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론, 세친 유식사상

세친 | e퍼플 | 2021년 06월 25일 |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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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 유식론(唯識論)
모든 것이 의식(意識)이라는 이론(理論)




21세기(世紀) 지금 여기에서, 불교철학(佛敎哲學)의 유식론(唯識論)이 각별(各別)한 의미(意味)를 갖는 것은, 현대인(現代人)들이 지나치게 물질주의적(物質主義的)으로 편향(偏向)되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물질주의(物質主義)라고 하면, 유물론적(唯物論的)인 경향(傾向)을 뜻하는 것으로 판단(判斷)하는데, 그것은 철학사상사적(哲學思想史的)인 맥락(脈絡)일뿐, 실제(實際)로 물질주의(物質主義)에서 물질(物質) 개념(槪念)이 의미(意味)하는 것은, 곧 자본(資本)이다.
이를 굳이 금권주의(金權主義)쯤으로 분별(分別)할 것도 아니다. 현대인(現代人)의 절대적(絶對的) 다수(多數)가, 그야말로 돈을 숭배(崇拜)하고, 돈이 최고(最高)이며, 돈이면 다 된다는 식(式)의 인식(認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平生)을 빈한(貧寒)한 인문학작가(人文學作家)로 살아내는, 필자(筆者)의 소박(素朴)한 체험(體驗)을 살피더라도 그러하다.
예컨대, 제아무리 심혈(心血)을 기울여 작품(作品)을 지어내더라도, 그것이 돈벌이가 되지 않으면, 당최 아무런 의미(意味)나 가치(價値)를 갖지 못한다.
더욱이 별다른 돈벌이도 없으며, 소유(所有)한 자본(資本)도 부재(不在)하다 보니, 주변(周邊)의 지인(知人)이나 가족(家族)이나 친척(親戚)들의 괄시(恝視)는 말할 나위 없으며, 마치 폐인(廢人)이나 광인(狂人)을 대(對)하는 듯한 시선(視線)이 느껴질 때면, 현실세계(現實世界)의 물질주의(物質主義)에 대(對)한 고뇌(苦惱)는 더욱 깊어지곤 한다.
이처럼 그야말로 자본(資本)의 지옥(地獄)에 갇혀버린, 현대인(現代人)들의 자본주의적(資本主義的) 물질주의(物質主義)의 폐해(弊害)를, 그나마 조율(調律)해줄 수 있는 철학사상(哲學思想)이 바로 유식론(唯識論)이다.
이런 처절(凄切)한 체험(體驗)과 아울러, 아무리 그 사태(事態)를 숙고(熟考)해 보아도, 물질(物質)이 인간존재(人間存在)를 주도(主導)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우울(憂鬱)한 노릇일 따름이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狀況)을, 물질(物質)을 육체(肉體)쯤으로 인식(認識)하는 ‘몸 철학(哲學)’의 흐름과 혼동(混同)해서도 안 된다.
예컨대, ‘니체’로부터 태동(胎動)하는 ‘몸 철학(哲學)’은, 당시(當時) 유럽에서 중세(中世)로부터 근대(近代)에 이르도록, 신(神)의 존재(存在)이거나 신(神)의 역할(役割)을 하는, 가상적(假想的) 또는 도구적(道具的) 이성(理性)에 대(對)한 반동(反動)으로서 제시(提示)된 것이었음을 유념(留念)할 필요(必要)다.
여하튼, 돈이라는 물질(物質)이 최상(最上)의 가치(價値)를 지니는 세계(世界)에서, 생존(生存)을 위(爲)해 부득이(不得已)하게 자본(資本)의 노예(奴隷)가 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돈 없는 절대다수(絶對多數)의 서민대중(庶民大衆)으로서는, 이러한 현실(現實)이 도무지 살아내기 어려운 지옥(地獄)일 따름이다.
그런데 물질주의(物質主義) 자체(自體)가 바람직한 것은 아닐망정, 어떤 큰 문제(問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但只) 공산사회(共産社會)와 같은 이상향(理想鄕)이 실현(實現)되지 않는 한, 지금 체험(體驗)하고 있는 물질주의(物質主義)의 폐해(弊害)는 결코 해결(解決)될 수 없다.
더욱이 현대인류(現代人類)를 요동(搖動)시켰던 공산주의(共産主義)의 거대(巨大)한 실험(實驗)은, 그야말로 처절(凄切)한 실패(失敗)로서 이미 마감되어버렸지 않은가.
그러한 현실세계(現實世界)의 물질지옥(物質地獄)으로부터 탈주(脫走)할 수 있는 거의 유일(惟一)한 방법론(方法論)이, 바로 불교철학(佛敎哲學)의 유식론(唯識論)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불교(韓國佛敎)를 대표(代表)하는 화두(話頭)로서 회자(膾炙)되는 것이 ‘이 뭣고?’다. 대부분(大部分)의 화두(話頭)가 그러하듯이, 이 역시(亦是) 철저(徹底)히 의식(意識)의 차원(次元)에서 작동(作動)한다.
이러한 화두(話頭)를 활용(活用)하는 참선수행(參禪修行)이 가능(可能)한 것은, 불교(佛敎)가 유식론(唯識論)의 토대(土臺) 위에 정립(定立)된 종교(宗敎)이기 때문이다.

