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도서정보 : 정병기 | 2024-02-0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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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기 시조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시조의 외형적 표현 구사에서 다소 파격적인 모색과 시도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조는 초-중-종장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운용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시적 표현은 무의식 속에서 자기 인식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심미적 발화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파격적인 화법 구사는 시적 상상력이 그만큼 활달하고 창조적임을 보여준다.
정병기 시조의 다른 특징은 강한 현실 비판의식의 표출을 들 수 있다. 제목만으로도 현실 정치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느껴진다. 상상보다는 현실에 기댄 이러한 창작 경향은 현대 시조가 그동안 포지션을 설정하지 못했던, 다소 금기시해왔던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정 시인의 이러한 시편들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병기 시조에는 애틋한 그리움 같은 인간애가 물씬 풍기는 울림이 큰 서정 시편들도 적지 않다. 부재하는 ‘너’에 대한 그리움의 시편이나 육친에 대한 진한 사랑이 묻어나는 가족시편 모두 아름다운 사랑시편들이다.

구매가격 : 9,000 원

법당을 이고 앉은 여자

도서정보 : 오경자 | 2024-01-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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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부딪치는 하고 많은 문제들 속에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에는 너무 벅차고 힘겨워서 이러쿵저러쿵 소리를 글에 담아낼 수밖에 없었다.”
한국수필 100년 100인 선집 <수필로 그리는 자화상> 네 번째 책은 오경자 수필가의 『법당을 이고 앉은 여자』이다. 독자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느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들, 공감을 넘어 감동에 이르게 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수록하였다.
「법당을 이고 앉은 여자」, 「옥잠화, 어머니, 그리고 옥비녀」, 「정비례의 행운」, 「소금광산」, 「부부싸움」, 「무대를 제대로 만나야」 등 51편의 작품이다.

구매가격 : 8,400 원

달의 진화

도서정보 : 박기옥 | 2024-01-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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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문학이라는 자신 삶의 원본을 찾아 나선 박기옥 작가가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문학의 열정으로 피워낸 “수필”이라는 풀잎, 꽃밭에 핀 각양각색 꽃만큼 아름답고 개성 있는 수필 작품을 선정하여 수록하였다. 한국현대수필 100년 100인 선집 〈수필로 그리는 자화상〉 열네 번째 박기옥 수필가의 『달의 진화』이다.

“수필은 연구할수록 아름답다. 끝없이 나를 설레게 하고, 몰입하게 하고, 긴장시킨다. 수필 한 편 쓰고 나면 자신이 더욱 새로워지고,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엣지(edge) 있는 수필을 쓰려고 노력한다. 작가의 개성으로 봐주면 좋겠다.”(머리말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4부에 나누어 실은 50편의 작품에는 그야말로 박기옥 작가만의 “엣지”가 살아있다. 여기서 “엣지”란, 사전적 의미의 ’모서리‘나 ’날카로움‘ 같은 차가움이 아니라 유머와 휴머니즘, 로고스와 파토스, 감동과 공감, 독특함과 개성을 갖춘 박기옥 작가의 따뜻한 수필 스타일을 말한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 담백하고 읽기 쉬운 문장, 서정과 지성이 조화로운 균형 잡힌 사유 등, 수필 문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작품에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특별한 “엣지”를 겸비한 작가의 이 작품집은 한층 더 “진화”한 수필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구매가격 : 8,400 원

내가 없는 쓰기

도서정보 : 이수명 | 2024-0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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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시가 움트는 자리, 詩란
각기 다른 시의 면면이 나란하게 이어져나갈
시의 흰 건반 시의 검은 건반, 詩란
시를 이야기하는 난다의 새로운 시리즈!

◎ ‘詩란’을 시작하며

특별히 ‘시’를 콕 집어서 화제로 삼은 자리는 맞다. 그러나 그다음 ‘란’이라 할 적에 이는 거창하게 지은 집이나 정리정돈을 완전하게 마친 방을 위시하는 건 아니다. ‘詩란’은 모서리거나 귀퉁이거나 가장자리와 같은 구석의 말을 사랑하는 이들의 면이다. 발음 끝에 절로 따라붙는 물음표처럼 미완으로 발산되고 자유로 수렴된다. 어쩌다 시의 ‘알’로도 읽히게 된 건 시치미가 그러하듯 시가 우연히 낳은 소소한 재미일 것이다.

