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한국사

도서정보 : 안정준 | 2022-02-2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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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세계, 흐름과 맥락으로
새롭게 읽는 한국사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8년 전 러시아에 크림반도를 뺏긴 우크라이나는 이번 침공에도 무방비로 당하는 중이다. 나토 회원국 간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기대했던 서방 국가의 지원은 아직까지 없는 상황. 결국 힘도, 동맹도 없는 우크라이나의 평화 호소만으로는 러시아 탱크를 막기 역부족이었다.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관심이 우크라이나에 쏠려 있는 사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 실험을 재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로 인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면 그 틈을 타서 이번에는 중국이 대만을 공략하지 않을까?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우리나라 특성상 외교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곤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배우는 국사란 한반도라는 특정 공간, 한민족이라는 특정 민족을 중심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순대로 서술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의 한국사』는 동아시아 무대 위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시대 다양한 지역과 국가 간 관계성에 주목하는 ‘새로운 한국사’를 보여준다.

경계와 이즘 너머
동아시아 속 관계성에 주목하다

오늘날 우리는 글로벌 공동체에 속해 있음에도, 역사를 쓰고 읽을 때만큼은 바깥 세계와 우리를 분리하려 든다. 예를 들어 3세기 고구려가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으로 멸망할 뻔한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이 사건이 중국의 위·촉·오 삼국시대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위나라가 요동 변방의 한 신흥 세력에 불과한 고구려까지 쳐들어온 배경에는 촉나라 승상 제갈량의 죽음과 오나라 황제 손권의 무모한 외교적 행보가 있었다.(☞「1부 오나라 손권과 고구려의 비극적 로맨스」 참조)

이렇게 동아시아라는 지리적·역사적 범주 속에서 한국사를 조망하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가려진 새로운 면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한 예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몽골제국과 고려 간 관계를 생각해보자. 당시 고려는 세계사적 대격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몽골제국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유럽까지 정복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강력한 지배자로 우뚝 섰다. 이 와중에 무조건 몽골제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이 능사였을까? 심지어 고려 왕실은 몽골제국의 힘을 빌려 고려 내정에 간섭하고 사리사욕을 챙기는 몽골 장수와 일부 고려인 세력들도 견제해야 했다. 이렇게 보면 고려왕이 먼저 나서서 몽골제국의 부마국이 되겠다고 자처한 것은 자주성의 포기가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내 고려 왕실의 지위를 상승시킴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여러 세력들에 대응해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7부 고려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참조)

오해와 욕망을 걷어낸
진짜 우리 역사와 만나다

관계성에 주목하는 역사 서술은 오늘날 역사 분쟁의 배경과 본질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백제의 요서진출설을 근거로 당시 국제 정세와 다양한 외교적 행위의 이면을 살피지 않고 사료를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6세기 전반 백제 사신은 유창한 중국어와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신라는 백제의 속국’이라는 거짓을 고하고 중국 황제로부터 높은 책봉호와 사여품을 얻어내는데, 그 거짓 증언이 고대 사료 중 하나인 〈양직공도〉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 (☞「2부 백제 사신의 뻔뻔한 거짓말」 참조) 이를 그대로 믿는다는 건 북한의 김정은이 미국을 향해 던진 위협 발언을 미래의 역사가가 그대로 믿고 북한이 미국과 견줄 정도의 국력을 지닌 나라였다고 판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역사학은 기록에 의존하는 학문이지만 기록은 누가 어떤 의도로 작성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그 기록을 읽어낼 때 현재의 필요에 따라 해석하려는 욕망이 개입해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반전의 한국사』는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각종 가치관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 역사를 선보인다.

『삼국지』보다 재미있고 『대망』보다 실용적인
흥미진진한 역사 스토리텔링

『반전의 한국사』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문학적 재미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정치문화나 사회·경제적 구조 같은 거시적인 힘의 변화에 따라 연도별로 무미건조하게 서술하는 형식을 지양한다. 대신 개인의 선택과 상황, 우연 등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예상치 못한 반전과 충격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 안에는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공동체의 운명을 바꾸고, 형제 간 앙금이 동아시아 전쟁으로 확대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오늘날 역사의 쓸모란 인간의 본성과 그 인간들이 모여 이룬 사회의 성향을 탐구함으로써 현재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과 갈등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의리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치기도 하고 권력과 생존을 위해 처절한 투쟁을 벌이기도 하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처세부터 국가의 전략까지 도움이 될 만한 교훈과 통찰을 제공한다.

구매가격 : 12,000 원

다이어트의 역사

도서정보 : 운노 히로시 | 2022-02-2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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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어째서
극단적으로 날씬한 몸매를 추앙하게 되었을까?

오늘날의 ‘다이어트’는 별것 없는 키워드다. 동시에 이슈의 중심에 있는 키워드다.
별것 없는 이유는, 다이어트가 우리의 일상에 너무도 흔한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 어디서든 다이어트와 관련된 무언가를 접할 수 있다. 이슈의 중심인 이유 역시 동일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다이어트를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갈망한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도전한다. 수많은 다이어트법, 수많은 식단관리법과 운동, 미용성형이 새로이 쏟아져 나온다. 기업은 다이어트 식품을 생산하고, 매스미디어는 다이어트법을 소개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나, 일상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다이어트를 만난다. 실제 적극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음식을 먹을 때 잠시라도 칼로리나 당분에 신경을 쓰고, 낮은 층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른다.

‘다이어트’는 어떻게 이토록 자연스러운 형태로 현대인의 일상에 스며들었을까?
현대인은 어째서 이토록 극단적으로 날씬한 몸매를 추앙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다이어트’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구매가격 : 13,000 원

근대도시 공주의 탄생

도서정보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 2022-02-2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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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기억, 공주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다
우리가 몰랐던 공주의 근대 이야기

서울 같은 대도시, 혹은 부산이나 대전, 인천 같은 개항지 혹은 교통요지가 아닌 지역 도시들은 어떻게 근대를 맞이했을까? 《근대도시 공주의 탄생》은 조선시대까지 충청지역을 대표하던 공주가 어떻게 ‘근대’를 맞이했는지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살핀다. 호서의 수부도시였던 공주는 근대의 도전에 직면해 변화를 강요받고 원하지 않는 모습을 수용해야 했다.
근대는 여러 속도, 여러 모습으로 왔다.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공주를 지날 수 있었지만 20세기 초의 격변하는 국제정세에서 러시아와 대립하고 만주와 중국대륙을 노리던 일본은 단 1미터라도 대륙과 더 빨리 연결되는 노선을 원했다. 철도가 비켜 간 후 교통상의 이점을 놓친 공주는 충남도청과 지방법원이 대전으로 옮겨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전의 번성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신작로와 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신식 교육을 받은 새로운 사람들이 탄생했다. 3.1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유관순도 공주에서 근대 시민의 기초 자질을 익히고 민족의식을 가진 여성 독립운동가가 되었다. 그리고 공주는 ‘교육도시’ ‘역사도시’로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가며 내실을 다졌다. 사랑스러운 문화도시 공주는 이 근대 시간의 위에 서있다.

