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철학의 현대적 기원, 분석철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7-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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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은 무엇인가

1. 분석철학과 미국철학

‘分析哲學(Analytic philosophy)’은 철학연구에서 言語分析의 방법이나, 記號論理의 활용이 不可缺하다고 믿는 이들의 철학을 총칭한다. 이러한 분석철학의 흐름은, 특히 현대 美國哲學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상 현대의 미국철학은 분석철학에 의해 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분석철학의 바탕에는, 그야말로 東西古今의 온갖 철학사상들이 녹아들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非但 분석철학만의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어떤 철학사상에 접급하기 위해서는, 그 裏面에 배치되어 있는 哲學思想的 흐름을 이해하고 인식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내 편향적이며 단편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분석철학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분석함으로써 철학하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분석철학은, 그러한 분석의 대상을 주로 언어로 삼는다. 언어라는 것을 분석함으로써 현실세계 자체를 알 수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實證하고 檢證하고 反證하기도 한다. 또한 논리적인 상태를 지향하여 과학적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지극히 현대적인 철학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대상에 대한 엄밀한 분석으로써 그 대상 자체를 理解할 수 있는가. 여전히 분석철학조차도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컨대, 南韓과 北韓은 한 민족이며, 하나의 국가공동체였다. 朝鮮族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런데 역사의 桎梏 안에서 적잖은 세월이 흐른 후,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21세기에 이르러 韓國人들이, 美國人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北韓人이나 朝鮮族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 같지 않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일마저도 이처럼 난감할 따름인데, 인간존재가 과연 天地自然 자체를 理解할 수 있을까. 分析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굳이 不可知論 따위를 거론코자 함은 아니다. 인류의 天才였던 빼어난 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분석하지 못한 대상을, 과연 ‘개돼지 군중’으로서나 근근이 살아내는 서민대중이 분석하여 이해할 수 있을까. 실로 난감할 따름이다.
다음은, ‘비트겐슈타인’이 1921년 10월, ‘버트런드 러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저는 여전히 ‘트라텐바흐’에서 憎惡와 卑賤에 둘러싸인 채 있습니다. 저는 數量이나 程度 따위가 中間인 사람이란, 어디서건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더 나은 것이 없고, 어디보다도 무책임합니다.”
이로써 분석철학의 開祖인 ‘비트겐슈타인’이 현실세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크게 그릇되지 않다.
현실세계의 인간존재 대부분은, ‘그저 그렇고 그런 중간치’일 따름이다. 그래서 한평생 ‘그저 그렇고 그렇게’ 살아내다가 죽어간다. 실로 그런 것이, 현실세계 인간존재들의 흔한 삶이다.
그러다보니 철학자는 현실세계에 접근하지 못한다. 증오에 찬 群衆, 비천한 ‘개돼지 군중’, 그러한 증오와 비천 속에서, 쓰레기더미에서 피어나는 한송이 연꽃처럼, 철학자는 자기만의 꽃을 피운다.
左派 同性愛者 ‘비트겐슈타인’의 고독한 哲學旅行은, 그러한 과정의 지속이었다. 시대의 ‘금수저 유대인’로서 태어났지만, 그런 탓에 여러 이유로 결코 현실세계와 타협할 수 없었다. 결국 그런 것이, 고독한 人文學者의 삶인 것이다.
生來的으로 고독한 탓에 인문학자가 되는 것이며, 또한 인문학자인 탓에 고독하다. 분석철학은 그러한 고독의 토대 위에서 피어났다.
그러니 고독을 體得치 못한다면 분석철학을 알 수 없으며, 나아가 철학은 물론 인문학 역시 알 수 없다.
더욱이 현실세계 대부분의 중간치들은, 증오와 비천 속에서 철학이나 인문학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못한다. 그들의 관심은 이미 商品과 資本에 절실히 眩惑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칼 포퍼’의 ‘열린 사회’는 ‘닫힌 사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닫힌 사회’에서, 사회의 ‘도덕과 법률’은 마치 자연법칙과 같이 절대적이어서 비판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닫힌 사회’는, 역사란 법칙에 따라 어떤 목표를 향해 발전한다는 發展史觀的 歷史主義에 기초해 있다.
‘닫힌 사회’에서 국가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알고 있다. 일상생활에 빠져 지내는 개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직 국가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기에, 국가는 개인들의 삶을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한다. 또한 대화보다 권력의 우위에 의한 폭력과 제재가 효과적인 설득 수단이라고 믿는다. 지극히 全體主義的인 사회라고 할 것이다.
