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매춘부

몰리 스미스 주노 맥 저/이명훈 역 | 오월의봄 | 2022년 06월 03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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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이 책은 성노동자이자 성노동자 권리 운동 활동가인 저자들이 쓴 책으로, 비매춘부들의 추상화된 언어에 가려져 왔던 현직 성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들에 기대, 매춘을 둘러싼 이분법에 반대한다. 매춘이 폭력인지 노동인지, 그것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따지는 추상적 논의 속에서 성노동의 현장, 구체적이고 다양한 성노동자의 삶과 목소리는 지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매춘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행복한 창녀’도 아니고 ‘탈성매매 여성’도 아니다. 오늘 밤이나 내일,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위험이 닥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매춘을 해야 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매춘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산업의 분석은 이제 추상적 논의에서 벗어나 성노동자의 복잡다단한 경험에 기반해 물질적으로, 실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노동자를 성산업에서 구출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방식, 성노동을 찬미하고 성산업의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실제로 성노동자의 삶을 위험하게 만드는 물질적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기에 바로 성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과 물질적 조건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 구조인 섹스, 노동, 국경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이어서 성노동자와 성산업을 규율하는 법제화 모델들의 사례들이 매춘부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적 영향을 주는지 면밀히 살펴본다.

저자소개

저 : 몰리 스미스 (Molly Smith)
영국 에든버러에 거주하는 성노동자이자 영국의 성노동 비범죄화, 성노동자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운동 등에 중점을 둔 성노동자 단체인 성노동자 지지 및 저항 운동Sex Worker Advocacy and Resistance Movement, SWARM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다. 스코틀랜드의 성노동 비범죄화를 추진하는 성노동자 단체인 스코트-펩SCOT-PEP에도 참여하고 있다. 《가디언》과 《뉴리퍼블릭》에 성노동 정책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저 : 주노 맥 (Juno Mac)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성노동자이자 영국의 성노동 비범죄화, 성노동자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운동 등에 중점을 둔 성노동자 단체인 성노동자 지지 및 저항 운동Sex Worker Advocacy and Resistance Movement, SWARM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다. 테드TED의 〈성노동자들이 진정 원하는 법률The Laws that Sex Workers Really Want〉을 비롯해 성노동자 권리 보장에 관한 여러 강의를 진행해왔다.

역 : 이명훈
전직 사회교사. 지금은 대학에서 예비교사들을 만나고 있다. 상호배움, 정치, 돌봄, 살림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교육의 가능성을 고민해왔지만, 아직도 그 물음표 주위를 맴도는 중이다. 다수의 인간, 개, 식물과 식구로 지내면서 취약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 배우고 있다. 잔혹한 낙관을 쫓기보다 불확실한 삶을 신뢰한다. 교육자나 연구자란 이름은 여전히 무겁고 부담스럽지만, 흔들리는 일상에 필요한 언어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주변화되고 비가시화된 몸들의 노동과 정동에 관한 이야기를 옮기게 된 건 이 때문이다. 교육과 운동의 언저리에서 내 몫의 역할을 찾으려 한다.

목차소개

추천의 글
하나의 정답 대신, 구체적인 현실과 구조에서부터 변화를 만들기 위해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흔들릴지언정 멈추지 않아야 할 질문―박이은실(여성학자)

들어가며
1. 섹스
2. 노동
3. 국경
4. 빅토리아 시대의 유물: 영국
5. 감옥국가: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6. 인민의 집: 스웨덴, 노르웨이, 아일랜드, 캐나다
7. 특권층: 독일, 네덜란드, 미국 네바다
8. 만능열쇠는 없다: 아오테아로아(뉴질랜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나가며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주(註)

