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고전49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도덕적 상징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테마여행신문 TTN Theme Travel News Korea | 2022년 03월 1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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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도덕적 상징(Moral Emblems by Robert Louis Stevenson)(1921)은 보물섬(Treasure Island)(1883)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폐결핵을 치유하기 위해 스위스의 한적한 산골마을 다보스-플라츠(Davos-Platz)에서 체류하는 동안 집필하고, 삽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당시 책을 인쇄하고, 정리해 엮는 작업 전반에 그의 의붓아들 로이드 오스본(Lloyd Osbourne)(1868~1947)이 함께 했다는 점에서 작품 외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작가는 생전에 로이드 오스본과 잘못된 상자(The Wrong Box)(1889)를 시작으로 렉커(The Wrecker)(1892), 썰물: 삼중주와 사중주(The Ebb-Tide: A Trio And Quartette by Lloyd Osbourne and Robert Louis Stevenson)(1894) 등 모두 세 권의 책을 공동 집필한 바 있으며, 로이드는 작가의 사후 그가 남긴 시 132편을 묶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새로운 시와 변형 독서(New Poems, and Variant Readings by Robert Louis Stevenson)(1918)를 출간하는 등 ‘아버지 작품 전문 편집자’로도 기여하였습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PREFACE. It is with some diffidence that I sit down at an age so mature that I cannot bring myself to name it, to write a preface to works I printed and published at twelve. I would have the reader see a little boy living in a ch?let on a Swiss mountain-side, overlooking a straggling village named Davos-Platz, where consumptives coming to get well more often died. It was winter; the sky-line was broken by frosty peaks; the hamlet?it was scarcely more then?lay huddled in the universal snow. Morning came late, and the sun set early. A still, silent and icy night had an undue share of the round of hours, which at least it had the grace to mitigate by a myriad of shining stars.

머리말. 내가 열두 살에 인쇄하고 출판한 작품의 서문을 쓸 수 없을 만큼 성숙한 나이에 자리에 앉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입니다. 나는 독자들에게 다보스-플라츠(Davos-Platz)라는 낙후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스위스 산허리의 샬레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년을 보게 하고 싶습니다. 겨울이었습니다. 하늘은 서리가 내린 봉우리에 의해 부서졌습니다. 그 마을은 그 당시에는 거의 없었지만 보편적인 눈 속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늦었고 해가 일찍 졌다. 고요하고 얼음이 많은 밤은 시간의 순환에서 과도하게 많은 부분을 차지했으며, 적어도 수많은 빛나는 별에 의해 완화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It served to make the little boy very precocious about money. In a family perennially short of it he learned its essentialness early. He knew too, that he was a dreadfully expensive child. His stepfather paid forty pounds for his winter’s tutoring, not to speak of an additional outlay on a dying Prussian officer who taught him German with the aid of a pocket-knife stuck down his throat to give him the right accent. It was with consternation that he once heard his stepfather say in a voice of tragedy: ‘Good Heavens, Fanny, we are spending ten pounds a week on food alone!’

그것은 어린 소년을 돈에 대해 매우 조숙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영원히 부족했던 가족에서 그는 일찍부터 그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엄청나게 비싼 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계부는 겨울 사교육비로 40파운드를 지불했으며, 죽어가는 프로이센 장교가 그에게 올바른 악센트를 주기 위해 목에 꽂은 주머니칼의 도움으로 독일어를 가르쳐준 추가 지출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한번은 의붓아버지가 비극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습니다. '좋은 천국, 패니, 우리는 일주일에 음식에만 10파운드를 쓰고 있습니다!'

Louis, as the little boy always called his stepfather, with a familiarity that was much criticised by strangers, followed this publishing venture with absorbing interest. Then his own ambitions awakened, and one day, with an affected humility that was most embarrassing, he called at the office, and submitted a manuscript called, ‘Not I, and Other Poems,’ which the firm of Osbourne and Co. gladly accepted on the spot. It was an instantaneous hit, selling out an entire edition of fifty copies.

어린 소년이 항상 그의 계부라고 불렀던 루이스는 낯선 사람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은 친숙함과 함께 열광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 출판 사업을 따랐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야망이 깨어나 어느 날 가장 창피할 정도로 겸손한 태도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나와 다른 시가 아니다'라는 원고를 제출했는데 Osbourne and Co.이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것은 50권의 전체 판을 매진시키는 즉각적인 히트였습니다.

The publisher was thrilled, and the author was equally jubilant, saying it was the only successful book he had ever written, and jingling his three francs of royalties with an air that made the little boy burst out laughing with delighted pride. In the ensuing enthusiasm another book was planned, and the first poem for it written.

출판사는 신이 났고 저자도 마찬가지로 기뻐하며 자신이 쓴 유일한 성공적인 책이라고 말하며 3프랑의 로열티를 윙윙거리며 어린 소년을 기쁨에 가득 찬 자부심으로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열정 속에서 또 다른 책이 계획되었고 그것을 위한 첫 시가 쓰여졌습니다.

In fact ‘The Graver and the Pen’ was the last enterprise of Osbourne and Co. ‘The Pirate and the Apothecary’ was projected; three superb illustrations were engraved for it; yet it never saw more light than the typewriter afforded. ‘The Builder’s Doom’ has remained in manuscript until the present time. No illustrations were either drawn or engraved for it. It marked the final decline of a once flourishing business, which in its day had given so much laughter to many people sadly in need of it.