구매가격 : 10,500 원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상)

도서정보 : 이한우 | 2022-0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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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과 수성을 함께 이룬 조선 최고의 리더, 태종 이방원
혼탁한 시대를 향해 던지는 새로운 통찰



◎ 도서 소개

16년에 걸친 집요한 인물 탐구
이방원의 인생과 내면을 종횡으로 엮어낸 총체적 접근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상·하권)은 이방원이라는 불세출의 인물에 대해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특별한 책이다. 이방원의 생애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나열하는 단면적 방식 대신 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며 사상적 배경을 파고드는 한 입체적 분석을 시도했다. 이 작업을 통해 태종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진면목을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드러내었다.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 상권은 이방원의 출생과 성장에서 시작하여 격동기의 역사 속에 선 아버지를 보좌하여 건국에 큰 공을 세우는 과정과 즉위 초반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와 함께 그와 대립하거나 뜻을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개된다. 이방원은 고려 재상 정몽주를 살해하는 그릇된 도리로 나라를 세웠고 1, 2차 왕자의 난으로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이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후세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세 차례나 도리를 거슬러 마침내 나라를 차지하는 동안 이방원은 어떤 뜻과 의지를 품었을까? 그를 이끈 생각들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내면을 좇으며 해답을 찾아간다.
혼돈이 깊을수록 위대한 리더가 절실해진다. 태종 이방원이 말하고 일했던 방식을 복원하여 시대를 관통하는 전범(典範)을 세워야 할 때이다. 지금 이 책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은 상권과 하권으로 발간됩니다.


◎ 출판사 서평

태종 이방원에 대한 독창적 해석
그의 ‘말하는 스타일’, ‘일하는 스타일’에 주목한 새로운 평전

태종 이방원은 누구인가? 평가는 엇갈린다. 그는 아버지 태조를 도와 새로운 나라를 열고 난세를 치세로 바꾼 현명하고 강인한 지도자이다. 세종대왕의 찬란한 업적도 태종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적(政敵)을 잔인하게 짓밟고 골육상잔의 비극을 일으켜 왕위를 차지한 무자비한 냉혈한의 모습도 부인할 수 없다. 현대인에게는 후자의 모습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호불호로 나뉘는 해석은 모두 단편적이다. 이러한 접근으로는 태종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진면목을 제대로 발견할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 그의 선택과 행적을 끌어낸 생각 즉, 가치와 지향을 함께 살필 때 이방원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로부터 이 혼탁한 시대를 헤쳐나갈 통찰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 이한우는 태종 이방원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천착해왔다. 이미 2005년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를 썼고, 그 이후 16년간이나 태종 이방원에 가까이 가려는 고투(苦鬪)를 벌였다. 그렇지만 겉돌기만 한다는 아쉬움을 이길 수 없었다. 고전을 번역하며 특별히 『이한우의 태종실록』(전 19권)을 완역하며 이해의 지평을 넓혔고 16년 만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태종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가 영향받은 책들을 탐구하는 쪽으로 공부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논어』, 『주역』, 『한서』등이 그 책들이다. 이 과정을 통해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태종 이방원의 면모가 눈에 들어왔고 그의 행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그때와 지금의 필자는 다르다. 그때는 태종이 수련한 학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태종의 깊은 심사(深思) 즉 그의 정신세계(精神世界)를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한 예로, 태종이 2차 왕자의 난 때 맞섰던 형 이방간(李芳幹)을 끝내 살려준 진짜 까닭이다. 피상적으로는 그가 방간을 끝까지 살려준 이유를 그냥 형제애(兄弟愛)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정신세계를 파고들어 냉철하게 살펴보면 ‘왕권 강화 차원에서의 왕실 사람 보호’가 더 결정적인 이유였다. 왕실의 존엄을 높이는 일은 곧바로 왕권 강화를 위한 기반이었다. 이것이 이번에 다시 만난 태종의 한 면모다.” - 본문 중에서




태종 이방원을 이해하는 키워드
통치 철학과 가치로써 지공(至公) 추구

공자가 『논어』에서 역설한 ‘부부자자(父父子子) 군군신신(君君臣臣)’에서 주안점은 군군신신에 있다. 이는 공(公)의 영역으로 왕권중심주의의 토대를 이룬다. 그러나 주희(朱熹)의 해석은 공자와 정치관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였다. 즉 성리학이나 주자학에 반(反)왕권 사상이 담긴다. 우리 역사에서도 송익필, 김장생, 송시열 등은 주자의 방향으로 갔다. 그들은 신하들이 판결권을 쥐고서 임금을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는 신권중심주의를 추구했다.
주자학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이전의 인물인 태종은 공자의 원래 뜻에 가깝다. 부부자자가 중요하지만, 군군신신이 훨씬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것이 공(公)이다. 그는 종묘사직을 위해서라면 아버지, 아내와 처남들, 장남 같은 혈친과의 대립과 충돌과 갈등도 꺼리지 않았고, 신하들 가운데 1등 공신들과의 대립도 꺼리지 않았다. 태종과 정도전 대결은 공자의 왕권중심주의 사상을 철저하게 소화한 태종과 주희의 신권중심주의를 구현하려 한 정도전의 대결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태종은 전적으로 자신이 정변을 주도했기에 태종과 공신들 간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곤 했어도, 결국 공(公)과 사(私)의 논리에 입각해 공신을 공이 아닌 사로 간주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을 위한 신하가 될 것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태종 자신부터 매사 공(公)에 입각해 말하고 행동했다. 이를 미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거스를 경우 태종은 냉정하게 그리고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민씨 형제들이 당한 참화도 그런 경우 중 하나다. 이처럼 태종은 통치 철학과 가치로써 지공(至公)을 추구했다. 그리고 『논어』에 담겨 있는 ‘사람 보는 법’으로서의 직(直), 즉 곧음이라는 개념에 주목해 이를 체화했다.