출판사 서평

정작 성노동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양극단 사이에서 지워지는 현실
“형법으로 성판매를 막기는 매우 어렵다. 범죄화는 성판매를 위험하게 만들 뿐이며, 국가는 성판매 및 성매매에 필요한 인간 역량을 물리적으로 억제할 방법이 없다. …… 생계를 위한 성노동은 아마도 위험하고 춥고 무섭겠지만, 굶주리고 집 없고 약물에 빠져 다른 선택지가 없는 이들에게 이것은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곤궁에 빠진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일종의 ‘안전망’인 셈이다. 성노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매춘을 둘러싼 논의는 같은 자리를 맴돌아왔다. 소위 ‘반성매매론’ 대 ‘성노동론’이라 불리는 입장의 각축전일뿐이었고, 둘 중 어떤 입장을 지지하는지를 묻는 일이 반복되어왔다.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논할 때는 완전 범죄화 모델, 합법화 모델, 노르딕 모델, 비범죄화 모델 등 특정 법제화 모델을 선택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다루어지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 이항대립적 논의가 매춘을 노동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매몰되어 진행되어왔으며, 매춘은 ‘성을 사고파는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 ‘대가를 받는 강간(페이 강간)’이며 따라서 매춘은 정당화될 수 없고 특히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즉 매춘 자체가 범죄라는 ‘반성매매론’은 페미니즘 내 매춘을 둘러싼 주류의 목소리로 자리 잡아왔다.
‘성노동(sex work)’이라는 단어는 성노동자 당사자이자 활동가인 캐럴 리에 의해 고안된 말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포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위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매춘이 곧 강간이라는 시각하에서는 폭력으로서의 성 접촉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성노동자가 강간문화에 공모하는 이로 취급되고 그들이 당하는 폭력은 당해도 싼 것이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매춘부는 피해자로서 인정되어야만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거나, 성매매 범죄화에 찬성하는 생존자로서의 ‘탈성매매 여성’만이 매춘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했다. 또한 매춘을 자발적으로 했는지 강제적으로 했는지 따져 물으며 그에 따라 매춘 여성을 달리 여기는 태도 역시 존재해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성산업 현장에 성차별과 여성혐오가 없다며 성산업의 문제를 과소평가하면서 성노동을 찬미하거나, 성노동이 성노동자의 권능을 강화한다는 식으로 ‘행복한 창녀’ 신화를 앞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 역시 성노동자의 실제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특히나 섹스 긍정주의 정치는 성노동자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실제로 성노동의 현장에서 겪는 성노동자의 폭력과 부당함을 도리어 부정하게 만든다. 이 역시 페미니즘의 지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매춘 비범죄화를 옹호하는 성노동자는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에게 부인되고, 성노동을 하며 폭력과 착취를 경험하고 있는 성노동자는 섹스 긍정주의자들에게도, 탈성매매자나 탈성매매를 할 사람들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생존자라고 여기는 감금 페미니즘(carceral feminism, 여성 정의를 세우기 위해 치안 유지와 범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경찰력을 환영하는 페미니즘) 지지자들에게도 부인된다.
하지만 현실은 양극단 사이에 놓여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이런 논의 속에 ‘정작 매춘부의 삶, 성노동자 당사자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작 매춘부들의 구체적인 삶과 안전, 성노동자 당사자의 요구는 뒷전이 된 채 현재 성노동자가 아닌 탈성매매자, 성노동 경험이 없는 비매춘부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해온 ‘매춘부 없는 매춘부 담론’, 즉 추상적 논의만이 난무해왔다는 비판이다.
“매춘부와 비매춘부, 그리고 현직 성노동자와 전직 성노동자 사이에는 단지 정체성이 아니라 성을 판매하고 거래하는 것을 둘러싼 ‘물질적 조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91쪽)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성산업의 노동조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현직 성노동자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매춘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탈성매매 여성이나 비매춘부 페미니스트의 시각이 중심이 되어 성노동자의 목소리는 부속품처럼 취급되어왔으며, 당사자인 현직 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가로막혀온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성노동자이자 성노동자 권리 운동 활동가인 저자들이 쓴 책으로, 비매춘부들의 추상화된 언어에 가려져 왔던 현직 성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들에 기대, 매춘을 둘러싼 이분법에 반대한다. 매춘이 폭력인지 노동인지, 그것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따지는 추상적 논의 속에서 성노동의 현장, 구체적이고 다양한 성노동자의 삶과 목소리는 지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매춘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행복한 창녀’도 아니고 ‘탈성매매 여성’도 아니다. 