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정약용 | 씨익북스 | 2017년 09월 04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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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정약용(丁若鏞)이 집필한 책으로, 48권 16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이 책은 부임(赴任)·율기(律己 : 자기 자신을 다스림)·봉공(奉公)·애민(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진황(賑荒)·해관(解官 : 관원을 면직함) 등 모두 12편으로 구성되었고,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편제되었다.

그의 저작 연표(著作年表)에 의하면, 강진 유배 생활 19년간의 거의 전부를 경전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러다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얻은 학문적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문제에 마지막 정열을 기울였다. 이는 1817년(순조 17)에 『경세유표(經世遺表)』, 1818년(순조 18)에 『목민심서』, 1819년(순조 19)에 『흠흠신서(欽欽新書)』를 계속 펴낸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후에는 저작 활동이 부진해 『경세유표』는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천관편(天官篇)의 수령고적(守令考績 : 수령의 성적을 살핌) 9강(綱) 54조는 책의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정약용의 목민에 대한 구상과 계획은 오래 전부터 싹트고 있었다. 그는 16세부터 31세까지 아버지가 현감·군수·부사·목사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고 있을 때 임지에 따라가서 견문을 넓힌 일이 있었다. 자신도 33세 때 경기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행정의 문란과 부패로 인한 민생의 궁핍상을 생생히 목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직접 찰방(察訪)·부사 등의 목민관을 지내면서 지방 행정에 대한 산 체험을 경험하였다. 따라서 그는 근민관(近民官)으로서 수령의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수령은 모름지기 『대학(大學)』에서 이르는 바 수기치인지학(修己治人之學)을 배우는 데 힘써 수령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직시하고 치민(治民)하는 것이 곧 목민하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이 뜻은 간단한 것 같지만 여기에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점을 잘 인식하고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 책에서 심서(心書)라고 한 뜻은 목민할 마음은 있었지만 몸소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下民)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까지 들어 진구렁 속에 줄을 이어 그득한데도, 그들을 다스리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슬프지 아니한가!”라고 개탄하였다. 특히 수령 칠사(守令七事)의 하나인 간활식(奸猾息)에서 수령과 아전의 간활을 배제하고자 노력하였다.

『목민심서』를 비롯해 조선 초기의 『목민심감(牧民心鑑)』, 후기의 『거관요람(居官要覽)』·『거관대요(居官大要)』·『임관정요(臨官政要)』(안정복) 등 여러 목민서가 지향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목민관의 정기(正己 :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함)와 청백 사상이 전편에 걸쳐 강하게 흐르고 있는 점이다. 또한, 청렴은 수령의 본무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덕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 능히 수령 노릇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목민심감』은 태종 초에 명으로부터 전래되어 수령들의 지침서로 중요시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그 일부 내용이 『거관요람』과 『선각(先覺)』(저자 미상)에 수록되며, 『임관정요』에 영향을 미쳤다. 『목민심서』는 안정복(安鼎福)의 『임관정요』를 여러 곳에서 인용함으로써 그의 목민관을 계승하였다. 이 점에서 『목민심서』는 『목민심감』·『임관정요』·『선각』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목민심서』의 편목은 광문사(廣文社)에서 간행한 『목민심서』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를 분석해 정약용이 의도하고 있는 수령의 실천 윤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1편의 부임은 제배(除拜)·치장(治裝)·사조(辭朝 : 수령이 부임하기 전에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함)·계행(啓行 : 앞서서 인도함)·상관(上官)·이사(莅事 : 일에 임함)의 6조로 구성되었고, 제2편의 율기는 칙궁(飭躬 : 몸을 삼감)·청심(淸心)·제가(齊家)·병객(屛客 : 손님 접대)·절용(節用)·낙시(樂施 : 즐거이 베풂)의 6조로 구성되었다.

제3편의 봉공은 첨하(瞻賀 : 우러러 축하함)·수법(守法)·예제(禮際 : 예로 교제함)·보문(報聞)·공납(貢納)·왕역(往役)의 6조로 이루어져 있고, 제4편의 애민은 양로(養老)·자유(慈幼)·진궁(振窮 : 가난한 사람을 구제함)·애상(哀喪)·관질(寬疾 : 불치의 환자나 중병자에게 너그러이 역을 면제해 줌)·구재(救災)의 6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네 편은 목민관의 기본자세에 대해 상세하게 논설하고 있다. 첫째 목민관 선임의 중요성, 둘째 청렴·절검(節儉)의 생활 신조, 셋째 민중 본위의 봉사 정신 등을 언급하였다.

