가뭇한 코밑수염이 한결 그러해 보인다. 아래턱은 면도 자죽만 푸르고 마고자도 조끼도 민으로 은회색 공단이다. 저고리와 바지는 삼팔. 두둑한 솜버선에 대님은 그것도 은회색이다.
갖추 이렇게 화려 선명하고 어둔 그늘이 없다.
방안을 차린 범절은 그러나 판연히 대조가 되는 두 갈래로 낡은 것과 새로 운 것이(의좋게) 함께 있곤 하여, 그래서 언뜻 보매 심히 동떨어지고 어색한 느낌이 없지가 못하다. 가령 윗목으로 친 팔폭 병풍은 추사의 대가 분명한데, 반만 접은 그 병풍 뒤로 크막하니 섰는 책장에는 한세대 전의 법학생들이 교과서 혹은 참고서로 쓰던 여러 가지 법학서적이 가득 들여쌓여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금자박이의 양서까지도 서너 권 섞여 있고. 그리고 더욱 진기하기는 저 주천백촌의 ‘유명하던’ 『연애지상주의』이것을 비롯하여 하목수석의 『나는 고양이로다(我輩は猫てある)』니, 하천풍언의 『사선을 넘어서니』니 승서몽 번역의 신조사판인 톨스토이의 『부활』이니 하는 문학 서적과 몇 권씩의 《학지광》이며 《개벽》 등 옛 잡지를 곁들인 것이다.
무릇 솜버선 마고자에, 책상 대신 연상(硯床)과 문갑을, 문갑 위에는 몇 종류의 한서가 놓였고, 안락의자가 아니라 사방침에 기대앉아서 퇴색한 추사의 대를 즐기며 심심파적 삼아 한문 고전낱도 뒤적이고 하는 고풍의 중년 신사 박주사에게는 그러므로, 세계를 달리한 듯싶은 이 장서 들이었지만, 그러나 일변 그가 항용 출입을 할 적이면 자못 화사한 넥타이에다가 과히 유행에 뒤지지 않는 양복을 차리고 나선다는 사실을 참작할진댄 그러한 부조화도 저윽이 덜 무안할 수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시 그가 약 이십여 년 저 짝, 비록 전문부요, 이년쯤 하다가 중도폐지는 했을망정 XX 대학에 학적을 둔 적이 있는 동경유학생의 한 사람이었다는 경력을 고려한다면 그 부조화는 상당히 존재의 이유를 주장한달 수가 있을 것이다. (책상을, 맨 밑의 서랍을 뒤져본다치면 무수히 블랭크가 치여, 문맥이야 닿지 않으나마 『법학총론』이니 『민법원론』이니 등속의 필기 노트가 꽤 여러 벌 들어 있기까지 하다.)

구매가격 : 500 원

근일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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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까지(어제 밤 여덟시부터 꼬바기) 앉아서 쓴 것이 장수로 넉 장, 실 스물일곱 줄을 얻고 말았다.
그 사이, 노싱을 한 봉 반씩 네 차례에 도합 여섯 봉을 먹었다.
간밤에 새로 뜯어논 스무 개 들이 가가아끼 한 곽이 빈탕이 되었다.
재털이가 손을 못 대게 낭자하다. 성냥 한 곽을 아마 죄다 그었나 보다.
하루 평균 치면 네 개피나 다섯 개피가 배급 표준이라는데, 그러니 조선도 성냥 전표 제도가 생겼다가는 큰 야단이 나겠다.
원고용지를 파지를 내기 백 매짜리로 거진 한 축. 픽픽하는 갱지가 되어서 더 헤프기도 하지만, 둘러보니 완연 휴지 속에 파묻혀 있는 형용이다.
원고용지 구하기가 원고 쓰기보다 더 힘이 드는 이판에, 이대도록은 너무 심하다.
골치가 멍멍, 언 살을 만지기 같다. 딱 시장은 하면서도 혀가 깔깔하고 밥 생각은 나지를 않는다.
이렇게 해서 얻은 그 넉 장에 스물일곱 줄이나마 제대로 성할 테냐 하면, 이따가 저녁이면 십상 또 작대기를 북북 주고서 번연히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할 것.
한숨이 후유 나온다. 내가 생각을 해도 무슨 짓인지 알 수가 없다.
써야지건 말건, 일곱시 반의 전등이 꺼질 때까지는 붙잡고 느는 게 항용이지만, 부엌에서들 우세두세 새벽밥을 짓느라고 설레는 소리가 나서 가뜩이나 정신이 헛갈려, 웬만큼 걷어치운다. 네째형이 요새로 매일같이 서울을 들러 광나루의 공사장 현장엘 통래하느라고 첫차를 타기 때문에, 늘 새벽조반을 먹어야 하던 것이다.
다섯시 반이 조금 지난 걸 보고 건넌방으로 올라갔다. 형은 불빛이 아직도 밤중인 듯 휘황한 전등 밑에서 벌써 입맛 없는 밥술을 뜨고 있었다.
얼굴이 부석부석한 게, 과로와 소화기관에 장해가 생긴 징조인 것이 분명했다. 지난해 겨울에도, 지질한 그 노심초사와 극도의 피로 끝에 필경 몸져 누워서는 삼동 내내 중병을 앓던 일이 생각히면서, 더럭 마음이 무거웠다.
“국물이 뜨듯하니 한술 놔서, 먹구 자렴?”
형은 밥상머리로 가 쪼글트리고 앉는 나를 건너다보며 권을 하다가 그이면서 문득 얼굴이 어두워 오른다.

