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 문학동네 | 2020년 03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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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세라 워터스의 다섯번째 작품이자 국내에 소개되는 네번째 작품. 그간 국내에 소개된 ´빅토리아 시대 3부작´과 시대 배경을 달리해 이번에는 1940년대 영국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2차대전이 끝나고 이듬해 어느 여름 날, 과거의 영예는 사라지고 쇠락 일로를 걷는 에어즈 가문의 대저택 헌드레즈홀에 닥터 패러데이가 방문한다. 저택의 유일한 하녀 베티가 으스스한 이곳을 벗어나려 꾀병을 부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패러데이는 과거에 어머니가 유모로 일했던 대저택에 드나들게 되고, 저택에서는 괴현상이 줄을 잇는데……
두 차례의 전쟁 이후, 찬란했던 귀족 시대가 저물면서 에어즈 가문에도 물리적 심리적 붕괴가 찾아오고, 이들의 주치의 닥터 패러데이는 저택을 드나들며 귀족 세력의 몰락과 신흥계급의 부상, 두 계급 사이의 미묘한 갈등 및 전쟁이 남긴 상흔 등을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해준다. 이와 동시에 저택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기이한 사건과 불안정한 무의식이 낳은 낯선 존재는 의문의 공포를 자아낸다. 역사 스릴러의 거장다운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으로 출간 즉시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세라 워터스의 또다른 작품 『핑거스미스』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로 각색되면서 독자들에게 더욱 이름을 알렸다.

저자소개

세라 워터스 Sarah Waters
1966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났다. 켄트대학교와 랭커스터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퀸메리대학교에서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소설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며 19세기 런던의 삶에 관심을 가져 빅토리아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데뷔 장편소설 『벨벳 애무하기』(1998)로 베티 트래스크 상, 『끌림』(1999)으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했고, 『핑거스미스』(2002)가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빅토리아시대 3부작’으로 주목받았다. 작품 배경이 한정적이라는 고민 끝에 소설 속 무대를 20세기로 옮기고, 1940년대에 관한 면밀한 조사를 거쳐 『핑거스미스』 이후 4년 만에 『나이트 워치』(2006)를 발표했다. 20세기를 배경으로 한 세라 워터스의 첫 작품으로 맨부커상과 오렌지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람다 문학상(레즈비언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리틀 스트레인저』(2009) 또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이 2009년 최고의 소설로 극찬한 바 있다. 『게스트』(2014)로 베일리스 위민스 프라이즈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랜타〉에서 십 년 주기로 발표하는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2003)에 선정되고, 같은 해 브리티시 북어워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세 차례 연속 호명되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대부분이 영화*연극*TV 드라마로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고 있다.

옮긴이 엄일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기획과 잡지 편집을 겸하다 전업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비바, 제인』 『섬에 있는 서점』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 『고저스』 『거짓말 규칙』 『비극 숙제』 『샬럿 스트리트』 『너를 다시 만나면』 『미스터 세바스찬과 검둥이 마술사』 『함정』 등이 있다. 세라 워터스의 『리틀 스트레인저』로 제10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목차소개

리틀 스트레인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단언컨대 이 소설과 더불어
불면의 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_ 스티븐 킹

★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 강력 추천 소설 ★
★ 2009 맨 부커 상 최종 후보작 ★

역사 스릴러의 거장 세라 워터스가
새롭게 변주하는 고딕 호러의 섬세한 향연!

