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인문학, 조선왕조 진보주의 작가 허균 성소부부고

탁양현 엮음 | e퍼플 | 2019년 01월 1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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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 학문에 관하여: 學論



학론(學論)

옛날의 학문하는 사람이란, 홀로 제 몸만을 착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체로 이치를 궁구해서 천하의 변화에 대응하고, 도(道)를 밝혀서 뒤에 올 학문을 열어주어, 천하 후세로 하여금, 우리 학문은 높일 만하고, 도맥(道脈)이 자기를 힘입어 끊어지지 않았음을 환하게 알리려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을 유자(儒者)의 선무(先務)로 하였으니, 그들의 마음씨는 역시 공변되지 않은가?
그런데 근세(近世)의 학자라고 말해지는 사람이란, 우리 학문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며, 또한 홀로 제 몸만을 착하게 하려고도 않는다.
입으로 조잘대고, 귀로 들은 것만을 주워 모아, 겉으로 언동(言動)을 꾸미는 데에 지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도(道)를 밝히오. 나는 이치를 궁구하오.”
이러면서, 한 시대의 보고 들음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고찰해 보면, 높은 명망을 턱없이 거머쥐려던 것뿐이었고, 그들이 본성(本性)을 높이고, 도(道)를 전하는 실상에 있어서는, 덩둘하여 엿본 것도 없는 듯하니, 그들의 마음씨는 사심(私心)이었다.
그렇다면 공(公)과 사(私)의 분별이요, 참과 거짓의 판별이다.
어찌하여 수십 년 이래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某)는 학자이고, 모(某)는 진유(眞儒)다.” 하면서, 망령되게 서로 추켜주고 자랑하기에 바빠하는가? 그런 일 또한 미혹된 짓이다.
일찍이 보건대, 소위 진유(眞儒)란, 세상에 쓰이게 되면, 요(堯)ㆍ순(舜) 시대의 다스림과 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의 공적이 사업에 나타난 것들이 이와 같았고, 쓰이지 못하더라도 공(孔)ㆍ맹(孟)의 가르침과 염(濂)ㆍ낙(洛)ㆍ관(關)ㆍ민(?)의 학설을 책에 기록한 것들이, 또 이와 같아서, 비록 천만년이 지나도 이의(異議)를 제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건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씨가 공변되어서다.
오늘날의 거짓 선비는, 실속 없고 근거 없는 말을 하여, 입을 열면 이윤(伊尹)ㆍ부열(傅說)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의 사업을 자신이 담당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가 쓰여지면 손과 발을 놀리지도 못하고 실패하여, 자신을 수습할 수도 없게 되어, 당세의 비웃음과 후세의 의논이 있기 마련이다.
약간 더 교활한 자들은, 이렇게 되리라고 미리 요량하고, 명망이 훼손됨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문득 나서지도 않고, 그의 졸렬함을 감춰버린다. 이런 것 역시 다름이 아니라, 그 마음씨가 사심(私心)이어서다.
슬프다!
거짓이 참을 어지럽게 하여, 온통 이러한 극단에 이르게 하고는, 마침내 임금으로 하여금, 도학(道學)을 싫어하여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도록 하였다.
이는 거짓과 사심을 지닌 자들의 죄이지, 어찌 진유들이 그렇게 하도록 하였으랴.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도학(道學)한다는 선비들이 더러는 화란에 걸리고, 더러는 끝까지 그의 시정책을 펴지 못하기도 하였다.
모르기는 하지만, 당세 임금으로 있던 분들이, 과연 그들의 도(道)를 써서 시행했더라면, 공렬(功烈)을 옛사람에게 비길 수 있었고, 이 세상을 요ㆍ순의 시대와 같게 할 수 있었겠는가?
국론(國論)이 두 갈래로 나뉨으로부터, 사사로움에 치우친 의논들이 무척 치열해져, 더러는 저들만이어야 한다고 이들을 헐뜯고, 더러는 갑(甲)만을 높이고, 을(乙)은 배척하여 소란하게 결렬되어서, 그 옳고 그름이 정해지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모두 사심으로 듣고 보아서 그렇게 되지 않음이 없으니, 어느 누구를 탓하랴!
얼마 전에 이른바 오현(五賢)을 문묘(文廟)에 배향하였다.
당시 의논하던 사람들은, “다섯 분 이외에 배향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것도 매우 가소로운 일이다.
어진이들이 어떻게 정해진 인원이 있다고, 반드시 다섯 분으로만 한정하랴.
만약 그렇다면, 이후에는 공자나 안자(顔子) 같은 학자가 있더라도, 배향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공자ㆍ안자 같은 분들의 탄생은 예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야은(野隱) 길재(吉再) 같은 충성심으로 우탁(禹倬)ㆍ정몽주(鄭夢周)의 학통을 직접 전해 받았고, 서화담(徐花潭)의 초월한 경지를 혼자 터득함과, 이율곡(李栗谷)의 밝은 식견과 큰 아량까지를, 어떻게 후중함이 적으니 취할 게 없다고 하여, 전혀 거론하지 않는 것인가?
더러는 헐뜯는 사람도 있으니, 이점 또한 사심과 거짓의 해악이다.
만약 한훤(寒暄 金宏弼)과 일두(一? 鄭汝昌)가, 불행히도 1백 년 후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그러한 헐뜯김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하랴.
또 율곡(栗谷)으로 하여금, 다행히도 1백 년의 앞에만 태어나게 했다면, 그분이 존숭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건 마음씨의 공변되지 못함에서 연유되는 것이요, 관찰하기는 싫어하고, 남의 말 듣기만을 숭상하는 일반적인 세태에서 나오는 짓이다.
임금이 진실로 공(公)과 사(私)의 분별을 밝게 한다면, 참과 거짓도 알아내기 어렵지 않으리라.
이미 공과 사, 참과 거짓을 분별하면,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고 도리를 밝히는 사람이 나와서, 그들이 배운 것을 행하리라.
그들의 겉이나 꾸미는 자들은, 감히 그들의 계책을 행하지 못하여, 모두 깨끗이 거짓을 버릴 것이며, 나라의 커다란 시비(是非)도, 역시 따라서 정해지리라.
그렇다면 그러한 기틀[機]이 어디에 있을까?
임금의 한 몸에 있으며, 역시 ‘그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라고 할 수밖에 없을 따름이다.