시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아니나 그 품을 가두려는 정의 또한 아니다. 시론보단 가벼이, 아포리즘보단 헐거이, 시산문보단 느슨히, 그러므로 닫기보다 열기에 관심을 둔 글들이다. 시라는 세계, 그 한 세계가 하나의 알이라면 깨어서 여는 것이 도끼일 수도, 주문일 수도, 날갯짓일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줄탁동기(啐啄同機)이니, 쓰는 이와 읽는 이에게 동시로만 열릴 세계임은 틀림없으리라.


◎ 기다림 없이, 바람 없이, 『내가 없는 쓰기』

“그 무엇을 덜어내도 훼손되지 않고 여전히 넓은, 그런 시에 대해 생각한다.
어두워도 반짝이는, 어두운 부분도 반짝이는 시에 대해 생각한다.
위태로울 뿐 휘청이지 않는 시에 대해 생각한다.”

1.
언제나 문학의 전위, 그 전위에서도 최전방에만 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등단 30년 차, 여덟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에게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시의 쪽으로, 미지로, 아직 없는 곳으로 향하는 이름이 우리 시단에 있다면 단연 이수명이라 하겠다. 그러니 시로 향하되 시가 아닌 자리를 엿보는 새 시리즈 ‘詩란’의 첫머리에 놓일 응당한 이를 떠올릴 적에, 의심 없이 곧장 향할 자리 역시 바로 그 이름일 터다.
1월부터 12월까지, 그러나 날짜도 요일도 없이, 모월 모일의 ‘쓰기’를 모았다. 매일같이 썼다는 점에서 일기일 수 있겠으나 그저 하루의 형상을 남기는 기록만은 아니다. 언제나 시의 주변을 배회하며 일상의 자리를 대신해 시의 가능성을 탐문하는 여정을 담았다. 나아가려는 목적 없이, 가닿으려는 욕심 없이, 부단히 씀으로써 시를 위한 자세, 시라는 자세를 만들어가는 연습이다.

내가 쓴 모든 글이 완전히 낯설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일까. 모르는 어떤 작가의 글을 처음 읽는 것처럼 내 글을 처음 만나고 싶다. 나는 나를 만나고 싶다. 이 불가능이 가능해지도록 한 글자 한 글자 끄적거린다. (본문 중에서)

2.
써지지 않으면 써지지 않는다고 쓴다. 아무 일도 없으면 아무 일도 없다고 쓴다. “시를 쓰는 일은 여전히 이상”하다고, “오래 안 되다가 되기도 한다”고 쓴다(16쪽). 그저 떠오르는 대로 쓴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직 씀으로만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있고, 씀으로만 해방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이라는 말로 슬픔을 붙잡고” “슬픔을 지나갈 수 있”게 되듯이(262쪽).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쓰기를 묵묵히, “글은 기다려준다”(130쪽)는 점이다.
끝끝내 닿을 수 없고 장악할 수도 없는 사물의 세계, 혹은 의식 바깥의 영역으로 향하는 시인에게 쓰기는 정답을 위한 열쇠가 아니며, 다만 처음부터 잠긴 적 없는 문을 여는 일이다. 시는 자유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수단과 목적 모두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일 뿐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씀으로써, 무엇도 남기지 않고 마침내 남지 않는 곳으로 시인은 간다.

기다리지 않고, 바라지 않고, 뒤돌아서 나는 쓴다. 향하지 않는다. 쓰는 것은 바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쓰는 동안 나는 기다림과 두려움으로부터 조금 놓여난다. 쓰면서 기다림과 두려움과 그 비슷한 것들, 그것들을 역전한 것들에서 한 걸음 떨어진다. 쓰기는 멀어지기다. 틈을 만드는 것이다. 그 틈으로 호흡한다.
기다리지 않고 쓴다. 무엇인지 모른 채 쓴다. 의식의 결락이 일어난다. (본문 중에서)

3.
그간의 빼어난 시집들이 시의 내부, 시쓰기의 여정이었다면 이번 ‘詩란’을 통해서는 시의 밖이자 시의 주변, 어쩌면 시의 이전부터 시의 이후까지를 포괄하는 ‘쓰기’의 영역을 시도한다. 매일 씀으로써 매일을 낚아채는 것, 하루라는 우연 앞에서 “우연을 기다리고, 우연을 알아보고, 우연을 낚아채”며 마침내 “우연을 만들 줄도 알”게 되는 것(143쪽). 그렇게 시인은 오늘이라는 우연을 만나 남김없이 쓰고, 다음 오늘을 만나러, 다음 오늘을 만들어 건너갈 것이다. 이전 시집과 다음 시집, 지금까지의 시인과 다음의 시인, 그 사이를 잇는 다리이자 건넌 뒤엔 미련 없이 털어낼 사다리와 같은 쓰기. 시인 이수명의 이 새로운 쓰기는 이후로도 이어질 예정이니, 그 첫머리를 두고 『내가 없는 쓰기』라 이름한 연유 또한 그에 짐작해본다.

