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광기 4권 5권 2

이방등 | 튼살흉터이미지한의원 | 2012년 12월 1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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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태평광기 [ 太平廣記 ] 의 저자는 이방 등(李昉)이며 977년(송 태평흥국 2)이다. 송(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977) 이방(李昉) 등 12명이 왕명을 받아 엮은 설화집 500권. 앞에 이방의 진표(進表) · 인용 서목 및 목록이 있다. 내용은 한(漢) · 진(晋) · 당(唐) · 오대(五代)에 걸쳐 1 200여년 간의 소설가의 이야기들을 모은 것인데 대부분 진 · 당 시대의 전기소설적(傳奇小說的) 내용이다. 약 2 000편의 설화 · 패설(稗說) 등이 수록되어 있어 시대에 따른 문학사상의 변천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용서목만 해도 344종에 이르고 있어 원서가 이미 없어진 것도 태평광기 에 의하여 원면모의 일부나마 짐작할 수도 있다. 예시문 漢儀鳳 (二字有誤) 二年 八月壬辰 孝武皇帝閑居殿上 忽有一人乘雲車 駕白鹿 從天而下 來集殿前。 한나라 의봉 2년에 8월 임진일에 효무황제가 한가롭게 대전에 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운거를 타고 백색 사슴을 몰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대전앞에 이르렀다. 其人年可三十許 色如童子 羽衣星冠。 그 사람 나이가 30여세로 동자같은 안색에 새털 옷과 별 관을 썼다. 帝乃驚問曰:“爲誰?” 황제가 놀라 물었다. “누구시오?” 答曰:“吾中山衛叔卿也。” 대답했다. “저는 중산의 위숙경입니다.” 帝曰:“子若是中山人 乃朕臣也 可前共語。” 황제가 말했다. “그대가 중산 사람이라면 짐의 신하이니 앞에서 함께 말해보시오.” 叔卿本意謁帝 謂帝好道 見之必加優禮。 위숙경은 본래 황제를 배알할 뜻으로 황제가 도를 좋아하니 그를 보면 반드시 더욱 예우하리라 여겼다. 而帝今云是朕臣也 於是大失望 默然不應。 황제가 지금 짐의 신하라고 말하니 이에 크게 실망하여 침묵하고 반응하지 않았다. 忽焉不知所在。 갑자기 소재를 알지 못했다. 帝甚悔恨 ?遣使者梁伯至中山 推求 推求 [tu?qi?] 1) 탐구하다 2) 깊이 파다 叔卿 不得見。 황제가 매우 회한을 느끼고 사자 양백을 보내 위숙경을  찾아 구하나 보이지 않았다.  但見其子名度世 ?將還見。 단지 아들 위도세를 보니 데리고 가서 황제를 알현하였다. 帝問云:“汝父今在何所?” 황제가 물었다. “네 부친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對曰:“臣父少好仙道 嘗服藥導引 不交世事 委家而去 已四十餘年。云當入太華山也。” 위도세가 대답했다. “신의 부친은 젊어서 선도를 좋아하여 항상 약을 복용하고 도인하여 세상일에 교류하지 않아 집안을 버리고 간지 이미 40여년으로 태화산에 들어간다고 말했습니다.” 帝?遣使者與度世共之華山 求尋其父。 황제는 사자를 보내 위도세와 함께 화산에 가게 하여 부친을 찾게 했다. 到山下欲上 輒火 不能上也。 화산을 오르려고 하나 문득 산불이 나서 올라가지 못했다. 積數十日 度世謂使者曰:“豈不欲令吾與他人俱往乎。” 수십일이 되어 위도세가 사자에게 말했다. “어찌 저와 타인이 같이 가게 하지 않으려 하는 듯합니다.” 乃齋戒獨上。 위도세는 목욕재계하고 홀로 올라갔다. 未到其嶺 於?岩之下 望見其父 與數人博? 博戱 노름. 손과 발로 친다는 뜻으로 '태권(跆拳) 於石上。 아직 고개에 이르지 못하여 깍아지르는 바위 아래에 부친이 보이니 몇사람과 돌위에서 박희를 하였다. 紫雲蔚蔚於其上 白玉爲床 又有數仙童執幢節 幢? [chu?ngji?] 1) 부절 2) 의장 立其後。 자색 구름이 그 위에 울창하여 백색 옷이 평상이 되며 또 몇 선동이 깃발의장을 들고 뒤에 서 있었다. 度世望而載拜 ?拜 [z?ib?i] 재배 。 위도세는 바라보고 절했다. 叔卿曰:“汝來何爲?” 위숙경이 말했다. “너는 왜 왔느냐?” 度世曰:“帝甚恨前日倉卒 不得與父言語 今故遣使者梁伯 與度世共來 願更得見父也。” 