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유성룡 | 알마 | 2015년 02월 1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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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징비록》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국방·군사·정치·외교·민사 등 모든 분야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대신 유성룡이 쓴 임진왜란 기록이다. 이 책은 조선에서 간행된 이후 일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 새로이 간행했고, 중국 역시 임진왜란 전사의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찍이 영어판까지 나온 국제적으로 공인된 역사 기록이다.
책 이름에서 “징비”라는 말은 《시경》 [소비편小毖篇]에 나오는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유성룡이 쓴 서문 가운데 “지난날을 생각할 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몸 둘 곳을 모르겠다”라는 문장과 맥이 닿는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성룡이 후대에 남긴 글이다. 위정자들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대처로 수많은 백성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 그리고 나라의 운명이 상국이자 대국인 명나라에 맡겨진 사이에 나라의 체모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절절히 이야기한다. 당시 조선은 군사작전권마저 명나라에 사실상 넘긴 상황에서 침략자를 마음 놓고 응징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는 한강을 기점으로 조선을 분할통치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구원병을 보낸 또다른 전쟁 당사자인 명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조선을 완전히 식민통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백성은 “차마 제 자식을 잡아먹지 못해, 서로 자식을 바꾸어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누구보다 전쟁의 참상을 절감한 유성룡은 전쟁을 막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자신의 힘으로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크게 절망했다. 정유재란 이후 완전히 조정에서 물러난 유성룡은 고향인 경상도 의성에 들어앉은 채 지난 7년 전쟁의 기록과 기억을 정리해 생생하게 되살린다. 정직한 태도로 조선 조정의 분란과 무능을 기록했고,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싸운 이순신과 의병의 활약에 온당한 존경을 보냈다. 또한 굴욕적인 외교의 실상을 고백하고, 백성의 고통에 같이 아파했다.
임진년에 시작돼 7년간 이어진 전쟁의 실상은 이렇게 유성룡의 손을 통해 다큐멘터리 겸 르포르타주 《징비록》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성룡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병자호란이라는 굴욕을 통해 조선은 다시 한 번 짓밟힌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로부터 불과 100여 년 전 일어난 한일강제병합이라는 사건을 통해 또다시 반복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역시 그때의 과오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징비록》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봐야 할 때다.
“징懲-지난 일을 뉘우치고, 비毖-후세를 위해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록錄-뼈아픈 역사의 기록”이라는, 고전 속의 사전적 의미를 훨씬 뛰어넘은 함의로 《징비록》을 찬찬히 톺아봐야 할 것이다.

시인 김기택이 오늘의 한국어로 새롭게 다듬어 쓰다

“일본군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탓하기는 쉬워도 그 침략에서 드러난 우리의 치부를 꼼꼼하게 되돌아보고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잘못과 부끄러움을 빨리 잊으려고 한다. 자기의 실수나 못난 모습을 정직하고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곱씹어보고 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자기의 잘못을 통해 큰 것을 배울 수 있다. 잊는 것은 편안하지만 망각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징비록》은 그 고통을 기억하고 다시 체험하고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용기에서 나온 것이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중견 시인 김기택은 《징비록》을 새롭게 다듬어 쓰면서 위와 같이 밝혔다.
김기택은 한국의 고전을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는 작업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첫 작업 역시 역사 기록인 《홍경래》(알마)였다. 이 작업에서도 김기택은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럴듯하게 잘된 일, 모두들 성공했다고 여기는 일만이 다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떠올립니다. 홍경래처럼 자신의 삶을 희생한 사람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힘 있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해도 되는 세상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진 사람처럼 억울하게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건강한 것은, 그리고 우리가 이런 정도로라도 살 수 있는 것은, 홍경래 같은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훌륭한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마음과 태도는 《징비록》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저 침략자를 욕하고, 우리 편 안에서 억지 영웅을 만들기는 쉽다. 그러나 진정한 반성을 통해 정말 소중한 역사의 교훈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김기택은 실패의 기록 안에서도 거기에 깃든 역사의 교훈을 조명하려고 노력했다. 《징비록》에서 “황송하고 부끄러워 몸 둘 곳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원작자의 마음을 오롯이 되살린 것이다. 김기택은 시인다운 감수성으로 《징비록》 안에 담긴 못난 역사, 슬픈 역사, 상처 깊은 역사의 의미를 다시 살려 드러낸다. 그래서 역사 앞에서 정직한 기록의 참 의미를 독자 앞에 더욱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전문가의 해설, 완성도 높은 미술 작업이 긴밀히 어우러진 새로운 《징비록》
일평생 전쟁사 연구에 몸을 바친 임홍빈 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선임연구원의 해설도 본문과 긴밀히 맞물려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해설은 전쟁의 중요한 일지와 연대기 그리고 조선, 일본, 명나라의 전력과 무장의 실제를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통해 풀어냈다. 일본군의 전력과 무장 그리고 작전의 실제를 해설을 통해 들여다보자.

