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고전496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엔지니어 가족의 기록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테마여행신문 TTN Theme Travel News Korea | 2022년 03월 1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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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엔지니어 가족의 기록(Records of a Family of Engineers by Robert Louis Stevenson)(1896)은 보물섬(Treasure Island)(1883)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1886)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1889년 남태평양의 작은 섬 사모아(Samoa)에 정착한 이후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기 전에 사망한 유작으로 자신의 가계도에 관한 기록물입니다. 자신의 할아버지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Stevenson)(1772~1850)을 중심으로 가족 가계(family ancestry), 자신이 등대 공학자(lighthouse engineer)로써 참여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Northern Lighthouse Board와 스코틀랜드 앵거스 해안의 벨 락 등대(Bell Rock Lighthouse) 등에 관한 원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INTRODUCTION: THE SURNAME OF STEVENSON. From the thirteenth century onwards, the name, under the various disguises of Stevinstoun, Stevensoun, Stevensonne, Stenesone, and Stewinsoune, spread across Scotland from the mouth of the Firth of Forth to the mouth of the Firth of Clyde. Four times at least it occurs as a place-name. There is a parish of Stevenston in Cunningham; a second place of the name in the Barony of Bothwell in Lanark; a third on Lyne, above Drochil Castle; the fourth on the Tyne, near Traprain Law. Stevenson of Stevenson (co. Lanark) swore fealty to Edward I in 1296, and the last of that family died after the Restoration.

소개: 스티븐슨의 성. 13세기부터 이름은 Stevinstoun, Stevensoun, Stevensonne, Stenesone 및 Stewinsoune의 다양한 위장 하에 포스 만 입구에서 클라이드 만 입구까지 스코틀랜드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적어도 네 번은 장소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Cunningham에 Stevenston 교구가 있습니다. Lanark의 Bothwell 남작에서 이름의 두 번째 장소; 드로칠 성 위 라인의 세 번째. Tratrain Law 근처 Tyne의 네 번째. Stevenson의 Stevenson(co. Lanark)은 1296년 에드워드 1세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그 가족의 마지막은 유신 이후 사망했습니다.

‘Stevenson?or according to tradition of one of the proscribed of the clan MacGregor, who was born among the willows or in a hill-side sheep-pen?“Son of my love,” a heraldic bar sinister, but history reveals a reason for the birth among the willows far other than the sinister aspect of the name’: these are the dark words of Mr. Cosmo Innes; but history or tradition, being interrogated, tells a somewhat tangled tale. The heir of Macgregor of Glenorchy, murdered about 1858 by the Argyll Campbells, appears to have been the original ‘Son of my love’; and his more loyal clansmen took the name to fight under.

'스티븐슨(Stevenson)-또는 버드나무나 언덕의 양 우리에서 태어난 금지된 맥그리거(MacGregor) 일족의 전통에 따르면-“내 사랑의 아들”, 전령 바 불길하지만 역사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이름의 사악한 측면과는 거리가 먼 버드나무 사이의 탄생을 위해': 이것은 코스모 이네스 씨의 어두운 말입니다. 그러나 역사나 전통을 물으면 다소 얽힌 이야기를 합니다. 1858년경 Argyll Campbells에 의해 살해된 Glenorchy의 Macgregor의 상속인은 원래 '내 사랑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의 더 충성스러운 씨족들은 그 이름을 따라 싸워야 했습니다.

It may be supposed the story of their resistance became popular, and the name in some sort identified with the idea of opposition to the Campbells. Twice afterwards, on some renewed aggression, in 1502 and 1552, we find the Macgregors again banding themselves into a sept of ‘Sons of my love’; and when the great disaster fell on them in 1603, the whole original legend reappears, and we have the heir of Alaster of Glenstrae born ‘among the willows’ of a fugitive mother, and the more loyal clansmen again rallying under the name of Stevenson. A story would not be told so often unless it had some base in fact; nor (if there were no bond at all between the Red Macgregors and the Stevensons) would that extraneous and somewhat uncouth name be so much repeated in the legends of the Children of the Mist.

그들의 저항에 대한 이야기가 대중화되었고 이름이 일종의 캠벨에 대한 반대 개념과 동일시되었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 후 두 번, 1502년과 1552년에 새로운 공격으로 우리는 맥그리거가 다시 'Sons of my love'의 셉트로 묶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1603년 대재앙이 그들에게 닥쳤을 때 원래의 전설 전체가 다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도망친 어머니의 '버드나무 사이'에서 태어난 Glenstrae의 Alaster의 상속인과 Stevenson의 이름으로 다시 집결하는 더 충성스러운 씨족을 얻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한 그렇게 자주 이야기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레드 맥그리거와 스티븐슨 사이에 유대가 전혀 없었다면) 그 엉뚱하고 다소 무례한 이름은 안개의 아이들의 전설에서 그렇게 많이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To one more tradition I may allude, that we are somehow descended from a French barber-surgeon who came to St. Andrews in the service of one of the Cardinal Beatons. No details were added. But the very name of France was so detested in my family for three generations, that I am tempted to suppose there may be something in it.