왜 태종은 유학(儒學)을 선택했는가
공자의 현실주의를 체현한 반(反)종교 합리주의자

주자학적 사고방식이 아직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를 살았던 태종을 만나려면 주자학적 사고방식을 넘어야 한다. 여기에 머물러 태종을 바라본다면 그는 한갓 도덕주의적 비판의 대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도 만연되어있는 ‘잔혹’, ‘무자비’ 등의 인상비평이 그것이다. 주자학의 본질과 주자학적 사고방식을 꿰뚫어 그것을 넘어설 때라야 태종이 살아낸 본래 모습이 오롯이 드러난다.
공자를 이상론자, 도덕주의자, 허공에 붕 떠 있는 관념론자, 고지식한 심신(心身) 수양론자 정도로 보는 오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는 잘못된 견해다. 공자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그가 말한 예(禮)는 예법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이치이자 상도(常道)이다.
이방원은 공자의 현실주의를 체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권도(權道)를 적시에 제대로 쓸 줄 아는 지도자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자 양녕을 폐하고 충녕을 세운 택현론(擇賢論)이다. 그는 현실에 집중했다. 그에게 현실은 곧 ‘정치’였다. 그는 현실주의적인 유학(儒學)을 선택했으며 무엇보다 현실정치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았고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적 습속들에 비판적 태도를 지녔다. 태종 이방원은 정치를 위한 일에 초(超)인간적 영역을 끌어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인간으로서 극한치까지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지공(至公)을 추구한 반(反)종교 합리주의의 현실주의자의 길. 그것이 태종 이방원의 삶이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이한우 저자의 책
▶ 『이한우의 태종실록』(전 19권) |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이한우의 주역』(전 3권) |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완역 한서』(전 10권) | 반고 지음 |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본문 중에서

이번 작업의 핵심 관심사는 태종이 가졌던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가 ‘말하는 스타일’과 ‘일하는 스타일’을 복원하는 데 있다. 지금 시점에서 태종을 다시 불러온다고 했을 때 다름 아닌 이 2가지가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지금 시점에서 그를 미화 찬양한다고 해서, 혹은 그를 비판 매도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태종이 ‘말하고 일하는 스타일’을 탐구하는 것은 ‘말과 일을 모르는 자’들이나 일삼는 공리공담을 피하는 효과적 방법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같은 태종 스타일, 즉 태종풍이 바람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리 불어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공리공담 고담준론 따위를 쓸어가 버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68쪽 ? 들어가는 말】

군주론 혹은 제왕학에 누구보다 관심이 깊었던 정안군이 건괘에 담긴 의미를 몰랐을 리 없다. 오히려 효사마다 담겨 있는 깊은 뜻을 새기고 또 새겼으리라. 그랬기에 세자 시절 처음으로 『주역』을 강하는 자리에서 이서가 하는 말을 듣자마자 “인정은 끊기가 대단히 어렵다”라는, 짤막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답을 할 수 있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태종은 그 후 집권 내내 지공(至公) 앞에서 인정을 끊어내는 정치를 보여주었다.
【207쪽 ? 현룡 이방원: 1차 왕자의 난까지】

태종이 재위 내내 강한 왕권을 구사할 수 있었던 주요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이 같은 학문적 우위(優位)였다. 「재재」편은 주나라 무왕(武王)이 동생 강숙(康叔)을 위(衛)나라에 봉해주면서 가르침을 전한 글이다. 대체로 이 글은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를 말한 것으로, 위아래의 실상이 통하게 하고 형벌을 너그럽게 써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하 입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더라도 임금 입장에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글이다. 여기에는 “신하 중에도 스승처럼 여겨야 할 신하가 있으니 삼공(三公)이 그들이다”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는 실제로 태종이 조준?권근?하륜에게 보여준 태도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태종에게 사신(師臣), 즉 스승 같은 신하였다.
【301쪽 ? 태종의 진덕수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고 왕권을 안정시킬 때까지 세운 공에 비하면 끝내 이숙번을 내치는 태종의 결단은 야멸차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태종은 단지 사사로운 감정으로 신하 문제를 처리하는 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숙번을 그냥 두었을 때 왕실에 미칠 수 있는 위험을 내다보아야 했다. 그러면 공적인 해법은 하나다. 처남 민씨 형제들과 비교할 때, 살려둔 것만으로도 이숙번에게는 큰 은혜를 베푼 것이라 봐야 한다. 또 한 가지, 하륜과 비교해서 잘못된 그의 언사(言辭) 하나를 짚어야 한다. 2차 선위 파동이 한창이던 태종 9년(1409년) 8월 13일의 일이다.
【471쪽 ? “내가 조준을 아낌은 하륜을 아낌만 못했다”】

태종은 대간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정확히 견해를 밝혔다. “간관은 마땅히 노성(老成)하고 일을 경험한 사람으로 써야 한다. 말을 해야 할 터인데 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고, 말을 할 것이 아닌데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 사사로움에 얽매여 공정(公正)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박신과 조용은 그 말뜻을 알아듣고서 이렇게 답했다. “신 등이 이미 명을 들었으니 어찌 감히 털 한 오라기의 사사로운 뜻이 있겠습니까!”
【587쪽 ? 동년 인재풀’ 활용과 사헌부 장악】

구매가격 : 30,400 원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하)

도서정보 : 이한우 | 2022-0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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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과 수성을 함께 이룬 조선 최고의 리더, 태종 이방원
혼탁한 시대를 향해 던지는 새로운 통찰



◎ 도서 소개

16년에 걸친 집요한 인물 탐구
이방원의 인생과 내면을 종횡으로 엮어낸 총체적 접근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상·하권)은 이방원이라는 불세출의 인물에 대해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특별한 책이다. 이방원의 생애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나열하는 단면적 방식 대신 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며 사상적 배경을 파고드는 한 입체적 분석을 시도했다. 이 작업을 통해 태종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진면목을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드러내었다.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 하권은 태종이 일하고 말하는 방식과 그 근간이 된 내면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저자가 ‘태종풍’으로 명명한 독특한 스타일이다. 태종은 군주로서 언행에 있어 일관되게 지공(至公)을 추구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종묘사직과 백성과 역사, 세 가지뿐이었다. 그는 ‘곧음’을 기준으로 신하를 품었으며 공(公)에 거스르면 친족과 공신을 막론하고 단호히 처결했다. 태종은 겸손하면서도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제왕다운 언변을 지녔으며 시작할 때 끝마침을 먼저 그리며 주도면밀하게 일했다.이방원은 도리를 거슬러 나라를 차지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다스림 영역에서는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혼돈이 깊을수록 위대한 리더가 절실해진다. 태종 이방원이 말하고 일했던 방식을 복원하여 시대를 관통하는 전범(典範)을 세워야 할 때이다. 지금 이 책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은 상권과 하권으로 발간됩니다.