펴내는 작품마다 다수의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한 세라 워터스의 다섯번째 작품이자 국내에 소개되는 네번째 작품이다. 세라 워터스는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소설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19세기 런던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어 빅토리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을 구상해, ‘빅토리아시대 3부작’이라 불리는 『벨벳 애무하기』(1998) 『끌림』(1999) 『핑거스미스』(2002)를 차례로 펴냈으며, 이후 소설 속 무대를 20세기로 옮겨 『나이트 워치』(2006) 『리틀 스트레인저』(2009) 『페잉 게스트』(2014)를 발표했다. 매 작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플롯은 물론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탁월한 묘사까지 더해져, 읽는 즐거움과 함께 문학적 가치도 충분한 소설을 쓰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맨 부커 상 후보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2003년에는 문예지 <그랜타>에서 선정한 ‘최고의 젊은 영국 작가들’에 뽑혔고, 같은 해 브리티시 북어워드 ‘올해의 작가상’과 워터스톤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2차대전 직후 서서히 몰락하는 영국 귀족 가문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소재로 한 『리틀 스트레인저』 역시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기이한 스토리에 예민한 사회 관찰과 날카로운 비판을 적절히 더해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히 재현해냄으로써 세라 워터스의 역사 스릴러 거장다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힘입어 공포소설로는 드물게 맨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스티븐 킹이 ‘2009 최고의 소설’로 선택하기도 했다. 작품마다 레즈비언과 성性에 관한 농밀한 스토리와 묘사를 선보이며 ‘레즈비언 소설의 총아’로 불리는 세라 워터스가 『리틀 스트레인저』에서는 유일하게 레즈비언 이야기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세라 워터스의 작품 대부분이 영국에서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벨벳 애무하기』와 『핑거스미스』는 에딘버러 극장과 오리건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연극 무대에 올려졌다. 국내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년 개봉 예정. 하정우, 김민희 주연)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삼았다고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워릭셔의 대저택 헌드레즈홀,
이곳에서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린 이곳에 너무 고립되어 살았어요. 오늘밤에 뭔가 일이 벌어질 겁니다.”

영국 워릭셔의 대저택 헌드레즈홀. 수백 년간 이곳을 지켜온 에어즈 가문은 두 차례의 전쟁 이후 서서히 몰락하며 안팎으로 붕괴가 진행중이다. 옛 영화를 간직한 구식 상류계급의 마지막 세대 에어즈 부인, 신체적.정신적으로 전쟁의 상흔이 깊이 남은 아들 로더릭, 영리하고 쾌활한 성격에 강인한 생활력으로 헌드레즈홀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딸 캐럴라인은 저택 안에 ‘고립’된 채 서서히 사회에서 잊혀가고, 저택 곳곳을 돌보고 살피던 하인들도 어느새 모두 떠나 새로 들어온 나이 어린 소녀 베티가 저택의 유일한 하녀이다.

2차대전 종전 이듬해 여름, 닥터 패러데이가 헌드레즈홀을 방문한다. 하녀 베티가 병이 나 주치의 닥터 그레이엄을 호출했으나 그에게 응급환자가 생겨 패러데이가 대신 오게 된 것. 패러데이는 과거 헌드레즈홀에서 일했던 유모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 이후 삼십여 년 만에 다시 헌드레즈홀을 찾은 패러데이는 자신이 동경해 마지않았던 저택의 쇠락한 모습에 당황을 금치 못한다. 병이 났다던 하녀 또한 지나치게 크고 고요한 이 저택에서 왠지 모를 공포를 느껴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꾀병을 부린 것이었다. 이 왕진 이후 패러데이는 그레이엄 대신 에어즈 가문의 주치의를 맡게 되고, 로더릭의 다리 부상을 치료해주겠다고 자청해 매주 헌드레즈홀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한편 헌드레즈홀에 이웃한 랜들 가문의 대저택 스탠디시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랜들가가 영국을 떠난 후 몇 년 동안 비어 있다가 마침내 런던에서 온 건축가 부부에게 팔렸다. 주변의 귀족 가문이 하나둘 떠나 홀로 섬에 버려진 느낌이었던 에어즈 부인은 스탠디시에 새로운 주인이 생긴 데 기뻐하며, 그들을 헌드레즈홀로 초대해 조그만 모임을 열기로 한다. 헌드레즈홀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고 파티는 그런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난데없이 파티장 한구석에서 새된 비명이 울리고 연회는 흥건한 핏물과 함께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헌드레즈홀의 순하디 순한 애견 지프가 일으킨 이 끔찍한 사고는 실상, 앞으로 헌드레즈홀에서 벌어지게 될 수많은 일들의 전조에 불과했는데……

