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도서정보 : 니콜로 마키아벨리 | 2021-08-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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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제자’ 김운찬 교수의 이탈리아어 원전 완역본
냉엄한 현실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처세술과 리더십

★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MIT, 서울대 필독서!
★ “우리는 마키아벨리에게 큰 빚을 졌다.” _프랜시스 베이컨

필사본이 떠돌 때부터 논란거리였고, 출간 뒤에는 “악마의 사상”이라 비난받으며 교황청 금서로 지정된 책. 하지만 지금은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MIT, 서울대 등 세계 유수 대학의 필독서이면서 『타임』과 『뉴스위크』가 “세계 100대 도서”로 선정한 책. 역사상 『군주론』처럼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는 문제작도 드물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군주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려면 때로는 권모술수를 써야 하며, 사악한 행위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라고 정리되며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라는 용어를 낳은 이 사상은, 종교와 윤리를 중시하던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논란이 이어지자 교황청은 『군주론』을 금서로 지정했지만, 많은 지도자가 앞에서는 비난하면서도 뒤로는 몰래 이 책을 탐독했다.
하지만 『군주론』은 단지 잔혹한 통치를 옹호하려고 쓴 책이 아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크고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어 서로 싸웠고, 강대국의 침략에 번번이 시달렸다. 이 책에는 강력한 군주가 등장해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외세의 지배에서 해방하기를 바라는 마키아벨리의 열망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금기를 깨고 ‘현실정치’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근대 정치학의 토대를 다진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시 유럽의 정세와 사회상을 세밀히 파악할 수 있고, 군주(리더)가 갖추어야 할 살아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실전에서 살아남은 날것의 지식” 그대로를 전하기에, 지난 500년간 통치자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이끄는 위치에 선 리더에게는 “나만 알고 싶은 책”으로 읽혔다.
역사와 언어 지식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군주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제자이자 단테의 『신곡』을 완역한 김운찬 교수가 이탈리아어 원문을 충실하게 옮기고 방대한 역주와 깊이 있는 해제를 덧붙였다. 이 책을 통해 권력의 속성뿐 아니라 역사와 인간의 심리, 처세술, 리더십 등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4,900 원

일본 신군국주의

도서정보 : 강동완 | 2021-08-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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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신군국주의적 경향과 실체를 분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통한 ‘힘의 균형화’ 전략 및 역내 ‘안보·경제 완충지대화’ 전략을 제시한다.

구매가격 : 13,000 원

무법의 시간

도서정보 : 권경애 | 2021-08-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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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거짓 기록이
역사가 되게 할 수는 없다”

법치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현장,
어쩌다 그 한복판에 서게 된,
‘조국 흑서’ 저자 권경애 변호사의
성찰과 회한 그리고 비판

법치의 붕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던 한 법률가의 고발과 성찰
― 이 책의 개요

‘조국 흑서’라 불리는『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함께 쓴 권경애 변호사가 한층 내밀하고 치밀하게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을 둘러싼 내막과 진실을 밝힌다. 한때 권 변호사는 조국 민정수석이 회의 자료로 그녀가 쓴 검찰개혁 관련 글을 사용할 만큼 검찰개혁의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또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및 검경수사권 조정 태스크포스(TF), 경찰청 수사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면서 조국 민정수석과 이광철 선임행정관 등과 수시로 교류해 왔다. 이 책『무법의 시간』에는 검찰개혁 관련 내부자만이 알 수 있었던 이야기와 겪어야 했던 갈등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 나아가, 검찰과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의 법치주의와 적법절차 원리가 어떤 식으로 밑바닥부터 붕괴하고 있는지, 친노친문 지지자들과 어용 지식인, 언론인들이 정권과 결탁해 어떻게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는지,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법치를 요구하는 것이 정치가 되는 세상, 어쩌다 그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와 검찰개혁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했었다. 그러나 조국사태로 극심한 혼란을 겪으며 의구심과 배신감을 지나 공포와 분노 그리고 환멸에 이르게 됐다. 그 시간들 속에서 끊임없이 자문했던 의문들이 차곡차곡 쌓여 응축된 내 안의 해답을 응시하고, 길어 올려 펼쳐 보이는 일은 힘이 들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구매가격 : 12,460 원

무법의 시간

도서정보 : 권경애 | 2021-08-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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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거짓 기록이
역사가 되게 할 수는 없다”

