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고전514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전집Ⅶ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테마여행신문 TTN Theme Travel News Korea | 2022년 03월 1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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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보물섬(Treasure Island)(1883)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1886)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사후 그의 모든 작품을 총망라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전집(The Works of Robert Louis Stevenson)은 모두 25권으로 스완스톤 에디션(Swanston Edition) 출간을 위해 (작가와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평론가인 앤드루 랭(Andrew Lang)(1844~1912)이 특별판 서문(Introduction to the Swanston Edition)을 썼습니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대표작은 역시나 장편소설이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여행기를 비롯해 연극대본, 어린이를 위한 시집, 작문법, 산문집, 편지 등 평생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전집을 통해 광범위한 분야에서 필력을 자랑한 로버트 스티븐슨의 문학세계로 탐험을 떠나보시길...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INTRODUCTION TO THE SWANSTON EDITION. So much has been written on R. L. Stevenson, as a boy, a man, and a man of letters, so much has been written both by himself and others, that I can hope to add nothing essential to the world's knowledge of his character and appreciation of his genius. What is essential has been said, once for all, by Sir Sidney Colvin in "Notes and Introductions" to R. L. S.'s "Letters to His Family and Friends."

스완스톤 에디션 서문. 스티븐슨(RL Stevenson)은 소년, 남자, 그리고 문필가로서 너무나 많은 것이 쓰여져 왔으며,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나는 그의 성격과 감사에 대한 세상의 지식에 필수적인 것을 추가하기를 희망할 수 없습니다. 그의 천재성. 중요한 것은 R. L. S.의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His Family and Friends)"에 대한 "참고 및 소개(Notes and Introduction)"에서 시드니 콜빈(Sidney Colvin) 경이 한 번 말한 적이 있습니다.

I can but contribute the personal views of one who knew, loved, and esteemed his junior that is already a classic; but who never was of the inner circle of his intimates. We shared, however, a common appreciation of his genius, for he was not so dull as to suppose, or so absurd as to pretend to suppose, that much of his work was not excellent. His tale "Thrawn Janet" "is good," he says in a letter, with less vigour than but with as much truth as Thackeray exclaiming "that's genius," when he describes Becky's admiration of Rawdon's treatment of Lord Steyne, in the affray in Curzon Street.

나는 이미 고전이 된 후배를 알고,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의 개인적인 견해를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친밀한 사람들의 내부 서클에 속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천재성에 대한 공통된 평가를 공유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작품 중 많은 부분이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둔하지도 않고, 추측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야기 "쓰론 자넷(Thrawn Janet)"은 "좋다"고 그는 편지에서 말했습니다. 그는 커즌 스트리트(Curzon Street)의 새커레이(Thackeray)가 "천재다"라고 외쳤을 때보다 덜 활기차고 진실하다고 말했습니다.

About the work of other men and novelists, or poets, we were almost invariably of the same mind; we were of one mind about the great Charles Gordon. "He was filled," too, "with enthusiasm for Joan of Arc," says his biographer, "a devotion, and also a cool headed admiration, which he never lost." In a letter he quotes Byron as having said that Jeanne "was a fanatical strumpet," and he cries shame on the noble poet. He projected an essay on the Blessed Maid, which is not in "the veniable part of things lost.“

다른 사람들과 소설가, 시인의 작품에 대해 우리는 거의 변함없이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찰스 고든(Charles Gordon)에 대해 한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전기 작가는 "그는 또한 잔 다르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라고 그의 전기 작가는 말합니다. 편지에서 그는 바이런(Byron)이 잔느(Jeanne)에게 "광신적인 스트럼펫"이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고 그는 고귀한 시인에게 수치심을 웁니다. 그는 '잃어버린 것의 가련한 부분'에 속하지 않는 성모님에 대한 에세이를 투사했습니다.

There are points enough in Stevenson's character and opinions which I have not touched; such as his religious views. He never mentioned the topic of religion in my hearing; it is to his printed words that the reader must turn, and he cannot but perceive that Stevenson's was a deeply religious nature. With his faith, whatever its tenets may have been, was implicated his uneasily active conscience; his sense of duty. This appears to have directed his life; and was practically the same thing as his sense of honour. Honour, I conceive, is, in a phrase of Aristotle's, duty "with a bloom on it.“

스티븐슨의 성격과 의견에는 내가 만지지 않은 요점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의 종교적 견해와 같은. 그는 내 청력에서 종교에 대한 주제를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독자는 그의 인쇄된 단어에 주목해야 하며, 그는 스티븐슨의 것이 매우 종교적인 성격이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 교리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불안하게 활동적인 양심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의 사명감. 이것이 그의 삶을 인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명예와 거의 같은 것이었습니다. 명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꽃을 피우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He could not overcome it; little boys and girls were his delight, and he was theirs. At Molokai, the Leper Island, he played croquet with the little girls; refusing to wear gloves, lest he should remind them of their condition. Sensitive and weak in body as he was, Nelson was not more fearless. It was equally characteristic of another quality of his, the open hand, that he gave a grand piano to these leper children.

