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번의 송사통속연의 41회-50회 5

채동번 | 튼살흉터이미지한의원 | 2012년 11월 1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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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중국 송나라 역사소설 중국역조통속연의중 송사통속연의 청나라 채동번 저 중국 삼진출판사 210-259 페이지 한문 원문 및 한글번역 예시문 한가지 장점을 반드시 기록한다. 及夏人再寇延州德順軍,定西城, #20006 熙河諸寨,均不得逞。 급하인재구연주덕순군 정서성 병희하제채 균부득령. 서하 군인이 다시 연주 덕순군을 침범하여 서성을 평정하고 희하의 여러 영채를 병합하나 모두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未幾又圍定州城,爲熙河將秦貴擊退。 미기우위정주성 위희하장진귀격퇴. 서하는 얼마 안되어 또 정주성을 포위하나 희하장수인 진귀에게 격퇴당했다. 夏人方卷甲斂師,稍稍歇手 歇手 [xi #275 //sh #466 u] 일손을 멈추다 잠시 중지하다 了。 하인방권갑렴사 초초헐수료. 서하군인은 갑옷을 말고 군사를 거두어 점차 손을 빼려고 했다. 神宗罷免蒲宗孟,用王安禮爲 #23578 書左丞,李 #28165 臣爲 #23578 書右丞,調呂公著知揚州。 신종파면포종맹 용왕안례위상서좌승 이청신위상서우승 조여공저지양주. 신종은 포종맹을 파면하여 왕안례를 상서좌승으로 이청신을 상서우승으로 여공저를 양주지사로 등용했다. 且因司馬光上《資治通鑒》,授資政殿學士,這《資治通鑒》一書,上起周威烈王二十三年,下終五代,年經國緯 年經國緯:nian j #299 ng guo w #283 i. 指以年 #28858 經,以國 #28858 緯的編寫史書的方法。 出處 例子 ,備列 備列 죽 늘어섬 事目,又參考群書,評列異同,合三百五十四卷,曆十九年乃成。 차인사마광상자치통감 수자정전학사 저자치통감일서 상기주위열왕이십삼년 하종오대 년경국위 비열사목 우참고군서 평열이동 합삼백오십사권 력십구년내성.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올리니 자정전 학사에 제수하니 이 자치통감이란 책은 주나라 위열왕 23년(기원前403年)부터 아래로 5대(959年)에서 마치니 해마다 국가의 일을 기록해 일의 강목을 나열하며 또 여러 책을 참고하여 같고 다름을 비평 나열하여 합해 354권이 되니 19년을 거쳐 완성하였다. 神宗降詔 #29518 諭 #29518 諭 좋은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 주며 가르치고 타이름 道:“前代未聞有此書,得卿辛苦輯成,比荀悅漢紀好得多了。” 신종강조장유도 전대미문유차서 득경신고집성 비순열한기호득다료. 신종이 조서를 내려 권장하여 말했다. “전대에도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니 경이 고생해 편집 완성하니 순열의 한기에 비교하여 좋은 점이 많다.” 荀悅 荀悅 자 중예(仲豫). 허난성[河南省] 잉인[潁陰] 출생. 일족(一族)에 조부 숙(淑) 숙부 상(爽) 종제(從弟) 욱(彧) 등의 저명한 사람이 많았다. 12세에 《춘추(春秋)》에 통하였으나 성장해서는 병약하여 세상에 나가기를 싫어하였다. 후에 조조(曹操)의 부름을 받고 황문시랑(黃門侍郞)이 되어 헌제(獻帝)에게 강의를 하였고 비서감시중(秘書監侍中)에 올랐다. 때마침 조조가 실권을 잡고 후한 왕조가 쇠퇴하였으므로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하여 시폐(時弊)를 구제하려는 정책을 논한 《신감(申鑒)》 5편을 저술하였고 《한서(漢書)》를 간편한 편년체(編年體)로 고친 《한기(漢紀)》 30권을 편찬하였다. 漢季潁陰 영천군(潁川郡) 영음현(潁陰縣)(현 하남성(河南省) 허창(許昌)) 人,曾刪定漢書,作帝紀二十篇,所以神宗引擬司馬光。 순열한계영음인 증산정한서 작제기이십편 소이신종인의사마광. 