부연하자면, 수령은 근민(近民)의 관직으로서, 다른 관직보다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반드시 덕행·신망·위신이 있는 적임자를 선택해 임명해야 한다. 또한 수령은 언제나 청렴과 절검을 생활 신조로 명예와 재리(財利)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절대로 받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수령의 본무는 민중에 대한 봉사 정신을 기본으로 하여 국가의 정령(政令)을 빠짐없이 두루 알리고 민의(民意)의 소재를 상부에 잘 전달하며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해 민중을 보호해야 한다. 즉, 민중을 사랑하는 이른바 애휼정치(愛恤政治)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다음 제5편의 이전은 속리(束吏)·어중(馭衆 : 중인들을 이끌어감)·용인(用人)·거현(擧賢)·찰물(察物)·고공(考功)의 6조로 구분하였고, 제6편의 호전은 전정(田政)·세법(稅法)·곡부(穀簿 : 곡물의 장부)·호적(戶籍)·평부(平賦 : 균등한 세금부과)·권농(勸農)의 6조로 구분되었다.

제7편의 예전은 제사(祭祀)·빈객(賓客)·교민(敎民)·흥학(興學)·변등(辨等 : 등급의 판별)·과예(課藝)의 6조로 이루어졌고, 제8편의 병전은 첨정(簽丁)·연졸(練卒)·수병(修兵)·권무(勸武)·응변(應變 : 변란에 대응함)·어구(禦寇 : 왜구에 대한 방어)의 6조로 이루어졌다.

제9편의 형전은 청송(聽訟)·단옥(斷獄 : 중대한 범죄를 처단함)·신형(愼刑 : 형벌의 신중함)·휼수(恤囚)·금폭(禁暴 : 폭력의 엄금)·제해(除害 : 해가 되는 일을 덜어 버림)의 6조로 구성되었고, 제10편의 공전은 산림(山林)·천택(川澤)·선해(繕廨)·수성(修城)·도로(道路)·장작(匠作)의 6조로 구성되었다. 위의 여섯 편은 『경국대전』의 6전을 근거로 하여 목민관의 실천 정책을 소상하게 밝혔다. 즉, 이전은 관기숙정(官紀肅正)을 큰 전제로 아전(衙前)·군교(軍校)·문졸(門卒)의 단속을 엄중히 하고 수령의 보좌관인 좌수(座首)와 별감(別監)의 임용을 신중히 하되, 현인(賢人)의 천거는 수령의 중요한 직무이므로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을 당부하였다.

호전은 농촌 진흥과 민생 안정을 큰 전제로, 전정·세법을 공평하게 운용하고 호적의 정비와 부역의 균등을 잘 조절하며 권농·흥산(興産)의 부국책(富國策)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것을 내세우고 있다. 전정의 문란, 세정의 비리, 호적의 부정, 환자[還上]의 폐단, 부역의 불공정은 탐관오리의 온상이 되었다. 따라서 수령은 이를 민생 안정의 차원에서 척결(剔抉)하고, 나아가 활기찬 흥농(興農)의 실을 거두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을 역설하였다.

예전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예법과 교화·흥학의 이정표를 잘 세울 것을 권유하고 있다. 병전은 연병·어구(禦寇 : 외적을 방어함)의 국방책을 말하였는데, 특히 당시 민폐가 가장 심했던 첨정·수포의 법을 폐지하고 군안(軍案)을 다시 정리하며 수령은 앞장서서 평소부터 군졸을 훈련시킬 것 등을 강조하였다.

형전은 청송·형옥을 신중하게 할 것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수령은 먼저 교도(敎導)하고 다음에 형벌한다는 신조를 굳게 가져야 할 것을 역설하였다. 공전은 산림·산택·영전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주로 산업 개발과 관련된 행정 문제를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진황(賑荒)·해관(解官)의 두 편은 수령의 실무에 속하는 빈민 구제의 진황 정책과 수령이 임기가 차서 교체되는 과정을 적은 것이다. 벼슬길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황의 항목은 비자(備資 : 자본이나 물자를 비축함)·권분(勸分 : 수령들이 관내의 부유층에게 권해 극빈자들을 돕게 함)·규모(規模)·설시(設施)·보력(補力 :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힘으로 도움)·준사(竣事 : 사업을 마침)의 6조로 편성되었다.