구매가격 : 500 원

기억 속 노란 병아리

도서정보 : 유진욱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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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기억 속 노란 병아리 이모의 기억 속 노란 병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 도서입니다. 줄거리 이모는 어린시절에 키우던 두 마리의 병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구매가격 : 7,500 원

채만식의 낙조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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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별식으로 닭 국물에 칼국수를 해서 식구가 땀을 흘려가며 먹고 있는 참이었다.
“이런 때 느이 황주 아주머니나 오셌다 한 그릇 훌훌 자섰드라면 좋을걸 그랬구나…… 말이야 없겠느냐마는, 그 마나님두 인저 전과 달라 여름 삼복에 병아리라두 몇마리 삶아 소복이라두 하구 엄두를 낼 사세가 되들 못하구. ……내남적없이 모두 살기가 이렇게 하루하루 쪼들려만 가니…….”
어머니가 생각이 나 걸려해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의가 좋고 해서 그러던 것이지마는 어버지는 어머니와 달라, 황주 아주머니가 별반 직성이 맞지를 않는 편이었다.
“그래두 그 마나님넨 느는 게 있어 좋습니다.”
“온 영감두. 지금 사는 그 일본집두 30만 환에 내놨다는데 그래요?
한30만 환 받아, 삭을세집을 얻든지, 문 밖으루다 조그만한 걸 한 채 장만하든지 하구서, 남겨진 가지구 얼마 동안 가용이라두 쓰구 할영으루다……”
“느는 게 조음 많으우?…… 자아, 몸집이 늘지. 희떠운 거 늘지. 시끄런 거 늘지. 말 능란한 거 늘지. 따님 양개화(洋開化) 늘지. 아마 그 마나님은, 한때 그 국회의원이라드냐 하는 걸 선거하는 데 내세우구서, 누굴 추천하는 연설 같은 걸 시켰으면 아주 일등으루 잘 했을 거야.”
“난 또 무슨 말씀이라구……”
어머니는 그만 웃고 만다.
아버지도 따라 웃으면서
“난 정말이지, 그 생철동이, 하두 시끄러 골치가 아파 못하겠읍디다.”
“아따, 생철동인 생철동이루 씨어먹게스리 마련 아니우? 세상 사람이나 세상 일이 다 그렇게 제제끔이요, 제곬이 있는 법 아니우?”
어머니는 이렇게 원만하였다.
어머니가 만일 원만치 못한 어른이었다면 그런 대답이 나오는 대신
“영감두 말씀 마시우. 황주 마나님더러 느느니 몸집이네, 희떰이네, 시끄럼이 네, 말 능란해 가는 거네 하시지만, 영감은 느느니 괴벽과 편성입디다. 난 영감, 그 남 비꼬아대기 잘하는 거, 미운 소리 잘하는 거, 하두 박절해 골치가 아파 못하겠읍디다.”
하고 오금을 박았을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말이 오고가고, 티격태격하다 필경 싸움이 되고, 결과는 불화가 일고.
생각하면 어머니의 그렇듯 원만함은 우리 집의 고마운 보배였다. 솔성이 심히 박절하고 옹색한 아버지를 모시어 규각이 나지 않고, 잘 평화가 지탱되어 나가기는, 오로지 어머니의 그렇듯 남의 흠점이나 과실을 찬하지 않고 너그러이 보는 원만함의 덕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가리켜 어머니의 성정을 닮아 세상 만사를 좋도록만 보려 들고, 그래서 사나이 자식이 소견이(視野가) 좁고 진취성(積極性)이 적으니라고 하였다.
미상불 나는 내가 생각하여도, 아버지의 편협하고 박절한 성품보다 어머니의 너그럽고 원만한 성품을 물려받은 것 같고, 따라서 모든 사물을 호의적으로만 보면, 인하여 시야가 좁고 진취성이 적음도 사실인 성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보다는 차라리 어머니를 닮았음을 복되게 여기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편협하고 박절함은 유난한 것이 있었다.
아무 이해상관이 없는 일이거만, 당신의 비위에 맞지 않는다든가 눈에 거슬린다든가 한다는 것으로, 미운 소리을 하고 비꼬아 대고 하여 남에게 실 안심을 하고 경원을 당하고 하였다.
아버지는 크고 작은 일에 있어 당신이 보기에 그른 것에 대하여 둘러 생각을 한다거나 관용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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