-하략-

저자소개

2. 정치에 관하여: 政論



정론(政論)

예부터 제왕(帝王)이 나라를 다스림에, 혼자서 정치하지는 않았다. 반드시 보상(輔相)하는 신하가 그를 도와 주었다.
보상해 주는 사람으로 적합한 사람만 얻으면, 천하 국가의 일을 적의하게 다스릴 수 있었다.
이런 것으로 매우 뚜렷이 나타난 것으로는, 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이 임금이 되었을 때에는, 반드시 고요(皐陶)ㆍ직(稷)ㆍ익(益)ㆍ이윤(伊尹) 등의 보좌가 있었다.
그런 다음에 옹희(雍熙)의 다스림을 이룰 수 있었으니, 하물며 근래의 세상에서야 말해 무엇하랴.
후세의 임금은 비록 잘 다스리기를 원하던 사람은 있었지만, 항상 보좌해 줄 적당한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였다.
신하된 사람으로도, 비록 옛사람과 같은 포부를 지니고는, 더러 어진 임금을 만나지 못함을 걱정하고, 더러는 그가 끝까지 쓰이지 못함을 염려하였다.
그러고 보면 정치가 예전과 같지 못하고, 다스림이 날이 갈수록 저속해짐을 괴상하게 여길 것도 없으니, 어찌 백성들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가 비록 궁벽한 곳의 작은 나라이지만 ,임금과 신하들이 있고, 백성과 사직(社稷)도 있다.
위정자(爲政者)가 참으로 삼대(三代 夏ㆍ殷ㆍ周)를 본받는다면, 그 시절의 옹희(雍熙)의 덕화(德化)에 도달할 수 있으리니,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세종대왕이 황희(黃喜)와 허조(許稠)를 임용했던 것을 본다면 알 수 있다.
저 황희와 허조는 유자(儒者)가 아니었고, 재능 있는 신하도 아니었다. 오직 묵직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임금이 잘못하는 일에까지 그냥 따르기만 하지는 않는 정도의 사람이었다.
세종 당시만 하더라도, 국가의 윤곽이 완성되지 못하여, 국사(國事)를 대부분 개혁할 수도 있었는데, 두 신하는 왕도(王道)로써 힘쓰지 않고, 다만 너그럽게 진정(鎭定)시키는 것만을 최고로 여겼었다.
이래서야 어떻게 임금의 정사를 도와 익(益)ㆍ직(稷)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겠는가?
그러나 나라가 신뢰받고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것은, 모두 세종(世宗)의 힘이었으며, 두 신하가 보좌의 역할을 했었노라고 말해진다.
만약 고요ㆍ익ㆍ직 같은 분들이 보좌하여 정치를 하였다면, 그 공렬(功烈)이 왜 이 정도로 낮으랴.
아! 선왕(先王 宣祖)의 정치는, 보좌들의 도움으로 인해 겨우 밝았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에 보좌했던 신하들이야 많기도 했지만, 애호하며 서로 믿었던 사람은 이이(李珥)였으며, 전권(專權)을 맡기고 일하도록 책임 준 사람은 유성룡(柳成龍)이었다.
두 분 신하는, 역시 유자(儒者)이자 재능 있는 신하였다고 말할 만하였다.
그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일의 성취를 독책하던 뜻이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끝내 그들의 포부를 펴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재능이 미치지 못함이 아니었고, 방해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성룡은 어지럽기 짝이 없던 임진왜란 때를 당해서, 그의 정력과 지혜를 다했으나, 더러는 건져냈고, 더러는 막혔던 게, 그 당시 형편의 편리함과 편리하지 못함이 있어서였다.
그가 이순신(李舜臣)을 등용한 한 건(件)은, 바로 나라를 중흥시킨 큰 기틀이었다.
그런데 유성룡을 공격하던 사람들이, 이순신까지도 싸잡아 죄주었으니, 그 해가 나라에 미침이, 그 이상 더 심할 수 없었다.
이이가 곤욕을 당했던 것으로는, 의론하던 사람들이, 공안(貢案)을 고치려 했음은 불편했다느니, 여러 군(郡)에 액외병(額外兵)을 둠은 부당하다느니, 곡식을 바치고 관작을 제수(除授)받음은 마땅치 못하다느니, 서얼(庶孼)에게 벼슬길을 열어주자 함도 옳지 못하다느니, 성(城)과 보(堡)를 다시 쌓자는 것도 합당치 못하다느니, 했던 때문이었다.
병란(兵亂)을 치른 뒤에, 왜적을 막고 백성을 편하게 하려고 부지런히 강구하던 방책으로는, 위의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대체로 이이가 앞날을 내다본 것은, 수십 년 전에 이미 명확하였다.
몇 가지의 시행은, 평상시에는 구차스러운 일임을 알았지만, 환난을 생각하고 예방하는 데에는, 경장(更張)하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때문에 뭇 사람들의 꺼려함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말했었다.
그러나 속된 선비들은, 좁은 소견에 이끌려서 소란하게 된다느니, 타당하지 않다 하여 요란하게 차질을 내었으니, 당연히 그의 지위도 허용되지 못했고, 나라도 되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하는 자들은, 온 힘을 다하여 이이를 배척하면서, 앞의 다섯 가지 일을 받들어 시행하는데 오히려 힘을 다하려 않으니, 이거야말로 매우 가소로운 짓이다.
선왕(先王)이 온갖 정력으로 다스림을 도모하던 시절에, 두 분 신하가 조용하게 그들이 쌓아 둔 포부를 펼 수 있어서, 위에서는 따르고, 아래에서는 받들어, 딴 논의들이 없었더라면, 비록 희운(熙運)으로 회복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역시 외적의 침략은 막아낼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지껄여대는 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쪼아대며, 기필코 가로막아 배척하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설사 황희나 허조가 그러한 처지에 놓였더라면, 반드시 두 왕조를 섬겼다고 지목받아서, 하루인들 낭묘(廊廟, 議政府)에 편안히 있을 수 없도록 하였을 것이니, 어떻게 세종 때처럼 옹용(雍容)하고 아진(雅鎭)한 일을 하였으랴.
후세에 훌륭한 다스림이 없었던 것은, 모두 이런 데에서 연유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밝음으로써 아랫사람을 살피고, 믿음으로써 신하에게 맡긴다.’라는 이 두 가지면 다할 수 있다고 하겠는데, 그 결과야 굳은 의지와 결단에서만 나올 따름이다.


