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서정 | 난다 | 2024년 01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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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돌며 살며 사랑하며 세계 곳곳을 ‘쓰는’ 작가, 서정.
지금 이 순간 그가 단단히 붙든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와의 어떤 사귐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많은 것들이 연상되지 않는 지명이다. 그간 세계 곳곳에 머물며 그곳의 삶과 사람을 ‘써온’ 작가 서정이 이번에는 이 미지의 도시 카라카스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책은 두 개의 부로 나뉜다. 1부는 카라카스와 저자의 관계가 점차 경계심에서 호기심으로, 호기심에서 친밀감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저자에게도 카라카스가 낯설었던 것은 마찬가지. 차베스 사후 악화된 경제공황과 사회 혼란은 정착을 더욱 어렵게 한다. 그러나 저자가 스페인어를 배우고 조금씩 귀를 기울이며 숨겨진 것을 찾아나서자 카라카스는 숨겨온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2부는 그러한 친밀감을 토대로 저자가 발견한 카라카스의 다양한 모습들을 조명한다. 당대 유럽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점차 고유한 흐름을 형성한 이들의 식문화, 음악, 미술 등을 저자는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그들의 가슴이 무엇으로 뜨거워지고 또 그들은 무엇으로 위로받는지 점차 이해하게 된다.

완벽한 미지의 도시, 카라카스
“카라카스에 몇 년간 살게 되었다.” 책은 이런 문장과 함께 시작된다. 유려한 발음과는 별개로 카라카스라는 지명은 우리에게 어떤 뚜렷한 이미지도 연상시키지 못하는 듯하다. 베네수엘라의 수도라는 추가적인 정보가 주어져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남미 최대의 메트로폴리스 중 하나인 카라카스는 그렇게 완벽한 미지의 도시로 남아 있다.
이곳에 저자는 한동안 ‘살게 된다’.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밥벌이의 문제”. 저자에게 이곳에서의 정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살았던 덕에 러시아어를 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영어 역시 어렵지 않지만 베네수엘라의 공용어인 스페인어는 하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우고 차베스 사후 엄청난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치안은 극도로 불안했고, 제반 시설 관리 미흡으로 인해 도시 전체의 전기가 끊기는 것은 다반사, 극단으로 치닫는 두 정치 세력의 갈등은 상황을 악화할 뿐이었다.
베네수엘라라는 나라에 대한 문화적 친숙함도 전무했기에 카라카스는 저자에게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완전하게 타인의 땅이었다.

아르헨티나에는 보르헤스가, 칠레에는 아옌데가, 페루에는 바르가스 요사가, 콜롬비아에는 마르케스가 있어서 비록 한 번도 그 땅에 대한 실제 경험이 없었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고난받고 무엇으로 가슴 뜨거워지는지 짐작하는 바 있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 대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차베스라는 이름이 전부였다.(9~10쪽)

완전한 타인의 땅에서의 은밀한 교류
저자는 친숙한 문학작품 속 상황을 호출하여 카라카스에서의 삶과 나란히 놓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카라카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빌라산, 그 산이 드리우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 시간 경계가 흐릿해짐을 느끼며 저자는 제발트가 『현기증. 감정들』에서 묘사한 독일의 숲속 짙은 안개와 사냥꾼의 방랑을 떠올린다. 이 연상은 자연스레 저자 자신의 방랑을 생각하게 한다. 나아가 베네수엘라와 독일, 두 안개의 겹침은 카라카스 사람들의 독특한 시간 인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저자이기에 러시아문학 역시 종종 호출된다. 럼을 제조, 판매하여 얻은 막대한 부를 각종 사회사업을 위해 써 베네수엘라인들의 존경을 받게 된 볼메르 가문을 저자는 곤차로프의 소설 『오블로모프』 에 나오는 게으르고도 너그러운 지주 귀족 오블로모프의 미덕을 통해 이해한다.
물론 가장 많이 호출되는 것은 남미의 문학이다. 베네수엘라의 야생과 물라토 여인의 생명력에 대한 묘사는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경유하며 더욱 생생해진다. 도시 전체의 전기 공급이 끊긴 대정전 사태를 겪으며 가장 안전감을 느껴야 할 집이 더이상 피난처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점거당한 집」을 통해, 지루한 재난 상황 속에서 형성되는 역설적인 평화로움과 유대감은 「남부고속도로」를 통해 이해한다.
이처럼 완전한 이방인인 저자가 카라카스를 경험해나가는 과정은 (문학이라는 운송 수단을 통해) 친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이 섞이며 이루어진다. 그것은 낯선 것을 포섭하여 ‘자기화’하는 것이 아닌, 낯선 것의 ‘낯섦’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동시에 ‘나’의 세계와 교류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예컨대 저자가 러시아에서, 아테네에서, 또 베네수엘라에서 경험한 지루한 줄 서기의 경험은 각각의 고유함을 유지한 채 저자에게 허무한 삶 속에서 어떻게 소극적이나마 생을 긍정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베네수엘라에게 오기 전 배웠던, 아프리카와 유럽과 중남미의 리듬이 뒤섞인 춤, 메렝게를 카라카스에서 다시 경험하며 저자는 어떻게 “서로 무관하게 보이는 사건들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비밀스럽게 교류하는지”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 완전한 타인의 땅의 이야기는 그 처음의 이질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여기 우리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소개

지은이 서정

서울 출생. 서울에서 노문학과 영문학을, 모스크바에서 정치문화를 공부했다. 그리스와 베네수엘라, 노르웨이에서 살았고 현재는 오만의 무스카트에 거주하고 있다.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관심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산문을 싣고 러시아어와 영어로 된 글을 우리말로 옮긴다. 산문집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낙타의 눈』을 썼고,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행복한 장례식』을 옮겼다.

목차소개

프롤로그

1부. 보다 친밀한
1. 아빌라가 여기에
2. 페타레의 율레이시
3. 이주와 정주의 순간들
4. 아시엔다 산타 테레사
5. 언제까지나 야생
6. 벌레의 집
7. 대정전
8. 스페인어 수업의 장면들

2부. 보다 진실한
1. 민중성의 색채
2. 시대적 상징성을 획득한 한 개인의 취향
3. 착시, 혹은 찰나의 진실
4. 먹는다는 것, 그리고 환대한다는 것
5. 열대의 리듬과 가락
6. 세 개의 점, 대학들
7. 이민자들의 산지, 콜로니아토바르
8. 타인은 지옥일까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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