해관은 체대(遞代 : 서로 번갈아 교체함)·귀장(歸裝 : 돌아갈 차비를 함)·원류(願留 : 고을 사람들이 전임되는 관리의 유임을 청하는 일)·걸유(乞宥 :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왕에게 청함)·은졸(隱卒 :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애도하던 일)·유애(遺愛 : 고인의 仁愛의 유풍)의 6조로 이루어졌다. 요컨대, 이 책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저자의 지방 행정의 원리는 관(官)의 입장에 서서 논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민(民)의 편에 서서 관의 횡포와 부정부패를 폭로·고발·탄핵·경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1901년 광문사에서 인간(印刊)한 바 있으며, 1969년 민족문화추진회와 1977년 대양서적(大洋書籍), 1981년 다산연구회(茶山硏究會)에서 각각 국역이 간행되었다.

저자소개

정약용(丁若鏞, 1762년 8월 5일(음력 6월 16일) ~ 1836년 4월 7일(음력 2월 22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문암일인(門巖逸人),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중농주의 실학자로서 토지의 무상 분배, 공동 노동-공동 분배를 함으로써 토지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한 사회주의 토지 정책인 여전론과 정전론을 상상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정전론은 토지를 우물 정(井)으로 나누면 모두 9구역의 땅이 나오는데, 이중 8구역은 8명의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어 농사를 짓도록 하고, 1구역은 공동 노동을 하자는 것이다. 여전론은 여(이문 여,閭)를 농민들이 공동 노동, 공동 분배하는 생각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점진적인 방법이 1819년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군에서 유배를 할 때에 상상한 정전론이다.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起重架說)에 따른 활차녹로(滑車轆轤 :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였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다. 문집으로 여유당전서가 있다.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 정조의 다른 최측근인 홍국영과 인척 관계이기도 하다.