반면에 ‘닫힌 사회’와 달리 ‘열린 사회’에서는, ‘도덕과 법률’을 필요에 따라 언제든 변경되는 약속 같은 것으로 본다. 또한 ‘열린 사회’는, 역사를 정해진 방향에 따라 발전해 가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역사는 사람들 사이의 수많은 토론과 시행착오를 통해 점차 개선될 수 있다. 경험 부족 탓에 많은 혼란과 실수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사회’의 사람들은 토론을 통한 세세한 조정들을 통해, 오류를 점차 제거하며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다.
‘열린 사회’는 개인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비판에 귀 기울인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인류는 발전한다.
불완전하기에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으며, 노력에 의해 우리는 진리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서로의 뜻과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제도가 필요하게 된다. 자유와 평등은 이런 믿음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
또한 ‘열린 사회’는, ‘닫힌 사회’와 같이 理想과 計?에 따라 개인들을 억누르고 희생시키면서, 사회 전체를 개선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열린 사회’는 ‘점진적 사회공학’을 추구한다. 個人들이 理性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며, 사회의 지배적인 견해에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自由가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점진적으로 발전해 간다.
파시즘, 마르크스주의 등 온갖 거창한 全體主義 이론들이, 장밋빛 이상에 심취해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던 시대에, 포퍼의 주장은 분명 전체주의자들의 폭력에 맞서는 합리적인 이론이었다.
그러나 포퍼 死後 어느정도 세월이 흐른 21세기에도, 세계는 여전히 포퍼의 시대와 별다르지 않다. 소련의 멸망은 ‘닫힌 사회’의 소멸을 예정하는 듯했다. 그래서 중국과 북한 등도 죄다 멸망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닫힌 사회’들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으며, ‘열린 사회’들 역시 여전히 존속한다. 단지 각 사회체제의 극소수 旣得權 계층만이 갖은 프로파간다로써 자기의 이익을 도모할 따름이다.
이러한 樣相이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人類史를 감안할 때, 포퍼의 주장만으로 그러한 ‘열린 사회’가 실현되리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현실세계는 고작 ‘利益과 戰爭’에 의해서나 작동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칼 포퍼’는, 10대 후반부터 마르크시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등,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여 합병할 때, 마르크주의자들이 그 사건을 帝國主義的 資本主義의 자연스러운 귀결, 즉 共産主義革命으로 가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마르크스주의를 일종의 全體主義로 규정하고,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思想遍歷을 정당화라도 하듯이, “젊어서 ‘마르크스주의(共産主義)’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지만, 그 시절을 보내고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빨갱이)’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21세기, 大韓民國과 北韓의 ‘개돼지 군중’을 비롯하여, 隣接國으로서 중국의 ‘개돼지 군중’들에게, 가장 유력한 言明이라고 할 것이다.
분석철학이 현대 미국철학의 중심에 있으므로, 미국철학은 철학사상적으로 獨斷的이거나 獨立的이지 않다. 예컨대, 미국철학에서 극심하게 배척했던 맑시즘 역시 그 바탕에 배치되어 있다.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 미국사회에서 흔히 ‘PC左派’라고 하는 기득권 세력이, 사회 전반에서 ‘혁명적 해체’를 조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反動으로 ‘트럼프’가 등장했음은 周知의 사실이다. 그러니 마르크스를 알지 못하면 미국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獨尊儒術 식의 이데올로기로써 현실세계를 조작하려는 기득권 세력들은, 늘 孤立主義的인 프로파간다를 제시한다. 그래야만 현실세계를 權力的으로 지배하기에 容易한 탓이다.
분명 미국철학은 자유민주주의 陣營에서는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은 철저히 ‘利益과 戰爭의 법칙’으로써 작동한다. 현실세계의 어떤 철학사상이라도 순수하게 고립되어 있는 경우는 不在하다.
만약 그러한 고립이 실현된다면, 그러한 집단공동체 진영은 애당초 철학사상으로 分別될만한 정신문명을 정립하여 구성할 수 없다. 이는, 人類史의 事例로써 쉬이 검증된다.
初期 社會主義運動이 基督敎를 비판하는 反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는 소수의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실천되지 못했지만, 현대교회와 마르크스주의는 人文主義를 비롯한 공통된 주제들을 찾아서 交接하고 있다.
예컨대,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는, 실제로 예수는 민중들과 연대한 社會主義者였다고 주장한다.
