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전쟁포로 수은 강항, 간양록(건거록), 원문수록

탁양현 엮음 | e퍼플 | 2019년 10월 2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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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제1장 적진에서 몰래 바치는 글(賊中封疏)

姜沆(1567~1618)은, 朝鮮王朝 중기의 학자·의병장이다. 정유재란 때,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 오사카, 교토 등에 있으면서, 敵情을 고국으로 밀송하였다.
본관은 진주, 자는 太初, 호 睡隱이다. 전남 靈光에서 태어났으며, 강희맹의 5대손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159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교서관박사·전적을 거쳐, 1596년 공조·형조 좌랑을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分戶曹判書 李光庭의 종사관으로, 南原에서 군량보급에 힘쓰다가, 남원이 함락된 뒤, 고향 영광으로 돌아가, 金尙寯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싸웠다.
전세가 불리하자, 통제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려고, 南行 도중에, 왜적의 포로가 되었다.
일본 오사카로 끌려갔다가, 1598년 교토 후시미성에 이송되어, 학식 높은 승려들과 교유하며, 유학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 만난 승려 중 슈쿠(?)는, 승려를 그만두고 유학자가 되었으며, 그가 일본 주자학 선구자가 된 후지와라 세이가(藤原惺窩, 1561~1619)이다. 이후 일본에서는, 많은 名儒를 배출시켰다.
특히, 후지와라는, 두뇌가 총명하고, 古文을 다룰 줄 알아, 李氏朝鮮의 과거 절차 및 春秋釋奠, 經筵朝著, 孔子廟 등을 묻기도 하고, 또 상례·제례·복제 등을 배워, 그대로 실행, 뒤에 일본 주자학의 개조가 되었다.
일본 억류 중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또한 그의 노력으로, 1600년에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가족들과 함께 귀국할 수 있었다.
강항은 일본의 지리와 군사시설을 비롯한 敵情을 적어, 조선으로 密送하기도 하였다가, 1600년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가족들과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
1602년, 大丘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얼마 후 사임하였고, 1608년 順天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그림에도 뛰어나, 인물화와 松畵에 특기가 있었다.
일본 억류 중, 사서오경의 和訓本 간행에 참여해, 몸소 발문을 썼고, 曲禮全經, 小學, 近思錄, 近思續錄, 近思別錄, 通書, 正蒙 등, 16종을 수록한 姜沆彙抄를 남겼으며, 이들은 모두 일본의 內閣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그밖에 文章達德錄과 동양문고 소장본 歷代名醫傳略의 서문을 썼다. 1882년(고종 19)에 吏曹判書兩館大提學이 추증되었다.
전라남도 영광의 龍溪祠 內山書院에 祭享되고, 일본의 효고현(兵庫縣)에 있는 류노(龍野) 城主 아카마쓰(赤松廣通) 기념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저서로는 雲堤錄, 綱鑑會要, 左氏精華, 看羊錄, 文選纂註, 睡隱集 등이 있다.
看羊錄에서 看羊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양을 돌본다’는 뜻이다. 또한 중국 한나라 무제 때, 匈奴에 使臣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흉노왕의 회유를 거부하고, 양을 치는 노역을 하다가, 19년 만에 돌아온, 蘇武의 충절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강항 자신이 붙인 본래 제목은 巾車錄이었다. 巾車는 죄인을 태우는 수레이니, 적군에 사로잡혀 끌려가, 생명을 부지한 자신을, 죄인으로 자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강항이 세상을 떠난 뒤인 1654년에, 그의 제자들이 책을 펴내면서, 스승을 소무에 견주어, 제목을 간양록으로 바꿨다.
강항이 간양록에 수록한 시 중에도, 자신을 소무의 처지에 빗대는 대목이 몇 곳 나온다.


1. 정유재란(1597) 때, 왜군에게 포로가 된 경위

선무랑(宣務郞) 수형조좌랑(守刑曹佐郞) 신(臣) 강항(姜沆)은, 목욕재계하고 백 번 절하여, 서(西)로 향해 통곡하면서, 삼가 정륜입극 성덕 홍렬대왕 주상 전하(正倫立極盛德弘烈大王主上殿下)께, 상언(上言)하옵니다.