◎ 출판사 서평

태종 이방원에 대한 독창적 해석
그의 ‘말하는 스타일’, ‘일하는 스타일’에 주목한 새로운 평전

태종 이방원은 누구인가? 평가는 엇갈린다. 그는 아버지 태조를 도와 새로운 나라를 열고 난세를 치세로 바꾼 현명하고 강인한 지도자이다. 세종대왕의 찬란한 업적도 태종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적(政敵)을 잔인하게 짓밟고 골육상잔의 비극을 일으켜 왕위를 차지한 무자비한 냉혈한의 모습도 부인할 수 없다. 현대인에게는 후자의 모습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호불호로 나뉘는 해석은 모두 단편적이다. 이러한 접근으로는 태종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진면목을 제대로 발견할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 그의 선택과 행적을 끌어낸 생각 즉, 가치와 지향을 함께 살필 때 이방원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로부터 이 혼탁한 시대를 헤쳐나갈 통찰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 이한우는 태종 이방원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천착해왔다. 이미 2005년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를 썼고, 그 이후 16년간이나 태종 이방원에 가까이 가려는 고투(苦鬪)를 벌였다. 그렇지만 겉돌기만 한다는 아쉬움을 이길 수 없었다. 고전을 번역하며 특별히 『이한우의 태종실록』(전 19권)을 완역하며 이해의 지평을 넓혔고 16년 만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태종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가 영향받은 책들을 탐구하는 쪽으로 공부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논어』, 『주역』, 『한서』등이 그 책들이다. 이 과정을 통해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태종 이방원의 면모가 눈에 들어왔고 그의 행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그때와 지금의 필자는 다르다. 그때는 태종이 수련한 학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태종의 깊은 심사(深思) 즉 그의 정신세계(精神世界)를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한 예로, 태종이 2차 왕자의 난 때 맞섰던 형 이방간(李芳幹)을 끝내 살려준 진짜 까닭이다. 피상적으로는 그가 방간을 끝까지 살려준 이유를 그냥 형제애(兄弟愛)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정신세계를 파고들어 냉철하게 살펴보면 ‘왕권 강화 차원에서의 왕실 사람 보호’가 더 결정적인 이유였다. 왕실의 존엄을 높이는 일은 곧바로 왕권 강화를 위한 기반이었다. 이것이 이번에 다시 만난 태종의 한 면모다.” - 본문 중에서




태종 이방원을 이해하는 키워드
통치 철학과 가치로써 지공(至公) 추구

공자가 『논어』에서 역설한 ‘부부자자(父父子子) 군군신신(君君臣臣)’에서 주안점은 군군신신에 있다. 이는 공(公)의 영역으로 왕권중심주의의 토대를 이룬다. 그러나 주희(朱熹)의 해석은 공자와 정치관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였다. 즉 성리학이나 주자학에 반(反)왕권 사상이 담긴다. 우리 역사에서도 송익필, 김장생, 송시열 등은 주자의 방향으로 갔다. 그들은 신하들이 판결권을 쥐고서 임금을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는 신권중심주의를 추구했다.
주자학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이전의 인물인 태종은 공자의 원래 뜻에 가깝다. 부부자자가 중요하지만, 군군신신이 훨씬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것이 공(公)이다. 그는 종묘사직을 위해서라면 아버지, 아내와 처남들, 장남 같은 혈친과의 대립과 충돌과 갈등도 꺼리지 않았고, 신하들 가운데 1등 공신들과의 대립도 꺼리지 않았다. 태종과 정도전 대결은 공자의 왕권중심주의 사상을 철저하게 소화한 태종과 주희의 신권중심주의를 구현하려 한 정도전의 대결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태종은 전적으로 자신이 정변을 주도했기에 태종과 공신들 간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곤 했어도, 결국 공(公)과 사(私)의 논리에 입각해 공신을 공이 아닌 사로 간주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을 위한 신하가 될 것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태종 자신부터 매사 공(公)에 입각해 말하고 행동했다. 이를 미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거스를 경우 태종은 냉정하게 그리고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민씨 형제들이 당한 참화도 그런 경우 중 하나다. 이처럼 태종은 통치 철학과 가치로써 지공(至公)을 추구했다. 그리고 『논어』에 담겨 있는 ‘사람 보는 법’으로서의 직(直), 즉 곧음이라는 개념에 주목해 이를 체화했다.


왜 태종은 유학(儒學)을 선택했는가
공자의 현실주의를 체현한 반(反)종교 합리주의자

주자학적 사고방식이 아직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를 살았던 태종을 만나려면 주자학적 사고방식을 넘어야 한다. 여기에 머물러 태종을 바라본다면 그는 한갓 도덕주의적 비판의 대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도 만연되어있는 ‘잔혹’, ‘무자비’ 등의 인상비평이 그것이다. 주자학의 본질과 주자학적 사고방식을 꿰뚫어 그것을 넘어설 때라야 태종이 살아낸 본래 모습이 오롯이 드러난다.
공자를 이상론자, 도덕주의자, 허공에 붕 떠 있는 관념론자, 고지식한 심신(心身) 수양론자 정도로 보는 오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는 잘못된 견해다. 공자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그가 말한 예(禮)는 예법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이치이자 상도(常道)이다.
이방원은 공자의 현실주의를 체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권도(權道)를 적시에 제대로 쓸 줄 아는 지도자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자 양녕을 폐하고 충녕을 세운 택현론(擇賢論)이다. 그는 현실에 집중했다. 그에게 현실은 곧 ‘정치’였다. 그는 현실주의적인 유학(儒學)을 선택했으며 무엇보다 현실정치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았고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적 습속들에 비판적 태도를 지녔다. 태종 이방원은 정치를 위한 일에 초(超)인간적 영역을 끌어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인간으로서 극한치까지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지공(至公)을 추구한 반(反)종교 합리주의의 현실주의자의 길. 그것이 태종 이방원의 삶이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이한우 저자의 책
▶ 『이한우의 태종실록』(전 19권) |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이한우의 주역』(전 3권) |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완역 한서』(전 10권) | 반고 지음 |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본문 중에서

태종은 신하들에게 최우선으로 곧음을 요구했다. 특히 뒤에 보게 되겠지만 승정원 대언들에 대해서는 공신에 준하는 대우를 하되 결코 털끝만큼의 속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태종 생각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논어』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태종은 스스로 강명(剛明)한 군주를 지향하며 신하들을 평가하는 잣대를 『논어』의 곧음에서 가져왔다. (…) 이는 태종 스스로도 이상적으로 생각한 바람직한 군신(君臣)관계의 모범이기도 하다. 물론 태종도 간언을 물리친 적이 있고 널리 듣지 못한 적이 있지만 적어도 곧은 말을 하는 신하를 좋아하는 진정성은 조선 어떤 다른 임금들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였다.
【96쪽 ? 제1장 신하를 품는 잣대는 곧음】

태종을 위한 변명이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실상은 거기까지였다고 하더라도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당시 살았던 인물 간 역학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태종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태종과 민무구 형제 간 충돌은 당대 문제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주도권 문제였다. 태종은 당장 보기에는 죄가 아닌 것 같아도 조선이 지향해야 하는 미래 그림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죄라는 논리였다. 태종은 ‘현재 하는 꼴을 보아하니 얼마 안 가서…’라는 심정으로 일을 밀어붙이고 있었고 민무구 당파는 ‘지금 당장 우리가 뭘 했다고…’라는 억울한 심정으로 당하고 있었다.
【315쪽 ? 제가 정치학: 세자 외척에 대한 태종풍 제가의 겉과 속】

