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도시, 서울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이혜미 | 글항아리 | 2020년 02월 2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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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자본과 인간이 싸우는 미세 허파, 서울 쪽방 탐사 대기록
대도시는 어떻게 먹이사슬망이 되었나
쪽방에 들어가는 순간 생은 늪이 된다

이 책은 르포다. 기자 정신으로 잠입해 취재를 하고, 하나의 단서를 잡으면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증거를 수집해나간다. 사회부 소속으로 경찰서를 출입하는 일은 ‘사망’ ‘빈곤’ ‘불법’ 등 중요한 사회 문제를 사건의 발생과 종결로만 보게끔 시야를 제한시킨다. 그래서 저자는 기획취재부로 옮겼다. 이제 기자 신분임을 숨기고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 혹은 부동산 투기꾼으로 가장해 쪽방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나간다. 그러자 서울 대도시 밑바닥층의 빈곤 문제가 하나의 비즈니스처럼 체계적인 이윤 추구 행위에 둘러싸여 있음이 드러났다.
이 책은 작은 자서전이기도 하다. 부산 출신의 저자는 서울로 진학하면서 대학 시절 내내 주거빈곤자로 불안한 생활을 했다. 기숙사, 하숙, 반지하 원룸, LH 매입임대 주택, 산동네 분리형 원룸, LH 대학생 전세자금대출이 저자가 거쳐온 주거 역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가난한 과거사를 숨겼다. 요즘 가난은 훌륭한 서사의 자원이 되기도 하지만, 악바리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줘 불리한 약점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청년 세대들이 자신이 직면한 빈곤을 외면하자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주거 빈곤사와 가난의 경험을 적극 드러내게 됐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난에 대한 한 사람의 시선이 바뀌고 넓어지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수많은 빈자, 중간 착취자, 소유주가 이 책에 등장한다. 실명을 밝히기도 하고 가명 처리한 인물도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빈곤의 실태를 이야기해준 사람들이다. 그들은 쪽방에 한번 발을 담갔다가 죽을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망에 대하여 증언했다. 바로 서울 동자동, 창신동, 사근동 주민들이다.

저자소개

대학에서 중어중문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2015년 부산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일보에서 기획취재부 등을 거쳐 2020년 현재 정치부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여기자협회 ‘올해의 여기자상’을 비롯해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올해의 데이터기반 탐사보도상’ ‘온라인저널리즘 어워드 대상’ 등을 받았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대변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고故 이용마 기자의 말을 기자로 사는 동안 잊지 않으려고 한다.
쓰는 행위는 항상 겁나고, 결과물은 늘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쓸 때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세상에서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진 많은 말을 되살리는 글을 쓰고 싶다.

목차소개

들어가며

1부 지옥고 아래 쪽방

1. ‘현대판 쪽방’ 고시원 사람들
2018년 11월 9일 국일고시원 화재 | 327호, 이명도, 64세 | 326호, 홍아무개, 59세

2. ‘비정한 도시’의 최저 주거 전선
단돈 만 원에 당신의 비참한 삶을 삽니다 | 살아서 들어가는 관棺, 쪽방 | 박씨의 쪽방

3. 쪽방촌의 빈곤 비즈니스
강씨 일가 | 벗어날 수 없는 쪽방의 굴레 | 쪽방에 산다는 것 | 누가 쪽방으로 돈을 버는가 | 쪽방촌 생태계의 축, 중간 관리인 | ‘지옥고 아래 쪽방’을 보도하다

4. ‘지옥고 아래 쪽방’ 그 후
쪽방촌에 배달된 신문 | 다시 만난 박씨

2부 대학가 신쪽방촌

1. 자전적 ‘주거 난민’ 이야기
20대의 나는 ‘주거 난민’이었다 | 역행하는 청년 주거빈곤

2. 대학가가 쪽방촌이 되고 있다
우체통과 계량기가 집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 당신의 원룸은 ‘신쪽방’입니까 | 도심 속 섬, 사근동의 비밀 | 그들이 기숙사를 반대한 까닭 | 신쪽방 잠입 취재

3. 서울, 뜨내기들의 욕망 도시
사근동에서 온 답장 |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 청춘에게 더욱 비정한 도시 | ‘프로듀스 101’의 축소판, 서울

나오며

출판사 서평

빈자들은 빈자끼리 서로 빈정거리고 멸시도 한다

이 책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2018년 11월 9일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생존자다. 327호, 64세, 이명도씨는 화재 당시 창문으로 뛰어내려 살아남았다. 한겨울에 슬리퍼만 신고 어슬렁거리던 그는 묘한 적대감, 빈정댐, 툴툴거림으로 기자와 대면했다. 비록 고시원이지만 월세를 조금 더 내고 창문 달린 방에 살았던 그는, 7명의 사망자와 달리 그 3층 창문을 통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고시원 옆 건물 지하 다방에서 커피를 주문한 그는 “다른 기자들은 밥 한 끼 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달라 한다”며 잿밥을 바라는 기색으로 저자를 쳐다봤다. 잇속에 밝은 이씨는 눈치 빠르게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내놓는 가운데, 자신에 대해서는 희생자들과 다르다고 구분 지으며 ‘귀한 출신’임을 설파하려 했다.

