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고전326 나다니엘 호손의 전기 스케치

나다니엘 호손 | 테마여행신문 TTN Theme Travel News Korea | 2021년 12월 0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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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Mrs. Hutchinson was a woman of extraordinary talent and strong imagination, whom the latter quality, following the general direction taken by the enthusiasm of the times, prompted to stand forth as a reformer in religion. In her native country, she had shown symptoms of irregular and daring thought, but, chiefly by the influence of a favorite pastor, was restrained from open indiscretion. On the removal of this clergyman, becoming dissatisfied with the ministry under which she lived, she was drawn in by the great tide of Puritan emigration, and visited Massachusetts within a few years after its first settlement. But she bore trouble in her own bosom, and could find no peace in this chosen land. She soon began to promulgate strange and dangerous opinions, tending, in the peculiar situation of the colony, and from the principles which were its basis, and indispensable for its temporary support, to eat into its very existence. We shall endeavor to give a more practical idea of this part of her course. MRS. HUTCHINSON.

허친슨 여사는 비범한 재능과 강한 상상력을 가진 여성이었는데, 후자의 자질은 시대의 열정에 따라 종교 개혁가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조국에서, 그녀는 불규칙하고 대담한 생각의 증상을 보였지만, 주로 좋아하는 목사의 영향으로, 공개적인 무분별한 행동을 자제했습니다. 이 성직자의 제거에 대해, 그녀가 살고 있는 목회에 불만을 품게 되면서, 그녀는 청교도 이민의 큰 물결에 이끌렸고, 첫 정착 이후 몇 년 안에 매사추세츠를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품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이 선택된 땅에서 평화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곧 이상하고 위험한 의견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식민지의 독특한 상황에서 그리고 그것의 기초이자 그것의 일시적인 지원에 필수적인 원칙들로부터 그것의 존재를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코스의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주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허친슨 부인(MRS. HUTCHINSON).

Few of the personages of past times (except such as have gained renown in fireside legends as well as in written history) are anything more than mere names to their successors. They seldom stand up in our imaginations like men. The knowledge communicated by the historian and biographer is analogous to that which we acquire of a country by the map,?minute, perhaps, and accurate, and available for all necessary purposes, but cold and naked, and wholly destitute of the mimic charm produced by landscape-painting. These defects are partly remediable, and even without an absolute violation of literal truth, although by methods rightfully interdicted to professors of biographical exactness. A license must be assumed in brightening the materials which time has rusted, and in tracing out half-obliterated inscriptions on the columns of antiquity: Fancy must throw her reviving light on the faded incidents that indicate character, whence a ray will be reflected, more or less vividly, on the person to be described. The portrait of the ancient governor whose name stands at the head of this article will owe any interest it may possess, not to his internal self, but to certain peculiarities of his fortune. These must be briefly noticed. SIR WILLIAM PHIPS.

과거의 인물들 중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단순한 이름 그 이상입니다. 그들은 우리 상상 속에서 남자처럼 일어서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역사학자이자 전기 작가에 의해 전달되는 지식은 우리가 지도를 통해 한 나라를 획득하는 지식과 유사하며, 분량, 아마도, 정확하며, 필요한 모든 목적을 위해 이용 가능하지만 차갑고 나체이며, 풍경화로 인한 모방 매력이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결함은 부분적으로 고칠 수 있고, 비록 생물학적인 정확성의 교수들에게 정당하게 금지되는 방법에 의해, 문자 그대로의 진리에 대한 절대적인 위반이 없더라도요. 시간이 녹슬어 버린 재료를 밝게 하고 고대 기둥에 새겨진 반쯤 지워진 비문을 추적하는 데 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팬시는 성격을 나타내는 빛바랜 사건들에 그녀의 부활을 밝혀야 하며, 광선이 다소 생생하게 묘사되는 사람에게 비춰질 것입니다. 이 글의 맨 앞에 있는 고대 총독의 초상화는 그의 내면이 아니라 그의 재산의 특정 특징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은 간략히 유의해야 합니다. 윌리엄 핍스 경(SIR WILLIAM PHIPS).