태종은 묻기를 좋아했다. 태종이 묻는 경우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신하들 마음속을 살피기 위해 묻는 경우다. 스승 같은 신하로 여기던 하륜이나 권근에게 물을 때는 대부분 전자에 속한다. 이런 물음들을 통해 태종 제왕학 연마 수준과 관심사를 엿볼 수 있다. 반면 어떤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하는 질문은 질문받는 신하 속내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이럴 때 신하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418쪽 ? 태종풍 일하기】

영의정 유정현이 홀로 “지금은 뛰어난 사람을 고르는 것이 마땅하다”라며 택현론(擇賢論)을 제시했다. (…) 좌의정 박은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자 일부 신하들도 이에 동의했다. 상도보다는 권도가 맞다는 의견이었다. 문제는 태종의 결정이었다. 결국 “이번에는 뛰어난 사람을 고르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결심을 굳히고 신하들에게 누가 뛰어난지 골라 보고하라고 명했다. 상도에서 권도, 정(正)에서 중(中)으로 선회하는 순간이다.
【545쪽 ? 태종풍 지공의 완성: 폐세자와 택현】

실록은 그 생애를 간략하게 압축했다. 태상왕은 귀 밝고 눈 밝고 특출나며 일에 밝았고 굳세고 튼튼하며 너그럽고 어질었다. 경전과 역사를 널리 읽어 고금의 일을 밝게 알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 일의 진위(眞僞)를 훤히 알며 한 가지 재주와 한 가지 선행이 있는 자라면 등용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 상줄 데 상주고 벌줄 데 벌주되 친소(親疎)로 차등을 두지 않았고 관직을 임명하되 연조로 계급을 올려주지 않았다. 문교(文敎)를 숭상하고 무비(武備)를 닦으며 검박한 덕을 행하고 사치와 화려함을 없앴다. 20년 동안 백성이 편안하고 물산이 풍부해 창고가 가득 찼다. 해적들이 와서 굴복하고 예의가 바르고 음악이 고르며 (모든 법의) 강령이 서고 조목이 제정되었다.
【674쪽 ? 신왕에게 병권을 가르치고 떠나다】

구매가격 : 30,400 원

오월의 미학 2

도서정보 : 장경화 | 2022-02-1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시대의 예술가 23인이 창조한 오월의 미학

★★★ 『오월의 미학』 1권 이후 10년 만의 신작 ★★★



◎ 도서 소개

전 광주시립미술관 큐레이터가 말하는
우리 시대 대표적 민중미술가 23인 이야기

한국의 리얼리즘 화가들을 소개하는 『오월의 미학 2: 서슬에 새겨진 평화』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전작 『오월의 미학 1: 뜨거운 가슴이 여는 새벽』이 출간된 지 10년 만에 나온 저작이다. 1권 또한 2권과 함께 표지와 본문을 새롭게 단장한 리커버판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1권에서는 30명의 민중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그 경향과 의미를 소개했고, 이번에는 23명의 작가를 추가하여 우리 민중미술의 넓어진 지평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민중미술은 40년이 넘도록 사회, 정치는 물론 생명과 환경, 인권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의 여러 문제를 예술에 녹여왔다. 이와 같은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외국의 미술연구가와 전시기획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민중미술’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무서운 그림’, ‘왠지 거북하고 어려운 미술’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민중미술처럼 건강하게 우리 민족의 정서와 시대 상황을 기반으로 자생하여 시대의 정당성을 외치면서 진정한 현대성을 확보해온 예술형식도 없다. 이 책이 민중미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21세기북스의 책
▶ 오월의 미학 1: 뜨거운 가슴이 여는 새벽(리커버) | 장경화 지음 | 23,000원


◎ 출판사 서평

미술은 감상의 대상이지 해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작품 앞에 서기를 망설인다. 추상미술은 말할 나위 없지만, 구상 계열의 미술품 앞에서도 사람들은 선뜻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한다.

민중미술이라는 장르의 작품들을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주저함에 어색함까지 더해진다. 익숙한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장르의 예술품 앞에서 어떤 걸음걸이를 해야 하는지 더 막막해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출간된 『오월의 미학 2: 서슬에 새겨진 평화』는 민중미술을 대하는 일반인들에게 매우 친절한 지팡이가 될 것이다.

『오월의 미학 2』는 9년 전 출간된 『오월의 미학 1: 뜨거운 가슴이 여는 새벽』의 후속작이다. 『오월의 미학 1』은 광주항쟁 당시의 기억에서 태동해 시대의 불의와 정당성에 맞서는 작품을 주로 다루며 민중미술의 탄생과 발전을 서술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작가들은 이제 우리 화단의 거목이 되어 민중미술이라는 우람한 숲을 만든 산증인이 되었다. 저자는 1권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작가 23인을 일일이 찾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예술 세계를 직접 들여다보고, 일반인들이 민중미술이라는 분야에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즉 전문가들을 위한 전문 비평서가 아니라, 민중미술이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안내하는 친절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의 작업, 합본으로 집대성
화가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감정, 신에 대한 신실한 마음,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열정,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 등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한 편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그들에게 그림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충실한 도구다. 동시에 이렇게 탄생한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저마다의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된다. 관객들은 한 편의 그림 앞에서 울고 웃고 용기를 내고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그림이 역사 속에서 단순히 표현과 감상의 대상이 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그림,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비난하는 그림, 다수에 의한 폭압을 고발하는 그림도 있다. 작금의 서울 모 서점 벽면에 그려진 작품이나 저항의 상징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품들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그림은 때론 해학과 풍자의 방법으로, 때론 사회와 권력에 대한 극단적인 감정을 표출하며 사람들을 일깨우고 선동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 이후 독재에 대한 반작용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예술 운동이 일어났다. 이렇게 탄생한 ‘민중미술’은 광주민주화운동과 6ㆍ10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민중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위로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오월의 미학 2』는 1979년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뜨거운 순간들을 한 필의 붓으로 그려낸 대표적 민중미술가 23인의 예술 세계와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광주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인 저자는 저항 운동이 뜨거웠던 80년대의 순간들부터 지난 30년 동안 민중미술에 대해 연구하고 직접 전시를 기획했다. 이 책은 지금도 어둡고 습기 찬 작업실을 고통스럽게 지키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만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예술적 삶을 걸고 붓을 잡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민중미술가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작가의 뜨거운 애정의 결과물이다. 또한 이번 출간을 계기로 그동안 절판되었던 1권을 함께 출간, 합본으로 묶어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집대성한 의미도 남다르다.

꺼지지 않은 촛불로 남은 오월의 미학
한국 민중미술은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자생적으로 발생한, 진정성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한 장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23인의 작가들은 형식 미학의 모더니즘과 자연주의 미술 등 서구 미학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당시의 미술계를 비판하고, 유신 독재와 광주 학살로 정권을 잡은 이들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진보적 미술인들이다. 이 책에서는 대중에게 오랫동안 거칠고 투쟁적으로만 비쳤던 민중미술이 시대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왔고, 미술사적으로 어떻게 정리되었으며, 이후 자본주의와 환경, 생태, 인권 문제에 어떠한 입장을 취하며 진화해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떠한 자취를 남기고 있는지에 대해 평가한다.