‘파울 틸리히’는, “사회참여를 무시하면서 내세만 찾는 기독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회주의는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려는 기독교의 정신과 일치하며,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사회주의를 존중해야 하며, 그 힘을 자신의 신앙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오르크 분슈’는, “사회주의는 기독교의 몸이며,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들의 것이다”고 顚覆的인 주장을 한, 예수의 山上說敎에서 나타나는 기독교는, ‘社會主義의 靈魂’이라고 보았으며, 이후 宗敎社會主義者들은, 基督敎와 社會主義 간의 공통점을 찾음으로써, 革命的 融合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進步的 改新敎 계열의 신학자인 ‘자크 엘륄’은,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구조적 모순과 불의를, 성서는 구원에 대해 말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辨證法으로써 양립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극단적 사례는, 바로 北韓이다. 대한민국이 憲法的으로 國家로서 否認하는, 북한이라는 기괴한 不法的 집단체제는, ‘主體思想 이데올로기’에 의해 작동한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共産主義的 社會主義, 白頭血統으로써 실현되는 朝鮮의 世襲王朝, 似而非 基督敎 永生敎 메시아 등으로써 구성된 ‘雜湯 이데올로기’다.
여기서 북한 주체사상이 기독교철학을 원용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사회주의체제이므로, 反종교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야말로 철저히 종교적인 神政國家이다.
예컨대, 北韓體制의 開祖 金日成의 外家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때문에 맑시즘 철학사상에 무지했던 김일성이, 그나마 기독교철학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치 ‘洪秀全의 太平天國’처럼, 북한이라는 ‘永生 先軍 天國’을 제작한 것이다.
美國哲學은 미국인의 철학적 활동 또는 성취이다. 미국의 철학적 전통은, 아메리카의 유럽 植民地化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淸敎徒는, 초기 미국철학을 종교적 전통에 끼워넣었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가 강조되었다.
‘존 윈스럽’과 같은 사상가는, 공공 생활이 사행활에 우선한다고 주장하였고, 그의 이러한 주장은, ‘로저 윌리엄스’와 같은 신학자들이 종교적 관용과 政敎分離를 강조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18세기 미국철학은 크게 보아 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淸敎徒 칼뱅주의 개혁 신학으로, 이는 계몽주의 자연철학과 같은 제1차 대각성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두 번째 부분은, 미국 啓蒙主義의 도덕철학으로, 미국 내 대학에서 교육되었다. 이들은 격동의 1760~1770년대에, 合衆國을 위한 새로운 知的 문화를 만드는 데 이용되었고, 미국 國父들의 정치사상과 함께 결합된 유럽 계몽주의의 미국적 구현으로 이어졌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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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도서정보 : 김겨울 | 2019-07-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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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운영하는 ‘북튜버’ 김겨울. 책 읽는 사람보다 영상 보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좋은 책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고 읽는 일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서 그는 영상 속으로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 방법을 시도했다. 방에서 편안히 책 읽는 모습, 친구와 책으로 수다떠는 모습, 좋아하는 작가의 북콘서트에 간 일, 서점에 숨어 있는 좋은 책을 발견하는 순간을 모두 촬영해 영상으로 만들었고, 책 영상이 업로드되는 유튜브 속 서점으로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책을 궁금해하며 책에 대해 물어 왔고, 댓글 창에는 책에 대한 감상과 질문들이 쌓였다. 영상 문화의 한복판에서 함께 읽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북튜브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았던 때 누구보다 먼저 북튜브를 시작한 그에게 사람들은 이제 매일같이 질문한다. “북튜브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구독자는 어떻게 모았나요? 촬영 장비는 뭘 쓰고 편집은 어떻게 하나요? 영상 한 편을 찍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북튜버는 돈을 벌 수 있나요? 유튜버의 삶에는 어떤 고충이 있나요? 앞으로 북튜버는 지금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을까요?” 이 책에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과 이제껏 확연히 드러난 적 없는 북튜브 일의 이면에 관한 이야기까지 샅샅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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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 연구