순열은 한나라 시대 영음 사람으로 더하고 빼서 한서를 정하여 제기 20편을 지으니 신종이 사마광과 비교했다. 小子也有詩詠道: 소자야유시영도. 소자들은 시로 다음과 같이 읊었다. 不經鑒古不知今,作史原垂世 垂世 [chuishi] 세상에 널리 전하다 主箴。 불경감고부지금 작사원수세주잠. 고대를 겪어 바로보지 않고 지금을 알수 없고 역사를 지어서 원래 세상에 널리 전하여 잠언이 되었다. 十九年來成巨帙,愛君畢竟具深 #24561 #24561 (정성 침 #12092 -총7획 chen) 。 십구년래성거질 애군필경구심침. 사마광은 19년만에 거대한 전질을 완성하니 군주를 아낌이 필경 깊은 참마음을 갖추었다. 轉眼間已是元 #35920 八年,神宗有疾,竟要從此告終了。 전안간이시원풍팔년 신종유질 경요종차고종료. 별안간 이미 원풍 8년[1088년]으로 신종이 질병이 있어서 마침내 이로부터 종료를 고한다. 看官少待,試看下回接 #25944 。 간관소대 시간하회접서. 여러분이 잠시 기다리면 아래 회의 접한 서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夏無可伐之 #37313 ,乃以司馬光之將召,啓蔡確西討之謀。 하무가벌지흔 내이사마광지장소 계채확서토지모. 서하는 정벌할 틈이 없었는데 사마광을 장차 부르려고 해서 채확이 서쪽을 토벌할 음모를 열었다. #20446 充爲蔡確腹心 腹心 [fux #299 n] 심복 진심 마음 속 깊은 곳 ,上書一請,出師五道。 유충위채확복심 상서일청 출사오도. 유충이 채확의 심복으로 상서를 올려 한번 청하니 군사를 5길로 내었다. 孫固、呂公著等力諫不從,且任一刑餘腐 #35918 ,付之重權,就令得勝, #23578 足爲中國羞。 손고 여공저등력간부종 차임일형여부수 부지중권 취령득승 상족위중국수. 손고 여공저등이 힘주어 간언해도 따르지 않아서 한 형벌을 받은 내시에게 맡겨서 중요권력을 부촉하니 승리를 얻게 해도 오히려 족히 중국의 수치가 된다. 況伊古以來,斷未有奄人統軍,而可以成功者。 황이고이래 단미유엄인통군 이가이성공자. 하물며 이고 이래로 결단코 환관이 군사를 통솔하여 성공한 경우가 없다. 多魚漏師 漏 #24072 [loush #299 ] 군사 기밀을 누설하다 누설하다 , #35918 #20993 제나라의 환관 수초가 다어 땅에서 군사 기밀을 누설했다. 관중이 환공에게 소신을 피력할 때 한 말이 있다. 안일과 방만은 패업을 이루는데 지장이 없으나 소인을 등용하는 것은 깊이 경계하고 통렬히 배제해야 한다고. 관중의 생각은 이러했던 것이다. 누름이 있으면 띄워주는 것이 있어야 하고 잡음이 있으면 놓아줌도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그가 국정을 장악하던 즈음에 맨 먼저 환공과 이런 약조를 했던 것이다. "한 나라의 온갖 즐거움을 임금께 모두 드리겠습니다. 임금께서는 한 나라의 모든 권세를 저에게 주십시오. 저는 임금께 즐거움을 드리고 임금께서는 저에게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즐거움으로 권세를 파는 것이니 서로가 맞바꾸는 것입니다." 이후로 관중이 쓴 말로 환공의 즐거움을 가로 막은 적이 있었던가?만약 그랬다면 관중은 환공과의 약조를 어긴 것이다. 환공은 소인을 등용하여 관중의 권세를 침탈한 적이 있었던가? 만약 그랬다면 환공은 관중과의 약조를 어긴 것이다. 관중이 임금의 전적인 신임을 받고 오래도록 권세를 유지하며 큰 공적을 이룬 것은 이 약속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환관 수초가 하는 일은 무엇이었던가? 높은 누각을 짓고 좋은 개와 말을 들여오며 예쁜 여자와 즐거운 음악으로 환공의 안일과 방만을 채워주는 것이었다. 이는 관중이 허여한 것이었다. 이제 수초가 임금의 은총을 믿고 정사에 관여하여 군사 기밀을 누설했다면 이는 관중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다. 관중은 어찌하여 환공에게 약속 어긴 것을 가지고 질정하지 않았던가? 시초는 군문에서 처형을 당해도 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좌시하고 질정하지 않은 것은 뭔가 사연이 있는 것이다. 