-하략-

저자소개

옮긴이 탁양현

≪인문학 여행자의 동아시아 여행기≫
≪삶이라는 여행≫
≪노자 정치철학≫
≪장자 예술철학≫
≪니체 철학≫

목차소개

▣ 목차




◈ 유식론(唯識論)
모든 것이 의식(意識)이라는 이론(理論)

1. 오로지 식(識, 認識)뿐이고 경계(境界, 現象)는 없다
2. 업(業)에 의(依)하여 허망(虛妄)하게 보는 것이다
3. 업(業)은 선악(善惡)이 마음을 훈습(薰習)하는 것이다
4. 식(識)의 허망(虛妄)함으로 인(因)해 바깥 경계(境界)를 취(取)한다
5. 모든 법(法, 存在)에는 아(我)가 없다
6. 모든 사대(四大)는 하나의 티끌이다
7. 직접 본다고 해도 꿈과 같다
8. 꿈 깨기 전(前)엔 그 허망(虛妄)함을 알지 못한다
9. 유심(唯心)뿐이고 몸과 입은 이름일 따름이다
10. 입의(立義), 인증(引證), 비유(譬喩)
11. 삼계(三界)는 오로지 마음일 뿐이다
12. 상응심(相應心), 불상응심(不相應心)
13. 다만 내 안의 마음이 있어 허망(虛妄)하게 분별(分別)을 낸다
14. 허망(虛妄)하게 수용(受容)하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15. 사람들은 꿈에서 그리고 아귀(餓鬼)들은 업(業)에 의(依)하여 허망(虛妄)하게 본다
16. 꿈속의 몽정(夢精)과 같다
17. 모든 것을 생각과 소견(所?)으로써 지어낸다
18. 업(業)이 같으니 과보(果報)도 같다
19. 서로 상응(相應)하지 않으므로 중생(衆生)이 아니다
20. 천상(天上)에서는 축생(畜生)의 고통(苦痛)을 받지 않는다
21. 업(業)에 의(依)하여 마음이 전변(轉變)하진 않는다
22. 온갖 죄업(罪業)은 마음 안에 있다
23. 십이입(十二入)에 대(對)하여 화생(化生)을 말씀하셨다
24. 마음의 허망(虛妄)한 분별(分別)로써 모든 경계(境界)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25. 근본식(根本識)과 경계(境界)에 의(依)해 십이입(十二入)이 생(生)겨난다
26. 성문(聲聞)들로 하여금, 어느 한 법(法)도 진실(眞實)되지 않음을 깨닫도록 한다
27. 오직 내 안의 식(識)만 있을 뿐이다
28. 일체법(一切法)에서 무아(無我)로 들어가야 한다
29. 말 없는 자리의 참된 식(識)만 있다
30. 실(實)로 내 안의 식(識)에 취(取)할만한 것은 있지 않다
31. 대상(對象)으로서 법(法)은 없다
32. 외도(外道)의 위세사(衛世師)들이 허망(虛妄)하게 분별(分別)한다
33. 이 미진(微塵)이나 저 미진(微塵)에 차별(差別)이 없다
34. 모든 사대(四大)는 하나의 미진(微塵)이다
35. 방소(方所)마다 다른 법(法)이 있다
36. 미진(微塵)이 모든 사대(四大)를 이루지는 못한다
37. 각(各) 미진(微塵)은 서로를 장애(障?)한다
38. 중생(衆生)들을 이익(利益)되게 하려는 것이다
39. 취(取)하거나 버림은 같지 아니하다
40. 미진(微塵)은 하나의 물건(物件)을 이루지 않는다
41. 꿈에서 보는 것처럼 허망(虛妄)하다
42. 의식(意識)이 분별(分別)한 후(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43. 빛깔 따위의 바깥 경계(境界) 자체(自體)가 없다
44. 꿈을 깰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허망(虛妄)하다는 것을 안다
45. 피차(彼此)의 마음 인연(因緣)이 합(?)해진 것이다
46. 꿈속에서와 꿈 깬 후(後) 마음의 차별(差別)이 같지 않다
47. 인연(因緣)에 의(依)해서 자기(自己) 심식(心識)을 잃어버린다
48. 오직 의업(意業)만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9. 실체(實體)는 의식(意識)의 업(業)이다
50. 타심지(他心智)란 실(實)답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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