도서정보 : 김태준 | 2019-07-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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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계모(繼母)’라면 마땅히 ‘악(惡)’의 권화(權化)*처럼 생각하게 된 것은 동양의 봉건적 시대의 가족제도에 덧붙인 필연적 산물이다.
가족제도는 부부를 단위로 한 것이지만, 옛날에는 위에 시부모를 모시고 곁에 누이동생들과 시형제를 거느려 복잡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오로지 폭군 같은 남편, 또는 독사 같은 시부모의 중압감에 신음하는 부부로서 ‘아내’의 존재가 있었을 뿐이지 시집살이의 고초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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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칸트인가

도서정보 : 김상환 | 2019-07-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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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철학은 왜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가?“





도서 소개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칸트의 ‘3대 비판서’를 통해 이뤄낸 위대한 철학 혁명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강의를 책으로 만난다!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엄선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 출간됐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긴 서가명강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지식의 확장과 배움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왜 칸트인가』는 서울대 철학과 김상환 교수가 칸트의 위대한 업적을 통해 인간에게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철학이 시대의 고민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그 의미를 세밀하게 되짚어보는 대중교양서다. 서양 사상사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속하는 칸트는 근대인에게 제기되는 궁극의 물음들과 씨름하면서 사고의 대전환을 이루어낸 서양철학의 아이콘이다. 오늘날까지 철학사를 장식하는 주요 사조는 칸트가 발견한 ‘초월론적 차원’ 위에서 개진되어 왔던 만큼 칸트는 근대적 사유의 대륙을 발견한 철학의 콜럼버스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칸트 철학이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생각한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한 권에 집약된 칸트 철학의 핵심 개념!
『왜 칸트인가』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네이버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에서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김상환 교수의 철학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서울대에서 개설되고 김상환 교수가 강단에 선 철학 입문 강의에서 학생들은 칸트를 다루는 부분에서 가장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칸트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현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칸트를 읽고 이해해야 한다고 가르쳐온 저자는 이 책에서 칸트 철학과 그것이 이루어낸 혁신적 변화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저자는 인간 사고의 다양한 층위를 분석하면서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칸트를 조명하기 위해 칸트 철학을 다양한 도식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생각한다는 것은 때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 다이어그램을 만들어간다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즉 철학은 지식을 가르친다기보다 생각하기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철학은 왜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가?
인류 정신사를 뒤바꾼 칸트의 3대 비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여러 철학자 가운데서도 칸트의 위상은 특별하다. 특히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꼽으라면 칸트를 빼놓을 수 없다. 인류의 정신사를 뒤바꾼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낸 것이 칸트 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 『왜 칸트인가』는 칸트가 남긴 3대 비판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을 통해 칸트 철학의 근간을 소개하며, 칸트 이전의 철학과 이후의 철학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칸트는 무엇을 이루어냈기에 이처럼 특별한 것일까? 칸트 철학은 인식론, 윤리학, 미학, 자연관 각각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는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가 일으킨 전회에 비유되곤 한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통해 이전과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주장했듯이, 칸트는 초월론적 차원을 발견하고 규명함으로써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완전히 전도시켰다. 칸트 이전에는 인식의 출발점에 대상이 있고 주체는 그 대상을 수동적으로 비추는 거울로 간주되었다는 점에서 칸트의 인식론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불리는 것이다. 이 책 『왜 칸트인가』에서 저자는 칸트가 인식론의 혁신과 함께 3대 비판서 각각을 통해 어떠한 복수의 전회들을 일으켰는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처럼 철학의 신대륙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를 발견한 칸트를 저자는 ‘철학의 콜럼버스’에 비유한다. 칸트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철학사를 수놓은 의미 있는 사상은 대부분 칸트가 발견한 대지 위에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도는 물론 칸트 이전에도 있었다. 데카르트가 먼저 사유하는 주체를 논했다. 그러나 칸트는 인식론에 완결된 형식을 부여해 철학의 근대적 위상과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다. 칸트가 서양철학사에서 차지하는 거대한 위상과 그가 일으킨 위대한 변화를 표현하는 많은 말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호수의 비유다.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라는 큰 호수로 들어오고, 칸트 이후의 모든 철학은 칸트에서 시작된 물줄기다.” 이후 칸트를 시작으로 발전한 독일관념론은 서양철학사의 주류 중 하나가 되어 여전히 현대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철학은 어떤 문제와 씨름하고 어떻게 답하는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 위대한 스승, 칸트
이 책 『왜 칸트인가』에서 칸트가 인식론, 윤리학, 미학, 자연관에서 가져온 각각의 전회를 되짚어보는 이유는 철학적 논쟁을 위함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오히려 칸트의 현대적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칸트를 철학의 근대적 정체성을 확립한 철학자로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근대인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 위대한 스승으로 부각하고 있다.
칸트는 당시 서양철학이 다루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한 철학자다. 저자는 칸트가 근대 사회에서 제기되는 철학적 물음들을 정확하게 정식화했고, 그 분석이나 결론을 ‘모범 답안’으로 제시했다고 말한다. 칸트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주지는 못할지언정, 자신의 시대에 제기되는 철학적 물음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칸트는 적어도 그들이 참고할 가장 균형 잡힌 답안을 내놓은 철학자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인간 사고의 다양한 층위를 분석하면서 근대인에게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친 위대한 스승, 칸트의 철학이 이루어낸 혁신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꼽으라면 칸트를 빼놓을 수 없다. 칸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헤겔과 더불어 서양철학사의 5대 천왕에 속한다. 이 5대 천왕 중에서 단 한 명만 꼽아야 한다면 많은 경우 칸트는 플라톤과 경쟁하면서 정상을 다툴 것이다. 칸트는 그만큼 서양 사상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우리는 앞으로 칸트 사상의 근간을 소개하되 그가 서양 사상사에 가져온 혁명적 변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서양철학사는 칸트에 의해 어떻게 달라졌는가? 칸트 이전의 철학과 칸트 이후의 철학은 어떠한 대조를 이루는가? 이것이 이번 강의 전반을 끌고 가는 주도 물음이다. 이것은 서양 사상사에서 칸트가 만들어놓은 근대성의 문턱 자체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들어가는 글 : 11-12쪽】



『순수이성비판』의 대부분은 우리의 마음을 가르는 과정, 의식을 해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왜 가르고 해부하는가? 의식 안에 들어 있는 인식능력을 찾아내고 그 능력의 작동원리(선험적 형식)와 한계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칸트는 인식과 관련된 모든 물음을 마음의 분석을 통해 해결해간다.
요즘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마음 이론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일체가 오로지 마음 작용에 따른 이미지일 뿐이라는 불교의 유식(唯識) 이론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칸트의 의식 이론이다. 그만큼 칸트의 의식 이론은 오늘까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부 칸트의 인지 혁명 - 마음 모델의 혁신 『순수이성비판』 : 38쪽】



칸트는 이런 선과 법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법을 윤리학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태양의 자리에 놓고 선을 종속적인 위치에 두는 것이다. 칸트는 이처럼 선 중심의 윤리학을 법 중심의 윤리학으로 대체한다. 이렇게 위치가 바뀌면서 법과 선 각각의 의미도 달라진다.
법은 이제 사회 구성원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편적 규칙이 된다. 그 규칙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규칙에 부합하는 행동은 ‘선하다’ ‘좋다’ ‘착하다’라고 말해지는 반면, 그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악하다’ ‘나쁘다’ ‘죄다’라고 말해진다. 선악은 이제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도덕법칙과의 일치 여부를 가리키는 술어에 불과하다.