바둑을 둘 때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손을 떼고 패배를 자인하는 자는 국수이다. 바둑알이 떨어져 둘 곳이 없기에 분명히 졌음에도 패배를 자인하지 않는 자는 하수이다. 관중은 국수였다. 제 먼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기지 못할 조짐을 보았던 것이니 어찌 어려울 것을 알면서 중지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만약 있는 힘을 다해 굴복시키려다 이기지 못할 것을 알았다면 이는 관중이랄수 없을 것이다. 관중은 환공에게 안일과 방만을 제공키로 약속했다. 그런데 임금에게 그러한 것을 제공하는 자는 군자인가 아니면 소인인가? 이른바 안일과 방만이라는 것은 소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른바 소인이라는 자는 권세를 탐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이미 안일과 방만을 허락해 놓고 소인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금한다면 이는 밭을 줘놓고 쟁기와 보습을 빼앗는 경우와 똑같다. 이미 소인을 가까이 하도록 허용해 놓고 내 권세를 빼앗지 못하도록 한다면 이는 도둑과 함께 지내며 뺏고 훔치는 것을 미워하는 경우와 똑같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관중은 공적과 이욕에 급급하여 빨리 제나라의 권세를 쥐려 했을 뿐 길고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이 약속을 했다. 하여 수초가 군사 기밀을 누설한 일이 발생하자 환공과의 약속이 잘못된 것임을 감지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잘못한 것을 뒤에 가서 바로 잡을순 없는 법. 이것이 관중이 침묵하고 질정하지 않은 이유이다. 만약 다른 이가 관중의 자리에 있었다면 사세를 헤아리지 못하고 격렬히 따졌을 것이다. 하면 환공은 그 말을 따라 수초를 축출했을 것이다. 그럴 경우 환공의 좌우에 있는 자는 못생기고 일만 하는 자들이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공은 궁중에서 무료하여 반드시 관중을 질책했을 것이다. "그대가 내게 허락한 것은 임금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이었다. 내가 그대에게 권세를 준 것은 나의 쾌락과 맞바꾼 것이다. 이제 내 임금으로서 누릴 쾌락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대는 나를 속인 것이 아닌가?" 만일 환공이 수초를 처음 등용했을 때 관중이 질정했다면 그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참 뒤에 관중이 이를 질정하려 했다면 환공도 관중을 질책했을 것이다. 관중은 이를 알고 있었다. 하여 침묵하고 질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초가 처음 진출할 때 환공이 그를 거둔 것은 관중이 허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관중이 주인이었고 수초는 객이었다. 수초가 환공의 은총을 받을 때 환공이 관중을 내치지 않은 것은 수초에게 해가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수초가 주인이었고 관중은 객이었다. 군신간의 즐거움이 남모르게 옮겨졌고 주객의 형세가 뒤바뀌었다. 전에는 수초가 관중에게 용납되는 형세였으나 이제는 역으로 된 것이다. 바야흐로 임금에게 용납되느냐 마느냐의 상황에 놓였는데 어느 겨를에 쫓아내자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관중은 죽을 무렵에 비로소 수초의 간악함을 하나하나 밝힌다. 