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1

도서정보 : 무라카미 하루키 | 2020-04-08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아내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 후,
나는 산꼭대기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외딴섬처럼 고독하고도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기사단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1Q84』 이후 7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것이 여기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선보인 본격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1권 「현현하는 이데아」, 2권 「전이하는 메타포」) 한국어판이 7월 12일 출간된다. 지난 2월 24일 일본 신초샤에서 출간한 지 138일 만이다. 일본 출간 당시 130만 부 제작 발행으로 화제가 되었다.

일본 출판계에서도 전례가 없던 초판 부수와 책에서 작중인물의 입을 통해 언술되는 ‘난징학살사건’에 대한 일본 현지의 이슈가 우리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한껏 고조되어 출판사로 한국어판 출간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자는 생각이었다. 대형 도매서점인 송인의 부도로 시작된 올해 도서시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6월까지만 해도 한강과 김영하 등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소설판매가 부진한 상황이었다. 섣불리 초기에 힘을 쏟기보다는 출간 이후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판매상승을 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일단 작품의 완성도와 몰입도에 확신이 있으니까 가능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10만 세트(20만 부)를 준비했던 『1Q84』 때와 달리 『기사단장 죽이기』는 5만 세트(10만 부)만 준비하기로 했다. 길게 보고 천천히 가자는 생각이었다.

출간 전 3쇄 돌입, 총 30만 부 제작

그런데 6월 30일 예약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반응이 뜨거웠다. 예판 2~5일 만에 온라인 4대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순위만이 아니라 서점에서 집계해서 알려주는 실제 판매 속도 역시 『1Q84』보다 빨랐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예판을 시작한 지 4일 만인 7월 4일에 2쇄 5만 세트(10만 부) 증쇄에 들어갔다. 하지만 10만 세트(20만 부)로도 서점들에서 요청하는 초기 배본부수를 맞추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고, 양장본이어서 제작기일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여 7월 10일 5만 세트(10만 부) 3쇄 제작에 들어갔다. 총 30만 부 제작이다. 출간도 하기 전에 권당 15만 부를 찍기도 처음이었고, 예약판매 기간중 3쇄에 들어가는 것도 문학동네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초기반응은 어쩌면 예약판매를 동네서점들과 함께 한 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학동네는 지난 6월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과 박준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예약판매하면서 동네서점들과도 함께 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동네서점들과 예약판매 이벤트를 함께 진행했다. 김애란과 박준의 신간 예약판매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을 때 “예약판매는 온라인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반신반의했던 동네서점들이 SNS를 통해 완판소식을 속속 전하면서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의 예판 이벤트 참여율은 더욱 높아졌다. 대형 온라인 서점들에만 특화되어 있던 예약판매 이벤트를 동네서점들에게까지 확대함으로써 동네서점들이 어렵사리 확보한 기존 단골고객들의 이탈을 막고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벤트인데 결과적으로 출판사가 도움을 받지 않았나 싶다.

『1Q84』에 이어 또 한번의 하루키 열풍을 기대할 수 있을까. 2014년 세월호의 비극 이후 한동안 책을 내기를 저어해왔던 국내작가들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소설을 출간하는 것과 때를 맞춰 무라카미 하루키의 본격 장편소설이 출간된다. 이로써 다시 소설시장이 열리기를, 그동안 ‘이야기’에 굶주려 있던 우리 소설 독자들을 흠뻑 적시는 단비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곳은 정말로 현실세계일까?
인생의 공백을 메우려는 이들의 미스터리한 여정

삼십대 중반의 초상화가 ‘나’는 아내에게서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고 집을 나와서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천장 위에 숨겨져 있던 도모히코의 미발표작인 일본화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을 일본 아스카 시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 그림을 가지고 내려온 뒤로, ‘나’의 주위에서 기이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골짜기 맞은편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백발의 신사 멘시키 와타루가 거액을 제시하며 초상화를 의뢰하고, 한밤중에 들리는 정체 모를 소리를 좇아 집 뒤편의 사당으로 가보니 돌무덤 아래에서 방울이 울리고 있다. 멘시키의 도움으로 돌무덤을 파헤쳐보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어놓은 듯한 원형의 석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앞에 ‘기사단장’이 나타난다.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속 기사단장의 모습과 똑같은, 수수께끼의 구덩이에서 풀려난 ‘이데아’가.

아내와의 이별, 그리고 고독한 여행, 구덩이와 벽 등의 폐쇄공간, 불가사의한 존재와의 만남,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세계 속 독자적인 요소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오페라, 클래식, 재즈, 올드 팝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인물의 심상을 대변하고, 주인공 ‘나’와 멘시키, 그리고 멘시키와 13세 소녀 마리에의 관계는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영문학 작품으로 꼽았으며 직접 번역까지 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오마주로도 읽힌다. 주인공의 기이한 체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는 에도시대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가 쓴 괴이담 『하루사메 이야기』가 직접 인용되는데, 이 역시 하루키가 예전부터 즐겨 읽으며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던 작품이다. 작가생활 초기에 그가 주로 썼던 일인칭 시점으로 돌아온 것도 ‘하루키 월드’의 매력이 한층 짙게 느껴지는 이유다.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모험담은 『태엽 감는 새』부터 『1Q84』까지 기존 장편소설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플롯이지만, 이번에는 그에 더해 현대사 속 실제 사건을 접목시킨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아마다 도모히코는 2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 유학중이었다가 나치 저항운동에 휘말렸고,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동생은 난징전투에 투입되어 강압적 명령에 의한 학살을 체험하고 그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어떤 의도로 창작했는지, 왜 발표하지 않고 천장 위에 숨겨두었는지 수수께끼로 가득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에는 그런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려 한 노화가의 의지가 생생히 드러나 있다. 또한 ‘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상실감과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동시에 그림이라는 수단을 통해 아마다 도모히코의 의지를 잇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식의 유사 부자관계 역시 전작들에 비해 보다 유기적이고 심층적으로 그려졌다.

또한 ‘나’가 집을 나와 한 달여간 정처 없이 여행하는 도호쿠 지방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이 남은 곳으로, 하루키는 재작년 가을 직접 이 지역을 차로 여행했던 경험을 살려 소설 전반에 치유와 재생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이데아’와 ‘메타포’라는 추상적 개념, 불교적 색채를 지닌 고전소설 등을 주요 모티프로 등장시키면서도 이야기의 골자는 현실의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셈이다. “나이에서 오는 책임감과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작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관념의 경계를 꿰뚫는 이야기의 힘
대범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무라카미 하루키 월드의 집대성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작가 인생 40여 년. 한때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은 이제 세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작품세계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현세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소설 속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가 그렇듯이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농축한 결과물이다. 현대사회에서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의 이야기가 어떤 힘을 지니는지, 소설가가 안팎의 문제에 맞서 싸워나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동안 ‘무국적 작가’로 불려온 하루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놓은 대답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루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전부 담겨 있다. 당신은 완벽하게 하루키 월드의 장치에 빠져버릴 것이다. 나무 구멍에 빠진 앨리스처럼. _북 아사히

상실과 회복을 주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오는 모험. 그만의 키워드가 속속 등장해 그야말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 앨범 같다. _산케이 뉴스

표면적인 줄거리를 따라갈 수도 있지만, 각 대화와 에피소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매우 다의적이고 다층적인 이야기가 의도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_요미우리 신문

장편소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다양한 SNS와 대치중입니다. 단문이 소비되는 요즘,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야기라는 것은 즉각적인 효력은 없지만 시간의 도움을 얻어 반드시 인간에게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좋은 힘을 주고 싶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_무라카미 하루키(아사히 신문 인터뷰, 2017.4.17.)