【2부 | 칸트의 윤리 혁명 - 덕 윤리에서 의무의 윤리로 『실천이성비판』 : 100-101쪽】



숭고는 아름다움과 함께 고전 미학의 양대 범주를 이룬다. 예술가들은 아름다움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숭고 또한 추구해왔다. 요즘의 예술가들은 예쁘게 조형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름다움의 미학을 멀리 하고 오히려 ‘추醜의 미학’17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런 추의 미학을 뒷받침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숭고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미학의 중심에는 아름다움이 있다기보다는 숭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숭고를 이야기할 때 칸트는 자연의 숭고가 우리 안의 숭고를 일깨우기 위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숭고 체험은 도덕법칙이 일으키는 숭고 체험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3부 | 칸트의 미학 혁명 - 근대 예술의 정초 『판단력비판』 전반부 : 221-222쪽】



칸트는 생명체를 존재론적으로 절대화하는 데는 손사래를 치며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 이후 철학사를 장식하는 다양한 유기체 형이상학은 칸트가 이루어놓은 결정적인 전회가 없었다면 세상에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독일관념론 이후 20세기에는 베르그손, 화이트헤드,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이 생명의 존재론이나 유기체 형이상학을 펼친다.
물론 새로운 과학적 발견의 성과들을 흡수한 이들은 저마다 19세기의 학자들과는 다른 생명 개념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들이 칸트가 『판단력비판』 후반부에서 가져온 전회에 여전히 빚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전회를 불완전하게나마 코페르니쿠스적 도식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다.

【4부 | 칸트의 생태 혁명 - 기계론에서 유기체론으로 『판단력비판』 후반부 :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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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소인배가 논어를 읽는다고

도서정보 : 서한겸 | 2019-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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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사서(四書) 읽기

『논어』『맹자』『중용』『대학』 이들 네 책은 유교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경전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겐 기성세대를 위한 꼰대 지침서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삼십대에, 심지어 여자가 사서를 읽고 책을 썼다면, 이것은 젊은 꼰대의 출현인가 지능형 안티인가. 유교전통 또는 유교문화가 우리 사회에 세대 갈등과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원흉으로 지목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대화 이후 줄곧 유교는 허례허식, 체면치레, 남존여비, 상명하복 등의 구습으로 질타당해왔다.

그러나 유교가 중요시하는 여러 개념은 그 본래의 목적에서 멀어져 잘못 이용되어온 측면이 크다. 공자의 가르침은 어진 정치를 위한 군자(왕)의 도가 기본인데, 충효와 예만을 강조하여 지배자에게 유리한 논리로 바꿔버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억압적 인습을 거부하기 위해서라도 유교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사서를 제대로 읽고 비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고전에는 현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읽히고 전해지는 데도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저자는 사서를 아주 오래된 인류의 고전으로서 정독하고, 과감히 버려도 좋을 관점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 사이의 경계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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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한겨레 하느님

도서정보 : 이종대 | 2019-07-11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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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애국가에 나오시는 하느님으로 옛날 하느님 이름이다. 아리랑 노래 40字는 배달나라 때까지 道닦는 사람들이 불렀던 곡조로 三天에수 四가 근본이며 이만가지 善(선)과 德(덕) 쌓는 일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하늘문 日世界고개 넘어 하늘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님(아리랑)께 조르는 가사내용이다.

아리랑은 桓因(환인) 지구국, 桓仁(환인) 나라와 배달나라까지 오랜 세월을 아리랑이라고 불렀는데 끝말에 고려·조선 천년 약소국으로 뿌리를 잊어버려 옛날 하느님 이름 아리랑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리랑 하느님에 이름이 또 있으니 眞經(진경) 공부하며 道닦는 이들은 아리랑을 큰일님·天(천신) 三(삼신) 三眞(삼진)으로 부르고 호칭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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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들뢰즈 푸코 리오타르 보드리야르 라캉,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사상사, 해체철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7-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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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인가