It is contemplated to erect a monument, by subscription, to Mr. Fessenden's memory. It is right that he should be thus honored. Mount Auburn will long remain a desert, barren of consecrated marbles, if worth like his be yielded to oblivion. Let his grave be marked out, that the yeomen of New England may know where he sleeps; for he was their familiar friend, and has visited them at all their firesides. He has toiled for them at seed-time and harvest: he has scattered the good grain in every field; and they have garnered the increase. Mark out his grave as that of one worthy to be remembered both in the literary and political annals of our country, and let the laurel be carved on his memorial stone; for it will cover the ashes of a man of genius. THOMAS GREEN FESSENDEN.

기부금으로 페센든 씨를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울 생각입니다. 그가 그렇게 영광스러운 것은 당연합니다. 오번 산은 오랫동안 사막으로 남을 것입니다. 성스러운 구슬들이 없는 곳으로요. 그의 산과 같은 가치가 있다면, 망각될 것입니다. 그의 무덤을 표시하여 뉴잉글랜드의 요먼들이 그가 어디서 자는지 알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는 그들의 친숙한 친구였고, 그들의 모든 난롯가에서 그들을 방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에, 그들을 위하여 애써서, 모든 밭에 좋은 곡식을 흩어 놓으시고, 그들이 더 많이 벌어들였습니다. 그 무덤은 문학과 정치학에서 모두 기억될 만한 무덤으로 표시하시고, 그 월계관을 그의 비석에 새기십시오. 월계수는 천재적인 사람의 유골을 덮을 것입니다. 토마스 그린 페센든(THOMAS GREEN FESSENDEN).

The subject of this brief memorial had barely begun to be an actor in the great scenes where his part could not have failed to be a prominent one. The nation did not have time to recognize him. His death, aside from the shock with which the manner of it has thrilled every bosom, is looked upon merely as causing a vacancy in the delegation of his State, which a new member may fill as creditably as the departed. It will, perhaps, be deemed praise enough to say of Cilley, that he would have proved himself an active and efficient partisan. But those who knew him longest and most intimately, conscious of his high talents and rare qualities, his energy of mind and force of character, must claim much more than such a meed for their lost friend. They feel that not merely a party nor a section, but our collective country, has lost a man who had the heart and the ability to serve her well. It would be doing injustice to the hopes which lie withered upon his untimely grave, if, in paying a farewell tribute to his memory, we were to ask a narrower sympathy than that of the people at large. May no bitterness of party prejudices influence him who writes, nor those, of whatever political opinions, who may read! JONATHAN CILLEY.

이 짧은 추모의 주제는 그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을 수 없었던 명장면에서의 배우가 되기 시작한 참이었습니다. 국가는 그를 인정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모든 가슴을 설레게 한 충격은 차치하고, 단지 그의 국가 대표단에 빈자리를 야기한 것으로 여겨지며, 새로운 구성원은 죽은 사람만큼 훌륭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아마도 실리에 대해 그가 활동적이고 효율적인 빨치산임을 증명할 만큼 충분히 칭찬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친밀하게 알았던 사람들은 그의 높은 재능과 희귀한 자질, 그의 정신의 에너지와 인격의 힘을 의식하고, 잃어버린 친구를 위해 그런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정당이나 구역이 아니라 우리 집단국가가 그녀를 잘 섬길 마음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잃었다고 느낍니다. 그의 때 아닌 무덤에 시든 희망에 대해 우리가 그를 추모하는 데 있어 일반 국민들보다 더 좁은 동정을 구한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일 것입니다. 당에 대한 어떤 쓴 소리도 글을 쓰는 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정치적 의견을 읽는 자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조너선 실리(JONATHAN CILLEY).

저자소개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Hathorne? Hawthorne! : 선장이던 그의 아버지는 불과 4세의 나이에 사망해, 그는 부유한 외가댁 메닝 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윌리암 호손(William Hathorne)으로, 그의 본명 또한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thorne)입니다. 그러나, 살렘 마녀 재판(Salem witch trials)(1878)을 공권력이 무고한 이들을 핍박한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가문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기 위해 이름에 w를 넣어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이란 ‘필명 아닌 필명’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보든 칼리지(Bowdoin College)(1821~1825) : 유년 시절부터 영특함을 보였던 호손은 외가 댁의 지원으로 1821년부터 4년간 보든 칼리지(Bowdoin College)에서 수학합니다. 평생 우정을 나눈 동문들과 학교에서 만나 교류하였으며, 훗날 그가 책을 출간하거나 해외에 파견되는 등 인생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중에는 훗날 14대 대통령에 오른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도 있었으며, 호손은 대통령 선거 이전에 그를 위한 평전을 집필하였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호손은 영국 리버풀의 영사로 임명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유럽을 여행하며 이에 관한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그의 단편집 출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부호 가문의 호레이쇼 브리지(Horatio Bridge) 등도 나다니엘 호손이 보든 칼리지에서 만난 학우들입니다.