● 인상적인 문장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1권 94~95쪽)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어,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뿌연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헝겊으로 말끔히 닦아준다. 그런 마음가짐이 으레 작품에 배어나기 때문이다. (1권 27쪽)

즉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1권 340쪽)

이른바 난징학살사건입니다. 일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령하고 대량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전투중의 살인도 있고,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죠.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일본군이 항복한 군인과 시민 대부분을 살해해버린 겁니다. 정확히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세부적인 수치는 역사학자들 사이에도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엄청난 수의 시민이 전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인 사망자 수가 사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사십만 명과 십만 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권 88쪽)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에게 죽음보다 더 뜻밖의 사건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생물학적으로(그리고 사회적으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느 날 누군가가 또박또박 알려주는 것. (2권 190쪽)

커다란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바깥에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수평선이 하늘에 바짝 다가가 있었다. 나는 그 똑바른 선을 끝에서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 그토록 길고 아름다운 직선은 어떤 자를 써도 인간의 손으로는 그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선 아래에는 무수한 생명이 약동하고 있을 터였다. 이 세계는 무수한 생명과, 그리고 그것과 같은 수의 죽음으로 가득하다. (2권 333~334쪽)

어떻게 해야 마음을 한곳에 잡아둘 수 있단 말인가? 애당초 마음이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몸속을 순서대로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은 대체 어디에 있지?
“마음은 기억 속에 있어. 이미지를 먹으며 살아가는 거야.” (2권 418쪽)

그는 비밀을 지님으로써 이 세상에서 자기 존재의 균형을 교묘히 컨트롤한다. 그에게 비밀은 서커스의 외줄타기 곡예사가 들고 있는 장대 같은 것이다. (2권 568쪽)

사람은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은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만약 간절히 염원한다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증명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의 사실인지도 모른다. (2권 217~218쪽)

구매가격 : 11,500 원

기사단장 죽이기 2

도서정보 : 무라카미 하루키 | 2020-04-08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아내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 후,
나는 산꼭대기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외딴섬처럼 고독하고도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기사단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1Q84』 이후 7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것이 여기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선보인 본격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1권 「현현하는 이데아」, 2권 「전이하는 메타포」) 한국어판이 7월 12일 출간된다. 지난 2월 24일 일본 신초샤에서 출간한 지 138일 만이다. 일본 출간 당시 130만 부 제작 발행으로 화제가 되었다.

일본 출판계에서도 전례가 없던 초판 부수와 책에서 작중인물의 입을 통해 언술되는 ‘난징학살사건’에 대한 일본 현지의 이슈가 우리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한껏 고조되어 출판사로 한국어판 출간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자는 생각이었다. 대형 도매서점인 송인의 부도로 시작된 올해 도서시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6월까지만 해도 한강과 김영하 등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소설판매가 부진한 상황이었다. 섣불리 초기에 힘을 쏟기보다는 출간 이후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판매상승을 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일단 작품의 완성도와 몰입도에 확신이 있으니까 가능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10만 세트(20만 부)를 준비했던 『1Q84』 때와 달리 『기사단장 죽이기』는 5만 세트(10만 부)만 준비하기로 했다. 길게 보고 천천히 가자는 생각이었다.

출간 전 3쇄 돌입, 총 30만 부 제작

그런데 6월 30일 예약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반응이 뜨거웠다. 예판 2~5일 만에 온라인 4대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순위만이 아니라 서점에서 집계해서 알려주는 실제 판매 속도 역시 『1Q84』보다 빨랐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예판을 시작한 지 4일 만인 7월 4일에 2쇄 5만 세트(10만 부) 증쇄에 들어갔다. 하지만 10만 세트(20만 부)로도 서점들에서 요청하는 초기 배본부수를 맞추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고, 양장본이어서 제작기일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여 7월 10일 5만 세트(10만 부) 3쇄 제작에 들어갔다. 총 30만 부 제작이다. 출간도 하기 전에 권당 15만 부를 찍기도 처음이었고, 예약판매 기간중 3쇄에 들어가는 것도 문학동네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초기반응은 어쩌면 예약판매를 동네서점들과 함께 한 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학동네는 지난 6월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과 박준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예약판매하면서 동네서점들과도 함께 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동네서점들과 예약판매 이벤트를 함께 진행했다. 김애란과 박준의 신간 예약판매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을 때 “예약판매는 온라인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반신반의했던 동네서점들이 SNS를 통해 완판소식을 속속 전하면서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의 예판 이벤트 참여율은 더욱 높아졌다. 대형 온라인 서점들에만 특화되어 있던 예약판매 이벤트를 동네서점들에게까지 확대함으로써 동네서점들이 어렵사리 확보한 기존 단골고객들의 이탈을 막고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벤트인데 결과적으로 출판사가 도움을 받지 않았나 싶다.

『1Q84』에 이어 또 한번의 하루키 열풍을 기대할 수 있을까. 2014년 세월호의 비극 이후 한동안 책을 내기를 저어해왔던 국내작가들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소설을 출간하는 것과 때를 맞춰 무라카미 하루키의 본격 장편소설이 출간된다. 이로써 다시 소설시장이 열리기를, 그동안 ‘이야기’에 굶주려 있던 우리 소설 독자들을 흠뻑 적시는 단비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곳은 정말로 현실세계일까?
인생의 공백을 메우려는 이들의 미스터리한 여정

삼십대 중반의 초상화가 ‘나’는 아내에게서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고 집을 나와서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천장 위에 숨겨져 있던 도모히코의 미발표작인 일본화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을 일본 아스카 시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 그림을 가지고 내려온 뒤로, ‘나’의 주위에서 기이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골짜기 맞은편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백발의 신사 멘시키 와타루가 거액을 제시하며 초상화를 의뢰하고, 한밤중에 들리는 정체 모를 소리를 좇아 집 뒤편의 사당으로 가보니 돌무덤 아래에서 방울이 울리고 있다. 멘시키의 도움으로 돌무덤을 파헤쳐보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어놓은 듯한 원형의 석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앞에 ‘기사단장’이 나타난다.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속 기사단장의 모습과 똑같은, 수수께끼의 구덩이에서 풀려난 ‘이데아’가.

아내와의 이별, 그리고 고독한 여행, 구덩이와 벽 등의 폐쇄공간, 불가사의한 존재와의 만남,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세계 속 독자적인 요소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오페라, 클래식, 재즈, 올드 팝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인물의 심상을 대변하고, 주인공 ‘나’와 멘시키, 그리고 멘시키와 13세 소녀 마리에의 관계는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영문학 작품으로 꼽았으며 직접 번역까지 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오마주로도 읽힌다. 주인공의 기이한 체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는 에도시대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가 쓴 괴이담 『하루사메 이야기』가 직접 인용되는데, 이 역시 하루키가 예전부터 즐겨 읽으며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던 작품이다. 작가생활 초기에 그가 주로 썼던 일인칭 시점으로 돌아온 것도 ‘하루키 월드’의 매력이 한층 짙게 느껴지는 이유다.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모험담은 『태엽 감는 새』부터 『1Q84』까지 기존 장편소설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플롯이지만, 이번에는 그에 더해 현대사 속 실제 사건을 접목시킨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아마다 도모히코는 2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 유학중이었다가 나치 저항운동에 휘말렸고,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동생은 난징전투에 투입되어 강압적 명령에 의한 학살을 체험하고 그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어떤 의도로 창작했는지, 왜 발표하지 않고 천장 위에 숨겨두었는지 수수께끼로 가득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에는 그런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려 한 노화가의 의지가 생생히 드러나 있다. 또한 ‘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상실감과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동시에 그림이라는 수단을 통해 아마다 도모히코의 의지를 잇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식의 유사 부자관계 역시 전작들에 비해 보다 유기적이고 심층적으로 그려졌다.