1. 한물간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의 普遍과 合理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解體되었다. ‘모더니즘’ 보편과 합리의 主體가, ‘利益과 戰爭’에 의해 작동하는 ‘道具的 理性으로서 權力’이었던 탓이다.
現實世界가 죄다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무런 代案도 제시하지 않는다. 애당초 ‘革命的 解體’만을 목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안에서, 온갖 해체 이후 찾아드는 것은, 응당 또 다른 ‘이익과 전쟁’이다. 그런 것이 人類史의 작동원리다.
‘生成과 解體의 되돎’은 역사의 本源的인 작동원리다. 생성의 시기가 지나면, 해체의 시기다 도래한다. 이는, 자연스런 법칙이며 현상이다.
다만, 인간존재의 限時的 生을 놓고 본다면, ‘人間事的 생성과 해체’는 실현되지만, ‘人類史的 되돎’은 ‘佛家的 輪回’와 같은 허무맹랑한 상상 속에서 가능할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生成的이거나 解體的인 樣相을, 동시적으로 드러낼 수 없으며, 대체로 兩者擇一的이다.
때문에 人類史는 ‘생성과 해체의 되돎’으로써 작동함에도, 人間事는 ‘생성과 해체’로써 한정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인간존재가 ‘생성과 해체의 되돎’이라는 天地自然의 本來的인 작동방식을 體得한다면, 인류의 역사는 보다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지금 여기’에 이르도록, 그러한 가능성은 거의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현실세계가 죄다 해체된 후, 人類史는 다시 ‘이익과 전쟁의 법칙’에 의해 조작될 것이다.
그러한 되돎으로써나 人間事와 人類史는 작동한다. 참으로 애석하지만, 고작 그런 것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代案’으로서 제시될 수 있을 뿐이다.
‘postmodernism’ 또는 ‘後期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모더니즘 ‘後(post)’의 서양의 사회, 문화, 예술의 총체적 解體運動을 일컫는다.
一言以蔽之하여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은 한물간 철학사상이다. 게다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별다른 代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애당초 포스트모더니즘은, 解體된 모더니즘 이후에 대하여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철학사상이 아닌 탓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解體哲學이라고 불린다. 現實世界 ‘온 존재와 온갖 것’들을 해체함으로써, 세계 자체의 해체를 목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체를 목적할 뿐, 해체 이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미 한물간 철학사상이 되었다.
모더니즘의 理性中心主義에 대해 근본적인 懷疑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의 총칭으로서, 2차 세계대전 및 女性運動, 學生運動, 黑人民權運動과 構造主義 이후 일어난 해체현상의 영향을 받았다.
키워드로는 ‘데리다’가 주장한 ‘解體(deconstruction, 脫構築)’인데 脫中心的, 多元的, 脫理性的 思考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으로, 1960년대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용어 자체가, 역사학적 구분에서 근현대에 스쳐간 수많은 것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학자, 지식인, 역사가 사이에서, 그 정의를 두고서 극한 논쟁이 일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포스트모던적 생각이 철학, 예술, 비판 이론, 문학, 건축, 디자인, 마케팅/비즈니스, 역사해석,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postmodernity’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구분되는 용어로 사용되며, 포스트모더니즘이 발생한 시기의 사회·문화의 接變現象만을 가리킨다.
학자들과 역사가들의 대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수많은 모더니즘의 주요 개념으로부터 反撥과 借用을 통해 모더니즘을 확장하거나 대체시킨 사조로 본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은 合理性, 客觀性, 進步性과 같은 理想에 많은 의미를 두었다. 이것들 이외에도, 19세기 후반 實證主義, 實在主義, 啓蒙思想 등에 뿌리를 둔 여타 사상들을 중시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신봉자들은, 종종 포스트모더니즘이 특수한 경제·사회적 상황의 결과로써 도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특수한 경제·사회적 상황’이란, 後期資本主義와 미디어 매체의 성장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들이, 당시 사회를 새로운 역사적 시기로 진입하게 하였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신봉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상가와 저술가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모더니즘의 확장일 뿐이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나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前期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쟁은, 우리 시대의 경제적·기술적인 상황들이, 소통과 의미의 항구적이고 객관적인 것, 즉 ‘實體(이데아)’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疏通, 製造, 交通의 혁신에서 비롯된 세계화는, 분립된 근대적 삶이나 문화적 다원론, 상호 연결되어 정치, 소통, 지식생산 등의 집중화된 중심을 잃고, 상호 연결된 세계사회의 한 원동력으로 종종 언급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와 같이 分立된 사회가 필연적으로 거짓에 대한 반작용으로서나 혹은 ‘巨大敍事(meta-narrative)’와 ‘覇權(hegemony)’의 單一化와 같이, 포스트-모던으로 표현되는 應答, 認識을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의 ‘단일화’란 전통적 장르, 구조와 문체의 틀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는 ‘로고스 중심주의’의 범주를 顚覆시킨 것이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철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예술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寫實主義(Realism)’와 모더니즘의 反撥作用으로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두 영역에서 서로 추구했던 점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철학에서 胎動하기 시작한 것은, 모더니즘과 구조주의의 반발작용이었다. 構造主義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것이 포스트구조주의로 이어지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실제로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당히 비슷한 개념이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로 분류되는 철학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일률적인 것을 거부하고, 多樣性을 강조하였으며, 理性을 중시하며 등장한 모더니즘이 추구한 정치적 해방과 철학적 思辨도 ‘하나의 이야기(巨大敍事)’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했다.
또한 칸트가 純粹理性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했던 理念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치철학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에 끼친 영향도 컸다. 예를 들어, 미술, 음악의 대중화와 미술에서 등장한 팝아트와 비디오아트, 음악에서 등장한 랩과 같은 장르의 발생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장르는 기존의 예술과는 매우 다르게, 개성이 넘치고 자율적이며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문학에서는 장르의 벽이 느슨해지고, 全知的 시점보다는 다른 시점을 채택함으로써, 현실감을 증대시키고 독자의 상상력을 중시하게 된다.
소설 따위의 마지막에 약간의 여운을 남겨두고, 독자가 생각하게끔 하는 것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작가 위주의 문학에서 벗어나, 독자가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으로는, 모더니즘이 대표하는 理性이 좀 더 시대를 이끌어 나가고, 이성이 도구로 변질된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박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前衛藝術, 그리고 ‘解體(Deconstruction)’ 혹은 後期構造主義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近代(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啓蒙主義로부터 시작된 理性中心主義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合理主義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써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는, ‘崇嚴(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寫實主義(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前半 ‘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再現(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遠近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實在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적 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懷疑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對象은 보는 자의 主觀에 따라 다르다는 前提도, 미술에서는 印象主義로부터 시작되어, 立體派 등 具象보다 抽象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獨白(의식의 흐름)’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인해 대중과 遊離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理性과 普遍性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現代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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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도래인의 국가 일본 철학사상사, 일본철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7-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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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철학은 무엇인가