두 번 해준 이야기(Twice Told Tales)(1837, 1842) : 호손은 첫 소설 Fanshawe(1828)가 폭망(?!)한 후 장편이 아닌, 단편에 열중하며 40여편의 단편과 소품을 잇달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단편 18편을 골라 1837년 두 번 해준 이야기(Twice Told Tales)(1837, 1842)란 단편집을 출간하였습니다. 이때 보든 칼리지 동문 호레이쇼 브리지(Horatio Bridge)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존에 연재한 것을 다시 묶어 두 권짜리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하였다는 뜻에서 ‘두 번 해준 이야기(Twice Told Tales)’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1841년에는 21개의 단편을 더해 재출간하였습니다.

14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의 전기(1852)를 쓴 이유는? : 14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나다니엘 호손과 보든 칼리지에서 함께 수학한 동문으로, 호손은 그의 대통령 출마를 돕기 위해 1852년 그의 전기 프랭클린 피어스의 삶(The Life of Franklin Pierce)을 집필하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피어스는 14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고 호손을 최우방국인 영국 리버풀 영사로 임명하였습니다. 촌동네 세관원이 친구 덕에 영사로 고속 승진한 셈입니다. 1853년부터 1857년까지 영사직을 수행한 호손은 이후 유럽을 여행한 후 1860년 고향으로 돌아와 집필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오랜 친구이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피어스와 함께 여행하던 1864년 60세의 나이로 객사하였습니다.

피어스의 입장에서는 이렇습니다. 피어스는 세 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질병과 불의의 사고로 모두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하였습니다. 개인적인 불행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을 마친 피어스는 병약한 아내 요양차 미국을 벗어나 마데이라 제도에서 2년간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1863년 결국 아내를 잃고 크게 상심할 수 박에 없었는데... 당시 병마에 시달리던 호손을 위로하기 위해 함께 요양 여행을 떠나는데, 그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친구마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목차소개

프롤로그(Prologue).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999선을 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조명화 편집장의 9가지 키워드로 읽는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01. 주홍글씨가 아니라, 주홍글자?!
02. 세일럼 마녀 재판(Salem witch trials)(1692)
03. Hathorne? Hawthorne!
04. 보든 칼리지(Bowdoin College)(1821~1825)
05. 첫 작품 팬쇼(Fanshawe)(1828)를 불태우다
06. 두 번 해준 이야기(Twice Told Tales)(1837, 1842)
07. 세관(The Custom-House)(1846~1849)
08. 14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의 전기(1852)를 쓴 이유는?
09. 오디오북(Audio Books)으로 듣는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나다니엘 호손의 전기 스케치(Biographical Sketches by Nathaniel Hawthorne)
Mrs. Hutchinson
Sir William Phips
Sir William Pepperell
Thomas Green Fessenden
Jonathan Cilley
부록(Appendix). 세계의 고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Worlds’s Classics)
A01. 하버드 서점(Harvard Book Store) 직원 추천 도서 100선(Staff’s Favorite 100 Books) & 판매도서 100위(Top 100 Books)
A02. 서울대 권장도서 100
A03. 연세필독도서 고전 200선
A04.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권장도서 100선
A05.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공통 권장도서 60권
A06. 성균관대학교 오거서(五?書) 성균 고전 100선
A07.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Humanitas College) 교양필독서 100선
A08. 포스텍(포항공대) 권장도서 100선
A09. 카이스트(KAIST) 독서마일리지제 추천도서 100권
A10. 문학상 수상작 및 추천도서(44)
A11.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오디오북을 무료로 듣는 5가지 방법(How to listen to FREE audio Books legally?)
A12. 영화·드라마로 만나는 영어고전(Movies And TV Shows Based on English Classic Books)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999선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도서목록(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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