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하는 의사들

도서정보 : 곽경훈 | 2021-05-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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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가 아니다”

문화·예술이 융성하던 르네상스 시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에 반기를 든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이발소 외과 의사와 산파, 약초꾼을 불러 경험을 나누게 하고 ‘수백 년 전의 케케묵은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라는 내용을 설파하고 다녔다. 당시까지의 의학은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하고 갈레노스와 이븐 시나가 집대성한 ‘체액설’에 기반했다.
사내는 이에 반기를 들었다. 직접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질병을 분류하고 규명하여 환자를 치료하라고 주장했다. 근거 중심주의에 기반한 현대 의학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급기야 1527년 6월 24일, 바젤 대학 정문 앞에서 갈레노스와 이븐 시나의 책을 불태운다. 이 사건으로 의학은 세상 만물을 설명하는 ‘철학’에서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하여 질환을 분류하고 치료하는 ‘과학’이 되었다. 따라서 현대 의학의 아버지는 히포크라테스가 아니라 대가들의 서적을 불태운 반항하는 의사, 파라켈수스다.
혁명의 불꽃을 당긴 이단자 파라켈수스로 시작하여 에이즈 예방을 위해 보수 세력과 맞선 독실한 기독교인 보건총감 에버렛 쿱까지,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 12명의 이야기를 엮었다. 그러나 모든 인물이 영웅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고결한 영웅도 있지만, 편협한 인간, 끔찍한 국수주의자도 있다. 의학사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을 만들어 낸 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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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 교양

도서정보 : 요시카와 헤이스이 | 2021-05-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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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뒤에서 엿본 조선 ‘기생이야기’ !!
교양적 관점에서 보면, 최고 등급의 유곽(大籬)과 태부(太夫)(예능인)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오늘날 기생 중에서도 시문(詩文)과 서화에 뛰어나고 기생을 판다고 해서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기생들이 있기 때문에 과거를 이야기하는 데는 적합하지만~(중략) 젊은 기생을 ‘장악원(掌樂院)’에서 양성하여 매월 관원이 시험 성적순으로 채용한 뒤 순서에 따라 다시 수개월을 거쳐 진정한 관기로 삼는다. 또한 기생을 패(牌), 2패, 3패로 나누고 다시 기생의 기량에 따라 각 패의 등급을 무리(群) 또는 조(組)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 1패를 2패가 본격적 기생이며 3패는 준(準)기생, 왕궁에서 일하는 관기는 모두 1패에 속하며 열녀기(烈女妓)라 불리고 독신자에 한한다. 요즘 일본인 객석에는 일본말을 아는 기생이 거의 없다. 그러나 경성에서도 일본말을 아는 기생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그녀 역시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선배들에게 ‘우리(私達)’, ‘당신(貴方)’, ‘반했소(惚れな)’ 등 어리석은 말을 배우며 득의양양했다. 권번(券番)은 물론 각 지방마다 있지만, 경성에는 4개의 권번인 한성(漢城), 대동(大同), 한남(漢南), 조선(朝鮮)이 있다. 지도구역에 따라 구분하지는 않는다. 경성지역 출신의 기생은 한성(漢城)권번, 서선(西鮮)지방은 대동권번, 남선(南鮮)지역은 한남권번으로 출신지역에 따라 소속을 구분하였다.<‘妓生物語’(1932) 중에서 일부만 소개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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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 여성의 탄생

도서정보 : 케이트 커크패트릭 | 2021-05-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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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삶과 사상을 총체적으로 다룬 탁월한 전기!
우리는 시몬 드 보부아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에게는 환상이 아니라 꿈이 있었다. 아주 담대한 꿈.
다행히도 내 힘으로 내 삶을 성취했다.”
- 시몬 드 보부아르

관습적인 결혼을 꿈꿨던 부르주아 출신의 명석한 소녀가 어떻게 20세기 페미니즘의 선구자가 되었을까?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던 무명의 철학 교사가 어떻게 전 세계 여성의 삶에 변혁을 일으킨 ‘페미니즘 성서’를 쓸 수 있었을까?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이 유명한 말로 시몬 드 보부아르는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대표작 《제2의 성》은 프랑스 가부장 사회에 떨어진 시한폭탄이었다. 이 책은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알베르 카뮈, 프랑수아 모리아크 등 남성 지식인들은 보부아르의 철학적, 문학적 자질을 의심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솔직한 경험을 다룬 전례 없는 저작으로 받아들였다. 케이트 밀릿,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베티 프리던 등 후대 페미니스트들은 이 책에 힘입어 1960년대 성 혁명을 일으켰다. 보부아르는 20세기 여성의 목소리였고, 여성이 아내나 어머니로 살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보부아르와 장폴 사르트르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파격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그들은 서로를 가장 중요한 상대로 여기되 자유로운 연애를 허용하는 계약을 맺었고, 51년 동안 삶과 사유의 동지로서 함께했다. 하지만 보부아르에게는 계약의 대가가 따랐다. 커플의 대외적 이미지는 보부아르의 사상과 도덕성을 깎아내리는 데 이용되었다. 20세기 내내, 심지어 오늘날까지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을 전파한 독창성 없는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기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정의한다. 저자는 최근 새롭게 공개된 보부아르의 일기, 편지, 논평, 인터뷰를 바탕 삼아 보부아르가 자기만의 독자적인 사상을 꾸준히 전개해 왔음을 보여준다.