1. 고대 신토철학

日本哲學은, 外來哲學과 ‘일본 고유의 요소(神道)’와 융합된 철학사상이다. 일찍이 中國哲學과 印度哲學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최근에는 西洋哲學의 영향도 받고 있다.
일본철학은 韓國哲學과 유사한 思想史를 체험한다. 고대사회로부터 근대사회에 이르도록, 일본철학의 중심에서는 늘 韓半島 渡來人 세력의 역할이 至大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古代에는, 북방 유목문화의 샤머니즘이 한반도를 통해 전파되어 神道哲學을 형성했고, 中世에는 중국 불교문화가 한반도를 통해 전파되어 佛敎哲學을 형성했으며, 近代에는 중국 유교문화가 한반도를 통해 전파되어 朱子哲學을 형성했다.
그러다가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나아가는 동안, 西洋哲學이 전파되어 일본철학을 주도하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 일본이 서양철학을 철저히 수용하면서도, 일본철학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탓에, 일본은 현대적 강대국으로서 현재적으로 존속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비한다면, 대한민국은 近代的 국제정치의 難局에서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었는데, 그러한 분단의 결정적 원인이, 남북한 철학사상의 이데올로기的 分離에 있다고 해도 그릇되지 않는다.
철학사상이 먼저 분단되어버린 탓에, 列强들이 각축하는 그레이트 게임 속 국제정세에 의한 분단 상황을, 결국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한반도로부터 철학사상을 전해받은 일본은, 현재에 이르도록 세계적인 강대국으로서 존속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처럼, 역사적으로 식민지나 분단의 상황을 체험하지 않은 것은, 단지 地政學의 문제만은 아니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동서양이 분리되어 있던 시대에, 일본은 地政學的으로 外勢로부터 다소 안전할 수 있었다. 항상 滿洲와 韓半島가 완충지역으로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大航海時代 이후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본이 외세에 더 쉽게 노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현재에 이르도록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바탕은, 일본의 철학사상에 있다. 곧 일본의 精神性과 精神文明에 그 원동력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현재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의 경우처럼, 일본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이 살 수 있다. 이는, 日帝强占이라는 歷史的 痛恨을 망각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까닭은, 그 역사의 포로가 되거나 노예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그러한 역사를 통해 現在와 未來를 보다 잘 살아내기 위해서다.
日帝强占 36년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難堪케 한다면, 明나라의 屬國으로서 植民地에 가까운 상태로 살아낸 歷史가 조선왕조 500여 년이었음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植民主義가 문제된다면, 중국과의 事大主義 역시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까닭에선지 중국에 대해서는 호의적이고, 일본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다.
그러한 감정적 대응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역사는, 응당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의 國益에 도움이 되는 역사여야 함을 유념해야 한다. 그런 것이야말로 참된 역사인 탓이다.
일본철학을 알아야 하는 까닭 역시 그러하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韓半島 渡來人 勢力에 의해 형성된 國家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 전래된 것들을 철저히 自己化하였다.
예컨대, 上古時代부터 전승되어 현재까지도 일본정신의 핵심을 이루는 신토철학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신토철학은 天皇이라는 정치철학적 이미지와 連動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작동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正體性을 잘 알아야만, ‘隣接國은 결코 친할 수 없다’는 ‘隣接國의 悲劇’ 속에서, 대한민국의 存續을 보장받을 수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대만 등의 인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접국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은, 국제정치적 不得已다. 이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인접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거나 외면한다면, 中國의 侵略戰爭,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전쟁, 일본의 침략전쟁 등과 같은 전쟁상황을 피할 수 없음은, 역사적 사례로써 쉬이 검증된다.
예컨대, 현대 일본의 政治哲學的 설계자 ‘후쿠자와 유키치’는, 1885년 3월 16일자 時事新報(산케이신문 前身) 사설에서, 이렇게 記述한다.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의 開明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일으킬 여유가 없다. 차라리 그 대열을 벗어나서, 서양의 문명국과 진퇴를 함께해야 한다.
중국과 조선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隣接國이라 하여 특별히 배려할 필요 없이, 서양인이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서 처분해야 할 것이다.
나쁜 친구를 가까이하는 자는, 함께 惡名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아시아 東方의 나쁜 친구를 사절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후쿠자와 유키치’는, 인접국일지라도 문명국으로 발전할 능력이 되지 않는 국가나 민족이라면 철저하게 버리고, 일본만이라도 開化의 대열에 들어서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는, 철저히 ‘이익과 전쟁’의 법칙을 좇는 사유방식이다.
어쨌거나 이를 통해 일본은 강대한 帝國으로 성장했고, 주변 인접국들은 대부분 식민지 상태로 내몰렸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정치적 상황은, 21세기라고 해서 별다를 것 없으며, 그 主體가 또 다시 일본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현재로서는 머지않아 중국이, 과거의 일본과 같은 행태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무역 등을 통한 覇權戰爭이 勃發한 것이다.
모름지기 국제정치적 상황은, ‘利益과 戰爭’의 법칙으로써 작동한다. 따라서 國家의 利益을 지켜내지 못하면, 이내 전쟁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21세기라고 해서 별다를 것 없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을 비롯하여, 북한, 베네수엘라, 이란 등에서 발생하는 戰爭的 상황은, 죄다 ‘이익과 전쟁’의 법칙에 의해 유발되고 있다.
이러한 ‘이익과 전쟁’의 법칙이, 가장 尖銳하게 激動하는 현장이 바로 인접국의 ‘사이(間)’다. 필자는 이를, ‘隣接國의 悲劇’이라고 규정한다. ‘인접국의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접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일본의 고대철학으로서 ‘신토(神道)’는, 古代 韓半島 渡來人 세력에 의해 전래된, 북방 유목문화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형성된 일본의 민속신앙 체계로서, 일본 고유의 多神敎 종교체계이다.
샤머니즘의 전래 이후,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전통적인 민속신앙 및 자연신앙으로서 자리매김 되었고, 豪族層이 다스리던 중앙 및 지방 정치체제와 관련되면서 서서히 성립되었다. 이후 현재에 이르도록 일본의 정신문화와 철학사상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신토’는 다른 종교사상과 달리 특정한 敎理나 經典이 없으며, ‘고지키(古事記)’, ‘니혼쇼키(日本書紀)’, ‘고고슈이(古語拾遺)’, ‘센묘(宣命)’ 등에서 ‘神典’이라 불리는 고전들을 그 규범으로 삼는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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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과 행복을 다투다