“전투부대가 3~4줄의 전열로 대기하면 제1진 기병대가 적진을 돌파하여 두 도막으로 쪼개 포위하고, 조총으로 무장한 제2진 철포조鐵砲組가 집중 사격을 퍼부어 무너뜨린다. 그런 다음에는 재래식 활로 무장한 제3진 궁병조弓兵組가 다시 일제 사격을 퍼부어 전열을 혼란에 빠뜨린다. 마지막에는 창칼로 무장된 제4진의 창검조槍劍組 밀집 부대가 일제히 돌격하여 백병전을 벌여 압도한다. 이런 짜임새와 전술을 갖춘 군대가 곧 근세 일본 특유의 경무장 보병 ‘아시카루足輕’다.”

이와 같은 전문적인 해설은 탄금대 전투, 서울 함락 및 수복, 평양성 함락 및 수복, 행주 전투, 1차 및 2차 진주성 전투, 이순신의 해전, 일본군의 경남 농성전 등 전체에 걸쳐 전쟁사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돕는다. 그뿐 아니라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동아시아 역사가 어떤 변화를 맞았는지, 또한 임진왜란의 전범이었던 일본 장수와 정치인들이 임진왜란 뒤에 이어진 일본 내부의 새로운 내전 끝에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지까지 상세히 소개한다.
미술 작업 또한 남다르다. 이제까지 임진왜란 관련한 한국 출판물의 미술은 전통 시대의 판에 박힌 자료를 답습하기 일쑤였다. 전문 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미술의 재구성 또한 식상한 형상을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다.
김기택의 글 작업에 발맞춘 이부록의 미술 작업은 김기택이 섭렵한 국립진주박물관과 일본 오사카박물관의 전문 자료를 섭렵한 결과다. 두 박물관은 각각 한국과 일본의 임진왜란 전문 전사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임진왜란과 관련한 일본 측 군기물(반다큐멘터리, 반소설류)에 등장한 미술 형상을 널리 참고했다. 또한 동시대 및 후대가 묘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주요 인물의 초상화까지 확인해 《징비록》에 전혀 새로운 미술 형상을 제시했다.

저자소개

원작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이다. 1542년 경상도 의성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향시에 급제했다. 청년기에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25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었으며,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전쟁 중 영의정에 올라 임금의 피란, 명나라 구원병 교섭, 평양과 서울 탈환,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 군사력을 강화하는 일 들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난다. 그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한 채 오로지 학문 연구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들이 있다.

역자소개

옮긴이 김기택은 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들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문학상 들을 받았다.

해설 임홍빈은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구부 전문위원을 거쳐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책임편찬위원과 국방군사연구소 지역연구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1992년부터 중국의 군사역사, 전쟁사 연구와 중국 고전 및 현대문학 작품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달빛을 베다》 《손자병법 교양강의》 《중국역대명화가선》 《수호별전》 《소설 공자》 《서유기》 《현실+꿈+유머: 린위탕 일대기》 《의천도룡기》 《백록원》(공역) 《열세걸음》 들이 있으며, 한국 고전 군사문헌을 현대어로 국역한 《문종진법·병장설》 《무경칠서》 《백전기법》 들이 있다.

그린이 이부록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에서 공부했다. 《기억의반대편세계에서-워바타》 《세계인권선언》을 펴냈으며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 《동양철학 에세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들에서 실험적이고 개성 넘치는 화풍을 선보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림만이 아니라 참여미술 프로젝트, 서재조형,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목차소개

글을 열며_우리의 부끄러운 곳을 비춰주는 거울

유성룡의 [머리말]
1장 전쟁 전의 조선과 일본
2장 일본의 침략
3장 거듭되는 패배와 피난
4장 명나라의 구원병
5장 이순신과 의병의 활약
6장 강화 협상의 결렬
7장 일본의 두 번째 침략
8장 7년 만에 끝난 전쟁
녹후잡기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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