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1

신채호 지음(탁양현 엮음) | e퍼플 | 2018년 06월 2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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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 목차





제1편. 총론

제1장. 역사의 ‘올바른 도리[正義]’와 ‘조선사’의 범위 13
1. 역사란 무엇인가
2. ‘아(我)’와 ‘비아(非我)’
3. 시간적 상속성과 공간적 보편성
4. ‘김석문’과 ‘부르노’ 혹은 ‘정여립’과 ‘루소’
5. 정신의 확립과 환경에의 순응
6. ‘조선상고사’를 기술하며 중점을 둔 사항들

제2장. 역사의 3대 원소와 ‘조선’ ‘옛 역사[舊史]’의 결점 19
1. ‘조선’에는 마땅한 역사서가 없다
2. ‘조선’의 역사는, 오히려 ‘조선’의 역사가에 의해 훼손된다
3. ‘신라’는 ‘신라’일 따름이다
4. 이데올로기를 좇아 역사를 악용하는 역사가들
5. ‘유가’ 이데올로기 탓에 ‘조선사’는 왜곡되었다
6. 아쉬운 대로 전하는 자료를 참고하여 ‘조선상고사’를 기술한다

제3장. ‘옛 역사[舊史]’의 종류와 그 득실에 대한 ‘간략한 평가[略 評]’ 25
1. ‘신지(神誌)’와 ‘단군(檀君)’
2. 유학(儒學) 이외의 것을 이단시하여 불태워버린 ‘태종’
3. ‘북부여(北扶餘)’와 ‘삼한(三韓)’의 역사서는 유실되었다
4. ‘신라’와 ‘백제’와 ‘고려’
5. ‘유교도(儒敎徒)’ ‘김부식’의 사대주의에 의해 기술된 ‘삼국사 기’는 역사적 가치가 거의 없다
6. ‘고려’와 ‘조선’의 역사서에 대한 비판
7. ‘한백겸’의 ‘동국지리설’이 최초로 ‘조선사학계’의 실마리를 열 었다
8. ‘안정복’의 ‘동사강목’과 ‘유득공’의 ‘발해고’와 ‘이종휘’의 ‘수산 집’에 관하여
9.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관하여
10. ‘이씨조선’의 역사관에 대한 4가지 비판
11. 우리 역사학에 관한 비판적 사례
12. 역사서를 사사로이 짓지 못 하도록 하였다
13. 이전 왕조의 역사를 파괴해버렸다
14. 한문으로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어려움
15. 이전 시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승되지 못 하였다
16. ‘조선사학계’의 올바른 표준을 세워야 한다

제4장. 사료(史料)의 수집과 선택 39
1. ‘독사신론’과 ‘대동사천년사’를 중단하다
2.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를 답사한 일에 관하여
3. 인재와 경제력의 중요성
4. 한 번의 답사가 만 번의 독서보다 낫다
5. ‘고려’의 ‘승군(僧軍)’에 관하여
6. 사실(史實)을 규명하는 어려움
7. ‘중국인’의 역사 왜곡 습성에 대한 비판
8. ‘당태종’이 실명한 사건을 규명하는 어려움에 대하여
9.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내재된 의미를 알아야 한다
10. ‘이두문(吏讀文)’을 사용했던 탓에 초래되는 혼란
11. 자잘한 고증으로써 ‘압록강’의 위치를 규명하다
12. 자잘한 고증이 역사상 큰 발견의 단초이기도 하다
13. 위서(僞書)가 인용되어서는 안 된다
14. ‘단군’과 ‘요임금’의 연대를 비교하는 것은 오류다
15. ‘공안국’이 기술한 ‘상서전’은 위서다
16. 사람에 의한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
17. 상황에 의한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
18. 논리에 의한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
19. 후세 사람에 의한 역사 왜곡
20. ‘김부식’의 모화주의에 대한 비판
21. 역사적 억측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2.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국의 역사학 연구에 대한 한탄

제5장. 역사의 개조(改造)에 대한 우견(愚見) 59
1. 현재의 역사학은 한국식을 서양식으로 겉표지만 바꾼 것에 불 과하다
2. 역사적 계통을 정립해야 한다
3. ‘단군’은 ‘신라’ ‘국선’의 근원이다
4. 역사적 회통을 추구해야 한다
5. ‘고려사’ ‘묘청전’을 예로 들다
6. 타인은 물론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
7. 역사가는 시대의 본색을 담아낼 줄 알아야 한다
8. ‘유교’의 춘추필법은 시대의 본색을 담아내지 못 한다
9. 역사를 왜곡한 ‘이성계’
10. 역사를 왜곡한 ‘왕건’
11. 역사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12. 사회에 의해 개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13. 역사는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다
14. 민족과 개인은 모두 ‘지속성’과 ‘변화성’이 조화되어야 한다
15. 안정된 시국에서는 개인이 힘쓰기 어렵다
16. 불안한 시국에서는 개인이 힘쓰기 쉽다
17. 안정된 시국의 인물과 불안한 시국의 인물