오늘 밤이나 내일,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위험이 닥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매춘을 해야 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매춘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산업의 분석은 이제 추상적 논의에서 벗어나 성노동자의 복잡다단한 경험에 기반해 물질적으로, 실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노동자를 성산업에서 구출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방식, 성노동을 찬미하고 성산업의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실제로 성노동자의 삶을 위험하게 만드는 물질적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기에 바로 성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과 물질적 조건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 구조인 섹스, 노동, 국경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이어서 성노동자와 성산업을 규율하는 법제화 모델들의 사례들이 매춘부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적 영향을 주는지 면밀히 살펴본다.“누구의 삶도 ‘불법’이어서는 안 된다”: 섹스, 노동, 국경
이 책은 매춘을 둘러싼 섹스와 노동에 대한 논의가 그간 매춘과 매춘을 하는 당사자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추상적으로 이해되어왔음을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옮긴이의 말처럼 “노동과 섹스가 좋은지 나쁜지, 이에 근거해 매춘이 좋은지 나쁜지에 골몰하는 동안 노동과 섹스, 매춘과 매춘부에 대한 추상적 이해는 그 실제적 이해를 압도해왔다”(400쪽)라는 것이다.
유독 매춘을 다룰 때만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며 ‘매춘은 노동이 아니라 착취’이고 ‘성노동은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것’이라는 인식, 돈 거래 없이 고객과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고 성노동자에게 따지는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의 태도를 보라. 이때 노동은 끔찍하지 않은 것, 착취당하지 않는 것, 돈을 받지 않고도 추구할 수 있는 개인적 성취를 위한 것으로 소환된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 노동 현장은 어떠한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하에서 많은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은 본질적으로 착취적이며 성차별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매춘을 노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춘이 다른 노동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며 매춘을 비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성을 판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주변화된 사람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의 방편으로 선택하는 것이 매춘이다.
성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좌파들이 매춘 비범죄화를 지지하는 것은 성매매가 범죄화가 되면 성판매자들의 삶이 불법이 되기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약 시장이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범죄화된 시장에서 가장 가혹하게 작동한다.”(113쪽) 저자들은 성노동이 필요한 자원을 얻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을 판매하지 않고도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다면, 성산업 폐지에 반대할 성노동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직업이 나쁘다는 말은 그것이 진짜 직업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성노동은 노동이라는 주장은 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노동이 좋은 것, 재미있는 것이라거나 심지어 해롭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노동이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 자본주의를 옹호하려는 것도, 더 크고 수익성 있는 성산업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118~119쪽)
섹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창녀’라는 신화를 앞세우는 집단이자 성산업의 부역자로 상상되는 프로-섹스 페미니스트와 매춘의 범죄화를 지지하는 집단이자 피해 여성,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로 상상되는 섹스 부정주의적 페미니스트가 서로의 안티 테제로서 적대적 공생을 지속하는 사이 ‘행복한 창녀’도 아니고 ‘탈성매매자’도 아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실재하는 매춘부는 사라지고 만다.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에게 비범죄화를 옹호하는 생존자들은 존재할 수 없거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다. 성노동을 통해 비참해지고 폭력에 시달리며 착취를 당했던 경험이 있지만 여전히 그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프로-섹스 정치 때문에 성노동자 운동에서 밀려나 정치적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로 여겨지거나, 탈성매내자 혹은 곧 탈성매매할 사라들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감금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비가시화(혹은 전략적으로 부인)된다.”(88쪽)