보부아르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관습과 제약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가?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사랑받고자 하는 ‘나’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나’ 사이에서 분열하는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을 포착하고자 했다. 《제2의 성》은 바로 보부아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쉽게 직업을 가질 수 없던 프랑스 사회, 두 차례의 세계대전, 급진적 페미니즘의 시대를 관통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 전기는 보부아르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어떻게 관습과 제약에 맞서 싸웠는지를 다룬다. 현모양처 혹은 수녀가 되고자 했던 소녀가 어떻게 탁월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사상가가 될 수 있었는지, 정치적 사건보다 책 속 인물에 더 관심이 많던 여성이 어떻게 거리의 지식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마침내 이 전기에서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보부아르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
“지금까지 나온 보부아르 전기 중 가장 훌륭하다.”_ STANDPOINT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은 옥스퍼드대학 철학, 윤리학 교수인 저자 케이트 커크패트릭의 《Becoming Beauvoir : A Life》(2019년)를 완역한 책이다. 그동안 보부아르의 전기는 미국 작가 디어드레이 베어가 말년의 보부아르를 직접 인터뷰하여 집필한 《Simone de Beauvoir: A Biography》(1990년)가 가장 많이 읽혀 왔다. 하지만 1986년 보부아르가 세상을 떠난 뒤 보부아르의 생애를 좀 더 명확히 보여주는 새로운 출판물과 자료가 2018년까지 쏟아져 나왔다. 보부아르에 관해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끌어내는 이 책은 보부아르의 삶과 사상을 총체적으로 다룬 최신의 전기이다. 저자는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와 다른 연인들에게 보낸 편지, 학생 시절 일기, 초기 철학 에세이, 잡지에 기고한 글 등 오랫동안 비공개 상태였던 자료들과 보부아르의 양녀 실비 르 봉과 한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삼아, 독자적인 실존주의 철학을 펼친 사상가이자 20세기 여성 해방 운동의 선구자였던 보부아르의 일생을 완벽하게 되살려냈다. 어린 시절에 쓴 습작 소설부터 대표작 《제2의 성》과 《레 망다랭》을 거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철학 에세이와 노년에 쓴 회고록까지 보부아르의 모든 저작을 꼼꼼하게 연구한 저자는 20세기의 급변하는 시대 상황과 맞물려 보부아르의 삶과 사상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를 만나기 전부터 자유의 철학을 전개한 실존주의 사상가로 성장했음을 살펴보고, 젊은 시절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었던 보부아르가 《제2의 성》 출간 후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발전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여성이라는 조건에서 인간은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가?”
- 여성 해방의 교과서 《제2의 성》

“《제2의 성》이 성 정치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묻는 것은 태양이 지구를 위해 뭘 했는지 궁금해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보부아르의 대표작 《제2의 성》(1949년)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성에 대한 인식의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온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책이 찬사를 받게 된 것은 세상에 나오고 수십 년이 지나서였다. 《제2의 성》은 출간 당시 극심한 공격을 받았다.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남성 지식인들은 “프랑스 남성을 우습게 만들었다.”, “보부아르의 글이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며 비판을 퍼부었다. 바티칸 교황청은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가톨릭 금서 목록에 올렸다.
《제2의 성》이 출간된 1949년은 프랑스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지 겨우 4년밖에 되지 않은 해였다. 1965년까지 여성들은 남편의 동의가 없으면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은행 계좌를 열 수도 없었다. 자유롭게 이혼할 수 없었고 피임과 낙태를 할 권리, 자기가 낳은 자녀에 대한 권리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시대에 삼십 대 후반의 보부아르는 ‘여성이라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물음을 품게 된다.
“여성에 대한 책을 쓰기 전에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렇지만 …… 추상적 토론에서 남자들에게 이런 말을 신물 나도록 듣곤 했다. “당신이 여자라서 이러이러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나의 유일한 방어는 “그게 진실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라고 대꾸함으로써 나의 주관성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당신이 남자라서 나와 반대로 생각하는 겁니다.”라고 받아치기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다들 남성은 특수성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누린다. - 321~324쪽

그동안 남성 지식인들은 ‘인간/남성’과 ‘인간 조건’에 대해서 썼다. ‘여성’에 대해서는 무엇을 썼나? ‘여성의 조건’이라는 것도 있는가? 보부아르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이론이 여성의 열악한 현실을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다고 보고 《제2의 성》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로 ‘여성’을 새롭게 고찰했다. 보부아르는 ‘인간’과 ‘인간의 여자’로 나누는 ‘권력’을 탐구하면서 남성 ‘주체’가 여성을 ‘타자’로 규정하고 지배해 왔다고 주장했다. 《제2의 성》은 보부아르와 주변 여성들이 겪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 삼아 철학, 생물학,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유년 시절부터 사춘기, 성생활, 결혼, 임신, 모성, 레즈비어니즘, 매춘, 노년까지 그동안 남성 지식인들이 가치 없다고 여겼던 여성들의 ‘진짜 삶’을 다루었다.
《제2의 성》은 참정권 획득 이후 ‘이제 여성은 무엇을 바랄 것인가?’를 두고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던 서구 여성주의 운동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여성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의 역할을 강조하여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문화적 성(Gender)을 구분하는 현대 페미니즘 철학의 초석을 세운 것이다. 20세기에 《제2의 성》은 ‘세계 내 여성의 위상’을 탐구해보고 싶은 독자가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출간된 지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전 세계 여성과 페미니스트에게 영감을 주는 페미니즘의 고전이다.