시집을 낼 때마다 더 쓸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남김없이 털어낸 듯해도 다음 시집이 이어진다. 다음 시집을 내는 것은 지금의 내가 아니라 다음 시인일 것이다. 나는 계속 다음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11,200 원

비로 만든 사람

도서정보 : 신용목 | 2024-0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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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시가 움트는 자리, 詩란
각기 다른 시의 면면이 나란하게 이어져나갈
시의 흰 건반 시의 검은 건반, 詩란
시를 이야기하는 난다의 새로운 시리즈!

◎ ‘詩란’을 시작하며

특별히 ‘시’를 콕 집어서 화제로 삼은 자리는 맞다. 그러나 그다음 ‘란’이라 할 적에 이는 거창하게 지은 집이나 정리정돈을 완전하게 마친 방을 위시하는 건 아니다. ‘詩란’은 모서리거나 귀퉁이거나 가장자리와 같은 구석의 말을 사랑하는 이들의 면이다. 발음 끝에 절로 따라붙는 물음표처럼 미완으로 발산되고 자유로 수렴된다. 어쩌다 시의 ‘알’로도 읽히게 된 건 시치미가 그러하듯 시가 우연히 낳은 소소한 재미일 것이다.

시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아니나 그 품을 가두려는 정의 또한 아니다. 시론보단 가벼이, 아포리즘보단 헐거이, 시산문보단 느슨히, 그러므로 닫기보다 열기에 관심을 둔 글들이다. 시라는 세계, 그 한 세계가 하나의 알이라면 깨어서 여는 것이 도끼일 수도, 주문일 수도, 날갯짓일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줄탁동기(啐啄同機)이니, 쓰는 이와 읽는 이에게 동시로만 열릴 세계임은 틀림없으리라.


◎ 슬픔은 물 얼룩처럼 멀리, 『비로 만든 사람』

“너를 안으면 꿈의 바닥까지 잠길 것이다.
춤을 춘다면 꿈의 끝까지 흘러갈 것이다.
너와 잠들면, 나는 익사체로 건져질 것이다.
드디어 슬픔은 물 얼룩처럼 나를 남긴 채 멀리 사라질 것이다.”

1.
장난감, 술, 비, 가을, 비밀, 미래, 자낙스, 삐삐 롱스타킹…… 시인은 이 글에서 열일곱 가지의 사물과 관념들을 소환한다. 그가 이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오로지, ‘시’. 각 장에 부제로 따라붙은 열일곱 개의 질문 역시 모두 시를 주어로 하고 있거나 시의 어떤 특성에 대해서 묻는다(“시는……” “시의 침묵은……” “시의 그물은……” “시의 천사는……”). 결국 모든 질문은, 그리고 이 질문들에 뒤따라오는 모든 문장은 시라는 정체가 모호한, 어둠 속에서 오직 윤곽으로만 감지되는 존재를 밝히려는 노력인 셈이다.
허나 시를 향하는 시인의 말은 결코 시에 대한 이론이나 방법론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시인에게 시는 생활과 동떨어진 채 홀로 고고한 삶을 영위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되레 시인은 시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을, 사랑을, 슬픔을 이야기한다. 시가 되든 시가 되지 않든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결국 삶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드디어 시간이 흐르고, 나는 시가 삶을 구원한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시를 쓰지 않아도 삶을 살았지만, 삶을 살지 않는 한 시를 쓸 수는 없을 것이기에. 오히려 삶이 시를 구원한다. (「혼돈」, 132쪽)

2.