법치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현장,
어쩌다 그 한복판에 서게 된,
‘조국 흑서’ 저자 권경애 변호사의
성찰과 회한 그리고 비판

법치의 붕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던 한 법률가의 고발과 성찰
― 이 책의 개요

‘조국 흑서’라 불리는『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함께 쓴 권경애 변호사가 한층 내밀하고 치밀하게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을 둘러싼 내막과 진실을 밝힌다. 한때 권 변호사는 조국 민정수석이 회의 자료로 그녀가 쓴 검찰개혁 관련 글을 사용할 만큼 검찰개혁의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또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및 검경수사권 조정 태스크포스(TF), 경찰청 수사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면서 조국 민정수석과 이광철 선임행정관 등과 수시로 교류해 왔다. 이 책『무법의 시간』에는 검찰개혁 관련 내부자만이 알 수 있었던 이야기와 겪어야 했던 갈등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 나아가, 검찰과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의 법치주의와 적법절차 원리가 어떤 식으로 밑바닥부터 붕괴하고 있는지, 친노친문 지지자들과 어용 지식인, 언론인들이 정권과 결탁해 어떻게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는지,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법치를 요구하는 것이 정치가 되는 세상, 어쩌다 그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와 검찰개혁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했었다. 그러나 조국사태로 극심한 혼란을 겪으며 의구심과 배신감을 지나 공포와 분노 그리고 환멸에 이르게 됐다. 그 시간들 속에서 끊임없이 자문했던 의문들이 차곡차곡 쌓여 응축된 내 안의 해답을 응시하고, 길어 올려 펼쳐 보이는 일은 힘이 들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구매가격 : 12,460 원

2021·2022 이재명론

도서정보 : 김윤태 | 2021-07-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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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전의 전장 20대 대선을 가리키는
각계 전문가 16인의 긴급 진단과 제언!!
2021년 7월 1일, 이재명(이하 존칭 생략)이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17년 19대 대선 출마에 이은 두 번째 도전이다. 이로써 이틀 앞서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야권 유력주자 윤석열과의 ‘양강’ 격돌이 점화되었다. 또한 내년 대선을 향한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그 경쟁대열에 뛰어들면서 7개월 남짓(이 책 출간시점인 7월 말 기준) 남은 20대 대통령 선거의 대장정이 막을 올렸다.

주류언론의 네거티브 프레임에 의해 가려진 이재명의 진면모는?
각계 전문가 16인의 시선으로 이재명의 모든 것을 파헤친 ‘긴급 다큐보고서’
이 책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접어든 시점에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이재명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내용을 독자들에게 신속히 전하는 ‘다큐 보고서’다. 그리고 이 보고서에는 사실 관계뿐 아니라 각계 전문가 16인의 예리한 진단과 제언이 포함돼 있다. 사실 이재명에게 쏟아지는 두 갈래의 평은 극명하게 갈린다. 한쪽은 SNS를 중심으로 열광적인 지지 목소리를 뿜어내는 팬심이고, 반대편인 주류언론의 논조는 마치 이재명이 집권이라도 하게 되면 대한민국이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되는 양 신랄한 비판 일색이다.

이 책의 초점은 보수 일색의 주류언론이 설치한 높은 장막에 가려져 있는 이재명의 진면모를 각계 전문가들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팬심 가득한 열정으로 ‘용비어천가’를 써 내려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변방의 무명장수 성남시장에 불과했던 이재명이 어떻게 정치적 돌풍을 일으키며 대권주자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또 이재명을 지지하는 국민들 깊은 마음속에 자리한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는 곳에 그가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거기에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힘겹게 버티며 노동자, 대학생, 인권변호사 그리고 정치인으로 이어온 인간 이재명의 성장과정과 리더십을 현대 정치사적 맥락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 연장에서 우리 사회의 거대담론이 된 기본소득론을 위시한 경제 관련 정책과 외교안보·과학기술·보건의료 정책 골자를 관련 전문가의 16인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제언을 덧붙인다.