목차소개

도서정보
목민심서에 대하여
부임육조(赴任六條) 1. 제배(除拜 : 사령(辭令)을 받으면서)
부임육조(赴任六條) 2. 치장(治裝 : 부임길의 행장)
부임육조(赴任六條) 3. 사조(辭朝 : 부임 인사)
부임육조(赴任六條) 4. 계행(啓行 : 신관(新官)의 부임 행차)
부임육조(赴任六條) 5. 상관(上官 : 관부에 부임 하면서
부임육조(赴任六條) 6. 이사(이事 : 취임 첫날의 집무)
율기육조(律己六條) 1. 칙궁(飭躬 : 단정한 몸가짐)
율기육조(律己六條) 2. 청심(淸心 : 깨끗한 마음가짐)
율기육조(律己六條) 3. 제가(齊家 : 집안의 법도)
율기육조(律己六條) 4. 병객(屛客 : 사사로운 손님은 물리치라.)
율기육조(律己六條) 5. 절용(節用 : 절약해서 쓰는것.)
율기육조(律己六條) 6. 낙시(樂施 : 은혜를 베풀자)
봉공육조(奉公六條) 1. 선화(宣化 : 덕으로 교화함을 널리펴라)
봉공육조(奉公六條) 2. 수법(守法 : 법을 지킴)
봉공육조(奉公六條) 3. 예제(禮際 : 대인관계)
봉공육조(奉公六條) 4. 문보(文報 : 완벽한 공문서 처리)
봉공육조(奉公六條) 5. 공납(貢納 : 특산물을 현물로 바침
봉공육조(奉公六條) 6.요역(搖役 : 출장 근무) | 목민심서
애민육조(愛民六條) 1. 양로(養老 : 어른을 공경)
애민육조(愛民六條) 2. 자유(慈幼 : 사랑의 정신)
애민육조(愛民六條) 3. 진궁(賑窮 :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
애민육조(愛民六條) 4. 애상(哀喪 : 상을 애도)
애민육조(愛民六條) 5. 관질(寬疾 : 환자의 구호)
애민육조(愛民六條) 6. 구재(救災 : 재난을 구제)
이전육조(吏典六條) 1. 속리(束吏 : 아전 단속을 너그러우면서도 엄정(嚴正)하게)
이전육조(吏典六條) 2. 어중(馭衆 : 대중을 통솔)
이전육조(吏典六條) 3. 용인(用人 : 사람을 적재적소에 씀)
이전육조(吏典六條) 4. 거현(擧賢 : 어질고 현명한 인물을)
이전육조(吏典六條) 5. 찰물(察物 : 물정을 엄밀하게 사찰)
이전육조(吏典六條) 6. 고공(考功 : 엄정하게 성적을 평가)
호전육조(戶典六條) 1. 전정(田政 : 근본적인 개혁을)
호전육조(戶典六條) 2. 세법(稅法 : 세무에 관한 행정은 밝게)
호전육조(戶典六條) 3. 곡부(穀簿 : 곡물 장부)
호전육조(戶典六條) 4. 호적(戶籍 : 인구 실태의 정확한 파악)
호전육조(戶典六條) 5. 평부(平賦 : 부역을 공정하게)
호전육조(戶典六條) 6. 권농(勸農 : 농사를 권장)
예전육조(禮典六條) 1. 제사(祭祀)
예전육조(禮典六條) 2. 빈객(賓客 : 손님의 접대는 법도 있게)
예전육조(禮典六條) 3. 교민(敎民 : 백성을 가르침)
예전육조(禮典六條) 4. 흥학(興學 : 배움터를 마련)
예전육조(禮典六條) 5. 변등(辨等 : 등급을 가림)
예전육조(禮典六條) 6. 과예(課藝 : 인재를 길러내자)
병전육조(兵典六條) 1. 첨정(簽丁 : 건전한 병무 행정을)
병전육조(兵典六條) 2. 연졸(練卒 : 군사 훈련)
병전육조(兵典六條) 3. 수병(水兵 : 철저한 병기 관리)
병전육조(兵典六條) 4. 권무(勸武 : 무예 권장)
병전육조(兵典六條) 5. 응변(應變 : 비상사태에 대비)
병전육조(兵典六條) 6. 어구(禦寇 : 순국의 정신)
형전육조(刑典六條) 1. 청송(聽訟 : 진상의 정확한 파악하여 소송을 판결)
형전육조(刑典六條) 2. 단옥(斷獄 : 신중과 명결을)
형전육조(刑典六條) 3. 신형(愼刑 : 형벌은 신중하게)
형전육조(刑典六條) 4. 휼수(恤囚 : 죄수에게 온정을)
형전육조(刑典六條) 5. 금포(禁暴 : 폭력을 엄하게 단속.)
형전육조(刑典六條) 6. 제해(除害 : 해로운 사물을 없앰)
공전육조(工典六條) 1. 산림(山林 : 사랑해서 산림 가꾸자)
공전육조(工典六條) 2. 천택(川澤 : 수리시설의 관리)
공전육조(工典六條) 3. 선해(繕해 : 청사의 환경 미화와 보수)
공전육조(工典六條) 4. 수성(修城 : 성곽을 수리)
공전육조(工典六條) 5. 도로(道路 : 교통을 편리하게)
공전육조(工典六條) 6. 장작(匠作 : 건전한 육성)
진황육조(賑荒六條) 1. 비자(備資 : 흉년에 대비 물자 비축)
진황육조(賑荒六條) 2. 권분(勸分 : 재해 의연의 권장)
진황육조(賑荒六條) 3. 규모(規模 : 사랑의 정을 발휘)
진황육조(賑荒六條) 4. 설시(設施 : 구호시설의 확충)
진황육조(賑荒六條) 5. 보력(補力 : 힘을 보탬)
진황육조(賑荒六條) 6. 준사(竣事 : 재민 구호의 결산)
해관육조(解官六條) 1. 체대(遞代 : 벼슬이 갈림)
해관육조(解官六條) 2. 귀장(歸裝 : 돌아가는 행장)
해관육조(解官六條) 3. 원류(願留 : 유임하기를 원함)
해관육조(解官六條) 4. 걸유(乞宥 : 구명을 호소하는 민의)
해관육조(解官六條) 5. 은졸(隱卒 : 임소에서의 운명)
해관육조(解官六條) 6. 유애(遺愛 : 사랑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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