“사르트르는 나를 이해하고, 내다보고, 사로잡았다.”
- ‘세기의 커플’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지식 권력 커플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르트르가 주로 그 ‘권력’에 기여하고 보부아르는 ‘커플 관계’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보부아르의 이력에는 늘 사르트르의 파생적 분신, 충직한 제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녀의 철학적, 정치적 사유 모두 사르트르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언급이 따라붙었다. 기념비적 저작인 《제2의 성》조차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1943년)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받았다. 심지어 보부아르의 전기 작가와 후대 페미니스트들도 두 사람은 도저히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세기의 커플이라는 전설을 받아들여 왔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이 보부아르의 가장 흥미로운 면은 애정 생활에 있다는 오해를 답습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유를 전개한 철학자 보부아르의 면모를 가려버렸다고 지적한다.

보부아르는 생애 후기 자서전에서 자기 능력을 의심하는 비판에 맞섰고 사르트르를 만나기 전부터 독자적으로 존재와 무를 사유해 왔으며 사르트르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지도 않았다고 명쾌하게 밝혔다. 그러나 보부아르의 독립성과 독창성에 대한 주장은 ‘사르트르적인’ 것 가운데 일부는 사르트르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그녀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간과되었다. - 23쪽

두 사람은 서로 원고를 서슴없이 보여주고 격려와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보부아르에게 사르트르는 “견줄 데 없는 사유의 친구”였고, 지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정서적인 측면이나 성생활 등 ‘모든 면에서’ 보부아르에게 유일한 남자는 아니었다. 저자는 보부아르가 세상을 떠나고 출간된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1990년)와 1997년, 2004년,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공개된 다른 연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 삼아 이러한 사실을 드러낸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와 계약 커플 초기 십 년 동안에도 다른 연애 상대가 있었고 그 남자와 죽을 때까지 가깝게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중의 상상 속에서 최고의 사랑이었던 사르트르가 밀려났다는 점에서 이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 21쪽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보부아르는 독자적으로 철학서를 집필하고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을 비판했다. 사르트르의 첫 소설 《구토》(1938년)를 추상적인 철학 논문이 아닌 소설 형식으로 쓰게 된 것도 보부아르의 아이디어였다. 사르트르는 생애 내내 보부아르의 엄정한 비판이 자기 저작에 미치는 영향력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생각이 구체화되기 전에도 보부아르에게만은 말할 수 있었지요. …… 사유가 형성되는 과정이라도 그녀에게 다 내보였습니다. 내가 아는 나 자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아는 사람은 보부아르 한 사람뿐입니다. 참으로 찾기 힘든 완벽한 대화 상대죠. 나의 유일한 행운이에요.” - 466쪽

“스무 살 무렵 개인적인 일기에 써 두었던
존재와 무의 기본적인 충돌은 내가 쓴 모든 책에 따라왔다.”
- 독자적인 자유의 철학을 전개하다

젊은 시절 보부아르는 개인이 삶을 주도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을 제외한 타인은 실재하지 않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1940년대는 보부아르의 사유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1943~1947년에 펴낸 책들은 보부아르의 도덕적·정치적 참여를 보여준다. 보부아르는 자신이 찾은 답을 에세이, 희곡, 소설이라는 문학적 형식으로 표현하여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시험하고자 했다.
첫 소설《초대받은 여자》(1943년)는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새로운 방식의 철학하기”라고 호평했고 작가로서 명성을 안겨주었다. 철학 에세이 《피로스와 키네아스》(1944년)와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1947년)에서는 우리가 타인들과 맺는 관계를 정의했다. 타인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과 나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 이 상충하는 욕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보부아르의 실존주의 윤리학의 핵심 질문이었다. 우리는 좋든 싫든 타인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고, 이 사실이 함축하는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보부아르의 주장은 사르트르의 자유의 철학과 명확히 구별된다.

보부아르는 《존재와 무》의 자유 개념을 비판한다. 보부아르가 볼 때 홀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그가 자기 자신으로 만든 것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슬로건에 보부아르는 혼자서, 혹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 자신을 만들 수는 없다고 답한다. “우리는 오직 우리 삶 속의 타자들 때문에 우리가 될 수 있다.” - 311쪽

“전쟁이 역사의 힘을 깨닫게 해주었다.”
- 파리의 앙가주망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통에 올랐다. 1939년 프랑스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자 사르트르는 전장으로 떠났다. 보부아르의 평정심은 무참히 무너졌다. 정치적 사건보다 자신의 정신 세계를 탐구하는 데 열중하던 보부아르는 점령기 파리에서는 예전처럼 역사와 현실에 눈감은 방관자로 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보부아르의 사상은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담론의 성격을 띠게 된다.
1945년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공동으로 창간한 시사 평론지 〈레 탕 모데른(Les Temps Modernes, 현대)〉 첫 호가 발행되었다. 진보 지식인들의 문학, 정치, 철학 대담을 주로 실은 이 잡지는 세계의 다양한 쟁점에 관해 ‘제3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잡지를 통하여 보부아르는 시대의 당면 과제에 집중하는 참여 지식인이 될 수 있었다. 특히 보부아르는〈레 탕 모데른〉의 지면을 통해 프랑스가 은폐한 알제리인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사에 항의했다.