“이래 봬도 젊었을 때 잘살았다고요. 종로 토박인데, 가세가 찌그러져서 고시원에 왔어요. 예전에는 테니스도 세 군데나 다니고 바다낚시도 가고. 올해는 여태껏 살아 있는 꽃게 한번을 못 먹었네.” 입맛을 쩝 다시다 말고, 그는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혈통 자랑이라도 하듯, 과시하면서 내뱉는 화려한 단어들은, 손톱 사이에 낀 검정 때와 대비되면서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가난한 이들이라고 해서 한가지 색깔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엄연히 출신이 다르고 계급이 다름을 드러내며 자기보다 더 가난한 이를 멸시한다. 이 책에 나오는 고시원, 쪽방촌 거주자들은 열심히 일할수록 더 가난해져 절망에 허덕이는 이들이 대다수다. 궁핍이 같은 처지의 어려움을 돌보게도 하지만, 없이 사는 이들의 마음을 더 척박하게 만들어 기회주의적 생존 전략을 취하게 만들기도 한다.

쪽방촌 여성 주거자들은 같은 계층의 남성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긴다. 폭염이 닥치는 여름에도 방문을 꼭꼭 잠근 채 열어두지 못하는 이유다.

돈 있는 자들은 중간 착취계층을 통한다

이 책을 집필하는 데 결정적인 중간 역할을 해준 사람이 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S 슈퍼의 예순두 살 된 최미자씨. 그는 핵심 취재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비타민 음료 비싸게 살 테니까 주민 한 분만 소개해주시면 안 될까요?” 쪽방촌 거주자를 만나고 싶었던 저자는 슈퍼 주인에게 부탁했다. 구석 마루에서 손녀들과 저녁밥을 먹던 최씨가 급하게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있지. 이거 오천 원인데…….” 안면에 웃음을 가득 띤 채 열 개들이 비타민 음료 상자를 저자 품에 안겼다. 잘 보이려는 마음에 음료 값으로 1만 원을 냈다. 횡재한 표정의 최씨는 주저 않고 맞은편 허름한 2층 건물로 가 예순두 살의 박선기씨를 소개해줬다.

“안녕하세요. 몇 가지만 여쭐게요. 며칠 전 청계천 옆에 있는 고시원에서 불난 거 아시죠? 그런 사고 접하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아휴, 마음이 안 좋지. 안 그래도 뉴스 보면서 속상했어요. 여기도 불나면 다 죽을 거 아니에요. 20년 넘게 이 동네에 살면서 불난 적 수두룩한데, 기사 한번 난 적이 없어요. 솔직히 고시원은 우리보다 사정이 훨씬 나아요. 돈 떨어지면 노숙밖에 길이 없는데 나이 드는 게 무섭고 막막하지.”

취재를 마무리하며 저자는 문득 세입자들의 월세를 걷고 있는 ‘이 슈퍼 주인도 작은 착취의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시스템의 공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 깊이 파고들어가자 슈퍼 최씨는 최대 수백만 원의 관리비를 중간에서 관리비 명목으로 취할 뿐 실소유주는 따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씨, 박씨 등의 이야기를 엮어 쪽방촌 기사가 보도된 날, ‘중간 관리인’으로 지목된 최씨가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여우 같은 게 사람들 살랑살랑 꼬셔서 기사를 써? ‘꽃뱀’이 다른 게 아니라 당신 같은 사람이 ‘꽃뱀’이야!”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최씨가 뱉는 언어는 거칠고 날카로웠다. 듣도 보도 못한 비속어도 쏟아졌다. “네가 이 동네에 대해서 뭘 안다고 꼬리 살랑살랑 치면서 이렇게 기사를 써? 이 동네 사람들은 다 너를 믿었다고! 이 꽃뱀 같은 년이.” 아마도 동네 관리인들끼리 기사를 돌려보고 집주인으로부터도 한마디 들은 듯했다.

그 순간 증언을 해준 박선기씨가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박씨는 저자를 여러 번 만나 자신의 생애사와 쪽방촌 착취의 생태계를 들려줬다. 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돈 있는 게 죄야? 있는 사람들이 이걸 좀 빌려주겠다는데, 쪽방 없어지면 이 사람들 다 없어지는데. 네가 월세라도 대줄 거냐고.”

본인도 세입자면서 최씨는 철저히 건물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었다.

부자들은 얼굴이 없다

중간 관리인 말고 쪽방촌 건물들의 실소유주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 이 과정은 이후 수개월에 걸쳐 집요하게 이어진다. 박선기씨가 사는 집의 실소유주는 ‘정선심’. 60대 여성으로 옆 동네에 살고 있었다. 종로46가길(창신동)을 따라 박씨 쪽방 인근 건물들의 주소를 하나씩 정리했다. 그렇게 인근 15곳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열람하며, 등본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유권과 채무관계에 대한 정보를 채워나갔다. 건물 주소, 현재 소유주의 이름, 주소, 등기 연도와 원인 등.