-하략-

목차소개

▣ 목차



1. 학문에 관하여: 學論
2. 정치에 관하여: 政論
3. 관직에 관하여: 官論
4. 군대에 관하여: 兵論
5. 인재등용에 관하여: 遺才論
6. 급여제도에 관하여: 厚祿論
7. 붕당에 관하여: 小人論
8. 자본가에 관하여: 豪民論
9. 글쓰기에 관하여: 文說
10. 양생에 관하여: 任老人養生說
11. ‘곽재우’의 은둔에 관하여: ?穀辨
12. 시짓기에 관하여: 詩辨
13. 꿈의 해석: 夢解
14. ‘정도전’과 ‘권근’에 관하여
15. ‘김종직’에 관하여
16. ‘남효온’에 관하여
17. ‘이장곤’에 관하여
18. 잠에 관하여: 睡箴
19. ‘노자’에 관하여: 老子
20. ‘열자’에 관하여: 列子
21. ‘장자’에 관하여: 莊子
22. ‘관자’에 관하여: 管子
23. 승려가 되려는 ‘이나옹’을 전송하며
24. ‘세설산보주해’ 서문
25. ‘고시선’ 서문
26. ‘당시선’ 서문
27. ‘송오가시초’ 서문
28. ‘명사가시선’ 서문
29. ‘청계집’ 서문
31. ‘귀전록’ 서문
32. ‘북경’ 가는 ‘김자중’을 전송하며
33. ‘북경’ 가는 ‘조지세’를 전송하며
34. ‘엄처사’ 전기문
35. ‘남궁선생’ 전기문
36. ‘장생’ 전기문
37. 꾼 꿈을 기록하다: 夢記
38. 16~17세기 조선의 상황: 惺翁識小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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