지프의 사건으로 시작된 그것, 아마도 ‘꼬집음’이나 ‘속삭임’-문득 떠올랐는데, 베티가 바로 그렇게 표현했다-으로 시작된 그것이 서서히 힘을 축적해나갔다. 그리고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고, 불을 붙이고, 징두리널에 낙서를 했다. 이제는 발이 달려 종종걸음으로 달릴 수도 있다. 쥐어짜낸 듯한 목소리도 낼 수 있다. 그것은 자라고 있다, 성장하고 있다……
다음에는 뭐가 될까? (본문 546쪽)

정체불명의 존재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기이한 사고 앞에서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기며 독자들은 물을 수밖에 없다. 과연 이 기이한 일은 누구의 짓인가, 사람인가 유령인가. 이 ‘낯선 존재’는 누구인가.


섬세하게 조직된 서스펜스,
영국 사회의 계층 분화에 관한 정확한 묘사

『리틀 스트레인저』의 배경이 된 20세기 중반은 두 차례의 전쟁 이후 영국 사회의 가치관이 전체적으로 변한 시기이다. 노동자계급이었던 사람들은 더이상 귀족들의 집사나 하녀 노릇을 하길 원치 않았고, 귀족들 역시 자신들이 선조의 유산을 유지할 재정적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울며 겨자 먹기로 저택을 처분하거나 이사를 떠났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사회 변화와 ‘쇠락한 대저택’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기괴한 스토리를 펼쳐 보인다. 이 소설의 집필 배경에 대해 세라 워터스는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전쟁 후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힘이 커진 노동자계급은 사회 변혁을 꿈꾸게 되었고,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위협받고 공격당하고 있다고 여겼다. 나는 ‘공격당하고 있다’는 그들의 생각에 흥미를 느꼈다. (……) 초자연적인 현상을 떠올린 건 소설 구상을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서였는데, 상류계급이 느낀다던 ‘위협과 공격’을 귀신이 출몰하는 집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애프터 엘렌>과의 인터뷰)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리틀 스트레인저』는 섬세하게 조직된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공포소설인 동시에, 당시 영국 시대상을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히스테리보다 더 괴상망측하네. 마치, 뭐랄까, 뭔가 달라붙어서 집안사람 전부의 생기를 천천히 빨아먹는 것 같아.”
“뭔가 있긴 하지.” 그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 이름은 바로 노동당 정부고. 에어즈가 사람들의 문제는-그런 생각 안 드나?-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할 생각이 아예 없다는 거야. 오해는 말게. 나도 그 사람들 심정에 상당히 공감하니까.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들처럼 오래된 잉글랜드 가문에 남은 게 뭐겠는가? 계급적인 면에서는 운이 다했지. 정신적인 면에서는 아마 전혀 바뀌지 않고 그저 살던 대로 살걸.” (본문 539쪽)


영국 몰락 귀족의 일상,
드러난 평온과 감춰진 혼돈의 모든 것

어머니는 이 집이 우리의 약점을 다 꿰고서 하나씩 시험해보는 거라고 하셨죠. 로디의 약점은 알다시피 이 집 그 자체였어요. 내 약점은…… 그래요, 아마 내 약점은 지프였겠죠. 그런데 어머니의 약점은 수전이에요. (본문 504쪽)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마치 에어즈 가문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안고 있는 ‘약점’을 노려 공격하는 듯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헌드레즈홀 사람들은 점점 공포에 빠져든다. 그리고 각각의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사건이 겨냥한 당사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관찰자(1인칭 화자 닥터 패러데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 모습, 특히 영국 몰락 귀족의 일상, 그 면면에 드러난 평온과 감춰진 혼돈, 전쟁이 남긴 상흔 등이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뜨거운 물 한 컵을 가지러 부엌까지 터벅터벅 직접 내려가지 않고 옛날 방식대로 종을 울려 하인을 부를 수 있다는 게 어머니의 기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몰라요. 그런 종류의 일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전쟁 때까지만 해도 알다시피 헌드레즈에는 하인이 많았잖아요.” (본문 75쪽)