삶에 대해 묻지 않는 자는 죽은 자이고, 사랑에 대해 묻지 않는 자는 살인자이다. 모든 삶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죽거나 죽이기 때문이다. (「고독」, 100쪽)

‘삶을 살지 않는 한 시를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삶이 시를 구원한다.’ 그렇게 시를 이야기하는 시인의 언어는 삶을 향해 간다. 그러나 그 여정 속에서 시인은 결코 시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가 삶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화려하지만 공허한 독백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시가 우리와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과정은 우리가 그 시를 잠시 내려놓았을 때, 지속되는 삶을 통해 그 시가 우리에게 준 시간이 무엇이었는지 되묻는 그 순간(154~155쪽)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삶과의 접촉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말한다. 이때 시인이 말하는 삶은 결코 화려하지도 이상화되지도 않은 것, 단지 매일의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이며 그 윤곽이 드러나는 ‘일상’이다. 이 ‘일상’ 속에는 하루하루의 만남이 있고 이별이 있으며, 사랑이 있고 죽음이 있다. 시인은 말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고도 지속되어야 하고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일상이라면, 일상 속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숭고함이 들어 있다고 믿는 편”(「환상」, 164쪽)이라고.

3.
열일곱 개의 장과 한 개의 부록으로 나뉘는 이 책을 이루는 것은 그 길이도 서로 상이한 여러 개의 단상이다. 시인은 후기에서 한번 썼던 글을 “그냥 가져오지 않고 토막토막 잘라왔다”고 고백한다. 한 장을 이루는 여러 개의 단상은 기승전결의 형태를 띠지도 않으며 선형적이고 직관적인 논리 구조의 지배를 받지도 않는다(물론 열여덟 개의 서로 다른 장들 사이의 사정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렇게 사지의 이곳저곳이 절단된 언어를 읽어내려가며 우리는 있던 것이 없어진 자리를 더듬는다. 없는 것이 있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시인의 마음이 가닿았던 지점을 우리는 환상통을 겪는 환자처럼 통렬하게 느낀다. 불구의 언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느낀 것을 전해야 하는 언어는 탄생하는 순간 그 몸과 마음에서 벗어남으로써 그 근본에 있어서부터 불구였던 것은 아닐까. 시인은 태생부터 불구였기에 불가능에 머물렀던 언어를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스러운 이별의 순간, 언어가 찢어지며 도려내어지는 순간을 직시한다. 그렇게 “영혼이 없어서 영혼을 생각하게 하는 요리”처럼 시를 이야기하는 곳곳이 잘린 그의 언어를 통해 우리는 말해진 것 너머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 말해질 수 없는 것의 존재를 느낀다.

구매가격 : 11,200 원

악의 꽃

도서정보 : 샤를 보들레르 | 2024-0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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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고전이자 여전히 유효한 전위,
고(故) 황현산 선생의 번역으로 만나는 『악의 꽃』 완역판!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완역판이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유려하고도 정확한 문장, 원문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프랑스문학을 소개한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이 번역을 맡았다. 이번 『악의 꽃』 번역 원고는 역자가 타계 직전까지 작업한 결과물로, 유족이 역자의 작업실에 놓여 있던 컴퓨터에서 번역 원고 파일을 발견한 것은 두 해 전의 일이었다. 파일의 이름은 ‘악의 꽃(1) 번역 원고’였고, 최종 수정 시간은 2018년 7월 1일 오전 8시 56분이었다. 역자는 곧 마지막으로 입원하였고 2018년 8월 8일 숨을 거두었다. 이번 완역판은 정본이라 여겨지는 2판을 기준으로 삼되, 1판에서 검열되었던 시편 6편을 넣어 벨기에에서 간행된 『떠다니던 시편들』을 모두 싣고, 3판에서 가져온 12편의 시까지 추가한 판본이다. 『악의 꽃』 간행의 역사에 따른 그 전모를 가급적 드러내고자 한 역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악의 꽃』은 현대시의 시작을 알린다는 점에서 시사(詩史)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악의 꽃』을 통해 시의 개념이 달라졌으며, 시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확장되었다. 17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현대시의 자장은 『악의 꽃』 아래 놓여 있으니 『악의 꽃』은 고전인 동시에 여전히 시의 전위에 있는 셈이다.

백년에 걸친 오해와 복권
한 시대와 그 시대의 미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
1857년, 『악의 꽃』은 출간 직후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다. 그 결과, 수록된 6편의 시는 “외설적이고 부도덕한 표현”을 이유로 검열을 당한다. 보들레르는 1861년 검열당한 6편의 시를 삭제하는 대신 32편의 새로운 시를 추가한 『악의 꽃』 제2판을 내놓았지만, 최초의 검열 판결은 무려 한 세기가 지날 때까지 지속된다. 92년이 지난 1949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법원은 다음과 같은 판결문과 함께 『악의 꽃』의 출판 금지 판결을 무효화한다.