분단 70년을 일으켜 세운 야생미학의 송창, 일그러진 초상이 빚어낸 생명을 그리는 안창홍, 무거운 주제를 고독과 슬픔의 서정에 담아내는 한희원, 서슬에 새겨진 광주의 5월을 그림으로 녹여낸 하성흡 등 한국 민중미술사에서 큰 활약을 보인 작가들의 작품과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부록에서는 한국 민중미술사 연보를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민중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렇듯 저자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5월 광주’의 관점에서 한국 민중미술을 바라보고, 그 연장선상의 시각과 미적 체험으로 한국 민중미술 주요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고자 했다. 그리고 1980∼90년대 군부독재 정권에 쫓겨 숨어 다니고, 더러는 체포되어 고문받고 더러는 작품을 빼앗기며 독립군의 심정으로 투쟁했던 민중미술화가에 대한 깊은 애정과 격려를 담았다.

한국의 민중미술은 지난 40여 년 동안 사회, 정치는 물론 생명과 환경, 인권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와 관계의 문제를 예술에 이입해왔다. 사람들은 흔히 민중미술을 무서운 그림, 왠지 거북하고 어려운 작품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중미술은 시대의 아픔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한, 너무나 현실적이고 지극히 자유로운 예술의 한 장르이다. 세상이 주는 삶의 무게와 현실에 대한 고민을 온몸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민중미술가 30명의 삶과 예술작품을 통해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무리 힘들고 아프고 어려울지라도 그곳에서 희망과 사랑과 온기를 다시금 발견할 만한 여유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송창은 대학시절부터 ‘노동요’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하여 왔다. 시골의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농부의 애환과 한을 흥으로 전환하였던 민속놀이가 주제였다. 그러나 80년 이후 그의 예술관은 시대를 읽는 눈을 훈련시키면서 ‘예술이란 사회와 어떠한 관계를 갖고 접근해야 하는가? 즉, 예술과 사회는 어떠한 관계를 정립시켜야만 하는가? 그리고 동시대성을 어떻게 예술에 반영시킬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에 대해 예술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예술관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1980년 5월 광주’가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화우들과 거듭되는 토론을 해가면서 이념적 논리를 세우던 시기에 같은 생각으로 고민과 토론을 하던 몇몇의 화우들과 함께 ‘임술년’(1982) 그룹을 결성한다.
그의 예술적 태도와 입장은 역사와 시대 앞에 진솔함으로 증언자가 되어야 하는 리얼리즘(realism) 예술론을 존중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경계하며, 현실에 충실한 형상성을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만의 형상성을 이끌어 내는 것에 대하여 미술평론가 성완경 씨는 그의 첫 전시에서 “분단이라는 현실적 주제를 ‘냄새’로 그려 낸다.”라고 평하고, 이를 다시 미술평론가 이영욱 씨는 “놀라운 예술적 직관력을 드러내는 다른 측면으로 ‘냄새’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분단의 생태학적 포착”이라고 규정하였다. 두 사람의 평가는 그가 역사와 시대를 읽어내고 주제를 마주하는 통찰력과 미학적 아우라aura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껴진다는 의미로 읽힌다.

[분단 70년을 일으켜 세운 야생미학 · 송창: 25~26쪽]

1980년대와 90년대의 서울과 광주, 그리고 전국 주요 도시의 광장과 아스팔트 거리가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뜨겁게 달구어질 때, 그는 생계를 위한 삶의 현장과 비좁고 음습한 작업실을 오가면서 붓을 세워가며 투쟁하였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현재적인 모순의 반복과 정당치 못한 불공정의 악순환에 대한 실마리를 온당치 못했던 역사에서 주목하고, 역사를 거슬러 역 추적하는 탐구 활동은 ‘동학’에서 멈추었다. 이는 오늘의 삶이 결코 과거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화두를 마주할 때마다 밀려오는 두려움과 피해의식은 거친 호흡과 신음소리가 되어 붓끝에 모아진다.
구한말, 우리 근대사는 격동의 시간이며 사회?정치적 전환기이자 출발시점인 ‘동학’에 집중된다. 이러한 역사의 전환기에서 근대주의와 식민지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의 주체적 의식은 역사의 정당성으로 한 시대의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역사는 고스란히 민중의 고통으로 이어져 신음과 희생으로 점철되어 한탄의 강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이렇게 근대의 출발이 ‘동학’이라는 고통으로 서막을 열게 되었다. 김재홍의 작품 〈근정전-혁명의 역사, 1994〉는 구한말 청치의 상징이자 민족의 심장부로 ‘동학’의 비운을 함축하고 있다.

[거인의 땅에서 역사의 우물을 긷다 · 김재홍: 39쪽]

박진화의 부친은 전남 장흥 안양면 농협조합장을 역임할 정도의 지도력으로 주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부끄럽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4남 1녀 중 2남으로 출생하여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학업을 마쳤다. 초등학교 시절, 외삼촌의 그림에 매료되어 모사를 시작하고 중?고등시절 미술 선생님의 관심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지만 체력도 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사교적이지도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미술선생님의 도움으로 늦은 밤까지 학교에 홀로 남아 데생과 수채 그림을 그려 미술대학에 입학한다.
1979년, 진보지식인 그룹에서는 한반도의 총체적인 문제는 분단과 계급에 관한 이념적인 논쟁을 시작점으로 보고 있었으나 그의 시점에서는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1983년경, 뒤늦게 ‘광주 5?18’에 관한 구전과 자료를 접하고 한국 근현대사와 분단의 질곡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는 이 시기 이후 점차 의식 있는 지식인이자 화가로 민중미술을 시작한다. 거칠고 어두운 그림으로, 현실사회와 역사비판을 예술이라는 무기로 적극적으로 작품제작을 했으나 진보미술계에서는 그에게 쉽게 존중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실망과 아쉬움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수년간 칩거하다 다시 강화도에 정착하면서 거친 그림에 전념한다. 그의 그림은 분단의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가슴에 묻어가며 강화의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임진강과 분단의 사유를 미학언어로 담아가고 있다.

