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사애리시

임연철 | 신앙과지성사 | 2020년 11월 06일 |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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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이 책은 사애리시가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하기까지의 신앙 성장과 결단,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남편을 먼저 여의고도 계속 남아 충청도지역 여성선교의 선구자로서 열정과 헌신, 봉사와 희생, 그리고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선교지 한국을 향한 기도와 후원의 삶을 살았던 한 ‘신앙의 승리자’의 기록이다. 사애리시는 끼니도 거르기가 일수이고 빈 배 위에서 잠을 자도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만난다는 기쁨을 가슴에 간직하며 전도하였고, 문맹자들을 위해 큰 소리로 성경을 읽어 주고 개심(改心)의 사건을 즐겁게 받아들였던 전도 여행의 기록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책의 대목 중 무엇보다도 유관순 열사를 신앙으로 인도하고 공주 영명여학교와 이화학당에서 공부하게 해 준 부분이 눈길을 끈다. 오늘의 많은 신학생과 젊은이들이 꼭 읽고 사명감을 재충전해야 하는 책이다.

저자소개

언론인, 예술경영인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미국 드루대감리교 아카이브 연구원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 중이다. 모태신앙인으로 논산제일감리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고등학교를 서울(1964)에서 다니면서 경동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직분은 집사이다.
서울대학교 사학과(1972)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 석사(2002),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연예술학박사(2006)를 받았다. 그리고 감신대와 총신대가 운영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위취득 과정을 수료, 교육부로부터 신학사 학위(2014)를 받았다.
중앙일보(1974-1978)에서 기자를 시작해 동아일보(1978-2007)에서 문화부 기자를 거쳐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사업국장을 역임했다. 중앙대(2007-2008)와 숙명여대(2012-2014) 초빙교수, 건양대(2014-2017) 대우교수를 지냈으며 공연 전시 마케팅과 홍보를 강의했다. 국립중앙극장 극장장(2009-2011)으로서 공연 기획제작, 경영을 총괄했다. 서울 서초문화예술회관 관장(2017-2019)으로 일했다.
예술경영 관련 저술로『 문화예술 홍보론』(2007)『, 문화예술 마케팅』(공역, 2007),『 극장 경영』(공역, 2011), 『뮤지엄 매니지먼트』(공역, 2011),『 예술 경영』(공저, 2013),『공연예술 마케팅』(공역, 2016)이 있다. 종교 관련 저술로는 문화부 기자 재직 시 펴낸 『 민중 속의 성직자들』(1984)이 있다.

목차소개

추천사
머리말
들어가는 말
남편도 자신도 바친 한국 사랑 39년

제1장 빛과 어두움의 굴레에서
사부인 내한 전 1899년 여성선교사회 창립
11명이 모인 1900년 여성선교사회
1901년 사부인 이름 처음 등장
평양에서 열린 연회에 첫 보고서 제출
결혼 전 미스 해먼드로 제5회 연회 보고서 제출
이화학당 본관에서 열린 로버트 샤프와의 결혼식
1904년 연회서 충청도 첫 선교 경험 보고
1905년 연회 손풍금 전도에 몰려든 현지인 보고
남편 잃은 슬픔 속에 보고한 1906년 연회

제2장 충청 여성 선교의 개척자
1907년 연회, 스웨어러“ 사부인 빈자리 너무 아쉬워”
케이블 부인이 보고한 1908년 연회
귀임한 사부인과 케이블 부인의 공동 보고(1909년)
사경회 시험공부 하는 여신도들(1910년)
궤도에 오른 충남의 여성 선교(1911년)
지령리교회에서 맺은 유관순과 신앙의 어머니 사부인
“강건하라!” 시 읽으며 각오 다진 1912년 보고
빈 배, 마른 풀 위에서 밤새운 섬 지방 전도(1913년)
선교구역 두 번씩 순회하며 여성 구원(1914년)
새 삶 찾는 사람을 보는 기쁨(1915년)
배어 선교사“ 사부인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1916년)
한국 땅 다시 디뎌 기쁘다(1917년)
사부인을 교육한 뉴욕 유니온선교사훈련원
감사할 줄 아는 신도들의 본격 등장(1918년)

제3장 3·1운동과 교회의 시련
3^1운동으로 연회 연기…“ 많은 목회자 감옥 속에”
3^1운동 참가 이화학당 학생들의 고문 증언
3^1운동 여파로 지역별 연회(1920년) 보고서 없어
선교 보고도 못 하고 휴가 떠나는 사부인(1921년)

제4장 3·1운동 이후의 선교
사부인 미국에서 돌아와 선교보고 연회(1922년) 참석
포드차로 선교여행의 날개를 단 사부인(1923년)
양반 출신 황 부인의 전도부인 변신(1924)
전도부인의 고군분투를 지휘하는 사부인(1925년)
무르익은 모습 보여주는 1926년의 선교
헌금하기 위해 땔감 더 많이 모은 마르다의 신앙(1927년)
선교구역 조정으로 공주 논산만 담당(1928년)
1928년 영명 입학생 박한나의 증언 - 258
선교에 활용된 다양한 교통수단(1929년)
구호품을 활용한 선교의 지혜(1930년)
논산 광리교회의 사경회를 통한 부흥(1931년)

제5장 제도속에 가려진 여선교사들의 열정
‘지방목사서리’로 임명된 사부인(1931년)
지방선교 중 실족으로 중상 입은 사부인(1932년)
1년간 교회당 4곳 봉헌(1933년)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 수양회(1934년)
공주교회의 금주 선전 깃발 대규모 행진(1935년)
격년제로 열린 지방 연회(1937년)
사부인 선교기념비 제막식(1938년)
은퇴 무렵의 사부인 만난 김영한 장로
사부인 은퇴로 특별 임명자 명단에 없어(1939년)
한국 떠나기 전 소장도서 이대 기증 311

제6장 한국을 떠난 사부인의 삶과 죽음
뉴욕주 실버크릭에서 1940년 여름 보내
‘로빈크로프트 - 봉사의 역사’에 기록된 은퇴자의 하루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들으며 소천

제7장 후손들이 말하는 사부인
그의 고향 캐나다 작은 마을 야머스를 찾아서
전기를 마치며 사부인, 한국과 한국 여성을 사랑한 충청 선교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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