또한 ‘나’가 집을 나와 한 달여간 정처 없이 여행하는 도호쿠 지방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이 남은 곳으로, 하루키는 재작년 가을 직접 이 지역을 차로 여행했던 경험을 살려 소설 전반에 치유와 재생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이데아’와 ‘메타포’라는 추상적 개념, 불교적 색채를 지닌 고전소설 등을 주요 모티프로 등장시키면서도 이야기의 골자는 현실의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셈이다. “나이에서 오는 책임감과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작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관념의 경계를 꿰뚫는 이야기의 힘
대범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무라카미 하루키 월드의 집대성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작가 인생 40여 년. 한때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은 이제 세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작품세계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현세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소설 속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가 그렇듯이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농축한 결과물이다. 현대사회에서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의 이야기가 어떤 힘을 지니는지, 소설가가 안팎의 문제에 맞서 싸워나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동안 ‘무국적 작가’로 불려온 하루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놓은 대답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루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전부 담겨 있다. 당신은 완벽하게 하루키 월드의 장치에 빠져버릴 것이다. 나무 구멍에 빠진 앨리스처럼. _북 아사히

상실과 회복을 주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오는 모험. 그만의 키워드가 속속 등장해 그야말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 앨범 같다. _산케이 뉴스

표면적인 줄거리를 따라갈 수도 있지만, 각 대화와 에피소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매우 다의적이고 다층적인 이야기가 의도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_요미우리 신문

장편소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다양한 SNS와 대치중입니다. 단문이 소비되는 요즘,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야기라는 것은 즉각적인 효력은 없지만 시간의 도움을 얻어 반드시 인간에게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좋은 힘을 주고 싶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_무라카미 하루키(아사히 신문 인터뷰, 2017.4.17.)


● 인상적인 문장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1권 94~95쪽)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어,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뿌연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헝겊으로 말끔히 닦아준다. 그런 마음가짐이 으레 작품에 배어나기 때문이다. (1권 27쪽)

즉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1권 340쪽)

이른바 난징학살사건입니다. 일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령하고 대량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전투중의 살인도 있고,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죠.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일본군이 항복한 군인과 시민 대부분을 살해해버린 겁니다. 정확히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세부적인 수치는 역사학자들 사이에도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엄청난 수의 시민이 전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인 사망자 수가 사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사십만 명과 십만 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권 88쪽)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에게 죽음보다 더 뜻밖의 사건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생물학적으로(그리고 사회적으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느 날 누군가가 또박또박 알려주는 것. (2권 190쪽)

커다란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바깥에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수평선이 하늘에 바짝 다가가 있었다. 나는 그 똑바른 선을 끝에서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 그토록 길고 아름다운 직선은 어떤 자를 써도 인간의 손으로는 그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선 아래에는 무수한 생명이 약동하고 있을 터였다. 이 세계는 무수한 생명과, 그리고 그것과 같은 수의 죽음으로 가득하다. (2권 333~334쪽)

어떻게 해야 마음을 한곳에 잡아둘 수 있단 말인가? 애당초 마음이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몸속을 순서대로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은 대체 어디에 있지?
“마음은 기억 속에 있어. 이미지를 먹으며 살아가는 거야.” (2권 418쪽)

그는 비밀을 지님으로써 이 세상에서 자기 존재의 균형을 교묘히 컨트롤한다. 그에게 비밀은 서커스의 외줄타기 곡예사가 들고 있는 장대 같은 것이다. (2권 568쪽)

사람은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은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만약 간절히 염원한다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증명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의 사실인지도 모른다. (2권 217~218쪽)

구매가격 : 11,500 원

슬픔은 날개 달린 것

도서정보 : 맥스 포터 | 2020-04-0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
소설가 한강 추천!

딜런 토머스 상│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젊은 작가상 (2016)
〈선데이 타임스〉 21세기 최고의 책 Top 100│〈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슬픔 #상실 #위로 #애도 #가족 #사랑 #희망 #초현실 #데뷔작 #문학상수상작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들의 비통한 나날이 거대한 까마귀의 깃털들을 달고 전진한다. 혹은 길게 우회해 우리 등뒤로 문득 도착해 있다.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이다.” _한강(소설가)

불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슬픔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영국의 소설가 맥스 포터는 말한다. 그것은 날개 달린 까마귀의 형상으로 온다고.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자와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두 아이가 상실의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 애도의 과정을 주관하는 것은 현명한 친척 어른이나 살가운 친구처럼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난데없이 집안으로 들이닥친 한 마리 말하는 까마귀다. 때로는 짓궂고 때로는 다정한, 거대하고 다재다능하며 사려 깊은 이 새는 극심한 상실의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 사람을 다시 삶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지워지지 않는 죽음의 흔적을 절망의 근거가 아닌 굳건한 사랑의 기억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작가 맥스 포터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책과 각별하고 끈끈한 관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점 매니저로 근무하며 ‘올해의 젊은 북셀러 상’을 받기도 했고, 그후에는 영국의 그란타 출판사에서 최근까지 편집자로 일했다. 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영국의 그란타 출판사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펴낸 곳으로, 맥스 포터는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을 당시 편집자로서 인연을 맺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쓴 원고를 모아 2015년 첫 소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을 발표한 그는 딜런 토머스 상(2016)과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젊은 작가상(2016)을 받았으며, 가디언 퍼스트 북 어워드와 골드스미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또한 2019년 발표한 두번째 소설 『래니Lanny』로 부커상 후보와 고든 번 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맥스 포터의 삶에서 언제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문학에 대한 사랑과 어린 시절에 겪은 개인적인 상실의 기억이 결합해 탄생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첫 이야기가 슬픔과 그것의 극복에 대한 관습적인 서사가 아니라, 등장인물이 겪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정한 심리, 특히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까마귀의 목소리를 비정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아주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되기를 원했다. 결과적으로 소설이자, 시(詩)이자, 우화이자, 슬픔에 대한 에세이이기도 한 이 책은 분절된 문장과 독특한 텍스트 배열 등 산문과 운문을 오가는 독창적인 스타일과 문체로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동시에 소설의 세계를 확장한다. 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시인이자 번역가 황유원은 기이하게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문장의 맛이 한국 독자들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고심해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매만졌다. 여백이 많은 텍스트인데다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짧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야심과 글자 사이 빈 공간에 스민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죽음의 여파에 허물어진 어느 가족의 둥지 속으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든다.
아름다울 만큼 무질서한 슬픔의 진원에서
검은 날개를 펼쳐 추락하는 삶을 붙잡기 위해.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아빠’ ‘아이들’ ‘까마귀’, 이렇게 세 화자가 돌아가면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풍경에 대한,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해두려는 듯, 소설은 남자의 아내가 사망한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죽음은 말 그대로 ‘부재’로서만 존재한다. 이야기의 막이 오르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내의 흔적이 가득한 집에서 충격에 빠진 채 서성이는 남자가 있다. 하루종일 수많은 조문객의 과장된 위로와 불편한 친절에 시달리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녹초가 되어버린 그는 엄마를 잃은 어린 두 아들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제 아빠는 예전에 우리가 알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고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용감한 아이들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지만, 자신들이 알던 세상이 그렇게 한순간에 소리 없이 무너져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리고 연약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과 그럼에도 가차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포위 공격 속에서 무너져가는 이들 앞에 아주 특별한 구원자가 나타난다. 검고 커다란 날개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무장한 까마귀 한 마리. 인간들이란 슬픔에 빠져 있을 때를 제외하면 별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칭 “감상적인 새”인 이 까마귀는 남자에게 “네가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유모이자 상담사이자 보호자이자 친구로서, 가족들 곁에 끈질기게 머무른다. 남자와 아이들이 아내, 혹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수시로 불러내 그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거나 그것을 형벌삼아 스스로를 고문할 때마다, 까마귀는 절망의 문 앞을 가로막은 채 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엄하게 훈계해 돌려보낸다. 아빠와 아이들은 삐걱대고 비틀대면서도 까마귀의 지도를 따라 점차 다시 삶의 궤도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까마귀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한다.

