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첼란 전집 5

파울 첼란 | 문학동네 | 2023년 01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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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허수경 시인의 번역으로 만나는
파울 첼란 전집 완간

‘무시무시 섬뜩 아름다움’이라 그때 언니가 말했었지.
‘눈물자국의 가장자리에서 배우렴/사는 것을.’
그리하여 오늘부터 나는 첼란의 이 구절을 섬길 테다, 언니야!
김민정(시인)

아우슈비츠 이후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이며, 2차세계대전 이후를 대표하는 유럽 시인이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인 파울 첼란. 그의 시와 산문, 연설문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3』,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 시절의 초기작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4』, 파리 유고에서 나온 시를 묶은 『파울 첼란 전집 5』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로써 지난 2020년, 첼란의 탄생 100주년 사망 50주기를 맞이해 대표 시집을 네 권씩 묶은 1, 2권으로 첫선을 보였던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이 완간에 이르렀다. 대표작은 물론 초기 시와 유고시, 산문과 연설문까지 모두 아우른 것으로 이제 독자들은 선집이나 단권으로 접해왔던 첼란과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은 2000년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총 일곱 권으로 출간된 『파울 첼란 전집Gesammelte Werke in sieben B?nden』을 저본으로 삼아 (첼란이 랭보, 발레리, 오시프 만델스탐, 셰익스피어, 페소아 등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묶은 두 권을 제외한) 다섯 권으로 구성되었다.



이 전집은 허수경 시인의 유고이기도 하다. 이십대 후반 독일로 떠나 2018년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생의 절반 이상을 ‘실향’ 상태로 지내며 모국어로 쉼없이 작품을 발표해왔던 시인이,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향을 잃은 채 독일어로 시를 썼던 첼란의 세계를 우리말로 옮겼다. 몇몇 갈피 첼란의 시와 함께한 시간이 배어 있는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에서 허수경 시인은 ‘시의 수많은 이미지가 첼란의 유대인의 존재에서 나오지만 첼란의 언어는 다만 첼란이라는 시인의 절대적인 언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말한다.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에서 나온” 첼란의 언어 그 자체에 집중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옮겨놓는다.



“무시무시 섬뜩 아름다움”

홀로코스트를 심장에 새긴 첼란의 시



파울 첼란은 1920년 부코비나 체르노비츠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부코비나는 18세기 후반까지 오스만제국, 그후로는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세계대전 후 루마니아에, 2차세계대전중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되었다. 첼란이 태어날 당시에는 루마니아 영토였으나 유대정신을 계승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대인 학교에 다니며 히브리어를 배웠고, 독일문학에 심취했으며 표준독일어 교육을 중시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집안에서는 독일어를 썼다.

십대 시절 남몰래 시를 쓰기 시작하지만 대학자격시험을 치른 후 의학 공부를 위해 프랑스 투르로 떠났고 일 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1940년 소련이, 일 년 후 루마니아가 재점령하면서 파시스트 정부와 나치 독일에 의해 게토가 된 체르노비츠에서 첼란은 시를 쓰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번역했다. 그리고 곧 나치에 의해 유대인 학살수용소 추방이 시작되었다. 수용소로 끌려간 첼란의 아버지는 병사하고 어머니는 총살형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고, 첼란은 탈출했다가 다시 루마니아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간 뒤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홀로코스트의 경험과 함께 부모의 죽음은 이후의 삶과 시 세계에 영구히 각인되었다.



