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

중증장애인의 파리,바르셀로나 여행기

김한영 | 인터북스 | 2020년 05월 1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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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대부분 특수학교에 진학했다.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여러 조언을 듣고 고민한 끝에 나를 일반 학교에 입학시켰다. 장애가 심한 자녀를 일반 학교에 보내는 것은 부모님에게도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중증장애인 딸을 돌보면서 딸이 왜 일반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지만,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다. 갈수록 커지는 불안과 압박을 감당하기 힘든 건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험생 시절이 내게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에 자신감이 생겼고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는 기쁨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밝은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장애인이어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저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가 ‘에이, 아니었구나….’ 하며 괜찮은 척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고 국토대장정도 하고 싶었다. 행정고시를 염두하고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시작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내가 꿈꾼 미래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통증에 시달리는 중증장애인에게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더이상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
어릴 때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오르는 연습을 했다. 아파트 비상구에서 한 시간 넘게 안간힘을 쓰면 무려 네다섯 칸을 올랐다. 먼저 땅을 밟고 첫 번째 계단을 오른다. 첫 번째 계단을 디딤돌 삼아 두 번째 계단을 오르고, 다시 두 번째 계단을 디딤돌 삼아 세 번째 계단을 오르고, 또다시 세 번째 계단을 디딤돌 삼아 네 번째 계단을 오른다. 이제는 한 칸도 오르지 못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생의 계단을 오르는 중이다.
돌아보면 지난 순간들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 학창 시절의 모든 경험은 대학교를 성공적으로 다니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또, 대학교에서 다양한 경험과 배경, 그리고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미국에서 생활해보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교환학생 경험은 대학을 졸업하고 1년쯤 지나 도전으로 이어졌다. 미국에도 갔는데 프랑스라고, 스페인이라고 못 가겠어? 지난 시간은 할 수 있다는 근거였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파리-바르셀로나 여행은 어김없이 찾아올 멋진 순간의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것부터.
(저자의 말 중에서)

저자소개

김한영

뇌병변 중증 장애인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소설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목차소개

저자소개
저자의 말
나의 믿는 구석
그래도 즐거운 이유
노동절, 그리고 콩코드 광장
브아꼴롱에서의 일상
책임질 수 없는 슬픔
몽마르트에는
그 많은 그림 중에서
아슬아슬한 생일
예술
휠체어에 생긴 일
장애인이어서 속상한 순간
어느 아침
빌라자르 드 마르
어쩌다 들어간 공원에서
산파우 병원
대성당에서 만난 희망
지베르니와 몬세라트 수도원
다시 파리
세 번째 시도

출판사 서평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지아 언니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기침이 멈추지 않아 고생했을 때 지아 언니의 부탁으로 남편 엠마누엘 씨가 병원에 함께 가주었고 영영 잃어버릴 뻔한 전동휠체어 충전기를 찾는 것도 도와주었다. 민폐만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도 브아꼴롱에 머무는 동안 지아 언니는 말 그대로 우리의 믿는 구석이었고 절체절명의 순간 만난 인연은 여행을 하면서 발견한 최고의 보물이었다.

파리와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 사람들에게 가던 길을 멈추고 멀리서 온 여행객을 도와줘야 하는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훨씬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애초에 여행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그곳에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믿는 구석' 중에서)

“일 라 일 라.”
청년 한 명이 우리를 향해 다급히 손짓했다. 설상가상으로 전동휠체어의 배터리 표시등 마지막 칸이 위태롭게 깜박였다. 비상용 배터리까지 떨어지면 꼼짝없이 콩코드 광장에 갇히는 꼴이었다. 우리는 애써 부른 콜택시가 가버릴까 봐 허둥지둥 달렸다. 서울에서도 수없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했지만 콩코드광장에서만큼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이 반가웠던 적은 없었다. 민간 콜택시는 공간이 협소해서 등받이를 끝까지 세우고 강직이 심한 다리를 억지로 구부리고 나서야 문이 닫혔다. 왜 이렇게 좁지 싶었지만 따뜻한 히터와 숙소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가족을 최선을 다해 도와준 청년들의 선의에 불평이 싹 가셨다. 나는 창문을 들여다보는 청년들에게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노동절, 그리고 콩코드 광장' 중에서)

「수련」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간절히 바라던 여행이 현실로 이루어져 감격하기도 했지만 4월의 햇빛을 머금고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뿜어내는 색의 향연이 눈부셨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을 보고 튈르리 공원에서 봄날을 만끽하려던 계획이 무색하게 우리는 「수련」전시실에서 하루를 다 써버렸다. 「수련」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결국 포기하고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이제 찍으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작품 전체가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예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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