위도세가 말하길 “황제께서 매우 전일에 갑작스러워 부친과 말을 하지 못함이 한탄스러워하여 지금 사자를 양백에 보내서 저와 함께 와서 원컨대 다시 아버님을 뵙고자 합니다.” 叔卿曰:“前爲太上所遣 欲誡帝以大災之期 及救危厄 危厄 災難 危難 之法 國祚可延。而?梁 强梁 [qi?ngli?ng] 횡포하다 自貴 不識?道 而反欲臣我 不足告語 是以去耳。今當與中黃太乙共定天元 天元 [ti?nyu?n] 임금 1) 중국 전통의 산법 2) 바둑판의 한 가운데에 있는 화점 吾終不復往耳。” 위숙경이 말했다. “전에 태상께서 보내서 황제께서 큰 재앙의 기간과 위급한 재액을 구제할 방법을 경계하면 나라 복이 연장되었을 것이다. 횡포하게 스스로 귀하게 되어 진짜 도를 모르고 반대로 나를 신하로 삼으려고 하여 말을 고하기 부족하여서 떠났을 뿐이다. 지금 중황신 태을신과 함께 천원을 결정하니 내가 마침내 다시 가지 않을 것이다.” 度世曰:“不審 不審 자세히 알지 못하거나 의심스러움 向與父?坐是誰也?” 위도세가 말했다. “전에 부친과 앉아 있던 사람은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叔卿曰:“洪崖 홍애의 원래 이름은 영윤(伶倫)이다. 황제(黃帝)의 악사였다. 황제의 명을 받고는 대하(大夏)의 서쪽 곤륜의 북쪽 계곡에서 두께가 고른 대나무를 얻어 두 마디를 잘라 불었다. 先生、許由、巢父、火低公、飛黃子、王子晉 王子晉 주(周) 영왕(靈王)의 태자. 이수(伊水)와 낙수(洛水)에서 노닐다가 우연히 도사인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신선이 되었다. 、薛容耳。今世向大亂 天下無聊 无聊 [w?li?o] 1) 무료하다 2) 지루하다 3) 심심하다 後數百年間 土滅金亡。汝歸 當取吾齋室西北隅大柱下玉函 函中有神素書 取而按方合服之 一年可能乘雲而行。道成 來就吾於此。勿得爲漢臣也 亦不復爲語帝。” 위숙경이 말했다. “홍애선생 허유 소부 화저공 비황자 왕자진 설용이다. 지금 세상이 크게 혼란하며 심심하여 수백년 뒤에 토가 없어지고 금이 망한다. 너는 돌아가서 내 재실 서북쪽 모퉁이 큰 기둥아래 옥의 함을 취하여 함중에 신의 소서가 있으니 취하여 처방을 살펴 복용하며 일년에 구름을 타고 다닐 수 있다. 도가 완성되면 이곳에 나를 찾아 오라. 한나라 신하가 되지 말고 또 다시 황제께 말하지 말라.” 度世於是拜辭而去 下山見梁伯 不告所以。 위도세는 이에 절하고 가니 산을 내려와 양백을 보며 그 까닭을 고하지 않았다. 梁伯意度世必有所得 乃叩頭於度世 求乞道術。 양백은 위도세가 반드시 얻은 바가 있음을 알고 위도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도술을 구걸하였다. 先是度世與之共行 見伯情行溫實 乃以語之。 이보다 앞서 위도세는 그와 같이 가다가 양백의 정과 행동이 따뜻하고 성실해서 그것을 말해주었다. 梁伯但不見柱下之神方耳。 양백은 단지 기둥아래 신기한 처방을 못봤을 뿐이었다. 後掘得玉函 封以飛仙之香. 뒤에 파서 옥함을 얻으니 신선으로 날아가는 향기가 봉해져 있었다. 取而餌服 乃五色雲母 遂合藥服之 與梁伯俱仙去。 취해서 복용하니 오색의 운모로 곧 약에 합쳐서 복용하니 양백과 함께 신선이 되어 갔다. 留其方與子 而世人多有得之者。 처방을 자식에게 남겨 먹게 하니 세상 사람이 많이 그것을 얻었다. (出《神仙傳》)   신선전 출전 張楷 楷(나무 이름 해 ?-총13획 k?i ji?)      장해 張楷字公超 有道術 居華山谷中。 장해는 자가 공초로 도술이 있어서 화산 골짜기속에 살았다. 能爲五里霧。 장해는 5리까지 안개를 만들었다. 有玉訣 玉訣 秘試 金?之學 坐在立亡之道。 옥비결과 금궤의 학문이 있어서 앉아서 곧 죽은 사람을 살리는 방도가 있었다. 人學其術者 ?門如市 故雲霧市。 사람이 그의 도술을 배워서 시장처럼 문을 채우니 운무시라고 하였다. 今華山有張超谷焉。 지금 화산에 장초 골짜기가 있다

저자소개

이방 [李昉] 송(宋) 나라 태종(太宗) 때 명신(名臣)으로 자(字)는 명원(明遠). 성품이 온화하고 도타웠으며 인재를 공평하게 채용하였다고 함. 태종의 명으로 ≪태평어람(太平御覽)≫을 찬(撰)하였음 번역자는 흉터 튼살 치료하는 이미지한의원www.imagediet.co.kr 원장

목차소개

판권 페이지
4권
왕자교
봉강
금고
귀곡선생
소사
서복
왕모사자
월지사자
위숙경
장해
양옹백
5권
왕차중
묵자
유정
손박
천문자
모몽
심희
진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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