문학으로 쓰는 진심어린 러브레터,
에밀리 디킨슨과 테드 휴스에게 바치는 헌사

이 작품은 작가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두 명의 시인에게 바치는 일종의 문학적 오마주이자 헌사이기도 하다. 그중 한 명은 19세기의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고, 다른 한 명은 20세기의 영국 시인 테드 휴스다. 먼저 소설의 제목인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희망은 날개 달린 것(“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으로 시작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에서 ‘희망’을 ‘슬픔’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소설의 앞에는 사랑에 대해 노래한 에밀리 디킨슨의 또다른 시가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점은 ‘사랑’을 포함해 몇몇 핵심 시어들이 손으로 그린 듯한 가로선과 함께 ‘까마귀’로 장난스럽게 고쳐 쓰여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런 재치 있는 ‘다시 쓰기’는 새롭고 독창적인 문학을 지향하면서도 과거의 걸작에 대해 존경과 애정을 품은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해 이야기의 입구에 걸어놓은 환영의 메시지처럼 읽힌다.

또한 소설의 중심 캐릭터이자 이 작품에서 가장 혁신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까마귀’는 테드 휴스의 시집 『까마귀』(1970)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맥스 포터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이십대 때 그 작품에 굉장히 심취했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따라서 작가가 서점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구상해온 그의 첫 작품이 휴스의 문학적 영향력 아래 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설 속에서 까마귀의 보살핌을 받게 된 남자가 하필 『까마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논하는 연구서를 집필중인 테드 휴스 연구가라는 사실 역시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이 휴스의 『까마귀』 초판을 펴냈던 영국 출판사 ‘Faber & Faber’에서 출간되었다는 것 또한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디테일이다.) 테드 휴스의 대표작이자 문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어둡고 강렬한 시집 속에서 까마귀는 전설과 신화 속의 존재이자 생명력과 혼돈의 상징이며, 신과도 대적하는 ‘트릭스터(trickster)’로서 등장한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뒤,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진 이 비범한 생명체는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상징성을 입고 다시 한번 날아오른다.

절망의 그늘이 아닌 삶의 볕 아래에서
슬픔을 끌어안는 법

남자 이제 난 슬퍼하지 않게 되는 건가?
새 아니, 천만의 말씀. 넌 그저 절망하지 않게 된 것뿐이야. 슬픔은 네가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고, 슬퍼하는 데 까마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지.
남자 나도 동의해. 그건 늘 변하지.
새 슬픔 말이야?
남자 응.
새 그건 모든 것이야. 그것은 자아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것이고 아름다울 만큼 무질서하지.
_본문 149∼150쪽

기나긴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온 한 남자와 두 소년은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삶의 바다를 바라보며, 슬픔은 소중한 것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감정이 아니라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로소 이들은 과거를 지워버리려 노력하는 대신 과거를 끌어안은 미래를 상상한다. 상실의 고통뿐 아니라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 역시 그 과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제목을 빌려온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슬픔’의 자리에 있던 원래의 시어는 ‘희망’이다. 언뜻 슬픔과 희망은 아주 다른 개념처럼 느껴지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면 희망과 슬픔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리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슬퍼하는 일은 절망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희망을 위한 행위라고, 죽음이 깃들어 있기에 삶이 빛나듯 슬픔은 인간의 영혼을 밝히는 존엄한 아름다움이라고, 소설은 까마귀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이제 희망의 자리에 슬픔을 넣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는다 해도 그것은 더이상 절망으로 읽히지 않을 것이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 / 영혼 속에 내려앉아 /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네 / 끝나지 않는 노래를……”


▶ 추천의 말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감정으로 충만하지만 결코 감상적이지 않은 소설. 맥스 포터는 정적인 비애의 감정을 고수하지 않고, 분노와 광기와 비속함과 유머를 오가며, 화자와 목소리의 음량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야기를 직조해낸다. 이것은 제목이 가리키는 ‘날개 달린 것’처럼 살아 숨쉬는 이야기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책과 문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작품.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한 가족의 슬픔과 그들에게 괴로움과 구원을 동시에 선사하는 별난 생명체를 숭고하고 처절하게 그려낸다. 결코 단순하거나 성글지 않은 치밀한 이야기이며, 그 자체로 어떤 모자람도 없다. 이 날개 달린 책은 정말로 탁월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당신이 올해 만날 가장 감동적이고 독창적인 데뷔작. 칠흑처럼 어두운 유머와 강렬한 감정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갑작스러운 상실의 타격을 생생한 절박함을 담아 그려낸다. 슬픔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극복해낸다. 경이롭고 지극히 문학적이며 종내는 희망적인 작품. NPR

맥스 포터의 이 이상한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영역을 맴돌며 세상이 가하는 고통에 대해, 죽은 이의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남겨진 우리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견디며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매력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이야기한다. 우아하고 독창적이며 글의 리듬 또한 완벽하다. 슬픔을 다루는 문학, 나아가 문학 전체에 기여하는 작품. 커커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한 기도서. 맥스 포터는 슬픔에 동반되는 모든 감정의 형태를 표현해낸다. 예측할 수 없게 재기발랄하며 풍자와 모순, 검은 날개가 달린 유머로 가득한 소설. 월 스트리트 저널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두 장의 하드커버 사이에 사로잡힌 아주 작고 섬세한 이야기의 새떼 같다. 죽음과 죽음을 위로하는 것들?슬픔에 잠긴 사랑과 예술?에 대한 이 감동적인 소설은 일견 페이지 위로 날아올랐다 내려앉는 연약한 텍스트와 대화와 시(詩)의 파편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다보면 이 작품이 조직된 방식에는 실로 활기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극도의 압축을 통해 지적이고 예술적인 도전을 감행함으로써, 맥스 포터는 사랑과 상실을 글로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깊은 사색을 이야기에 담아냈다. 가디언

언어유희와 추상적 관념들, 분방한 상상력을 관통하는 예리한 세부 묘사가 소설 속 가족의 상실을 보다 생생하게, 그들의 슬픔을 보다 실감나게 만든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이라는 공허를 명백한 실체를 가진 생명체로 바꾸어놓았다. 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