제2편. ‘수두’ 시대

제1장. 고대 총론 79
1. ‘조선’ 민족의 구별
2. ‘조선족’이 동방으로 오다
3. ‘조선족’이 터를 잡은 ‘아리라’
4. 고대 ‘조선족’의 발원지는 ‘하얼빈’ 부근이다

제2장. ‘단군왕검’의 건국 83
1. ‘수두’는 신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이다
2. ‘수두’에서 점치는 방식은 ‘주역(周易)’의 기원이 되었다
3. ‘단군’은 ‘수두’의 숭배 대상이다
4. ‘단군왕검’의 출생에 관하여
5. ‘단군’의 역사는 후대의 유교나 불교에 의해 왜곡되었다
6. ‘삼신’이나 ‘오제’는 ‘왕검’이 만들어 낸 전설이다
7. ‘대(大)단군왕검’은 ‘3경(京)’과 ‘5부(部)’와 ‘5군(軍)’으로써 국가를 통치했다
8. ‘5군’의 존재는 현재의 ‘윷놀이’에서도 볼 수 있다

제3장. ‘수두’의 ‘너른 포교[弘布]’와 문화의 발달 89
1. ‘단군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 ‘우임금’의 치수사업을 도왔다
2. 역사적 사실을 신성시하여 신화화하였다

제4장.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도망 오다 91
1. ‘조선’의 ‘신서’는 ‘상서’ ‘홍범’의 연원이다
2. ‘신서’의 본문과 ‘기자’의 부연 설명
3. ‘홍범’의 연원에 관한 논거(論據)

제5장. ‘흉노’의 ‘휴도(休屠)’ 95
1. ‘동이족’의 ‘수두교’가 ‘중국’과 ‘흉노’에 전파되었다
2. 고대에는 종교의 전파가 곧 영토의 확장이었다

제6장. ‘한자(漢字)’의 수입과 ‘이두문’의 창작 97
1. ‘동이족’이 최초에 사용한 문자는 ‘한자’다
2. ‘이두문’은 지금부터 최소 3,00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
3. ‘이두문’은 후세의 ‘거란문’이나 ‘여진문’에 영향을 주었다
4. ‘이두문’의 미비함에 대한 비판
5. 한 나라 안에서도 정치적 이유로 ‘이두문’은 서로 소통되지 않 았다

제7장. ‘신지(神誌)’의 역사 101
1. ‘신지’는 벼슬 이름이다
2. ‘고려’의 ‘삼경’과 ‘조선’의 ‘삼경’은 다르다
3. 겨우 전해지던 ‘신지비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제8장. ‘조선’의 전성시대 103
1. ‘고죽국’은 ‘동이족’의 나라다
2. ‘중국’의 ‘강회’ 지역에는 고대 ‘조선인’이 세운 소왕국들이 많 았다
3. ‘불리지국’에 관하여

제9장. ‘조선’의 쇠약 105
1. ‘조선’ 연합군이 ‘제’나라에게 패하다
2. 전쟁의 패배로 인해 ‘조선’이 쇠약해지다

제10장. ‘단군’ 연대의 고증 107
1. ‘기자조선’은 삭제되어야 한다
2. ‘단군’ 시대의 서울은 세 곳이었다
3. ‘단군’의 나이가 1,000세를 넘는다는 것은 허황된 말이다
4. ‘단군’ 원년은 ‘고구려’ 건국보다 2천 년 이전이다