또 하나의 전통으로 우리는 비튼 추기경 중 한 명을 섬기기 위해 세인트앤드루스에 온 프랑스인 이발 외과 의사의 후손이라는 점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추가된 세부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라는 이름 자체가 3대에 걸쳐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혐오스러웠기 때문에 그 안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자소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스코틀랜드(Scotland) 에든버러(Edinburgh) 출생의 영국 소설가(1850~1894)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1850년 영국의 북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에서 태어났습니다.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로,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도 활동한 ‘문학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세례명은 로버트 루이스 발포어 스티븐슨(Robert Lewis Balfour Stevenson)으로, 성인이 되는 18세, 현재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으로 고쳤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과 마찬가지로, 에든버러의 서울대(?!) 에든버러 대학(The University of Edinburgh)를 졸업한 엘리트로, 공학(engineering)을 전공하였습니다. 학창 시절 연극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맞춰 1875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이후 가족의 품을 벗어나, 한명의 독립적인 문학가로써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에든버러(Edinburgh)는 스티븐슨이 태어나 자란 도시이니만큼 그와 연관된 흔적 ? 동상, 기념비, 집 등, 또한 곳곳에 있습니다.

애 셋 낳은 11세 연상의 미국인 유부녀와 결혼하다(1879) :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할 1876년, 11세 연상의 미국 여성 프랜시스 패니 마틸다 반 더 그리프트 오스본(Frances "Fanny" Matilda Van de Grift Osbourne)과 사랑에 빠집니다. 문제는 그녀가 남편 사무엘 오스본(Samuel Osbourne)이 버젓이 살아있는 유부녀라는 것! 남편의 외도에 분노한 그녀는 미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자녀들과 함께 이주하였습니다. 그녀의 복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매료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남편과 별거 중인 그녀가 이혼하자마자 결혼식(1880)을 올립니다. 재혼한 패니 오스본은 1875년 사망한 허비(Hervey)를 제외하고 두 명의 자녀 ? 딸 이소벨(Isobel), 아들 로이드(Lloyd)가 있었는데, 새아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이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이야기를 짓고 자신의 글을 자녀들이 읽기도 하였습니다. 보물섬(Treasure Island)(1883)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요양차 스위스 다보스에 머무를 당시 의붓아들 로이드가 엉터리로 그린 보물지도를 보고, 자녀들에게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험담을 들려주기 위해 집필한 작품입니다. 작가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애정 어린 작품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의 동심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걸작이지요! ‘보물찾기’를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 보기 드물게 해피엔딩인 것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티븐슨 가족은 1884년 영국 본머스 웨스트본(Westbourne)에 정착하였으며,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남태평양 사모아(S?moa)에서 영면에 들다(1894)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어려서부터 기관지(bronchial trouble)가 좋지 않았는데 특히 겨울철마자 심한 기침과 발열로 고생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 결혼 이후에 수시로 요양원을 들락거렸습니다. 건강이 비교적 좋았던 청년기에는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여행기를 집필하였고 요양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는 하나, 1888년부터는 미국을 떠나 요트 한척을 빌려 가족들과 함께 남태평양을 두루 떠돌았습니다. 그가 유독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여행과 탐험’에 매력을 느꼈고, 작가로써 적지 않은 여행기를 집필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란 견해도 있습니다. 카스코 호(the Casco)에 몸을 싣고 하와이(Hawaii), 길버트 섬(Gilbert Islands), 타히티(Tahiti), 뉴질랜드(New Zealand)... 1889년에는 아예 남태평양의 섬 사모아(S?moa)에 정착하였습니다. 절해고도의 섬 외딴 곳에 2층짜리 저택을 세우고, 아내와 함께 사는 삶이라니... 생각만 해도 부럽네요! 그러나, 약해진 몸은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웠고, 1894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는 생의 말년에 세계 각지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제국주의에 깊은 반감을 가졌고, 이 덕분에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모아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사후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사모아의 성산 바이아 산(Mount Vaea)에 매장되었으며, 그의 묘에는 그가 지은 레퀴엠(Requiem)이 새겨져 있습니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그의 묘가 마련되어 있으며, 1.6 km 떨어진 그의 저택은 현재 Robert Louis Stevenson Museum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내 패니 스티븐슨은 남편이 없는 사모아를 떠나 미국으로 귀국했고, 1914년 사망했습니다. 패니의 유골은 1915년 딸이 사모아로 옮겨 남편과 함께 합장되었습니다.

목차소개

-목차(Index)-
프롤로그(Prologue).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999선을 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조명화 편집장의 21가지 키워드로 읽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01. 스코틀랜드(Scotland) 에든버러(Edinburgh) 출생의 영국 소설가(1850~1894)
02. 애 셋 낳은 11세 연상의 미국인 유부녀와 결혼하다(1879)
03. 남태평양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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