1955년 가을에 알제리 전쟁이 극심해지자 프랑스는 인종 문제와 식민주의 문제로 분열했다. 알제리도 독립을 원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5월에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패배하고 모욕감에 빠져 있었다. 제국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자면 알제리를 순순히 내어줄 수 없었다. 보부아르는 당혹감, 아니 혐오감을 느꼈다. 프랑스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다. 〈레 탕 모데른〉은 일찍부터 알제리 독립을 지지해 왔다. 다시 한번 반(反)프랑스파, 매국노라는 욕을 먹어야 했다. - 374쪽

인종 차별 문제를 자전적 소설로 그려낸 리처드 라이트와 알제리민족해방전선에 몸담고 있던 프란츠 파농 두 흑인 작가와의 만남도 사유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들의 생애와 작품은 상층 부르주아 집안 출신의 백인이자 동세대에서 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수준 높은 철학 교육을 받은 보부아르가 계급, 인종, 교육의 특권을 누려 왔다는 점을 제대로 바라보게끔 도와주었다. 보부아르는 문화는 특권이고 지식인들이 문화를 누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게 됐다.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관련해 자신의 위상을 재고하고 성찰하는 에세이 세 편을 묶어 출간하기도 했다.

1955년에는 세 편의 에세이가 《특권》이라는 제목으로 묶여서 나왔다. 세 편을 관통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특권을 누리는 자들은 자기들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 그들은 자기네 권리가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권리를 행사했다. …… 세 번째 에세이는 문화라는 특정 사례를 분석한다. 보부아르는 여기서 문화가 특권이라고 말한다. 많은 지식인이 다른 특권층과 마찬가지로 덜 운 좋은 이들의 삶을 망각하는 죄를 저지른다. - 374, 375쪽

“나도 낙태를 한 여성임을 선언합니다.”
- 현대 여성주의 운동의 선구자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낙태 금지법에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2020년 12월 31일 한국에서 사실상 ‘낙태죄’는 폐지되었다. 임신 중지로 인해 여성들이 처벌받지 않는 날이 오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반세기 전 프랑스에서 보부아르는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 한복판에 있었다. 프랑스에서 피임은 1967년에 합법화됐지만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었다. 1960년대까지 가족 계획은 금기시되었고 피임약 판매도 법적으로 제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안전한 낙태는 둘째 치고 낙태 자체를 하기도 매우 어려웠다. 보부아르는 불법 낙태 시술 후 감염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많이 보았고,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글을 썼다.

1959년 가을에 보부아르는 가족 계획과 산아 제한 관련 책에 머리말을 썼다. 보부아르는 이 분야에서 탁월한 논객이 되어 가고 있었다. …… 여성은 임신 가능성을 합법적이고 안전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부아르는 묻는다. “지금의 경제적 여건에서 언제고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한 번 더 한다면 일에서 성공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즐겁게 아이들을 키우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서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는가?” - 395, 396쪽

보부아르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여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낙태 합법화 운동을 열렬히 지지했다. 자기 집을 모임 장소로 내어주며 선전 운동을 조직했고, 수천 명의 여성과 함께 낙태 합법화 시위에 참여했다. 1971년에는 343명의 여성에게 서명을 받아 여성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낙태 시술을 받을 권리를 옹호하는 “나도 낙태를 한 여성입니다.”라는 내용의 ‘343인 선언’을 발표했다.

“프랑스에서 매년 1백만 명의 여성이 낙태를 합니다. 의료 시설에서는 낙태가 비교적 간단한 시술이지만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열악하고 미심쩍은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비밀리에 낙태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1백만 명에 대하여 침묵해 왔습니다. 나도 그 1백만 명 중 하나임을 선언합니다. 나도 낙태를 한 여성임을 선언합니다.” - 439쪽

1972년에는 낙태를 했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선 소녀를 석방하라는 서명에 동참하여 재판을 승소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3년 후인 1975년 프랑스에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베유 법’이 제정되는 데도 보부아르의 공헌이 컸다.