슬픔의 파괴력에 대해 처절하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고찰하는 작품. 인물들은 심오하고 간명한 문장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소설에 담긴 강렬한 감정들은 사랑과 상실과 애도를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포터는 선명하게 시적이고 어둡게 아름다운 데뷔작을 통해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씨름하는 아버지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정말로 뛰어난 작품이다. 독자들은 포터 특유의 문학적 스타일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북리스트

기이하고 눈부신 데뷔작. 작품의 구조와 스타일을 구축하는 상상력 넘치고 우아한 접근 방식과 세밀한 감각이 이야기에 신선함을 부여한다. 직설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이 책은 ‘하나의 관념으로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의문을 동시에 제기한다. 시카고 트리뷴

슬픔과 치유에 대한 강렬하고 초현실적인 소설이자 시(詩).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 책 속에서

그녀가 떠남으로써 빚어진 가장 주요한 결과는 아마 내가 영영 이렇게 뒷바라지를 하는 사람, 상투적인 감사의 말을 주고받으며 이렇게 목록을 작성하는 상인 같은 사람, 엄마 없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기계처럼 일상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라고 느꼈다. 슬픔이 사차원적으로, 추상적으로, 어렴풋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추웠다. 본문 14쪽

난 정말로 신경이 쓰여. 인간들이란 슬픔에 빠져 있을 때를 빼면 별 재미가 없거든. 건강, 재난, 기근, 악행, 찬란한 것들 또는 정상적인 것들은 별로 내 흥미를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지만 엄마 없는 아이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엄마 없는 아이들은 순수한 까마귀야. 나처럼 감상적인 새에게 그것은 숙성되고 진하고 그윽해서, 마치 새 둥지처럼 약탈하기에 아주 그만이야. 본문 29∼30쪽

우리집은 말 그대로 ‘더이상 아내의 것이 아닌’ 항목들로 채워진 백과사전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충격의 연속이자, 우리집과 질병이 휩쓸고 지나간 집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 그녀는 죽느라 바쁘지 않았고, 간병의 흔적 같은 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사느라 바빴고, 그러고는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본문 36쪽

케이크 믹스가 부풀고 구워지면서 케이크 틀 가장자리를 꽉 채워가듯,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삶으로 점점 모양을 잡아가던 결혼 초기에, 우리가, 그러니까 아내와 내가 이렇게 행복하다면, 분명 뭔가가 잘못되고 말 거라며 두려워하던 게 생각난다. 본문 61쪽

나의 이 그리움이란 어쩌면 이리도 물리적인 것인지. 아내가 너무 그리워서, 그 그리움은 금으로 만든 거대한 왕자, 콘서트홀, 천 그루의 나무, 호수, 구천 대의 버스, 백만 대의 차, 이천만 마리의 새들 그 이상이다. 도시 전체가 아내에 대한 나의 그리움이다. 본문 77쪽

하나의 관념으로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건 멍청한 사람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슬픔이 장기 프로젝트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르길 거부한다. 우리가 떠안은 이 고통은 그 속도를 늦추거나 올리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본문 144쪽

아빠는 늘 표류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맥주 같은 금빛 저녁노을 속에서 몸을 돌렸다가 여전히 남아 있는 온기를 느끼고 놀라는 사람처럼. 본문 153쪽

만일 까마귀가 아빠에게 뭔가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속된 표현을 쓰자면: 신념. 본문 153∼154쪽

아이들의 목소리는 바로 그들 어머니의 삶과 노래였다.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아름답다. 이 모든 것이. 본문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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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괴도 아르센 뤼팽 1 의문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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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크Francois Vidocq의 실제 삶을 배경으로 한 작품 아르센 뤼팡 걸작선은 단 한 순간도 행간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 아르센 뤼팽의 활약은 가슴을 조이에 하며, 진땀을 나게 한다. 시간을 잊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에 한 번 휘말리면 다 읽기 전에는 빠져나올 수가 없다. 마치 비도크의 무모할 만큼의 모험을 좋아했던 삶처럼 말이다. 아르센 뤼팡은 영국에서 셜록 홈즈가 유명해 지자 셜록 홈즈에 필적할 작품을 만들자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해 주기위해 써진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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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괴도 아르센 뤼팽 2 죽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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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괴도 아르센 뤼팽 3 하트 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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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괴도 아르센 뤼팽 4 813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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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괴도 아르센 뤼팽 5 포탄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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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크Francois Vidocq의 실제 삶을 배경으로 한 작품 아르센 뤼팡 걸작선은 단 한 순간도 행간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 아르센 뤼팽의 활약은 가슴을 조이에 하며, 진땀을 나게 한다. 시간을 잊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에 한 번 휘말리면 다 읽기 전에는 빠져나올 수가 없다. 마치 비도크의 무모할 만큼의 모험을 좋아했던 삶처럼 말이다. 아르센 뤼팡은 영국에서 셜록 홈즈가 유명해 지자 셜록 홈즈에 필적할 작품을 만들자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해 주기위해 써진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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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동물원

도서정보 : 어피니티 코나 | 2020-04-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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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동물원』은 미국 작가 어피니티 코나의 두번째 장편소설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강요당한 쌍둥이 소녀의 눈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전쟁이 끝나고도 지속되는 혼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강인한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어피니티 코나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나치의 야욕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전 온 가족이 고국을 탈출해 절멸정책을 피했고 조부가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배경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그 시기에 관심을 가졌다. 어린 시절부터 프리모 레비와 파울 첼란 등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가의 책을 폭넓게 읽던 코나를 유독 사로잡은 것은 우생학 연구에 골몰하던 나치 의사 요제프 멩겔레와 그의 실험대상이 된 쌍둥이들이었다.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멩겔레는 나치가 저지른 잔학행위의 상징 같은 인물로 2차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유전적으로 특이한 아이들, 특히 일란성쌍둥이를 대상으로 극악무도한 생체실험을 자행했고, 그의 실험실을 거쳐간 약 1500쌍의 쌍둥이 중 전쟁 후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2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생존자들의 증언이 담긴 논픽션 『불길의 아이들』을 읽은 코나는 생체실험의 공포에도 살아남기로 굳게 다짐한 쌍둥이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고, 십여 년의 조사와 집필을 거쳐 2016년 『세상 끝 동물원』을 발표했다.

인간 역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견뎌낸 이들의 강렬한 이야기는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출간 즉시 전 세계 24개국에 판권이 팔리고, “무엇보다 잊기 힘든 것은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을 그리면서도 많은 수감자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극도로 처참한 고통에 마주해서도 희망과 친절한 마음을 지키는 의지를 포착한 필력이다”(<뉴욕 타임스>) “연민과 잔인함,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적인 소설”(<가디언>) “모든 문장이 중요하다. 무지막지하게 아름다운 책”(<퍼블리셔스 위클리>) 등의 찬사를 받았으며, 그해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엘르>, 아마존 ‘올해 최고의 책’, 반스&노블 ‘올해의 발견’에 이름을 올렸다.