고발되었던 시들은 어떤 외설적인 표현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고 예술가에게 허용된 자유를 벗어나지도 않았다. 특정 묘사가 그 독창성으로 인해 시집의 출간 당시 몇몇 이들을 놀라게 하고 미풍양속을 해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게 했을지라도 그러한 평가는 시의 상징적인 의미를 무시한 것으로 정당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법적인 판단이 아닌 당대 문학적 평가는 어떠했을까? 출간 즉시 시집을 찬상한 작가들도 있었지만(귀스타브 플로베르, 빅토르 위고 등) 그만큼 많은 이가 표현을 문제삼으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작품에 대한 평가보다는 특정 표현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에 가까웠던 당대 논평은 이후에도 보들레르 수용에 방해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렇게 오해에 휩싸였던 시인 보들레르는 1930년대까지도 라마르틴이나 비니 등 19세기 낭만주의 시인들보다 낮게 평가되었다.
결국 현대시의 시초라 평가받는 보들레르의 명성은 그의 계승자를 자처한 랭보, 로트레아몽, 그리고 20세기 초현실주의자에 의해, 이들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백년에 가까운 세월을 거쳐 서서히 형성된 것이었다(랭보는 보들레르를 “최초의 견자, 시인들의 왕, 진정한 신”이라 평했다). 『악의 꽃』이 단순히 당대 사회가 수용하기 어려웠던 표현들로 채워졌던, ‘100년이 지난 후 판금이 해지될 시집’이라는 스캔들로 소비될 시집이었다면 이러한 사후 평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악의 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간’, 한 시대와 그 미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전통의 파괴와 전범의 확립을 동시에 해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전위이자 고전인 것이다.

덧없는 것을 통해 영원한 것을 감각한 현대시의 시작
저주, 추락, 불행…… 『악의 꽃』의 시인은 거의 모든 시에서 이러한 단어들로 이해될 수 있는 감정을 드러낸다. 시의 이러한 정서는 그의 비극적 인간관, 원죄 의식에서 비롯된다. 이 의식은 직전 시대의 낭만주의자들과(더 넓게는 기독교인들과) 공유하는 것인데, 이들은 인간의 탄생을 아담과 이브의 낙원으로부터의 추방과 연결 짓는다. 탄생은 곧 낙원으로부터의 추락chute이 되고 이는 곧 인간이 평생 짊어질 원죄chute originelle를 낳는다.
“비통한 불행의 선명한 광경”(「못난 수도사」)에 사로잡힌 보들레르에게 이 원죄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어 보인다. 그는 ‘생물로서의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간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진보라고 믿었지만 그의 눈에 인간은 수렵을 하던 시대에나 문명을 만들어낸 19세기에나 똑같이 짐승일 뿐이었다. 되레 발전된 문명이 야기한 가치의 혼란으로 인해 하늘과 인간 사이에 존재했던 조응 관계는 끊어져 이 세계의 모든 것은 근원적 의미를 잃어버리고 타락한다. 이제 이 세계는 지옥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이때 보들레르는 지옥이 된 세계를 자신의 창조적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를, 인간적 조건의 한계까지 밀어붙여 새로운 조응 관계를 감각하고 이를 시적으로 재창조하기를 열망한다. 즉, 이전 시대의 시인들이 하늘의 신적 존재와 단단히 맺어진, 계시를 받아적는 충실한 사제였다면 보들레르에 이르러 시인은 스스로가 그 계시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씀으로써 사물에 깊이와 근원적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보다 막중하며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임무를 맡게 된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자기 시대의 덧없는 것, 저열한 것을 감각함으로써 그 감각 너머에 있는 영원한 것, 숭고한 것에 가닿으려고 했다. 명상이나 관념적 성찰 등을 통해 근원적 세계에 가닿을 수 있다고 믿었던 이전 시대의 사람들과 달리 보들레르는 지금 여기서 감각할 수 있는 세계를 면밀히 느낌으로써 감각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곧 현대시를 낳은 보들레르의 시적 혁명으로, 보들레르 이후 시인들은 형이상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 형이하의 세계를 떠날 필요가 없어졌다. 되레 형이하 세계의 감각을 최대화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임무가 된다.
자연스레 보들레르의 시선은 그가 머물렀던 도시 파리의 사실적인 풍경에 머문다. 본질적인 세계를 그리기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과 성서 속 성인들을 소환해야 했던 이전 시인들과 달리 보들레르는 넝마주이, 썩어가는 사체, 추한 모습의 노파, 인파 속으로 사라져간 여인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물이 불변하는 자연과 달리 무수한 것이 순식간에 존재했다 사라지는 파리는 그에게 현기증을 야기하며 깊은 상처를 남긴다. 상처로 예민해진 그의 감각은 곧이어 그 너머의 세계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도시를 그린 시인, 자기 시대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시인 보들레르는 이렇게 시에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감각을 통해 감각 너머의 세계를 감지하기, 덧없는 것으로부터 영원한 것을 이끌어내기. 이 두 가지를 통해 보들레르는 현대시의 “최초의 견자”가 된다. 그를 통해 연애시는 동시에 숭고한 종교시가 되며 코를 찌르는 넝마주이는 그리스 영웅의 숭고함을 얻는다. 하나는 전부가 된다.