1971년 7월에는 ‘슈아지르(choisir, 선택하다)’ 운동의 의장이 되었다. 슈아지르의 목표는 세 가지였다. 첫째, 여성에게 성과 피임을 교육한다. 둘째, 프랑스에서 1920년에 제정된 낙태 관련 법을 개정한다. 셋째, 이미 낙태를 한 여성들을 무상 변론한다. …… 보부아르는 “공식 허가받은 피임법을 좀 더 많이 이용하게 해서 낙태와 무관해지게” 하고 싶었다. 보부아르의 낙태 옹호는 ‘선택’뿐만 아니라 권력, 책임, 정의의 문제까지 불러일으켰다. - 449~453쪽

“일을 하고 글을 쓰는 삶은 절대 포기 못한다.”
- 작가로서 명성을 얻다

보부아르는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인기 작가였다. 전후 냉전 시대로 접어든 프랑스를 배경 삼아 의심과 희망에 매달리고 씨름하는 지식인들의 갈등과 사랑을 다룬 소설 《레 망다랭》(1954년)은 대단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제2의 성》 때와는 다르게 모두가 이 소설을 극찬했다. 출간 첫 달에만 4만 부가 팔렸고, 보부아르는 여성으로는 세 번째로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보부아르는 자전적 글쓰기에서도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다. 《견실한 젊은 여성의 회고》(1958년), 《생의 한창때》(1960년), 《상황의 힘》(1963년), 《결국에는》(1972년)까지 총 네 권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보부아르는 회고록을 통해 생애 내내 자신을 향해 쏟아졌던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자신이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글쓰기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를 바랐다. 여성들에게 보부아르의 글은 어떤 상황에서든 여성도 관습과 편견에서 벗어나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목소리였다.

회고록 출간 후 보부아르의 독자층, 독자들과의 관계는 크게 변했다. 이때부터는 “보통의 프랑스 여성들”이 시몬 드 보부아르를 가깝게 느끼고 그녀에게 감정을 토로하거나 사적인 이야기까지 털어놓곤 했다. …… 수백 명의 여성 독자들이 아내나 어머니로서 이뤄낸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기 인생의 “정당화”를 원하고 공허를 느낀다는 사연을 보내왔다. 보부아르는 십 년 이상 일부 독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 세상을 자기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생 계획을 세우라고 격려했다. - 385, 386쪽

보부아르는 여성으로서 타자임을 느꼈고 그 점이 《제2의 성》 출간에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타자임을 느꼈다. 보부아르는 늙어 가고 있었다. 보부아르는 노년을 철학적 분석이 부족했던 주제라고 보았다. 마지막 이론적 저작 《노년》(1970년)에서 자신과 주변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생물학, 민족학, 역사학적으로 노년을 탐구했고, 노인 차별과 성차별이 얼마나 자주 결합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헌신적인 가톨릭교도 어머니와 방탕한 무신론자 아버지의 대립은 보부아르의 저작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행동이 점점 엇나가는데도 현모양처 역할을 계속했다. “딸들은 현실에서는 보상 없이 수고만 하는 역할이 신격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딸들은 그런 어머니처럼 살기를 원치 않는다.”(《제2의 성》) 어머니와 사별한 경험을 쓴 에세이 《아주 편안한 죽음》(1964년)에서 보부아르는 죽어 가는 어머니에게서 느낀 깊은 연민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1965년 사르트르는 인터뷰에서 이 책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으며 보부아르가 “매우 훌륭한 작가”라고 말했다.

“보부아르는 특히 《레 망다랭》 이후로 그 자체로 발현하는 그 무엇을 성취했습니다. 내가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회고록들과 《아주 편안한 죽음》에서 그 점이 여실히 드러나죠. 보부아르와 나는 다릅니다. 나는 감정적인 전달을 못합니다. 사유하고 성찰하고, 나와 자유로운 관계에 있는 이들과 소통을 하지요. 그러나 시몬 드 보부아르는 단박에 감정을 전달합니다. 사람들은 늘 그녀가 하는 말의 힘에 의해 그녀와 관계를 맺게 돼요.” - 425쪽

구매가격 : 21,000 원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

도서정보 : 에드워드 H. 셰이퍼 | 2021-05-1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대당제국은 어떻게 이국적 수입 문화로 세계의 중심이 되었는가
당나라 시대의 수입품과 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한 인문학적 분석

사람과 가축, 목재와 음식, 향료와 옷감, 안료와 광물, 종교 용품과 서적까지
전 세계에서 당나라 장안에 모여든 이국적 수입 문화는
제국을 어떻게 바꿨나

<추천사>
“우리 시대에 나온 가장 유익하고, 가장 학구적이며, 가장 재미있게 쓰인 중국에 관한 책!”
_『아시아학 저널』

“드디어 번역이 되었다! 놀랍게 아름답고 황홀하고 또 참혹한 문명의 이야기들!”
_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문화인류학자

“예나 지금이나 중국은 거대한 땅, 막대한 소비시장이다. 1200여 년 전 수입품으로 들여다보는 중국의 속내가 방대한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훤히 드러난다. 오늘의 중국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이 외국의 거작巨作이 이제야 한국어로 옮겨진다는 점이 그저 만시지탄晩時之歎일 뿐이다.” _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대당제국의 외래 문물이라는 백과사전적 주제를 박식하고 세련되게 기술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중국 문명의 과거를 감상하며 나아가 그 미래가 개방성과 다양성에 있음을 예감할 것이다.” _이동철,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동아시아 고전학자