그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소년 소녀들은 그의 기쁨이었고 그는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나환자 섬 몰로카이에서 그는 어린 소녀들과 크로켓을 연주했습니다. 장갑 착용을 거부하여 그들의 상태를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 예민하고 약한 몸을 가진 넬슨은 더 이상 겁이 없었습니다. 그가 이 나병 환자들에게 그랜드 피아노를 준 것도 그의 또 다른 특징인 열린 손의 특징이었습니다.

저자소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스코틀랜드(Scotland) 에든버러(Edinburgh) 출생의 영국 소설가(1850~1894)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1850년 영국의 북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에서 태어났습니다.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로,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도 활동한 ‘문학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세례명은 로버트 루이스 발포어 스티븐슨(Robert Lewis Balfour Stevenson)으로, 성인이 되는 18세, 현재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으로 고쳤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과 마찬가지로, 에든버러의 서울대(?!) 에든버러 대학(The University of Edinburgh)를 졸업한 엘리트로, 공학(engineering)을 전공하였습니다. 학창 시절 연극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맞춰 1875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이후 가족의 품을 벗어나, 한명의 독립적인 문학가로써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에든버러(Edinburgh)는 스티븐슨이 태어나 자란 도시이니만큼 그와 연관된 흔적 ? 동상, 기념비, 집 등, 또한 곳곳에 있습니다.

애 셋 낳은 11세 연상의 미국인 유부녀와 결혼하다(1879) :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할 1876년, 11세 연상의 미국 여성 프랜시스 패니 마틸다 반 더 그리프트 오스본(Frances "Fanny" Matilda Van de Grift Osbourne)과 사랑에 빠집니다. 문제는 그녀가 남편 사무엘 오스본(Samuel Osbourne)이 버젓이 살아있는 유부녀라는 것! 남편의 외도에 분노한 그녀는 미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자녀들과 함께 이주하였습니다. 그녀의 복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매료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남편과 별거 중인 그녀가 이혼하자마자 결혼식(1880)을 올립니다. 재혼한 패니 오스본은 1875년 사망한 허비(Hervey)를 제외하고 두 명의 자녀 ? 딸 이소벨(Isobel), 아들 로이드(Lloyd)가 있었는데, 새아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이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이야기를 짓고 자신의 글을 자녀들이 읽기도 하였습니다. 보물섬(Treasure Island)(1883)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요양차 스위스 다보스에 머무를 당시 의붓아들 로이드가 엉터리로 그린 보물지도를 보고, 자녀들에게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험담을 들려주기 위해 집필한 작품입니다. 작가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애정 어린 작품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의 동심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걸작이지요! ‘보물찾기’를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 보기 드물게 해피엔딩인 것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티븐슨 가족은 1884년 영국 본머스 웨스트본(Westbourne)에 정착하였으며,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남태평양 사모아(S?moa)에서 영면에 들다(1894)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어려서부터 기관지(bronchial trouble)가 좋지 않았는데 특히 겨울철마자 심한 기침과 발열로 고생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 결혼 이후에 수시로 요양원을 들락거렸습니다. 건강이 비교적 좋았던 청년기에는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여행기를 집필하였고 요양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는 하나, 1888년부터는 미국을 떠나 요트 한척을 빌려 가족들과 함께 남태평양을 두루 떠돌았습니다. 그가 유독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여행과 탐험’에 매력을 느꼈고, 작가로써 적지 않은 여행기를 집필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란 견해도 있습니다. 카스코 호(the Casco)에 몸을 싣고 하와이(Hawaii), 길버트 섬(Gilbert Islands), 타히티(Tahiti), 뉴질랜드(New Zealand)... 1889년에는 아예 남태평양의 섬 사모아(S?moa)에 정착하였습니다. 절해고도의 섬 외딴 곳에 2층짜리 저택을 세우고, 아내와 함께 사는 삶이라니... 생각만 해도 부럽네요! 그러나, 약해진 몸은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웠고, 1894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는 생의 말년에 세계 각지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제국주의에 깊은 반감을 가졌고, 이 덕분에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모아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사후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사모아의 성산 바이아 산(Mount Vaea)에 매장되었으며, 그의 묘에는 그가 지은 레퀴엠(Requiem)이 새겨져 있습니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그의 묘가 마련되어 있으며, 1.6 km 떨어진 그의 저택은 현재 Robert Louis Stevenson Museum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내 패니 스티븐슨은 남편이 없는 사모아를 떠나 미국으로 귀국했고, 1914년 사망했습니다. 패니의 유골은 1915년 딸이 사모아로 옮겨 남편과 함께 합장되었습니다.

목차소개

-목차(Index)-
프롤로그(Prologue).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999선을 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조명화 편집장의 21가지 키워드로 읽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01. 스코틀랜드(Scotland) 에든버러(Edinburgh) 출생의 영국 소설가(1850~1894)
02. 애 셋 낳은 11세 연상의 미국인 유부녀와 결혼하다(1879)
03. 남태평양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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