도서정보 : 장국현 | 2019-07-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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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돌아왔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신의 형벌을 다하기까지. 원하는 일의 창조가 아닌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세월을.

이 글은, 지고(至高)의 행복을 찾아 나선 자의 정신적 여정의 기록이다. 또한 행복, 삶, 죽음, 섭리, 자유, 자아, 종교 등에 대한 사색의 정리이기도 하다.

독자들께 부탁하는 바, 주제를 벗어난 중간중간의 잡설들은 쉽게 소화되지 않는 글의 소화제로 여겨 주시기 바란다. 일부 주제에 대해서는 중복되는 서술도 있으나 본(本)은 같아도 말(末)이 상이하여 굳이 생략하지 않았다. 교향악의 변주곡처럼 중요 주제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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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글쓰기 비밀수업 :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열어주는 글 선생의 진짜 글쓰기 비법

도서정보 : 권귀헌 | 2019-07-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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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공부머리, 언어 능력, 이해력’을 키우고 싶은 부모의 필독서
전국 학부모와 선생님이 극찬한 최고의 글쓰기 책!

글짓기가 아닌 글 놀이로 아이의 창의력을 깨워주세요!
전국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최고의 글 선생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 권귀헌 선생님은 아이들의 글을 볼 때마다 매번 놀라곤 합니다. 예를 들면, 다섯 단어로 한 편의 글을 쓰는 미션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아이들을 종종 만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해결해야 할 단어는 ‘설사, 사탕, 도둑, 오렌지, 타이어’였습니다. 무작위로 선정된 다섯 단어. 상관관계를 찾아볼 수 없는 이 단어 다섯 개로 어떤 글을 써낼까? 선생님은 특히 ‘설사’를 아이가 글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습니다. 평소 쓰지 않는 단어, 무관한 단어의 조합으로 글을 쓰려면 글이 어느 정도 길어져야 합니다. 또 매끄럽게 연결하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죠.

그런데 이 친구는 단 한 문장으로 끝냈습니다. 바로 이렇게요. “먹으면 설사를 하게 되는 오렌지 맛 사탕을 훔쳐 먹은 도둑이 차를 타고 도망가다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놀랍지 않나요? 이 친구는 새로운 제품을 하나 만든 겁니다. 먹으면 설사를 하는 오렌지 맛 사탕! 이 사탕이 20년 뒤에는 아이폰, 페이스북, 드론, 무인자동차, AI 같은 혁신적인 콘텐츠로 이어질 거라 믿습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또 쓰고 싶은 것을 쓰도록 멍석을 깔아주면 진심이 담긴 글을 써냅니다. 작가이자 글 선생인 필자가 훔치고 싶은 표현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냅니다. 경계심 많던 아이가 나무, 풀, 꽃과 이야기를 할 정도로 말랑해집니다. 질문이 많아지고 궁금한 걸 숨기지 않습니다.

이 책은 그 수업에 관한 기록입니다. 더불어 글쓰기의 본질과 기능을 쉽게 이해하도록 필요한 지식을 담았습니다. 또 경험에서 도출한 글쓰기 지도법(글쓰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빠져들게 만드는 글 놀이 23가지)을 소개했습니다. 가정에서 혹은 소규모 수업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정답이 되긴 어렵더라도 어느 가정, 어떤 아이에게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해 소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구매가격 : 9,8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