<책 소개>
샹다向達의 『당대 장안과 서역 문명』, 이시다 미키노스케의 『장안의 봄』과 함께 중국 당나라 문명 연구의 3대 명저로 꼽히는 에드워드 셰이퍼 교수의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가 국내에 초역됐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이 책은 원저가 1963년에 미국에서 출판됐으니 무려 50년 만에 한국어판이 나온 것이다. 육로와 해로를 통해 전 세계에서 대당제국으로 집산된 이국 문물을 백과전서적으로 다뤄 당唐의 물질문명의 실체를 해명할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세계 무역의 문화적 교류의 양상과 당 제국의 개방적 성격이 어디까지 뻗어가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독특하게도 이 책은 다양한 문학작품의 분석을 통해 동양의 지식인들이 서양을 향해 투사한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의 만화경을 펼쳐 보인다. 엑조틱exotic(이국풍, 이국문물)을 다룸에 있어, 자료는 별로 없이 분위기만 풍기는 책들과는 달리, 그야말로 자료의 바다에서 헤엄쳐 다니면서 실물을 양껏 맛보는 육중한 박물지라는 점에서 이 분야 관심 독자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저자는 중국이 해금정책을 펴기 훨씬 전, 해로와 육로가 모두 활짝 열린 대교역의 시대에 지구 문명의 모든 예술적 완성품들이 몰려든 당의 수도 장안, 낙양, 광주, 양주 등 주요 도시들의 풍광을 이 책에서 유감없이 그려냈다.
이 책을 지은 에드워드 H. 셰이퍼(1913~1991) 교수는 “당시唐詩의 대가”로 알려진 중국학자로 과학적 이론과 문제틀을 중시하던 주류 중국학계와는 거리를 두었던 인물이다. 어린 시절 지독히 가난했던 그는 도서관에서 이집트를 독학한 이후 자신만의 방식으로 원전 문헌과 노는 데 익숙한 인물이었고, 먹향도 적당히 풍기면서 개인적인 생각도 자유롭게 발설하는 독특한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고풍적인 스타일로 고전 텍스트를 인용하고 또 그것에 심취한 난해하고 시적인 저자의 문체는 책이 다루는 소재인 당나라의 이국 취향과 완벽하게 어울려서 딜레탕트한 박물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당나라는 이국에서 어떤 물건들을 들여왔을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당나라 시대 이국 문물을 대표하는 물건은 바로 ‘사마르칸트에서 온 황금 복숭아’다.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당나라인들에게 이국적인 상품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당 제국은 이웃 나라에 예술품과 행동 양식을 전파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투르키스탄, 티베트, 베트남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당나라가 외국에 수출한 물품은 비단, 와인, 도자기 등의 고급품에서부터 복숭아, 꿀, 잣 등의 음식과 책과 그림도 있었다. 동시에 당나라는 서쪽 나라에서 도래한 예술품을 동쪽 나라에 전해주는 등 문화적 중개자 역할도 했다.
반면 당이 이국에서 들여온 물건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 지점이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다. 당나라는 북방에서는 말, 가죽 제품, 모피, 무기를 들여왔고 남방에서는 상아, 희귀 나무, 약재, 향료 등을 수입했다. 서쪽에서는 직물, 보석, 공업용 광물과 무희舞姬까지 수입해왔다. 이 책에서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하나씩 아주 세밀하게 다룬다. 예를 들어 옷감이라도 다 같은 옷감이 아니라 금의, 모직물, 융단, 석면, 펠트 등 종류별로 이것들이 어디에서 들어와 당나라에서 어떻게 쓰이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까지 다룬다.
이 책은 중세 무역의 유용한 통계를 제공하거나 조공 제도에 대한 멋진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무역품을 주제로 다루지만 어디까지나 인문학적 관점을 견지하고, 구체적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들을 제시한다. 술라웨시섬의 앵무새, 사마르칸트의 강아지, 고대 마가다국의 기이한 책, 인도 라자스탄 지역 짬파푸라의 강력한 약. 이런 물건들은 당나라인들의 상상력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극했고, 그들의 생활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앵무새는 지혜의 상징이 되고, 소설 속 강아지는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역할을 했으며, 약초는 까다로운 애주가를 위한 고급 술의 재료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런 문화적인 영향은 시, 포고령, 소설, 왕에게 올리는 상주문에까지 스며들었다.


당나라로 들어온 대표적인 수입품들

이민족 노예
당나라가 주변 이민족을 정복해간 7세기에 많은 전쟁 포로가 당으로 끌려왔다. 돌궐족이 가장 많았고, 만주족과 고구려, 백제인도 있었다. 극소수는 귀족 집안의 사노비가 되어 출세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당 왕조의 노예가 되어 고역을 감수해야 했다. 이렇게 들어온 노예들은 노예 상인에 의해 팔려나갔다. 이민족 노예는 안전한 돈벌이 수단이었다. 또한 고구려나 신라의 젊은 여성은 시녀나 첩, 기생으로서 인기가 높았다. 9세기 중반, 선종은 영남 지방의 노예 매매를 금지하는 칙령을 내리며 “무소의 뿔이나 상아처럼 남녀도 물품이나 사치품이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인도에서 온 곤륜노, 아프리카인 노예 장지 등이 당나라에 들어왔다.