저자소개

지은이 신채호(申采浩)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1.7.~1936.2.21)는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림마을에서 태어났다.
19세인 1898년 가을, ‘성균관’에 입학한 ‘신채호’는 그곳에서 일부 진보적인 유학을 접하면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점차 민족주의적 세계관을 갖게 된다.
‘신채호’는 1905년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에 논설기자로 입사하여, 애국계몽운동 이론가로서 문명(文名)을 떨치게 된다.
논설기자로 입사한 지 얼마 후 주필이 되었으며,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애국적 계몽논설과 사론을 집필하고, ‘독사신론’, ‘이순신전’, ‘최도통전’ 등 역사물을 연재하였다.
1911년에는 독립운동을 위하여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으로 갔다. 1913년에는 ‘상해’로 가서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세워 중국에 있는 한국청년들의 민족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이듬해 ‘봉천성’ ‘회인현’의 ‘동창학교’에서 청소년들에게 국사교육을 시키는 한편, ‘조선사(朝鮮史)’를 집필하기도 하였으며, 이 시기에 ‘만주’ 일대의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답사하면서, 민족사학의 실증적 토대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1918년경부터 ‘북경대학’에서 한국사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동 대학에 소장돼 있는 중국의 역대사료와 문집을 집성해 놓은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섭렵하며, ‘이석증’, ‘채원배’와 친교를 맺었는데, 그들은 ‘중국’ 무정부주의 초창자들이며, 5.4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였다. 이때부터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사상적 기반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23년 1월, ‘상해’ 국민대표회의가 실패로 끝나자 크게 실망하여 칩거하면서 국사연구에 종사하며,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艸)’를 집필하여 근대민족사학을 확립하는데 박차를 가하였다.
1924년에 집필된 ‘조선상고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씌어 진 본격적인 근대 역사방법론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 시기에 그가 이미 서구의 근대 역사이론과 사회과학이론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소개

▣ 목차





제1편. 총론

제1장. 역사의 ‘올바른 도리[正義]’와 ‘조선사’의 범위 13
1. 역사란 무엇인가
2. ‘아(我)’와 ‘비아(非我)’
3. 시간적 상속성과 공간적 보편성
4. ‘김석문’과 ‘부르노’ 혹은 ‘정여립’과 ‘루소’
5. 정신의 확립과 환경에의 순응
6. ‘조선상고사’를 기술하며 중점을 둔 사항들

제2장. 역사의 3대 원소와 ‘조선’ ‘옛 역사[舊史]’의 결점 19
1. ‘조선’에는 마땅한 역사서가 없다
2. ‘조선’의 역사는, 오히려 ‘조선’의 역사가에 의해 훼손된다
3. ‘신라’는 ‘신라’일 따름이다
4. 이데올로기를 좇아 역사를 악용하는 역사가들
5. ‘유가’ 이데올로기 탓에 ‘조선사’는 왜곡되었다
6. 아쉬운 대로 전하는 자료를 참고하여 ‘조선상고사’를 기술한다

제3장. ‘옛 역사[舊史]’의 종류와 그 득실에 대한 ‘간략한 평가[略 評]’ 25
1. ‘신지(神誌)’와 ‘단군(檀君)’
2. 유학(儒學) 이외의 것을 이단시하여 불태워버린 ‘태종’
3. ‘북부여(北扶餘)’와 ‘삼한(三韓)’의 역사서는 유실되었다
4. ‘신라’와 ‘백제’와 ‘고려’
5. ‘유교도(儒敎徒)’ ‘김부식’의 사대주의에 의해 기술된 ‘삼국사 기’는 역사적 가치가 거의 없다
6. ‘고려’와 ‘조선’의 역사서에 대한 비판
7. ‘한백겸’의 ‘동국지리설’이 최초로 ‘조선사학계’의 실마리를 열 었다
8. ‘안정복’의 ‘동사강목’과 ‘유득공’의 ‘발해고’와 ‘이종휘’의 ‘수산 집’에 관하여
9.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관하여
10. ‘이씨조선’의 역사관에 대한 4가지 비판
11. 우리 역사학에 관한 비판적 사례
12. 역사서를 사사로이 짓지 못 하도록 하였다
13. 이전 왕조의 역사를 파괴해버렸다
14. 한문으로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어려움
15. 이전 시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승되지 못 하였다
16. ‘조선사학계’의 올바른 표준을 세워야 한다

제4장. 사료(史料)의 수집과 선택 39
1. ‘독사신론’과 ‘대동사천년사’를 중단하다
2.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를 답사한 일에 관하여
3. 인재와 경제력의 중요성
4. 한 번의 답사가 만 번의 독서보다 낫다
5. ‘고려’의 ‘승군(僧軍)’에 관하여
6. 사실(史實)을 규명하는 어려움
7. ‘중국인’의 역사 왜곡 습성에 대한 비판
8. ‘당태종’이 실명한 사건을 규명하는 어려움에 대하여
9.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내재된 의미를 알아야 한다
10. ‘이두문(吏讀文)’을 사용했던 탓에 초래되는 혼란
11. 자잘한 고증으로써 ‘압록강’의 위치를 규명하다
12. 자잘한 고증이 역사상 큰 발견의 단초이기도 하다
13. 위서(僞書)가 인용되어서는 안 된다
14. ‘단군’과 ‘요임금’의 연대를 비교하는 것은 오류다
15. ‘공안국’이 기술한 ‘상서전’은 위서다
16. 사람에 의한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
17. 상황에 의한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
18. 논리에 의한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
19. 후세 사람에 의한 역사 왜곡
20. ‘김부식’의 모화주의에 대한 비판
21. 역사적 억측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2.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국의 역사학 연구에 대한 한탄