죽음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우슈비츠의 동물원
악마적 실험의 대상이었던 우리에게 수술대보다 두려운 것은
쌍둥이 자매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1944년 가을,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열두 살 쌍둥이 펄과 스타샤는 멩겔레의 눈에 띄어 ‘동물원’이라는 막사로 보내진다. 스스로를 ‘의사 삼촌’이라 부르며 다정히 사탕을 나눠주는 그에게 선발되면 가스실에서의 즉각적인 죽음을 면할 뿐 아니라 수용소에서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소문이 돌지만 실상 그의 눈에 든 아이들은 생체실험의 도구, 소모품일 뿐이다. 고문과 학대로 가득한 그곳에서 쌍둥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에 적응해나간다. 첫날부터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며 대담한 모습을 보인 스타샤는 자기가 멩겔레의 실험대상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라고, 그러니 엄마와 할아버지도 수용소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차분하고 신중한 펄은 한 걸음 물러나 모든 상황을 관찰하며 수용소의 위계관계를 파악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억하려 한다. 둘은 어린 시절 함께 한 놀이와 상상을 위안 삼아 하루하루 버텨보려 하지만 역겨운 실험의 고통도 낯설게만 변해가는 서로의 모습도 견디기 어렵다. 반쪽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은 더더욱 괴롭다. 그렇게 잔혹한 시간이 이어지던 어느 겨울 멩겔레의 지시로 열린 공연에서 펄이 사라지고, 그날 펄이 영화 관계자의 눈에 띄어 세계적인 스타가 되리라 기대했던 스타샤는 나무통에 틀어박혀 괴로워하며 펄에게 편지를 남긴다.

마침내 소련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되어도 고통은 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쌍둥이를 잃은 소년 펠릭스와 함께 상처와 허기, 복수심을 안고 폐허가 된 폴란드를 헤매는 스타샤는 유대인을 유인해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나치 동조자, 소금광산에 숨어 목숨을 부지하는 독일 패잔병 등을 맞닥뜨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다. 한편 멩겔레의 실험실 깊숙한 철망우리에 갇혀 있던 펄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를 만큼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만다. 소련군에게 발견된 후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자유를 찾아 나서지만 과거에 사랑하던 모든 것은 망가져버렸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펄은 불편한 몸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동시에 헤어진 쌍둥이를 향한 어렴풋한 그리움을 느낀다.

참혹한 시대의 악을 증언하는 섬세하고도 강렬한 목소리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기적

펄과 스타샤의 시점을 오가며 그려지는 소설 속 세계는 완전한 암흑이다. 의료기술과 약물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해치고 죽일 목적으로 이용되는 그곳에서, 멩겔레는 서로 긴밀하게 유대하는 일란성쌍둥이가 분리를 경험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펄을 가둔 채 실험의 강도를 높이고 스타샤는 통제집단이 되어 자매의 통증에 민감하게 공명한다. 매순간 지금이 최악이라 생각하지만 더욱 참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고, 고통은 죽어서도 떨쳐지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멩겔레라는 악의 화신이 아니라 그의 학대를 견디며 분투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의지에 온전히 집중한다. 펄과 스타샤는 속눈썹과 점의 개수까지 집계되는 물건 취급을 받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버리지 않고 파괴된 세상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동물원을 탈출할 사람은 서로이길 바라고, 그 바람이 좌절되었을 때조차 서로 사랑했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끈질기게 남긴다. 그 어떤 인간적인 가치도 발 들일 틈이 없는 수용소에서 선의를 베푸는 주변인들 역시 어둠 속에서 희미하지만 쉼없이 반짝이는 빛처럼 힘이 되어준다. 어디서든 나타나 곤경에 처한 친구를 구해주고 수용소의 식량을 훔쳐 허기를 달래는 법을 알려주는 씩씩한 알비노 소녀 브루나, 아이들이 좀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상정보를 조작하는 일명 쌍둥이아빠, 반쪽을 잃어버린 펄과 스타샤의 옆을 끝까지 지키는 페테르와 펠릭스, 본인도 학대를 당하고 멩겔레의 조수 역할을 강요받으면서도 남몰래 수감자들을 챙기는 유대인 의사 미리. 해방 후 누구 하나 쉽사리 믿기 어려운 혼란 속에서도 이들은 예기치 못한 호의에 위안을 얻고 같은 처지의 생존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아우슈비츠의 모든 기억이 지워지길 바라는 한편 그 시절에 만난 따스한 선의만은 서로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펄과 스타샤는 어린 시절을 빼앗기고 성장을 허락받지 못했지만 이제 망가진 곳이 재건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쌓아올리기를, 끔찍한 시간을 끝내 헤쳐나오지 못한 이들이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크나큰 공포에 마주해서도 끝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 『세상 끝 동물원』은 아무리 커다란 악도 꺾어버릴 수 없는 강인함의 증거로, 가장 추악한 범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나는 세상의 악에 노출되고도 살아갈 방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스스로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누군가를 크게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 대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어떤 식으로 파괴되는지 알고 싶었다. 가족, 사랑, 아름다움, 기억, 공포의 의미를 다시 알고 싶었다.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다른 무언가로 바꿀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살해당한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 누군가는 부인하거나 망각되길 원할 이야기를 기억할 책임을 남긴 이들에게 내 주인공들을 통해 경의를 표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_어피니티 코나

▶ 『세상 끝 동물원』에 쏟아진 찬사

『세상 끝 동물원』은 하나의 패러독스다. 가장 추악한 범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철저한 조사를 거쳤으면서도 동화적인 가벼움이 깃든 소설, 성장을 허락받지 못한 아이들의 성장소설이다. 그 여정을 끝까지 함께한다면 참혹한 동시에 강렬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날 것이다. 앤서니 도어(『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무엇보다 잊기 힘든 것은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을 그리면서도 많은 수감자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극도로 처참한 고통에 마주해서도 희망과 친절한 마음을 지키는 의지를 포착한 필력이다. 뉴욕 타임스

연민과 잔인함, 야만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적인 소설. 가디언

경탄스럽다. 복합적이다. 가슴을 울린다. 강렬하다. 충격적이다. 탁월하다…… 이번만은 이 모든 찬사를 아낌없이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엘르

모든 문장이 중요하다. 주인공 소녀들을 단순히 희생자로 그리지 않은 선택에 찬사를 보낸다. 무지막지하게 아름다운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그보다 더 잔혹할 수 없는 세계에서 피어난 희망적인, 심지어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한다. 오프라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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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도서정보 : 세라 워터스 | 2020-03-3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단언컨대 이 소설과 더불어
불면의 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_ 스티븐 킹

★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 강력 추천 소설 ★
★ 2009 맨 부커 상 최종 후보작 ★

역사 스릴러의 거장 세라 워터스가
새롭게 변주하는 고딕 호러의 섬세한 향연!

펴내는 작품마다 다수의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한 세라 워터스의 다섯번째 작품이자 국내에 소개되는 네번째 작품이다. 세라 워터스는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소설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19세기 런던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어 빅토리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을 구상해, ‘빅토리아시대 3부작’이라 불리는 『벨벳 애무하기』(1998) 『끌림』(1999) 『핑거스미스』(2002)를 차례로 펴냈으며, 이후 소설 속 무대를 20세기로 옮겨 『나이트 워치』(2006) 『리틀 스트레인저』(2009) 『페잉 게스트』(2014)를 발표했다. 매 작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플롯은 물론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탁월한 묘사까지 더해져, 읽는 즐거움과 함께 문학적 가치도 충분한 소설을 쓰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맨 부커 상 후보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2003년에는 문예지 <그랜타>에서 선정한 ‘최고의 젊은 영국 작가들’에 뽑혔고, 같은 해 브리티시 북어워드 ‘올해의 작가상’과 워터스톤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2차대전 직후 서서히 몰락하는 영국 귀족 가문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소재로 한 『리틀 스트레인저』 역시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기이한 스토리에 예민한 사회 관찰과 날카로운 비판을 적절히 더해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히 재현해냄으로써 세라 워터스의 역사 스릴러 거장다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힘입어 공포소설로는 드물게 맨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스티븐 킹이 ‘2009 최고의 소설’로 선택하기도 했다. 작품마다 레즈비언과 성性에 관한 농밀한 스토리와 묘사를 선보이며 ‘레즈비언 소설의 총아’로 불리는 세라 워터스가 『리틀 스트레인저』에서는 유일하게 레즈비언 이야기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세라 워터스의 작품 대부분이 영국에서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벨벳 애무하기』와 『핑거스미스』는 에딘버러 극장과 오리건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연극 무대에 올려졌다. 국내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년 개봉 예정. 하정우, 김민희 주연)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삼았다고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워릭셔의 대저택 헌드레즈홀,
이곳에서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린 이곳에 너무 고립되어 살았어요. 오늘밤에 뭔가 일이 벌어질 겁니다.”