영지가 산산조각 팔려나가고, 이렇다 할 만한 수입원이 없어 극도의 긴축 재정에 돌입하는 와중에도 에어즈 부인은 하녀를 부리며 자신의 삶이 더 안락했던 시대를 놓아버리지 못하고, 젊고 건강한 청년이었던 로더릭은 참전 당시 입은 사고로 얻은 흉터와 망가진 다리, 그리고 사고 당시 목숨을 잃은 동료를 향한 죄책감 때문에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버렸다. 거기에 더해 젊은 나이에 대저택 경영이라는 커다란 짐까지 홀로 떠안은 부담감이 로더릭을 더욱더 옥죈다. 당시 영국 사회에는 이들 가문 같은 처지에 있는 귀족의 후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워터스는 이들을 통해서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추지 못하고 ‘은둔’을 선택한 채 조용히 사라지는 ‘구시대’ 상류계급의 모습, 전쟁이 남긴 상흔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인물, 변해버린 시대에 모든 것을 잃고 좌절하는 이들의 고통 등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예전의 합리적인 관점을 고수하면서 헌드레즈가 사실상 역사의 흐름에 패배한 것이라고,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추는 데 실패해 쇠망한 것이라고 단호히 주장했다. (……) 영국을 한번 둘러보라고 그는 말한다. 유서 깊은 상류층 집안이 십중팔구 똑같은 식으로 사라지고 있다. (본문 704쪽)

“사실 로더릭이 부상 때문에 험악해진 것은 놀랄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토록 젊고 건강한 청년이 저렇게 됐으니까요. 제가 로드 나이 무렵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분노했을 겁니다. 참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순식간에 다 잃었으니까요. 건강, 외모. 어떻게 보면 자유를 잃었다고도 할 수 있죠.”
부인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험악해진 정도가 아니에요. 전쟁 때문에 사람이 백팔십도 변한 것처럼 애가 아주 이상해졌어. 로더릭은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모조리 증오하는 것 같아요. 아, 그애 같은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평화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그애들에게 요구했던 온갖 끔찍한 일들을 생각하면!” (본문 176쪽)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게. 자네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지주가 영국에 백 명은 될 테니까. 다들 자네가 오늘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걸.”
“천 명은 될걸요.” 그는 무기력하게 대꾸했다. “학교 동창이든 공군 동기든 다 그래요.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쩌다 만나 얘기를 들으면 레퍼토리가 만날 똑같아. 대부분 진즉에 재산을 다 말아먹었지. 몇몇은 일자리를 얻어야 할 판이고, 부모는 전전긍긍하며 살고…… 오늘 아침에 신문을 펼쳤더니 주교가 ‘독일인의 수치’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더군요. 어째서 다들 ‘영국 남자의 수치’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 거지?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영국 남자들, 전쟁이 끝난 뒤 재산과 수입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걸 두 눈 멀거니 뜨고 지켜봐야만 하는 영국 남자들에 관해 말입니다. 그래도 밥같이 지저분하고 약삭빠른 장사꾼은 잘만 살죠. 땅도 없고 가문도 없고 지역민 눈치볼 필요도 없는 사람들, 그 망할 베이커하이드 같은 놈들은……” (본문 225~226쪽)