이 책이 국경, 이주의 문제를 다루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매춘은 ‘인신매매’라는 ‘절대악’의 ‘피해자’로 상상되어왔다. 이런 이유로 우파뿐 아니라 좌파와 페미니스트들마저 경찰력을 동원해 미등록 이주민 여성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을 해결책으로 주장하고, 이것은 미등록 이주민을 추방하거나 국경을 봉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빠져 있는 질문은 어째서 누군가는 빚을 지면서까지 국경을 넘는 것인지, 어떻게 미등록 이주 문제가 성 인신매매 문제가 연결되는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주를 선택하고, 밀입국을 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성산업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범죄의 피해자로 상상되는) ‘인신매매’와 (자발적) ‘밀입국’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성매매를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미등록 이주민의 이동권과 노동권을 박탈하는 국경 정책을 타격해야 하지만, 한편에서는 상업적 섹스가 인신매매를 일으키며 매춘은 인신매매와 결부된다는 전제하에서 경찰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길 원하고(반성매매 감금 페미니스트 진영), 다른 한편에서는 성노동과 인신매매가 동일하지 않다며 방어하는 바람에 이주와 성산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착취를 경험하는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다(성노동자 권리 운동 진영)는 것을 우려한다. 이 책이 계속해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중첩되고 교차하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이다.“성노동자의 성판매 욕구는 고객의 성구매 욕구보다 훨씬 더 크다”: 성노동자의 눈으로 보는 법제화 모델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섹스를 교환하는 것은 특정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지극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인간 행위이며, 이것이야말로 성노동의 핵심이다. 성노동 금지는 성노동자들이 단속을 피해 도망가거나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어 그들을 더 주변으로 내몰고 더 해로운 상황에 노출시킨다.”(339~340쪽)
이 책은 특히 국경 단속의 강화와 경찰력이 강화되는 경향이 형법의 변화에 따라 성노동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초점을 맞추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매춘을 규율하는 법제화 모델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그것을 분석한다.
1)거리 성노동처럼 눈에 띄는 몇몇 성산업을 불법화하는 법제화 모델로 섹스를 직접 사고파는 것은 합법이나, 그 밖의 호객행위, 동료와 함께 운영하는 실내 성매매, 성매매 알선 등은 모두 불법인 ‘부분 범죄화 모델’(영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에서 따름),
2)성노동자, 고객, 제3자(관리자, 운전기사 등)가 모두 범죄화되어 있는 ‘완전 범죄화 모델’(우간다,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 중국 등에서 적용하는 모델이며 한국 역시 이 모델을 따름),
3)표면상 성판매자를 비범죄화하고 성구매자, 제3자를 처벌하는 모델인 ‘스웨덴 모델’(노르딕 모델, 수요 근절, 섹스숍스라겐 등으로도 불리며, 스웨덴, 프랑스, 아이슬란드, 북아일랜드 등이 이 모델을 따름)
4)의무적인 건강검진, 특정 장소 내에서의 고용, 매춘부 공식 등록 등의 다양한 행정적 요건을 충족할 수 없거나 충족하지 못하는 성노동자에 대한 범죄화를 유지하면서, 합법화된 성산업 부분에 대해선 엄격히 규제하는 법제화 모델인 규제주의 모델(합법화, 허가제 등으로도 불리며, 독일, 네덜란드, 미국 네바다에서 따름),
5)성노동자, 고객, 제3자를 비범죄화하고 노동법을 통해 성산업을 규제하는 법제화 모델인 ‘완전 비범죄화 모델’(뉴질랜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호주 노던테리토리에서 따름)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이 다섯 가지 법제화 모델을 다루며 각각의 모델이 성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세히 분석하며, 가장 주변화된 성노동자들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어떤 형사 법제화의 방향이 필요한지를 분석한다. 여기서 핵심은 성산업에 참여하는 행위자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범죄화 제도(그것이 부분적이든 아니든)는 성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그들의 처지를 더 악화한다는 것을 보인다는 점이다. 어떤 법제화 모델이든 성산업은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주변화된 이들의 방편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이상 성산업을 범죄화하고 그 직업을 없애는 단순한 방식으로는 그 일로 먹고사는 이들을 돕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지지하는 ‘노르딕 모델’(구매자와 관리자를 비롯한 제3자는 처벌하되, 판매자는 비범죄화해 처벌하지 않는다는)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장은 중요하게 참고할 만하다. 성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노르딕 모델은 이상적 지향일지 모르나, 성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르딕 모델이란 자신을 노동현장과 조건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고객이 범죄화되면서 고객의 수가 줄어들게 되면 성판매자는 콘돔 없는 섹스나 폭력적인 고객을 거부할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난한 성노동자일수록 위험한 고객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성노동자의 성판매 욕구는 고객의 성구매 욕구보다 훨씬 더 크다.” 결과적으로 고객을 범죄화하면서 성노동자와 고객 사이의 권력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성노동자에게 수요(고객)가 줄어든다는 것은 매우 해로운 영향을 준다. 수요 감소로 더욱 열악해진 그들이 쉽게 성산업을 탈출할 리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반성매매 혹은 노르딕 모델의 지지자들 역시 주지하고 있듯 탈성매매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며 오랜 기간이 필요한데, 성노동자는 스스로 탈성매매를 원하더라도 그동안 고객 범죄화로 인해 더욱 열악해진 성산업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며, 탈성매매를 위한 사회적 서비스 역시 제대로 지원되고 있지 않다.