“죽음이 우리를 위로하고, 슬프다, 살게 하니,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요, 삶의 희망”
황현산 선생이 타계 직전까지 번역한 『악의 꽃』, 드디어 발간
『악의 꽃』에서 죽음은 언제나 희망으로 제시된다. 죽음을 통해 세계는 질적으로 완전히 변화하기 때문이며, 탄생이 곧 추락이라 여겼던 보들레르에게 죽음은 이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해 한계는 극복된다. 가능성은 확장된다. 그것은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을 “위로하고” “살게 하며”(「가난뱅이들의 죽음」), 단조로운 세계로 인해 권태에 휩싸인 이들에게는 “새로운 것”을 향한 여정을 가능케 해줄 “늙은 선장” 노릇을 한다(「여행」). (낭만주의에서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세 가지로 사랑, 혁명, 죽음을 꼽는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혁명이 한 인간에게 가져다줄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면 보들레르가 말하는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해해선 안 될 것은 그토록 죽음을 찬양하던 와중에도 보들레르 자신은 단 한 번도 자살을 꿈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아무리 이 세계를 비관적으로 봤다 할지라도 그가 욕망한 것은 ‘빠른 죽음’을 통한 저 너머로의 회귀가 아니라 죽음이 가져다줄 세계를 최대한 이 세계 내에서 재현해내는 것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그 빛을 볼 수는 없지만, 죽는 날까지 내내 시를 씀으로써 저 빛 속의 삶과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삶을 이 땅의 우여곡절 안에서 실천하려고 했다.”

이번 『악의 꽃』 완역판은 황현산 선생 사후 5년이 지나 발간되었다. 유족이 선생의 작업실에 놓여 있던 컴퓨터에서 번역 원고 파일을 발견한 것은 두 해 전, 파일의 이름은 ‘악의 꽃(1) 번역 원고’였고, 최종 수정 시간은 2018년 7월 1일 오전 8시 56분이었다. 선생은 곧 마지막으로 입원하였고 2018년 8월 8일 숨을 거두었다.
선생은 생전 트위터를 활용하여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펼쳤는데, 2015년 9월 14일 오전 5시 37분에는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나 죽은 후에 미래가 어찌되건 무슨 상관인가. 그러나 그 미래를 말하는 나는 살아 있지 않은가. 좋은 미래가 나 죽은 다음에야 온다고 해도 좋은 미래에 관해 꿈꾸고 말하는 것은 지금 나의 일이다. 그것은 좋은 책을 한 권 쓰고 있는 것과 같다.

선생은 『악의 꽃』 번역을 통해 ‘좋은 책을 한 권 쓰는’ 그 마음을 죽음 직전까지 실천하였다. 꿈꾸었던 세계를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바로 이 세계 안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작은 움직임, 이것이 이번 『악의 꽃』 완역판을 내놓을 수 있었던 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석이 달려 있지 않은 이 원고를 최대한 그대로 출간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판단의 기저에는 독자를 믿었던 선생의 번역 철학이 있다. 번역은 반역일 수밖에 없음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번역을 위해 노력하였던 선생이 『악의 꽃』 번역을 생전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읽을 독자들의 통찰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에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번역하면서 이상한 결심을 했다. 프랑스어 시를 한국어로 번역하다보면 용납할 수 없는 구멍을 만들어내는 시구들이 가끔 있다. 그래서 번역을 5년 넘게 미뤄둔 시가 있다. 그러나 그 5년 동안에 내 번역의 역량이 달라졌는가. 달라지지 않았으며, 앞으로 5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저 구멍을 의식한 채 내 부족한 번역을 최종 번역으로 확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확정을 결심할 때의 내 자세는 지극히 능동적이어야 한다. 그 용납할 수 없는 구멍이 메워지는 것은 내 번역 역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두 언어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의 발전과 독자들의 드높아질 통찰력에 의해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 보들레르와 『악의 꽃』에 관한 해설은 많은 부분 황현산 선생님의 생전 저작(비평문, 산문, 강의록 등)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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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 1