이런 의미에서 『2021·2022 이재명론論』은 구체적인 사실에 기초한 ‘이재명의 모든 것’을 거의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따라 찬찬히 걸음을 내딛다 보면 이재명이 손끝으로 가리키는 세상의 이모저모를 면밀히 탐색할 수 있다. 또한 ‘시계 제로’의 대선 정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회 담론은 물론 요동치는 정치구도의 역동성과 그 함의의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13,000 원

망국의 단초, 청일전쟁의 기원

도서정보 : 김석구 | 2021-07-3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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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한반도에서 발화하여 청나라로 확대된 청일전쟁의 발생원인을 유라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국제관계 차원에서 연구/분석한 서적임

구매가격 : 10,000 원

2022년 대선과 정치의 쓸모

도서정보 : 최경선 | 2021-07-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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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에서 잠룡들 중에
누가 ‘대한민국 호’의 선장이 될 수 있을까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차기 대권 선두권으로 부상하면서
야권의 대권 구도는 물론 양강구도로 그동안 견고해 보이던
여권의 대권 지형이 허물어 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위권 이하 여권 잠룡이나 주요 인사들도 윤 전 총장에 대한 견제 목소리를 내는 한편,
정국 현안을 두고 메시지 경쟁을 벌이며 속속 대권 채비를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대선 전까지는 각종 유언비어와 상호 비방으로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정치 때문에 경제가 삐걱거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흥망이 건강하고 애국심있는 국민들이 힘을 합하여
이루어낸 자랑스런 조국이었듯이,
그 미래 역시 국민들의 역량발휘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은 어떤 형태로든 오늘의 난국을 극복할
저력과 지혜를 지니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2022년 대권의 최후 승자가 될까요?
갈수록 이합집산, 합종연횡을 하면서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앞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저는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 글은 나름대로 경험하고 느꼈던 소신을 밝히는 것이기에,
많은 이해와 격려, 충고를 바라는 바입니다.

저의 좁은 소견이 여러분들의 판단에 혼선이 없기를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구매가격 : 8,000 원

사림, 조선의 586

도서정보 : 유성운 | 2021-06-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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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한민국을 ‘후조선’으로 만들었는가?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후조선’을 살고 있다는 체념어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분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부와 학벌과 계급이 세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명분과 도덕을 앞세워 집권한 뒤 현실을 외면하고 실리는 챙기지 못하는 현 집권층에 대한 경고와 분노다.
일본 앞에서는 너무나 당당하면서 중국 앞에서는 움츠러들고, 각종 규제로 꽁꽁 묶어 집값을 폭등시키고, 가붕개로 만족하고 살자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화려한 스펙을 쌓아주기 바쁜 그들을 보면서 조선의 무능한 양반 지배층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차별화했지만, 조선을 성리학 세계로 바꿔놓은 뒤에는 자신들만의 특권과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중화주의에 빠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상업을 죄악시하며 나라 전체를 가난하게 만들고, 무인을 천시해 국방을 약화시키고,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노비는 늘리고, 자신들의 특권을 대대로 보장해줄 ‘성스러운’ 족보 만들기에 골몰했다.
하지만 조선이 처음부터 이런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조선 초기는 신분제도 느슨했고, 여성의 재혼도 인정했으며, 국방력을 중시했던 역동적인 시대였다. 그랬던 조선을 바꿔놓은 것은 사림이다.
《소학》의 가르침을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원리주의자 사림 세력은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를 성리학의 종주로 만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후 정계 주도권을 장악한 사림은 실력이 아니라 절의를 기준으로 세워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은 ‘소인’이나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였다. 또한 ‘중화(中華)’를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 망한 명나라의 복수를 해야 한다며 나라 전체를 이념화, 교조화시켰다.

조선 사림의 위선과 대한민국 586의 내로남불

조선 사림이 수양대군의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에 분노하고, 기묘사화라는 탄압을 통해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고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586은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에 분노하고, 5.18과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명분을 얻고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 등 재야 세력을 복권시키고 국가적 공인을 받기 위해 투쟁했던 사림은 정권을 잡은 뒤엔 자신들만 ‘정의로운 세력’이고 건국에 참여한 세력은 ‘불의한 세력’으로 끌어내렸다. 586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인사들을 ‘항일민족주의자’로 평가하고, 건국에 참여한 이들은 ‘친일친미반민족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조선 초기 공신들의 부패와 탐욕을 성토했던 사림은 집권 후에 그에 못지않은 특권을 향유했고, 자신들의 불의와 영달에 대한 지적에는 “예전에도 그랬다”라고 변명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다의 청문보고서 없는 임명 강행과 4대강보다 많은 가덕도신공항 예산을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집권 이후 정의와 도덕을 독점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이 책은 사림이 정치 세력으로 대두하는 과정과 집권 후 조선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여주면서 586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짚고 있다. 마치 둘로 쪼개진 거울을 하나로 맞추는 것 같은 유사한 흐름을 보면서 지금 우리 앞에 ‘후조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다.
실력보다 계보를 따지고, 집권자에게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윽박지르고,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무덤을 찾아 ‘계승’을 맹세하고, 중화주의에 쩔쩔매는 조선의 잔재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조선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는 민주공화정으로서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구매가격 : 8,000 원