[강화의 춤추는 꽃, 분단에 새기다 · 박진화: 61쪽]

그리고 이 시기, 기념비적인 회화적 성과를 올리게 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가족사진〉과 1980년대 들어 작업한 〈봄날은 간다〉 연작은 과거 근현대사의 이름 없는 자들에 대한 기록으로, 개인과 그 가족에 집중한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민중인 그들은 목숨을 내려놓고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군이거나 그 가족들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군부 독재에 맞서 고문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민주투사였거나 그 가족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역사와 시대의 중심에 서보지도 못하고 희생된 민중들이다.
이렇게 불안정한 역사의 피지배계급은 작품에 등장하는 사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강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양식적으로는 자그마한 사진 자체를 작품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사진을 캔버스에 확대한 후 탁월한 묘사력으로 회화적인 재구성을 했다. 오래된 사진 속의 인물은 눈을 검게 칠하거나 감고 있어, 영혼이 없이 맞닥뜨린 죽음을 이미 받아들였거나 또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역사를 망각하고자 눈을 감고 있다. 작품 속의 인물들에서는 현실의 고통과 궁핍, 슬픔과 아픔, 배고픔과 상실들로 이루어진 막다른 현실을 넘어서고자 비극의 삶을 초월하여 공존하기 위한 삶의 긴장감이 읽힌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의 예견된 죽음을 아무런 저항 없이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탈의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일그러진 초상이 빚어낸 생명 · 안창홍: 93쪽]

1980년 5월, 이명복은 서울에서 미술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는 ‘광주는 북한군 진입과 폭도에 의한 소요사태’라고 했다. 언론보도가 모두 거짓인 줄 직감할 수 있었을 즈음 서울의 거리와 광장에서도 송화가루에 눈물을 섞어 날려 보내야만 하는 날이 많아졌다. 느글거림의 무거운 시절이었다.
그에게 광주를 방문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1980년 7월이 되어서야 광주 여행일정을 마련할 수 있었다. 광주의 금남로와 무등산에 올라가 본 인상은 죽은 유령의 도시, 침묵의 도시, 공포가 휩쓸고 간 도시로, 거리에는 시민의 활기가 없고 광주음식은 그의 혀끝에서 비린내로 다가왔다.
작품 〈그날 이후, 1983〉는 민중미술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작한 초기작품으로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에게 관심을 끌었던 작품 중 하나다. 작품의 배경은 중학교 시절부터 지켜봐왔던 이태원의 탐욕이 넘쳐흐르던 거리에 미군과 어린 양공주가 있는 풍경이다. 시대를 바라보는 예리함과 상상력이 절제된 것은 역사로부터 강요받은 것이다. 이는 군부독재정권과 독점적 자본주의의 야합을 통해 체류하는 강대국의 군인에 대해 이름 없는 민초의 끊임없는 식민주의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이태원을 통한 시대의 어두움은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다만 강대국의 힘과 자본주의의 깊은 그림자는 뼛속까지 침투하여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결국 〈그날 이후〉는 이태원의 풍경을 그렸으나 단지 이태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태원을 통해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 몸에 새기는 문신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아픔을 견디어 내기를 요구받는 시대의 슬픔을 역사에 고발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동안 ‘그날 이후 연작’을 제작했다.
그는 ‘5월 광주’라는 주제에 시대를 살아가는 화가로 그 책무감이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늦게나마 광주에 대한 기운과 인상으로 5월, 1990>을 제작했다. 태극기가 걸려 있는 화려한 방의 샹들리에는 무거운 그림자를 중첩시켰으며, 방의 두터운 콘크리트 외벽은 가시가 돋아 있다. 권력과 자본의 화려함을 화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하단에서 죽은 자는 총검에 심장이 찔렸고, 늑대 3마리는 뼈가 남을 때까지 주검을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어둠속의 어린이는 이러한 광경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작품에서 진회색 톤의 무거움과 황금빛의 대조는 극한 상황을 설명하고 ‘5월 광주’라는 상징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다만 작품에 광주의 형상은 깊숙한 곳에 묻어둔 채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담았다고 본다.

[이름 모를 바람에 남겨진 생명의 흔적 · 이명복: 128~130쪽]

이러한 사회상황을 주시하면서 노동운동을 시각매체운동으로 확산시켜가던 중 1989년 7월, ‘임수경의 평양축전’을 놓치지 않고 5년간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제작했다. 1990년대 대표작인 〈분단의 기억〉은 44년 만에 남북통일의 씨앗을 뿌린 사건으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형 캔버스 중앙에 ‘임수경’ 양과 ‘문규현’ 신부를 중앙에 배치하여 한국현대사에 존재해 왔던 주요사건의 상징적 이미지를 담아내었다. 그리고 6.25 전쟁에 고아가 된 소년, 광주 5.18의 계엄군과 아버지의 영정을 든 어린이, 6.10 항쟁의 화염병과 경찰, 김재규, 4.3 제주양민 학살, 삼청교육대 등 과거 부당한 권력의 역사적인 사건을 서술적으로 나열했다. 또한 그 이미지는 같은 화면에 사실적인 정밀묘사방식의 인물재현도 있지만 각 시대의 주요 사건을 투박한 선으로 그린 거친 형상도 있어 크게 대비되면서, 색상도 붉은 색상과 푸른색, 그리고 진회색으로 톤을 이루고 있다. 동일한 화면에 서로 상반된 이미지의 병합과 교차로 격렬했던 긴장감과 함께 시각적 효과를 높인 것이다.
작품 〈분단의 기억〉은 한반도 분단이라는 무거운 시대 상황과 통일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담아내기 위해 부당한 권력의 폭력을 함께 녹여냄으로써 더욱 굳건하게 다가온다. 이렇듯 주제를 담아내는 방식을 ‘환유법’이라는 문학적 표현기법을 인용하여 시각화한 것은 독창적이고 성공적인 화법이라 볼 수 있다.

[시대에 맞선 붓 끝은 신자유주의를 해명하다 · 김영진: 245~246쪽]

황영성의 어린 시절은 한국동란으로부터 출발한다. 6?25 동란은 칠흑의 두려움과 잔혹함, 그리고 이념전쟁으로, 그는 고향 강원도 철원과 부모님을 뒤로하고 어린 두 동생과 함께 1?4후퇴 때 남으로 내려온다. 그의 나이 10살이었다. 이렇게 그는 한국현대사의 고통과 함께 출발한 불운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세상을 마주해야 했다. 그는 동생들과 서울의 친척집에 잠시 기거하다 광주로 내려와 전쟁고아로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중학교까지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하고 ‘광주사범’에 입학하여 초등학교 선생을 꿈꾸었고, 그림 그리기가 즐거워 미술반 활동에 열중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처음 부임한 ‘영등포초등학교’ 시절, 조선대학교의 ‘임직순 교수’를 숙명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큰 전환점이 되어, 조선대학교수로 정년퇴임한 이후 오늘까지 작품생활을 하게 되었다. 40여 년 동안 대학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체험했던 예술에 이념적으로 고통받거나 착오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노력은 한국미술계 곳곳에 훈훈한 교훈으로 남는다.
예술에는 작가의 삶과 인품이 어떠한 유형으로든 고스란히 담겨 있어 거울이자 시대정신이며 정서인 것을 증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의 예술에서는 삶과 인품의 체취가 묻어나기에 그가 살아왔던 시대의 미적 정서를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술은 시대가 바뀌어도 존중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예술세계는 인품에서 우러난 따뜻한 가족 공동체가 주제이고, 그러한 세계관을 확장시켜가는 미학어법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그의 조형성을 계속 변화 발전시켜 왔다.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는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으며 항상 청년작가의 정신으로 새로운 재료와 조형언어를 변화시켜 온 것이다.