1944년 2월에야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던 첼란은 체르노비츠를 떠나 부쿠레슈티에서 러시아 문학을 루마니아어로 번역하고 루마니아 잡지에 처음으로 시를 실었다. 1948년 빈에서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가 나왔지만 회수하고, 1952년 공식적인 첫 시집인 『양귀비와 기억』을 시작으로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1955) 『언어격자』(1959)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1963) 『숨전환』(1967) 『실낱태양들』(1968)을 펴냈으며, 사후 『빛의 압박』(1970) 『눈의 부분』(1971) 『시간의 농가』(1976) 등이 출간되었다. 1958년과 1960년에는 독일 문학계의 주요 문학상인 브레멘 문학상과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후 반유대주의와 보수주의 경향이 만연했던 서독 문학계에서 첼란은 “관심과 경탄을 불러일으키며 이목을 끌지만 우리에게는 속하지 않고 그 자신도 그것을 원치 않는” “외래종Exot”의 존재였다. 급기야 비평가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시’ ‘이해할 수 없는’ ‘은유로만 가득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손쉽게 꼬리표를 붙여버렸고, 이 ‘난해성’이라는 그릇된 평가에 대해 첼란은 단호히 저항했다. “쓰인 단어 하나하나가 현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하지만 아니, 그들은 그런 말을 원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나치 수용소에 대해 출판된 최초의 시들 중 하나이자 20세기 유럽 시의 표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 그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죽음의 푸가」조차 처음에는 혹평과 모욕을 견뎌야 했다. 독일어로 시를 쓰는 유대인 시인으로 첼란이 독일 문단에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골 사건Die Goll Aff?re’으로 칭해지는 표절 시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초현실주의 시인 이반 골의 시를 번역한 첼란이 그의 시를 표절했다는 이 의혹은 근거 없음으로 밝혀졌지만, 나치에게 부모를 잃고 자신도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로 공포와 고통에 시달린 그에게 또다른 상처를 입힌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첼란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럼에도 언어였다. 비인간적인 역사를 살아내며 ‘리얼리스트’로 “현실에 상처 입고도 현실을 찾으면서”(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 그것을 말 하나하나에 새겼다. ‘미화하지 않고 시적이 되려 하지 않는’ 언어로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경악을 말했고, 시가 침묵으로 향해 가는 전후의 경향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미-더이상은-아님’에서 ‘그래도-아직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에게 드리웠던 난해성, 비의秘義의 그늘을 걷어낸 자리에, 언제나 ‘너’에게로 향하는 시, 대화와 만남에서 시의 본질을 찾았던 시인이 있다.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은 부코비나를 떠나 부쿠레슈티와 빈에 머물다가 파리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시를 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해 그곳에 묻혔다.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시로 기억하고 당대의 몰이해에 시로 저항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실존을 증명했던 파울 첼란, 오십 년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한 번도 독일에 ‘살았던’ 적 없이, “부모를 죽인 살인자의 언어”인 독일어로 시를 썼던 파울 첼란은 이제 아우슈비츠 이후 가장 중요한 독일어권 시인으로 횔덜린, 릴케와 나란히 기억되며, 그의 시는 사후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해 있다.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

파리 이전의 초기작



『파울 첼란 전집 4』는 여러 시집에 흩어져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초기작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파리 이전 첼란의 삶에서 중요했던 세 곳인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으로 나누어 1938년부터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가 나온 1948년 중반까지 십여 년 동안 쓴 시와 시산문을 아우르고 있다. 루마니아어로 쓴 작품도 포함되어 있으며, 초기작을 장소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묶었으므로 전집 1, 3권과 중복해 실린 시들도 존재한다.

첼란의 고향이자 스스로 “책들과 사람들이 살았던”(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 곳이라 말하는 부코비나는 우크라이나인, 루마니아인, 유대인, 독일인, 폴란드인, 헝가리인 등이 공존하는 다민족, 다언어, 다문화 지역으로, 이곳 인구의 거의 절반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었고 히브리어와 이디시어를 바탕으로 유대교와 유대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첼란에게 부코비나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 토양이었다. 번역가로 생계를 유지했던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 잡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본명 ‘안첼’이 아닌 ‘첼란’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던 곳이었다. 부코비나, 부쿠레슈티를 거쳐 옮겨가게 된 빈은 독일이 아니면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곳으로 동경하던 그에게는 “충분히 멀지만, 다다를 수 있는 곳”(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이었다. 머문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잉게보르크 바흐만을 처음 만난 곳으로 첼란의 삶에서는 중요한 곳이며, 빈에서 쓴 많지 않은 시는 「코로나」를 비롯해 대부분 바흐만을 향한 것이었다.

저자소개

지은이 파울 첼란Paul Celan
1920년 루마니아의 부코비나 체르노비츠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파울 안첼. 시오니스트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대인 학교에서 히브리어로 교육받았고, 독일문학에 심취했던 어머니의 뜻대로 집안에서는 독일어를 사용했다. 1938년 체르노비츠에서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르고 프랑스 투르로 떠나 의학을 공부하다가 이듬해 고국으로 돌아와 문학과 로망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소련 영토가 된 체르노비츠는 다시 독일과 루마니아 군대의 점령으로 게토가 되었고 유대인에 대한 추방이 시작되었다. 집단학살수용소로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와 대학 공부를 재개했고 부쿠레슈티에서 번역과 편집에 몰두했으며, 1947년 루마니아 잡지 『아고라』에 처음으로 시를 실었다. 빈으로 거처를 옮겨 몇 달 지내다 1948년부터 프랑스 시민권을 얻어 파리에 정착했다. 그해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를 출간했으나 오탈자가 많다는 이유로 회수하고 이중 25편을 골라 공식적인 첫 시집 『양귀비와 기억』에 수록했다. 이후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언어격자』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숨전환』『실낱태양들』을 펴냈으며, 사후 『빛의 압박』 『눈의 부분』 『시집』(전2권) 『시간의 농가』가 출간되었다. 1958년 브레멘 문학상, 1960년 게오르크 뷔히너 상, 1964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예술대상을 수상했다. 1970년 4월 센강에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허수경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을 발표한 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가 뮌스터대학교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뒤로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모래도시』 『아틀란티스야, 잘 가』 『박하』, 동화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을 펴냈고,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가을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고집으로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오늘의 착각』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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