사실 'Graver and the Pen'은 Osbourne and Co.의 마지막 작품이었습니다. 'The Pirate and Apothecary'는 기획되었습니다. 3개의 훌륭한 삽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타자기보다 더 많은 빛을 본 적이 없습니다. 'The Builder's Doom'은 현재까지 필사본으로 남아 있습니다. 삽화를 그리거나 새겨 넣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한때 번성했던 사업의 마지막 쇠퇴를 의미했는데, 그 사업은 그 당시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저자소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스코틀랜드(Scotland) 에든버러(Edinburgh) 출생의 영국 소설가(1850~1894)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1850년 영국의 북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에서 태어났습니다.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로,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도 활동한 ‘문학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세례명은 로버트 루이스 발포어 스티븐슨(Robert Lewis Balfour Stevenson)으로, 성인이 되는 18세, 현재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으로 고쳤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과 마찬가지로, 에든버러의 서울대(?!) 에든버러 대학(The University of Edinburgh)를 졸업한 엘리트로, 공학(engineering)을 전공하였습니다. 학창 시절 연극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맞춰 1875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이후 가족의 품을 벗어나, 한명의 독립적인 문학가로써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에든버러(Edinburgh)는 스티븐슨이 태어나 자란 도시이니만큼 그와 연관된 흔적 ? 동상, 기념비, 집 등, 또한 곳곳에 있습니다.

애 셋 낳은 11세 연상의 미국인 유부녀와 결혼하다(1879) :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할 1876년, 11세 연상의 미국 여성 프랜시스 패니 마틸다 반 더 그리프트 오스본(Frances "Fanny" Matilda Van de Grift Osbourne)과 사랑에 빠집니다. 문제는 그녀가 남편 사무엘 오스본(Samuel Osbourne)이 버젓이 살아있는 유부녀라는 것! 남편의 외도에 분노한 그녀는 미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자녀들과 함께 이주하였습니다. 그녀의 복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매료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남편과 별거 중인 그녀가 이혼하자마자 결혼식(1880)을 올립니다. 재혼한 패니 오스본은 1875년 사망한 허비(Hervey)를 제외하고 두 명의 자녀 ? 딸 이소벨(Isobel), 아들 로이드(Lloyd)가 있었는데, 새아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이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이야기를 짓고 자신의 글을 자녀들이 읽기도 하였습니다. 보물섬(Treasure Island)(1883)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요양차 스위스 다보스에 머무를 당시 의붓아들 로이드가 엉터리로 그린 보물지도를 보고, 자녀들에게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험담을 들려주기 위해 집필한 작품입니다. 작가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애정 어린 작품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의 동심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걸작이지요! ‘보물찾기’를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 보기 드물게 해피엔딩인 것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티븐슨 가족은 1884년 영국 본머스 웨스트본(Westbourne)에 정착하였으며,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남태평양 사모아(S?moa)에서 영면에 들다(1894)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어려서부터 기관지(bronchial trouble)가 좋지 않았는데 특히 겨울철마자 심한 기침과 발열로 고생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 결혼 이후에 수시로 요양원을 들락거렸습니다. 건강이 비교적 좋았던 청년기에는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여행기를 집필하였고 요양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는 하나, 1888년부터는 미국을 떠나 요트 한척을 빌려 가족들과 함께 남태평양을 두루 떠돌았습니다. 그가 유독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여행과 탐험’에 매력을 느꼈고, 작가로써 적지 않은 여행기를 집필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란 견해도 있습니다. 카스코 호(the Casco)에 몸을 싣고 하와이(Hawaii), 길버트 섬(Gilbert Islands), 타히티(Tahiti), 뉴질랜드(New Zealand)... 1889년에는 아예 남태평양의 섬 사모아(S?moa)에 정착하였습니다. 절해고도의 섬 외딴 곳에 2층짜리 저택을 세우고, 아내와 함께 사는 삶이라니... 생각만 해도 부럽네요! 그러나, 약해진 몸은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웠고, 1894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는 생의 말년에 세계 각지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제국주의에 깊은 반감을 가졌고, 이 덕분에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모아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사후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사모아의 성산 바이아 산(Mount Vaea)에 매장되었으며, 그의 묘에는 그가 지은 레퀴엠(Requiem)이 새겨져 있습니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그의 묘가 마련되어 있으며, 1.6 km 떨어진 그의 저택은 현재 Robert Louis Stevenson Museum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내 패니 스티븐슨은 남편이 없는 사모아를 떠나 미국으로 귀국했고, 1914년 사망했습니다. 패니의 유골은 1915년 딸이 사모아로 옮겨 남편과 함께 합장되었습니다.

목차소개

-목차(Index)-
프롤로그(Prologue).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999선을 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조명화 편집장의 21가지 키워드로 읽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01. 스코틀랜드(Scotland) 에든버러(Edinburgh) 출생의 영국 소설가(1850~1894)
02. 애 셋 낳은 11세 연상의 미국인 유부녀와 결혼하다(1879)
03. 남태평양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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