한편 돌이킬 수 없이 기울어가는 가세에도 귀족적 삶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나 끝내 저택을 지키려 아등바등하는 남동생 로더릭과 달리 캐럴라인은 헌드레즈홀이라는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캐럴라인은 일찍이 헌드레즈홀을 떠나 여성해군단에 복무하면서 새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부상당한 로더릭을 돌보기 위해 저택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닥터 패러데이와의 관계가 발전하면서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캐럴라인은 영국을 떠날 계획까지 세웠으나 저택은 그녀를 호락호락 놓아줄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 캐럴라인처럼 영리하고 건강하고, 좋은 집안에서 교육받은 인물조차도 당시 영국의 수많은 몰락 귀족들이 그러했듯이 “논리조차 압도해버리는 불가항력의 운명”(본문 679쪽)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니까, 영국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요. 이곳에는 지금 자신을 위한 장소가 아무 데도 없다고.”
젠트리 출신의 방청객 한두 명이 이 말에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문 692~693쪽)


“『리틀 스트레인저』는 충돌과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작품이 ‘매끈하게’ 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세라 워터스)

저택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과 그 공포의 이면에 깔린 어두운 심리가 독자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동안,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인물은 에어즈 가문을 곁에서 지켜보는 1인칭 화자 닥터 패러데이다. 패러데이는 과거 헌드레즈홀에서 일했던 유모의 아들로, 이제는 의사가 되어 중상류계급으로 올라선 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에어즈 가문의 주치의뿐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로까지 관계를 맺으며 긴밀하게 왕래하지만,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두 계급 사이의 생래적인 거리, 대화중에 시시로 드러나는 이들의 귀족 의식에 불편함을 느낀다. 두 계급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갈등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고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긴장감을 더하고, 이 긴장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이 1인칭 화자의 말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과 불안이다.

그들을 연민과 질시가 뒤섞인 감정으로 지켜보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1인칭 화자인 나, 닥터 패러데이는 노동자계급에서 중상류계급으로 성공적으로 올라선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헌드레즈홀에서 유모로 일했으니 어찌 보면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슬며시 역전된 셈이다. 작가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계급적 앙금과 미묘한 심리적 낙차를 섬세하게 잡아내어 시대 분위기를 꼼꼼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구성 면에서는 화자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데 솜씨 좋게 써먹는다. (‘옮긴이의 말’에서)

세라 워터스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리틀 스트레인저』는 충돌과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작품이 ‘매끈하게’ 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의 바람대로, 이 소설은 ‘매끈하게’ 읽고 덮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일단, 앞에서도 밝혔듯이 1인칭 화자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도 좋을 것인지, 그 신뢰성이 어느 순간 무너지기 때문이다. 화자를 향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지금까지 읽어온 모든 이야기가 흔들린다.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까지 이 ‘낯선 존재’를 명확히 밝혀주지 않는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들이 객관적으로 바라본 시선을 빌려 ‘그것’의 정체를 짐작해볼 수는 있지만, 소설 속에서 ‘그것’을 가리켜 보이는 화살표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로더릭에게 그것은 모종의 ‘감염’이고, 에어즈 부인에게 그것은 어려서 세상을 떠난 딸 수전의 환영이며, 캐럴라인에게 그것은 캐럴라인이 마지막에 외치는 “당신”이다. 반면 제3자의 입장인 닥터 실리에게 그것은 영국 귀족계급을 뿌리째 흔든 ‘노동당 정부’이자 세월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에어즈 가문 자체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많은 평자가 『리틀 스트레인저』를 논하며 1인칭 화자가 범인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나 마지막까지 어느 것도 속 시원히 밝혀주지 않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함께 거론했으며, 어느 리뷰어는 “다 읽고 나서 안전하게 결론을 낸 후 깔끔하게 보따리를 싸서 책장에 집어넣을 수가 없는 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헌드레즈홀을 닮았다.“안과 밖의 분위기가 이렇게 확연히 다른 것은 이 저택이 부리는 기묘한 마술 가운데 하나”(본문 123쪽)이고, 읽을 때마다 그 ‘낯선 존재’의 정체가 확연히 다르게 읽히는, 도저히 독자를 안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이 책이 부리는 기묘한 마술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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