그리고 역아와 개방의 무리속에 집어넣어 함께 축출하고자 했다. 평시에는 방치하여 자신의 보신지책으로 삼다가 죽을 무렵에야 기탄없이 말해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음을 보여줬다. 얼마나 교묘한 모사가인가. 그러나 결국은 환란의 문을 열어 서얼들이 서로 다투고 국가의 대통이 거의 끊어질 뻔 했다. 천하의 일은 진실로 교묘한 자가 능히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아 관중이 환공을 처음 보필할 때 그 스스로 기약한 것이 과연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만년에 가서는 환공으로 하여금 스스로 태자도 정하지 못해 구차히 그와 함께 송양공에게 그 후사를 돌봐 주도록 부탁하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나는 춘추를 읽을 때마다 항상 이 대목에서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 패자를 꾸짖는 자들은 그들이 공적과 이권을 숭상한다 고 말한다. 춘추오패중 환공은 가장 강한 패자였다. 그러나 여러 자식들이 골육상쟁을 벌이고 자신의 시체조차 초상치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 공적과 이권 을 바랄 수 있겠는가? 이로써 왕도외에는 탄탄대로가 없고 모두가 가시밭길이며 인의외에는 공적과 이권을 기대할 수 없고 모두가 재앙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패자를 공적과 이권을 추구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과도한 평가이다! 爲 #31071 ,相州潰敗,朝恩監軍,神宗寧獨未聞耶? 다어루사 견조위숭 상주궤패 조은감군 신종녕독미문야? 다어에서 군사 기밀을 누설한 제환공의 내시 초가 빌미가 되어 상주에서 궤멸하여 패배하여 조정의 군사 감독의 은혜를 주니 신종은 오히려 홀로 듣지 못했는가? 靈州一敗,李憲 #23578 不聞加罰,且復令經略涇原,再圖大 #33289 ,一之爲甚,乃至於再。 영주일패 이헌상불문가벌 차부령경략경원 재도대거 일지위심 내지어재. 영주의 한 패배는 이헌이 오히려 죄를 듣지 않았고 다시 경원을 경략하려고 하며 다시 크게 거병을 도모하여 한번도 심하며 두 번에 이르렀다. 不待沈括、徐禧之生議 生議 다시 논의하여 신중히 처결(處決)함. 죽일 죄에 의의(疑議)가 있을 때 다시 논의하여 그 죄를 경감시켜 목숨을 살려주는 것. 흠휼(欽恤)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서 형정(刑政)에 대한 신중성을 강조하는 것 ,而已知其必敗矣。 부대심괄 서희지생의 이이지기필패의. 심괄 서희의 신중한 처벌의 논의를 기다리지 않고도 이미 반드시 질 것을 알겠다. 要之兵不可不備,獨不可常用。 요지병불가불비 독불가상용 요약하면 병사는 대비하지 않을 수 없고 유독 항상 용병할 수 없다. 富鄭公 富鄭公 정국공(鄭國公) 富弼 當熙寧初年,奉召入對,已請二十年口不言兵,老成人固有先見之明,惜乎神宗之不悟也。 부정공당희녕초년 봉조입대 이청이십년구불언병 노성인고유선견지명 석호신종지불오야. 부정공[부필]은 희녕초년(1068년)에 조서를 받들어 들어와 대면하여 이미 20년동안 용병을 말하지 않으니 노년의 완성한 사람이 진실로 선견지명이 있으니 애석하구나 신종이 깨닫지 못함이여!

저자소개

저자는 청나라 채동번이며 번역자는 흉터와 튼살 치료하는 이미지한의원 www.imagediet.co.kr 02-336-7100 원장입니다. 삼국지연의 봉신연의 열국지등 다양한 고전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imagediet

목차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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