나아가 노르딕 모델이 성노동자를 비범죄화하고 그들을 보호한다는 것 역시 실상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스웨덴 가정법원은 2013년에 성노동을 직업이 아니라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성노동자인 재스민이 아닌 폭력적인 그녀의 전남편에게 자녀들의 양육권을 부여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그녀의 전남편은 아이들을 만나러 온 그녀를 칼로 찔러 죽였다. 게다가 성노동자를 비범죄화한다고 하지만 이들에게 벌금을 물리고 거주지에서 퇴거를 시키며, 주변화된 집단(트랜스 여성, 이주 여성, 유색인종 여성 등)의 성노동자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법을 집행한다. 가령 비자를 소지한 이주 성노동자일지라도 추방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노동자는 경찰을 찾는다는 것은 “총에 겨눠져 강도를 대신 홈리스가 될 위험을 감수하는 일”(296쪽)이기 때문에 그들은 경찰을 찾지 않게 되며, 위험한 고객들에게 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착취적인 상황에 처한(즉, 인신매매의 피해자로 여겨지는) 성노동자의 경우 역시 경찰을 찾을 경우 추방당하게 되므로 그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매춘부들이 승리하면, 모든 여성이 승리한다
“우리의 입장은 성산업이 그 자체로 가치 있거나 바람직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성매매를 하며 겪은 여성혐오와 폭력을 불쾌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성노동을 인도적으로 폐지하는 일은 주변화된 사람들이 더 이상 성산업을 통해 스스로를 지탱할 필요가 없을 때, 즉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성산업이 필요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저자들은 섹스, 노동, 국경 등 성산업을 구성하는 주요한 축들의 교차적 분석을 바탕으로 여러 법제화 모델들이 매춘부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성노동과 관련한 행위들을 금지하는 법규를 아예 폐지해버리는 완전 비범죄화 모델에 주목한다. 이는 매춘부를 통제나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 독일, 네덜란드 등의 규제주의·합법화 모델과는 다른 것으로, 성노동을 범죄로 전제하지 않고 성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조치를 마련하는 데 집중한다.
저자들은 성노동자들의 안전과 생존을 지키는 열쇠로 비범죄화 모델을 지향한다. “금지론이 퍼져 있는 현실에서 성노동 범죄하는 상업적 섹스를 근절하는 데 도움이 된 적이 없으며, 폭력은 성노동이 감수해야 할 위험요소 정도로만 여겨진다. 성노동 범죄화가 전달하는 실제 메시지는 명백하다. 바로 성판매자들이 안전, 권리, 정의의 바깥에 놓여 있다는 것”이지만 성노동 비범죄화는 “성판매자들의 즉각적이고 경제적인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특히 완전 비범죄화 모델을 따르고 있는 뉴질랜드의 경우, 뉴질랜드매춘부단체(NZPC)라는 성노동자 단체가 주도해 성노동자들이 직접 매춘개혁법 제정에 참여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비범죄화를 ‘만능열쇠’로 보는 것은 경계한다. “임신중지 합법화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재생산 정의를 이루는 데 충분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범죄화 역시 성노동자 정의를 위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법제화 모델을 선택할 것인지에만 매몰되어서는 성노동자의 실제 삶에 어떤 물질적 변화를 가져오는지 실용적이고 세밀한 질문을 던질 수 없게 된다.
가령 (완전 범죄화 모델하에서는 물론이겠지만) 완전 비범죄화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구호만으로는, 비범죄화를 적용하더라도 근로자성을 획득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지금의 한국의 노동 현실에서 성노동자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노조의 협상력이 낮은 한국에서 과연 다른 직종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성노동자들이 제대로 협상력을 가질 수 있을지와 같은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떤 법제화 모델을 선택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완벽한 제도는 없기에 누구도 버림받지 않으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세밀한 질문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산업은 페미니즘 안에서도 언제나 깊은 갈등의 골을 만들어내는 주제였으나, 그 사이에서 언제나 빠져 있던 것은 먹고살기 위해 위험하고 취약한 조건 속에서 성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구체적 개인들의 삶이었다. 또한 매춘부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헌신해왔으나, 그 역사는 주목받지 못해왔고 심지어 페미니즘 운동과 매춘부들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매춘부들의 목소리는 지워져 왔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성매매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성매매를 범죄화해야 하느냐 비범죄화해야 하느냐라는 추상적 질문이 아니라 성노동자들을 정작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이들은 누구인지부터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들어야 한다. “이제는 성노동자들이 말할 차례다.” 그랬을 때 저자들의 말처럼 “매춘의 정치는 여성 간 불화가 아니라 협력의 정치”가 될 수 있으며 “안전하고, 수입을 보장받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길 요구하는 매춘부들의 배짱 있는 태도에 페미니스트들의 반란와 저항이 더욱 고양될 수 있는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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