밤샘 작업이 지난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데이터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요주의 인물 ‘정선심’은 단 두 곳의 등본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정선심은 박씨의 쪽방 바로 옆집을 ‘강병선’이라는 인물과 함께 소유하고 있었다. S 슈퍼 건물의 등본을 다시 검토했다. 소유주는 1960년대 후반생인 강병철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강병선과 겹쳐졌다.

정선심과 함께 옆집 쪽방을 절반씩 소유한 사람의 이름이 ‘강병선’ 아니었던가. 이상하게도 이 골목에는 유독 ‘강’씨가 많았다. 만약 이 구역 건물을 몽땅 가지고 있었던 한 사람이 있었고, 이를 어느 순간 자녀들이나 배우자에게 물려줬다면……? 강씨에다가 이름 항렬이 ‘병’인 사람은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형제나 남매라는 심증이 커졌다.

박씨네 쪽방 건물주 정선심.
박씨네 쪽방 기준 오른쪽 이웃집의 건물주 정선심과 강병선.
박씨네 쪽방을 관리하는 S 슈퍼 건물주 강병철.
박씨네 쪽방 맞은편 건물주 강병식.

게다가 과거에 쪽방으로 이용하다가 최근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한 건물 소유주 강병은. 드러난 것만 해도 강씨 4명에 정선심까지 다섯 명이 가족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좀더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팩트가 필요했다. 우선 강씨 4명과 정선심이 등장하는 주소를 모두 수집해 정리했다. 의문이 드는 지점마다 정리하고 공통점을 비교하고, 건축물대장이나 등본을 또 떼어보고 정리하고 다시 살펴보는 길디긴 작업이 이어졌다.

서울시 종로구 △△동 **-**. 집요한 추적 덕일까. 여러 차례의 검색, 분류, 필터링 끝에 나온 이 주소가 무언가를 말해주리란 것을 직감했다. 우선 강씨 일가가 창신동 쪽방촌 옆 동네인 이곳에 주소지를 올려두고 있었다. 또, 박씨가 사는 쪽방 왼쪽 이웃집 소유주 ‘최정자’ 역시 주소지가 같았다. 최정자도 강씨 일가의 일원일 가능성이 커졌다.

강병선, 강병식, 강병철, 강병윤, 강병연, 강병은. 1996년에 건축 승인을 받은 역세권 소재 지하 1층, 지상 5층의 건물. 우애 좋은 가족이 쪽방 주민의 고혈을 빨아 쌓아 올린 빌딩의 건축물대장과 등기부 등본에는 남매 6명이 ‘소유주 칸’에 이름을 한꺼번에 올리고 있었음이 마침내 밝혀졌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정보지만, 눈앞에 펼쳐진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노숙과 주거의 경계에 놓인 쪽방이라는 최저 주거 전선에서 ‘가족 비즈니스’ 형태로 월세 장사가 이어지고 있다니. 그야말로 고장나고 병든 자본주의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저 가난한 부류와는 다른 사람이다

“저는 제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분도 나쁘고요. 왜냐하면 빈곤하다는 것에 엮여 있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내 마음은 안 가난하고, 나는 가능성이 있다고 정당화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은 내가 사는 곳이니까, 이 집에서 나는 나아지고 있다며 ‘정신승리’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못 살아요.”

이 책의 2부는 청년 주거빈곤층에게로 초점을 옮겨간다. 대표적인 취재지는 한양대 근처 사근동으로, 초미니 원룸텔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이곳 원룸텔 주거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가난합니까? 당신은 주거빈곤층입니까?’

지금 막 죽은 고등어 눈알처럼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에 놀랍게도 젊은이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강한 부정을 했다. “왜 자신이 처한 상황이 주거빈곤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한양대 졸업생 전동수씨는 대답했다. “제 원룸 건축물은 불법시설이지만, 제가 부산에서 살았던 아파트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제 부모님도 주거빈곤층이 아니고. 난 한 번도 주거빈곤층이었던 적이 없고. 그래서 옛날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여기는 ‘서울 집’일 뿐이지, ‘내 집’은 아닌. 그래서 그 개념을 잘 못 받아들이겠어요.”

가난을 숨기는 게 미덕이 된 사회에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질문은 불편하다. 이처럼 내밀한 고민과 스스로 마주하기도 쉽지 않다. 이들은 ‘나는 지금 가난하지 않으며, 당장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버티는 중이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내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가능성을 전제하며 잔인한 착취 구조의 작동을 간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도 솔직히 그려낸다. 가난을 숨기는 청년들과 달리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가난과 사회에 대해 좀더 명징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과거 가난했던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때로 가난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면도 있다고. 물론 이것은 결코 가난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말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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