영국 워릭셔의 대저택 헌드레즈홀. 수백 년간 이곳을 지켜온 에어즈 가문은 두 차례의 전쟁 이후 서서히 몰락하며 안팎으로 붕괴가 진행중이다. 옛 영화를 간직한 구식 상류계급의 마지막 세대 에어즈 부인, 신체적.정신적으로 전쟁의 상흔이 깊이 남은 아들 로더릭, 영리하고 쾌활한 성격에 강인한 생활력으로 헌드레즈홀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딸 캐럴라인은 저택 안에 ‘고립’된 채 서서히 사회에서 잊혀가고, 저택 곳곳을 돌보고 살피던 하인들도 어느새 모두 떠나 새로 들어온 나이 어린 소녀 베티가 저택의 유일한 하녀이다.

2차대전 종전 이듬해 여름, 닥터 패러데이가 헌드레즈홀을 방문한다. 하녀 베티가 병이 나 주치의 닥터 그레이엄을 호출했으나 그에게 응급환자가 생겨 패러데이가 대신 오게 된 것. 패러데이는 과거 헌드레즈홀에서 일했던 유모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 이후 삼십여 년 만에 다시 헌드레즈홀을 찾은 패러데이는 자신이 동경해 마지않았던 저택의 쇠락한 모습에 당황을 금치 못한다. 병이 났다던 하녀 또한 지나치게 크고 고요한 이 저택에서 왠지 모를 공포를 느껴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꾀병을 부린 것이었다. 이 왕진 이후 패러데이는 그레이엄 대신 에어즈 가문의 주치의를 맡게 되고, 로더릭의 다리 부상을 치료해주겠다고 자청해 매주 헌드레즈홀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한편 헌드레즈홀에 이웃한 랜들 가문의 대저택 스탠디시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랜들가가 영국을 떠난 후 몇 년 동안 비어 있다가 마침내 런던에서 온 건축가 부부에게 팔렸다. 주변의 귀족 가문이 하나둘 떠나 홀로 섬에 버려진 느낌이었던 에어즈 부인은 스탠디시에 새로운 주인이 생긴 데 기뻐하며, 그들을 헌드레즈홀로 초대해 조그만 모임을 열기로 한다. 헌드레즈홀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고 파티는 그런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난데없이 파티장 한구석에서 새된 비명이 울리고 연회는 흥건한 핏물과 함께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헌드레즈홀의 순하디 순한 애견 지프가 일으킨 이 끔찍한 사고는 실상, 앞으로 헌드레즈홀에서 벌어지게 될 수많은 일들의 전조에 불과했는데……

지프의 사건으로 시작된 그것, 아마도 ‘꼬집음’이나 ‘속삭임’-문득 떠올랐는데, 베티가 바로 그렇게 표현했다-으로 시작된 그것이 서서히 힘을 축적해나갔다. 그리고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고, 불을 붙이고, 징두리널에 낙서를 했다. 이제는 발이 달려 종종걸음으로 달릴 수도 있다. 쥐어짜낸 듯한 목소리도 낼 수 있다. 그것은 자라고 있다, 성장하고 있다……
다음에는 뭐가 될까? (본문 546쪽)

정체불명의 존재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기이한 사고 앞에서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기며 독자들은 물을 수밖에 없다. 과연 이 기이한 일은 누구의 짓인가, 사람인가 유령인가. 이 ‘낯선 존재’는 누구인가.


섬세하게 조직된 서스펜스,
영국 사회의 계층 분화에 관한 정확한 묘사

『리틀 스트레인저』의 배경이 된 20세기 중반은 두 차례의 전쟁 이후 영국 사회의 가치관이 전체적으로 변한 시기이다. 노동자계급이었던 사람들은 더이상 귀족들의 집사나 하녀 노릇을 하길 원치 않았고, 귀족들 역시 자신들이 선조의 유산을 유지할 재정적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울며 겨자 먹기로 저택을 처분하거나 이사를 떠났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사회 변화와 ‘쇠락한 대저택’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기괴한 스토리를 펼쳐 보인다. 이 소설의 집필 배경에 대해 세라 워터스는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전쟁 후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힘이 커진 노동자계급은 사회 변혁을 꿈꾸게 되었고,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위협받고 공격당하고 있다고 여겼다. 나는 ‘공격당하고 있다’는 그들의 생각에 흥미를 느꼈다. (……) 초자연적인 현상을 떠올린 건 소설 구상을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서였는데, 상류계급이 느낀다던 ‘위협과 공격’을 귀신이 출몰하는 집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애프터 엘렌>과의 인터뷰)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리틀 스트레인저』는 섬세하게 조직된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공포소설인 동시에, 당시 영국 시대상을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히스테리보다 더 괴상망측하네. 마치, 뭐랄까, 뭔가 달라붙어서 집안사람 전부의 생기를 천천히 빨아먹는 것 같아.”
“뭔가 있긴 하지.” 그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 이름은 바로 노동당 정부고. 에어즈가 사람들의 문제는-그런 생각 안 드나?-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할 생각이 아예 없다는 거야. 오해는 말게. 나도 그 사람들 심정에 상당히 공감하니까.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들처럼 오래된 잉글랜드 가문에 남은 게 뭐겠는가? 계급적인 면에서는 운이 다했지. 정신적인 면에서는 아마 전혀 바뀌지 않고 그저 살던 대로 살걸.” (본문 539쪽)


영국 몰락 귀족의 일상,
드러난 평온과 감춰진 혼돈의 모든 것

어머니는 이 집이 우리의 약점을 다 꿰고서 하나씩 시험해보는 거라고 하셨죠. 로디의 약점은 알다시피 이 집 그 자체였어요. 내 약점은…… 그래요, 아마 내 약점은 지프였겠죠. 그런데 어머니의 약점은 수전이에요. (본문 504쪽)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마치 에어즈 가문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안고 있는 ‘약점’을 노려 공격하는 듯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헌드레즈홀 사람들은 점점 공포에 빠져든다. 그리고 각각의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사건이 겨냥한 당사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관찰자(1인칭 화자 닥터 패러데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 모습, 특히 영국 몰락 귀족의 일상, 그 면면에 드러난 평온과 감춰진 혼돈, 전쟁이 남긴 상흔 등이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뜨거운 물 한 컵을 가지러 부엌까지 터벅터벅 직접 내려가지 않고 옛날 방식대로 종을 울려 하인을 부를 수 있다는 게 어머니의 기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몰라요. 그런 종류의 일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전쟁 때까지만 해도 알다시피 헌드레즈에는 하인이 많았잖아요.” (본문 75쪽)