제5장. 역사의 개조(改造)에 대한 우견(愚見) 59
1. 현재의 역사학은 한국식을 서양식으로 겉표지만 바꾼 것에 불 과하다
2. 역사적 계통을 정립해야 한다
3. ‘단군’은 ‘신라’ ‘국선’의 근원이다
4. 역사적 회통을 추구해야 한다
5. ‘고려사’ ‘묘청전’을 예로 들다
6. 타인은 물론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
7. 역사가는 시대의 본색을 담아낼 줄 알아야 한다
8. ‘유교’의 춘추필법은 시대의 본색을 담아내지 못 한다
9. 역사를 왜곡한 ‘이성계’
10. 역사를 왜곡한 ‘왕건’
11. 역사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12. 사회에 의해 개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13. 역사는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다
14. 민족과 개인은 모두 ‘지속성’과 ‘변화성’이 조화되어야 한다
15. 안정된 시국에서는 개인이 힘쓰기 어렵다
16. 불안한 시국에서는 개인이 힘쓰기 쉽다
17. 안정된 시국의 인물과 불안한 시국의 인물

제2편. ‘수두’ 시대

제1장. 고대 총론 79
1. ‘조선’ 민족의 구별
2. ‘조선족’이 동방으로 오다
3. ‘조선족’이 터를 잡은 ‘아리라’
4. 고대 ‘조선족’의 발원지는 ‘하얼빈’ 부근이다

제2장. ‘단군왕검’의 건국 83
1. ‘수두’는 신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이다
2. ‘수두’에서 점치는 방식은 ‘주역(周易)’의 기원이 되었다
3. ‘단군’은 ‘수두’의 숭배 대상이다
4. ‘단군왕검’의 출생에 관하여
5. ‘단군’의 역사는 후대의 유교나 불교에 의해 왜곡되었다
6. ‘삼신’이나 ‘오제’는 ‘왕검’이 만들어 낸 전설이다
7. ‘대(大)단군왕검’은 ‘3경(京)’과 ‘5부(部)’와 ‘5군(軍)’으로써 국가를 통치했다
8. ‘5군’의 존재는 현재의 ‘윷놀이’에서도 볼 수 있다

제3장. ‘수두’의 ‘너른 포교[弘布]’와 문화의 발달 89
1. ‘단군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 ‘우임금’의 치수사업을 도왔다
2. 역사적 사실을 신성시하여 신화화하였다

제4장.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도망 오다 91
1. ‘조선’의 ‘신서’는 ‘상서’ ‘홍범’의 연원이다
2. ‘신서’의 본문과 ‘기자’의 부연 설명
3. ‘홍범’의 연원에 관한 논거(論據)

제5장. ‘흉노’의 ‘휴도(休屠)’ 95
1. ‘동이족’의 ‘수두교’가 ‘중국’과 ‘흉노’에 전파되었다
2. 고대에는 종교의 전파가 곧 영토의 확장이었다

제6장. ‘한자(漢字)’의 수입과 ‘이두문’의 창작 97
1. ‘동이족’이 최초에 사용한 문자는 ‘한자’다
2. ‘이두문’은 지금부터 최소 3,00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
3. ‘이두문’은 후세의 ‘거란문’이나 ‘여진문’에 영향을 주었다
4. ‘이두문’의 미비함에 대한 비판
5. 한 나라 안에서도 정치적 이유로 ‘이두문’은 서로 소통되지 않 았다

제7장. ‘신지(神誌)’의 역사 101
1. ‘신지’는 벼슬 이름이다
2. ‘고려’의 ‘삼경’과 ‘조선’의 ‘삼경’은 다르다
3. 겨우 전해지던 ‘신지비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제8장. ‘조선’의 전성시대 103
1. ‘고죽국’은 ‘동이족’의 나라다
2. ‘중국’의 ‘강회’ 지역에는 고대 ‘조선인’이 세운 소왕국들이 많 았다
3. ‘불리지국’에 관하여

제9장. ‘조선’의 쇠약 105
1. ‘조선’ 연합군이 ‘제’나라에게 패하다
2. 전쟁의 패배로 인해 ‘조선’이 쇠약해지다

제10장. ‘단군’ 연대의 고증 107
1. ‘기자조선’은 삭제되어야 한다
2. ‘단군’ 시대의 서울은 세 곳이었다
3. ‘단군’의 나이가 1,000세를 넘는다는 것은 허황된 말이다
4. ‘단군’ 원년은 ‘고구려’ 건국보다 2천 년 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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