도서정보 : 비타필로소피 | 2024-01-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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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선에서 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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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과 도시 그리고 짧은 시

도서정보 : 유종우 | 2024-01-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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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을 잃어버린 작은 분홍새는
창가에 다가선 채,
숲길을 걷고 있는 작은 새를 바라보고 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작은 분홍새는 귀를 기울이며,
높게만 보이는 하늘을 그저 다만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다.
분홍새는 창밖으로 보이는 숲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바람에 제 깃털을 날리며 바라보고 있다.
분홍새는
불어오는 바람으로 두 날개를 적시고
바람이 부는 숲길 위를 자유롭게 뛰며 날아다니고도 싶었지만
숲길에 부는 바람 속의 바람 소리도
창 앞으로 들이쳐 부는 바람과도 같은 바람 소리도
그냥 흘려보낼 뿐,
그 바람 소리 속으로 날개를 쳐 날아오르지도,
못내 그리워서
다른 데로 떠나보낼 수도 없는
하염없이 나부끼는 그 바람 속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지도 못한다.
그 언젠가 작은 분홍새가 기다리던
작은 새의 눈물 같은 날이 다시 찾아오면,
분홍새는 그때껏 자신의 작은 어깨와 두 날개를
붙들고 있던 한숨 같은 시름과 두려움을 모두
떨쳐 내 버리고
높게만 느껴지던 드높은 하늘 위로 날아오를 수 있으리.
맑게 갠 바람의 소리가 들려오는 숲길 위에서
두 날개를 가벼이 펼치며
드높이 날아오를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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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거리

도서정보 : 김민정 | 2024-01-2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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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의 시의적절, 그 첫번째 이야기!
시인 김민정이 매일매일 그러모은
1월의, 1월에 의한, 1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난다가 선보이는 새 시리즈 ‘시의적절’의 첫 권은 김민정 시인의 1월입니다. 처음이고 시작이니 ‘1’, 당연하다 싶게 긋고 보면 그 숫자 홀로 선 사람 같기도, 나란히 선 책등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시(詩)로 봐도 때(時)로 봐도 김민정과 1월, 적절한 맞춤이라는 이야깁니다. 24년간 사랑으로 시를 썼고 25년째 사람으로 책을 만드는 그, “미친 희극미”의 시인(강정)이자 “책에 미친 편집자” 김민정의 1월이니까요.

1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총 서른한 편의 글로 책 한 권을 꾸렸습니다. 1월 1일엔 짧은 일기를 옮깁니다. 1월 3일엔 그리운 이와의 대화를 담고 1월 7일엔 시를 씁니다. 시, 일기, 에세이, 인터뷰, 축시, 동시, 노트. 한 달이라는 ‘1’ 안에 이토록 다양한 글이 있구나 합니다. 이토록 다채로움 속에 단단한 기둥 하나, 언제나 시라는 ‘1’ 있구나 합니다. 시는 물론 산문 한 꼭지도 그리 길지 않으니 책장 넘김은 제법 가볍습니다. ‘1’ 숫자는 가벼이 휙 긋고요, 그 틈으로 비어져나오는 읽는 이의 시, 나만의 시로 남은 하루 채우면 됩니다.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 그것이 손때 꺼뭇꺼뭇한 수첩 한 권이었으면 좋겠어요. 하고많은 얘깃거리 중 쓸거리라 생각해 손수 거기 적기까지 했다면 필시 그 나름의 이유가 우리 안에는 있는 거잖아요. 모름지기 그러고 싶어지는, 두부 한 모를 쏙 빼닮은 흰 수첩을 나의 가장 나중 만드는 것으로 염두에 두고는 있어요.” ─본문 중에서


살아가는 것과 사랑하는 것.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

1월의 시인으로 더없이 적절한 그라 하였으나 이 책 속에 시작의 설렘만 있지는 않습니다. 시의적절의 때가 제철이고 계절임을 생각하면 그도 그럴 것이, 1월 우리는 겨울 한가운데 서 있는 거지요. 그래서인가, 먼저 가 있는 사람들, 지나서 거기 있는 사람들 혹 시리지 않겠지 잘 기다리고 있겠지, 살피고 돌보는 시인의 글들이 눈에 띕니다. 그러나, 그래서, 김민정의 1월인가봅니다. 앞부터 바라보기 앞서 뒤부터 돌아봐야 할 한 해의 첫 달이지요.