영지가 산산조각 팔려나가고, 이렇다 할 만한 수입원이 없어 극도의 긴축 재정에 돌입하는 와중에도 에어즈 부인은 하녀를 부리며 자신의 삶이 더 안락했던 시대를 놓아버리지 못하고, 젊고 건강한 청년이었던 로더릭은 참전 당시 입은 사고로 얻은 흉터와 망가진 다리, 그리고 사고 당시 목숨을 잃은 동료를 향한 죄책감 때문에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버렸다. 거기에 더해 젊은 나이에 대저택 경영이라는 커다란 짐까지 홀로 떠안은 부담감이 로더릭을 더욱더 옥죈다. 당시 영국 사회에는 이들 가문 같은 처지에 있는 귀족의 후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워터스는 이들을 통해서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추지 못하고 ‘은둔’을 선택한 채 조용히 사라지는 ‘구시대’ 상류계급의 모습, 전쟁이 남긴 상흔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인물, 변해버린 시대에 모든 것을 잃고 좌절하는 이들의 고통 등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예전의 합리적인 관점을 고수하면서 헌드레즈가 사실상 역사의 흐름에 패배한 것이라고,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추는 데 실패해 쇠망한 것이라고 단호히 주장했다. (……) 영국을 한번 둘러보라고 그는 말한다. 유서 깊은 상류층 집안이 십중팔구 똑같은 식으로 사라지고 있다. (본문 704쪽)

“사실 로더릭이 부상 때문에 험악해진 것은 놀랄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토록 젊고 건강한 청년이 저렇게 됐으니까요. 제가 로드 나이 무렵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분노했을 겁니다. 참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순식간에 다 잃었으니까요. 건강, 외모. 어떻게 보면 자유를 잃었다고도 할 수 있죠.”
부인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험악해진 정도가 아니에요. 전쟁 때문에 사람이 백팔십도 변한 것처럼 애가 아주 이상해졌어. 로더릭은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모조리 증오하는 것 같아요. 아, 그애 같은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평화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그애들에게 요구했던 온갖 끔찍한 일들을 생각하면!” (본문 176쪽)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게. 자네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지주가 영국에 백 명은 될 테니까. 다들 자네가 오늘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걸.”
“천 명은 될걸요.” 그는 무기력하게 대꾸했다. “학교 동창이든 공군 동기든 다 그래요.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쩌다 만나 얘기를 들으면 레퍼토리가 만날 똑같아. 대부분 진즉에 재산을 다 말아먹었지. 몇몇은 일자리를 얻어야 할 판이고, 부모는 전전긍긍하며 살고…… 오늘 아침에 신문을 펼쳤더니 주교가 ‘독일인의 수치’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더군요. 어째서 다들 ‘영국 남자의 수치’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 거지?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영국 남자들, 전쟁이 끝난 뒤 재산과 수입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걸 두 눈 멀거니 뜨고 지켜봐야만 하는 영국 남자들에 관해 말입니다. 그래도 밥같이 지저분하고 약삭빠른 장사꾼은 잘만 살죠. 땅도 없고 가문도 없고 지역민 눈치볼 필요도 없는 사람들, 그 망할 베이커하이드 같은 놈들은……” (본문 225~226쪽)

한편 돌이킬 수 없이 기울어가는 가세에도 귀족적 삶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나 끝내 저택을 지키려 아등바등하는 남동생 로더릭과 달리 캐럴라인은 헌드레즈홀이라는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캐럴라인은 일찍이 헌드레즈홀을 떠나 여성해군단에 복무하면서 새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부상당한 로더릭을 돌보기 위해 저택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닥터 패러데이와의 관계가 발전하면서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캐럴라인은 영국을 떠날 계획까지 세웠으나 저택은 그녀를 호락호락 놓아줄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 캐럴라인처럼 영리하고 건강하고, 좋은 집안에서 교육받은 인물조차도 당시 영국의 수많은 몰락 귀족들이 그러했듯이 “논리조차 압도해버리는 불가항력의 운명”(본문 679쪽)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니까, 영국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요. 이곳에는 지금 자신을 위한 장소가 아무 데도 없다고.”
젠트리 출신의 방청객 한두 명이 이 말에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문 692~693쪽)


“『리틀 스트레인저』는 충돌과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작품이 ‘매끈하게’ 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세라 워터스)

저택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과 그 공포의 이면에 깔린 어두운 심리가 독자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동안,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인물은 에어즈 가문을 곁에서 지켜보는 1인칭 화자 닥터 패러데이다. 패러데이는 과거 헌드레즈홀에서 일했던 유모의 아들로, 이제는 의사가 되어 중상류계급으로 올라선 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에어즈 가문의 주치의뿐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로까지 관계를 맺으며 긴밀하게 왕래하지만,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두 계급 사이의 생래적인 거리, 대화중에 시시로 드러나는 이들의 귀족 의식에 불편함을 느낀다. 두 계급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갈등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고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긴장감을 더하고, 이 긴장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이 1인칭 화자의 말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과 불안이다.

그들을 연민과 질시가 뒤섞인 감정으로 지켜보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1인칭 화자인 나, 닥터 패러데이는 노동자계급에서 중상류계급으로 성공적으로 올라선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헌드레즈홀에서 유모로 일했으니 어찌 보면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슬며시 역전된 셈이다. 작가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계급적 앙금과 미묘한 심리적 낙차를 섬세하게 잡아내어 시대 분위기를 꼼꼼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구성 면에서는 화자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데 솜씨 좋게 써먹는다. (‘옮긴이의 말’에서)

세라 워터스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리틀 스트레인저』는 충돌과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작품이 ‘매끈하게’ 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의 바람대로, 이 소설은 ‘매끈하게’ 읽고 덮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일단, 앞에서도 밝혔듯이 1인칭 화자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도 좋을 것인지, 그 신뢰성이 어느 순간 무너지기 때문이다. 화자를 향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지금까지 읽어온 모든 이야기가 흔들린다.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까지 이 ‘낯선 존재’를 명확히 밝혀주지 않는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들이 객관적으로 바라본 시선을 빌려 ‘그것’의 정체를 짐작해볼 수는 있지만, 소설 속에서 ‘그것’을 가리켜 보이는 화살표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로더릭에게 그것은 모종의 ‘감염’이고, 에어즈 부인에게 그것은 어려서 세상을 떠난 딸 수전의 환영이며, 캐럴라인에게 그것은 캐럴라인이 마지막에 외치는 “당신”이다. 반면 제3자의 입장인 닥터 실리에게 그것은 영국 귀족계급을 뿌리째 흔든 ‘노동당 정부’이자 세월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에어즈 가문 자체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많은 평자가 『리틀 스트레인저』를 논하며 1인칭 화자가 범인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나 마지막까지 어느 것도 속 시원히 밝혀주지 않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함께 거론했으며, 어느 리뷰어는 “다 읽고 나서 안전하게 결론을 낸 후 깔끔하게 보따리를 싸서 책장에 집어넣을 수가 없는 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헌드레즈홀을 닮았다.“안과 밖의 분위기가 이렇게 확연히 다른 것은 이 저택이 부리는 기묘한 마술 가운데 하나”(본문 123쪽)이고, 읽을 때마다 그 ‘낯선 존재’의 정체가 확연히 다르게 읽히는, 도저히 독자를 안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이 책이 부리는 기묘한 마술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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