이국에서 들어온 음악
이국에서 공물로 보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들은 음악가였다. 악사, 가수, 무용수와 그들이 가져온 악기, 음악은 당나라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서역 국가들이 한족의 지배 아래 있게 되면서 당 제국은 약탈에 가까운 형태로 음악을 조공하도록 강요했다. 이는 단순히 음악만이 아니라 연주자와 악기, 악곡까지 함께 전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국 음악은 궁전에서 귀족으로, 일반 시민들에게로 퍼져나갔다. 재능이 넘치는 이들은 관기官妓의 지위를 얻기 위해 기회를 노렸고, 음악은 점점 고급 기녀들에서 거리의 청년들에게 퍼지면서 당나라 문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흡수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서역 음악 중에서 당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구자(쿠처)의 음악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쿠처 악단의 「고무곡」에 열광했다.

다양한 동물
또한 당나라의 수입품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물이다. 가축, 야생 동물에서부터 새, 모피와 깃털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수입품이 전해졌다. 짬파에서는 코끼리, 코뿔소 등의 동물이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당에서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진귀한 구경거리로 남는 데 그치고 말았다. 또한 사자, 표범, 치타, 흑담비, 흰족제비, 영양, 마제양, 마멋, 몽구스 등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이 동물들이 오늘날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판단하기는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종교 용품
인도와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여러 나라로부터 종교적인 신성한 물건들이 당나라로 들어왔다. 성물들이 잘 팔리자 불상, 불사리, 경문 등도 들어왔으며, 이 외국 물건들은 당나라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다채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불교 성인이나 고승의 유물인 불사리佛舍利의 인기가 높아지자 시인 한유韓愈는 유물 숭배를 비난하기도 했다. 당나라에서 인도로 여행을 떠난 순례자들은 불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다 845년 불교 탄압으로 모든 불상을 몰수해 농기구로 다시 주조하거나 동전으로 녹여서 국고로 사용하게 되면서 당나라의 종교 예술에 대한 외국의 영향은 종말을 고했다.

구매가격 : 28,500 원

국경일기

도서정보 : 정문태 | 2021-05-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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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국제분쟁 최전선을 뛰어온 베테랑 독립 기자 정문태. 그가 숱한 국제뉴스의 현장을 다니면서 늘 ‘다음’으로 미뤄두었던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는 타이, 버마,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마을.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살아오며 늘 마음 한구석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때 묻지 않은 자연에 권력이 임의로 그어놓은 경계, 그리고 그 경계 밖에서 오늘도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사람들. 가진 자들이 써 내려가는 역사와는 다른,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자는 다짐한다. ‘그 밖’들의 역사를 차곡차곡 기록해서 이 세상에 되돌려주겠노라고. 여전히 군부와 맞서고 있는 버마 소수민족 반군, 타이로 건너온 버마 이주노동자, 타이공산당 게릴라 출신 농부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숱한 이름 없는 이들의 목소리와 국경지역 천혜의 절경 여행기가 저자 특유의 문체로 한데 어우러져 있는 이 매력적인 책은 수시로 독자들의 마음을 따갑게 할퀴고 또 뜨겁게 만들 것이다.

구매가격 : 15,400 원

이조의 관기

도서정보 : 요시카와 헤이스이 | 2021-05-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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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뒤에서 엿본 조선 ‘기생이야기’ !!
기생은 경성 단가(短歌)이다. 서도잡가(西道雜歌)라면 매사에 모두 예술을 중시한다. 진주가 가장 좋고 평양이 가장 정통적이다.
아니 경성은…모두 자기의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며 큰 연회에서 음식점은 각 권번(券番)의 기생들을 동석시키고, 곧 당을 만들어 양당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노골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일도 드물지 않다. 기생! 확실히 조선의 명물로서 그것은 백미(白眉) 같은 존재이다. 조선 사람들은 일본 벚꽃과 마찬가지로 궁중의 자랑거리로 일본 게이샤라고 생각했다. “현재 기생은 사람들 무리의 기생으로 몇 사람의 연회석상에서 초대를 받는데, 그 목적은 근소한 돈을 받고 시중을 드는 일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후 귀인들만 섬겼으나 이미 내외적으로는 관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생양성소 규칙의 요령 사항 중에 ‘행실이 불량하여 발전의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는 자는 퇴장을 명령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행실 불량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으로 수업 연한은 보통학교(소학교)에서 4년 수업 이상이므로 12세, 3세의 여자아이가 1학년 학생이 된다.<‘妓生物語’(1932) 중에서 일부만 소개하였음>

구매가격 : 2,500 원

지금, 비스마르크

도서정보 : 에버하르트 콜브 | 2021-05-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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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정치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는 포스트코로나라는 시대적 불확실성에 놓여있다. 또한 올해와 내년, 두 차례의 굵직한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야흐로 대전환의 시대다. 이러한 시점에 역사적으로 회자되는 성공한 해외의 정치 리더를 살펴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 비스마르크》는 19세기 독일 통일을 이룩하고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진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일대기를 다룬다. 이 책에서 저자는 비스마르크라는 인물을 재해석한다. 그는 통념과 달리 전쟁이 아닌 평화를 추구했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상황에 따른 유연한 해법을 제시한 실용주의자였다. 무엇보다 비스마르크는 정통 보수주의자였지만 이데올로기에 천착하지 않았다. 당면한 현실에 발맞춰 그때그때 적절한 해법을 제시한 리더였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자였다. 당시의 독일과 현재의 한국이 처한 국내외적 상황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정치 리더는 물론 ‘의사결정자’들을 위한 지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구매가격 : 13,300 원