또한 눈물만큼 웃음으로 기워가는 것이 삶이고 시일 겁니다. 시인이 사운드트랙으로 만화 <영심이> 속 <셈타령>이라거나 <사설난봉가>, 또 <한오백년>을 올릴 때, 멀리서 읽어 그런가 꼭 희극 같다, 장르는 시트콤 아니면 블랙코미디겠다 하게 됩니다. 어느 날은 시로 폴짝, 어느 날은 시 아닌 기록으로 폴짝 뛰며 쓰건대 “심연을 보고도 용기가 헌앙한 탐험가”(김인환) 김민정의 시는 이렇게 쓰여왔구나, 그 시작(詩作)의 힌트 슬쩍 눈치챌 것도 같습니다.

“육상 시작했냐?”
“응. 지금은 100미터 허들 예선하네. 저 푸에르토리코 선수 잘 뛸 것 같은데.”
“너 그리피스 조이너 좋아했잖아.”
“어머 그걸 다 기억해?”
“당연하지. 근데 경기가 언제야?”
“누구?”
“누구긴, 그리피스 조이너지.”
“엥? 죽었잖아. 검색해보니까 1998년 9월 21일 사망이야. 이십 년도 훌쩍 넘었어.”
“그래? 이상하지, 스포츠 선수는 나이를 안 먹는 것 같아. 멈춰 있어, 거기서.”
“거기가 어딘데?”
“내가 환호했던 데서.” ─본문 중에서


사람은 읽어야 이해되는 책
사랑은 거리로 유지되는 책

사람과 사랑으로 쓴 책입니다. 사람으로 기억되고 사랑으로 일으켜진 글입니다. 2018년 1월 3일 그날 그때 그와 “책만 하자” 얘기 않았더라면, “참, 내가 말했던가?” 카뮈의 기일이 1960년 1월 4일인 것 일러주지 않았더라면, 1990년 1월 16일 서점에서 하필 최승자 시인의 책 골라 들지 않았더라면, 이 책 이 글이 아니었겠지요. 시인의 1월 없고 다른 1월 있었겠지요. 시시때때가 아니라 시의적절인 이유 그 때문인가봅니다. 한 번뿐인 한 시절, 더없이 적시였고 또 없이 적소였을 만남이니까요. 시절에 만났으니 사람, 인연에 맞았으니 사랑이라 합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읽기라 했던가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거리라 했던가요. 여전히 홀로 선 사람과 언제나 가는 중인 사랑이 서로 멀찍이 외로운 숫자 ‘1’처럼 보이다가도, 『읽을, 거리』 그 사이 놓인 쉼표 있음에 안도하게 됩니다. 머나 아주 멀지 않게, 가나 아주 가지 않게, 언제든 다시 만나자고 놓인 쉼표 하나. 말해 무엇 하나요, 책일 테지요.

“1월에는 매일 읽으려 합니다.
사람은 알 수 없으니까요.
1월에는 매일 사랑하려 합니다.
희고 새것 앞에 늘 당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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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이름에게(E-BOOK EDITION)

도서정보 : 천성호 | 2024-01-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당신은 알까
부서지는 파도에 수없이 당신 이름을 던져왔다는 걸
파도가 계속해서 그 이름을 다시 물어왔다는 걸

시인은 잠이 오지 않을 때 잠들지 못한 것들에 관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상황과 감정. 부족한 물질에서의 불안감. 불분명한 미래의 염려. 그리고 사랑. 이 시집은 그 이야기들의 서툰 몸짓과 설익은 감정을 독백으로 담은 책이다

세 권의 산문집 『지금은 책과 연애중』 『가끔은 사소한 것이 더 아름답다』 『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를 펴낸 후 3년 만에 다시 첫시집을 발표하게 된 작가 천성호. 불안이 엄습해올 때마다 매번 바다를 찾아갔다는 그는 모래사장 위에 많은 고민의 이름을 올려놓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밀려오는 파도 위에 던졌던 수많은 감정의 이름을, 바다 앞에서 쌓아올린 온정 있는 이야기를, 이 한 권의 서정적인 시집에서 만나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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