[광주 정신, 사랑과 생명의 자유로운 미학 여행 · 황영성: 308~309쪽]

하성흡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새겨진 ‘5월 광주’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무감은 그를 끈질기게 따라 다녔다. 특히 ‘광주민주항쟁’ 20주기(2000년) 이후 기념이 되는 해에는 더욱 충동이 심했을 것이다.
매년 5월 관련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작품을 남기긴 했으나, 특히 그가 목도한 도청 앞의 발포가 시작되었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그는 야심찬 〈1980년 5월 21일 발포〉라는 명제의 대작을 연이어 제작(2010, 2017)한다. 도청 앞에 대치 중인 공수부대와 시민 시위대, 그리고 군인들의 총기 난사로 아스팔트에 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시민,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총기를 난사하고 삐라가 뿌려지고 있다. 도청 주변 곳곳은 화염에 싸여 있고 건물 옥상에는 총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금남로 시위자들과 함께 급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는 이렇게 급박한 발포 현장의 상황을 사실대로 기록했다.
〈1980년 5월 21일〉 연작을 비롯한 거의 모든 작품도 대작 중심의 ‘부감법’으로 제작되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더 넓게,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는 세계관이자 예술관이다. 그는 시대를 읽고 관통하는 날카로운 예지력으로 세상을 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수묵화는 특성상 어려운 예술 양식이다. 대학에서 올곧게 전공을 해도 계속해서 필법과 먹을 익혀가야만 한다. 이러한 수묵화는 80년대 후반에 들어 서서히 미술시장에서 밀려 점차 외면받아 전업화가에게는 어려움이 커져갔다. 민주화의 열풍과 함께 자본의 논리와 포스트모던 예술 이념은 무차별적으로 우리의 생활 깊숙하게 자리하면서 수묵화 양식은 미술시장의 진부함으로 치부되었다. 시대의 문화적 정서변화라고 이해하더라도 우리 선조가 남긴 전통의 가치이자 정신이요 삶의 자취를 우리 스스로가 외면하는 꼴이 아니던가? 우리 자신의 문화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부족한 일면을 스스로 드러내는 문화사대주의의 부끄러운 민낯일 것이다.

[서슬에 새겨진 5월의 증언들 · 하성흡 327: 339~3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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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한글로 읽는 교양세계사

도서정보 : 박찬영 | 2022-02-04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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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세계사 이야기
영어 세계사로 시각을 넓히다

『영어와 한글로 읽는 교양 세계사』는 교육적이면서도 흥미롭다. 다른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는 깨알 같은 정보들이 가득하다. 세계사의 기본 지식을 알려주면서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이 책은 당신이 몰랐던, 그러나 꼭 알아야 할 역사 지식을 제공한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역사적 사건과 이야기를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고 지나간 시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 배우는 역사책은 학생은 물론 성인들에게도 최고의 역사 지침서이다. 세계 역사를 여행하면서 온 세상이 공부의 마당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5,000 원

해수면의 비밀

도서정보 : 遼水 金鐘文 | 2022-02-04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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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세계사에서 18세기까지도 미대륙과 아시아의 중간 베링해가 육지였음은 감추어졌다. 18세기 서양에서 제작한 지도들 중 베링해를 육지로 표현한 지도들보다 바다로 표현하거나 모호하게 표현한 지도들이 몇배 이상으로 많다. 두 부류의 지도들을 비교·분석해 보면 베링해를 육지로 표현한 지도들은 일관성이 있고 정확했다. 반면 베링해를 바다로 표현한 지도들은 일관성이 없고, 심지어는 동일 연도에 동일 제작자의 지도들이 서로 다르게 제작됐다. 베링해는 18세기까지도 육지였다. 이는 수백 장의 지도들이 명백히 증거하는 사실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마무리’ 중 -

구매가격 : 12,000 원

월간 <샘터> 2022년 2월호

도서정보 : 샘터 편집부 | 2022-01-26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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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022년 2월호는 ‘당신의 온기로 기억되는 모임’이란 테마 아래 다채로운 기사들을 실었어요. 베스트셀러 에세이스트 하태완의 감성 가득한 수필, 홈메이드 핑거푸드 레시피, 가성비 우수한 원테이블 맛집들까지!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과의 건강하고 즐거운 모임을 즐기고 싶다면 이번 특집코너에 주목해주세요.
‘셀럽의 행복라이프’에서는 쇼미더머니10에서 4위를 기록한 래퍼 쿤타를 만났습니다. 쿤타로서의 투철한 음악관과 안태현으로서의 가슴 뭉클한 삶까지 담았습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바리스타의 꿈을 펼쳐가는 열혈청년 추의령 씨는 ‘슬기로운 로컬생활’에서, 경기도 평택에서 고령의 시어머니를 모시며 봉사자로서의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 공부벌레 며느리 김미경 씨의 사연은 ‘오손도손 한 끼 밥상’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구매가격 : 3,420 원

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

도서정보 : 다마키 도시아키 | 2022-01-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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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중심을 관통하는 13개 명장면
‘역사의 급소’를 통찰하면 세계사의 장대한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사에도 ‘급소’가 있다. 상대의 급소를 효과적으로 가격하면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듯 역사의 급소를 날카롭게 통찰하면 방대하고 복잡한 세계사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다. 이 책은 세계사 중심부를 관통하는 13개 명장면과 ‘역사의 급소’에 해당하는 통찰력 있는 질문?답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테면 이런 식이다. 첫째,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에도 오랫동안 인도에 비해 크게 뒤처졌던 영국의 면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영국은 면 산업의 주 원료인 목화가 재배되지 않는다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18~19세기에 영국은 모든 대륙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해양제국이었기에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노예를 수송하고, 아메리카에서 목화를 싣고 와 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그것을 아시아에 내다 파는 강력하고도 효율적인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구축하여 최강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과 메커니즘은 전 세계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갈등과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켰다.

둘째, ‘전국시대에 일본이 유럽의 군사혁명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예수회’의 무기 판매 덕이었다는데, 과연 사실일까?’ 충격적이게도 사실이다. 16세기에 일본은 유럽의 근대적 군사혁명을 벤치마킹하여 몇십 년 만에 대량의 소총을 생산하는 등 군사혁명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그 성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한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였다. 일본은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속도로 유럽 군사혁명의 성과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비밀을 풀 열쇠는 ‘예수회’에 있다. 예수회는 종교단체의 얼굴과 함께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무역 상인의 얼굴로, 그들이 일본에 판매한 주요 상품이 ‘무기’였다.

구매가격 : 11,7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