조선풍속

도서정보 : 나무라 나오지 | 2021-05-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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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경 일본인의 한국방문기!!
그들은 마치 오리(鴨)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큰 대륙식 치마를 입은 여자의 모습은 매우 흥미로웠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조선 사람들 남녀가 모두 흰색 옷을 입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지금 이 옷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흰색 정도가 내가 말한 것 이상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풍요롭고 풍성한 땅은 실로 그 어떤 것에도 대륙적인 한적함이 은근히 드러나 있다.<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500 원

삼국사기 바로알기 1

도서정보 : 김기홍 | 2021-04-3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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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삼국사기]는 우리 고대사를 기록한 정사로서 비록 기전체의 사서형태를 갖추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누락된 해가 많고 또한 한 해의 기록도 불과 몇 줄에 그치는 사례가 많아 이를 토대로 과거를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심지어 고구려의 최전성기라고 하는 장수왕 시절의 기록에서는 온통 북위 등에게 조공을 했다는 역사로 점철되어 있어서 과연 그 시절이 고구려의 전성기였는지 조차 헛갈릴 정도입니다.

이와 같이 [삼국사기]를 통해서는 우리 고대사를 제대로 알 수 없기에, 부족하나마 그 내용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여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최대한 전해보고자 함이 이 글을 쓰는 목적입니다.

하지만 우리 고대사를 전하는 책은 그 수가 매우 제한적이고 또한 그 내용 또한 왜곡되고 부실하여 고대사의 진실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하여 이 책에서는 박창화 선생이 전한 필사본들을 다수 참고하여 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합니다. 그 필사본들을 앞으로 [박창화 필사본]이라 부르겠습니다.

[박창화 필사본]이란 일본 왕실도서관인 궁내성 서릉부에서 근무하던 박창화 선생(朴昌和, 1889~1962)이 그곳에 보관된 우리 고대사에 관한 서적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필사한 것입니다. 통상 그의 호를 따서 [남당유고]라고 알려졌으나, 그 중에서 직접 저술한 강역고 등을 제외한 순수 필사본만을 구별하고자 [박창화 필사본]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비록 필사본이라는 한계로 인하여 학계의 인정은 받고 있지 못하지만, 그 풍부하고 사실적인 내용은 [삼국사기]의 빈 곳을 채우기에 차고도 넘칩니다. 사서의 진위여부는 그 내용에 의해 판단될 것이지 그 형식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삼국사기]와는 달리 [박창화 필사본]들은 매년 매월의 기록을 상세히 기록하는 등 [삼국사기]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는 참으로 귀중한 책입니다.

학계가 굳이 이를 위서(僞書)로 판단하는 근거에 대하여 일일이 반박하기 보다는 이 책에서 그 내용을 [삼국사기]와 비교하여 설명함으로서 과연 [박창화 필사본]들이 허황된 소설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사라지고 왜곡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을 귀중한 사서인지를 판단 받고자 합니다.

앞으로 [삼국사기]의 호칭에 따라 시조 동명성왕부터 차례로 발간할 계획입니다. 또한 신라편과 백제편 역시 그와 같을 것입니다. 우선 [삼국사기]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설할 것입니다. 부족한 글이 되겠지만 적어도 알에서 태어난 조류가 아닌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위대한 역사를 만든 우리 조상님들의 진정한 면모를 밝혀 최대한 상식적인 역사를 알리고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일부 원문의 구결(口訣)은 현대식으로 고쳐 달았으며, 필사본 중 박창화 선생의 가필로 보이는 부분은 삭제하였습니다. 또한 필사본의 속자나 간자는 정자로 바꾸었습니다. [삼국사기] 역시 정덕본을 기본으로 하였으나 일부 문제가 되는 글자는 수정을 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편의상 평어체로 작성되었으니 양해바랍니다.

구매가격 : 2,000 원

월간 샘터 2021년 05월호

도서정보 : 샘터편집부 | 2021-04-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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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는 1970년 4월 창간한 국내 최장수 월간 교양지입니다.
창간 이후 49년 동안 <샘터>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밝고 건강하며 긍정적인 기사를 선별, 게재하여 독자에게 용기와 희망, 행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동심은 모든 어른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창간의 다짐이 말해 주듯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순수한 감성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피천득, 법정, 최인호, 이해인, 정채봉, 장영희 선생 등 국내 최고의 지성의 영혼을 울리는 메시지를 통해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습니다.

명사들의 품격 높은 산문에서부터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까지 감동 가득한 글과 문화 예술 정보 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샘터> 정기구독료의 1%를 사회에 환원하는 한편, 독자가 모금하는 ‘샘물통장’을 만들어 매년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범함 사람들을 위한 행복’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독자 곁을 지켜가는 <샘터>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구매가격 : 2,66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