-하략-

저자소개

엮은이 탁양현

<인문학 여행자의 동아시아 여행기>
<그리스비극 철학사상>
<삶이라는 여행>
<노자 정치철학>
<장자 예술철학>
<들뢰즈 철학>
<데리다 철학>
<미국 철학>
<일본 철학>
<공자 철학>
<원효 철학>
<니체 철학>
<헤겔 철학>
<맑스 철학>

목차소개

목차

제1장 적진에서 몰래 바치는 글(賊中封疏)
1. 정유재란(1597) 때, 왜군에게 포로가 된 경위
2. ‘이요국 오쓰성’으로 압송되다
3. 탈출을 시도하다 다시 붙잡히다
4. ‘오사카성’을 거쳐 ‘후시미성’으로 이송되다
5. 오랑캐에 불과한 왜놈에게 붙잡힌 데 대한 비분강개
6. 하루면 창자가 아홉 번씩이나 뒤틀리는 까닭

제2장 왜국 팔도 육십육주 지도(倭國八道六十六州圖)
1. 왜국의 만세일계 천황 위시한 쇼군 통치체제
2. 노예 ‘풍신수길’이 쇼군이 되었으니 왜국은 개판이다
3. 진시황 시대 서복, 홍법대사
4. 왜승 의안, 신라 사람 일라
5. 임진왜란 정유재란 참전 왜군 수효 및 장수 명부
6. 왜승 안국사, 태장로, 현소
7. 전쟁에 불참하거나 패배하면 사람축에 끼지 못한다
8. 이씨조선의 군사제도 비판
9. ‘이순신’과 ‘원균’
10. 이씨조선 총체적 개혁 방안
11. 대마도주 ‘쇼 요시토시’에 대하여
12. 왜국의 성읍 건축하는 방법
13. 이씨조선 성읍 체제 개선 방안
14. 왜국 기득권층의 상황
15. 기득권층에게 착취당하는 왜국 서민대중
16. 왜군은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한다
17. 왜국은 왜장과 농민만이 처자가 있다
18. 귀순한 왜군들을 포용해야 한다
19. 조선인의 코를 베어오라고 명령한 풍신수길
20. 전쟁에 대한 왜국의 상황과 조선의 대처 방안
21. 전쟁포로 ‘이엽’, 탈출하다 붙잡혀 자결하다
22. 전쟁이 끝나도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제3장 적중에서 보고들은 기록(賊中聞?錄)
1. 왜국 관료체제
2. 왜국 팔도 육십육주 지도
3. 기내 5국
4. 동해도 15국
5. 동산도 8국
6. 북륙도 7국
7. 산음도 8국
8. 산양도 8도
9. 남해도 6국
10. 서해도 9국
11.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이다.
12. 대마도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교활함

제4장 임진?정유에 침략해 왔던 왜장의 수효
1. 도쿠가와 이에야스
2. 모우리 테루모토
3. 마에다 히젠노카미
4. 이시다 지부노소유
5. 우에스기 가게카쓰
6. 다테 마사무네
7. 사다케 요시마사, 모가미 요시아키, 긴고
8. 우키타 히데이에
9. 시마즈 요시히로
10. 나머지 여러 왜장
11. 도요토미 히데요시
12.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왜국 국내 정세 동향
13. 왜군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유
14. 향후 왜국에 대한 외교적 방안
15. 왜국의 왜승 등을 접촉한 상황
16. 부산으로 돌아오다

제5장 전쟁포로들에게 고하는 격서(告?人檄)
1. 천박한 오랑캐 일본
2. 풍신수길, 철천지원수 왜구
3. 8일 동안 먹지 않았으나, 죽지 못했다
4. 목숨을 걸고 탈출을 도모해야 한다

제6장 승정원에 제출한 보고서(詣承政院啓辭)
1. 1600년 5월 19일, 부산으로 돌아오다
2. 향후 왜국의 정세에 대해 상이한 여러 의견들
3. 왜국의 ‘천하제일주의’에 대하여
4. 왜적은 부술 복서 천문 지리 관상을 잘 알지 못한다
5. 장수라는 자들도 문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6. 왜국의 궁실과 다실
7. 왜국 남자 절반가량은 승려이다
8. 왜국의 신토신앙
9. 왜국의 대외교류
10. 왜국 각지의 바닷길
11. 왜국은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는다

제7장 난리를 겪은 흔적(涉亂事迹)
1. 군량 관리하는 보직을 맡다
2. 왜적에게 붙잡히다
3. ‘쓰시마’로 끌려가다
4. ‘시모노세키’로 끌려가다
5. ‘나가사키’로 끌려가다
6. 전쟁포로의 비참함
7.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다
8. ‘시코쿠 에이메현 오츠성’으로 끌려가다
9. ‘오사카성’으로 끌려가다
10. ‘교토 후시미성’으로 끌려가다
11. ‘코 무덤’ 제사의 제문을 짓다
12. 1600년 2월에 풀려나다

제8장 ‘윤순거’의 발문
1. 당초에 책 이름을 ‘건거록’으로 지은 까닭
2. 책 이름을 ‘간양록’으로 바꾼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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