소통, 공감 그리고 연대

도서정보 : 김황식 | 2021-06-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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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정치권의 비주류에서 일약 스타 총리로
국민과 함께 울고 웃던 그 소중한 날들의 기억

이낙연 전 총리가 그의 기록을 깨기 전까지 김황식 전 총리는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라는 타이틀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정치권의 중량감 있는 인사들, 이른바 ‘핵인싸’만이 총리직에 오를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애초에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직책이다 보니 어떤 경우가 경질이고 자진사퇴이며 어떤 경우가 임기를 충분히 채운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많은 총리들은 무언가에 쫓겨 급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반면, 대법관과 감사원장이라는 무게감 있는 직책을 지낸 법조인이기는 하지만 김황식 전 총리는 정치권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총리 발탁은 당시로서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파격’은 곧 ‘무리수’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했다. 국정 운영에 전혀 경험이 없는 인사를 총리에 임명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과 언론은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총리직, 결과적으로 김 전 총리의 ‘총리 도전기’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이 책은 김 전 총리가 880일 동안 총리를 지내는 동안의 언론 기사와 본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을 중심으로 본인의 소회를 풀어놓은 것으로, 글을 읽다보면 그가 장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충분히 느끼게 된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정치권에서 한 편의 우화를 보듯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어느 날 갑자기 총리가 되다
김황식 감사원장에게 어느 날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방문해 국무총리 직을 맡아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고 저자는 몇 번의 고사 끝에 결국 총리직을 수락하게 된다. 이 배경에는 긴박했던 당시의 정치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당시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김태호 전 경남 도지사가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자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황식 감사원장을 총리로 내정하며 국면을 전환시키고자 한다. 다시 지명한 총리 후보가 인사청문회에서 또다시 탈락하는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최대 과제였을 터이므로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지내며 두 차례의 인사청문회를 이미 통과한 저자만큼 매력적인 카드를 찾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바람대로 인사청문회와 인준 표결은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정작 문제는 그 이후였다. 김황식 총리 임명 초기에는 ‘대타 총리’라는 인식이 강했고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지냈음에도 정치적으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그 지도력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단타 카드’로 김 전 총리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무도 김 전 총리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곧 바뀌기 시작한다.



“대정부 질문에서 스타가 탄생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다.” 닷새간의 대정부 질문이 끝난 5일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대타로 등장해 홈런을 쳤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의 낙마 이후 긴급 수혈됐던 김 총리가 부드러우면서도 핵심을 피하지 않는 카리스마 있는 답변으로 국회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었다. (…) 상당수 의원들은 “인사청문회를 3차례나 거쳐서인지 내공이 다르다” “감사원장까지 지내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거 같다”며“장수 총리가 될 것 같다”고 했다.(p.37, 조선일보 2010. 11. 6일자 재인용)



김 전 총리는 그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소신 있는 발언을 하며 일약 ‘스타 총리’로 부각된 이후 국민과 소통하며 소리 없이 민생을 챙기는 친근한 총리로 자리 잡았다. 그의 퇴임 후 언론에서는 이명박 정부 5년간 가장 잘한 인사로 김황식 국무총리 임명을 꼽기도 했을 정도다.

무 컬러가 내 컬러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총리가 두각을 나타내자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언론은 그에게 갖가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슬비 총리’와 ‘눈 덮인 휴화산’, ‘중도저파’가 바로 그것이다. 한 기자가 존재감이나 색깔이 없는 총리라는 지적이 있다고 하면서 어떤 총리로 남고 싶은지 묻자 김 전 총리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존재감이나 색깔이 없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존재감이나 색깔이 없는 것이 나의 존재감이자 색깔입니다. 컬러를 찾으려면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누구와 싸움도 하고, 국민에게 근사한 말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슬비 같은 총리가 되겠습니다. 이슬비는 조용히 내리지만 땅속으로 스며들어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마침내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소나기는 시원스럽게 내리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쓸어내 버립니다. 나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p.84~85)



이 발언이 계기가 되어 ‘이슬비 총리’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눈 덮인 휴화산’과 ‘내 마음속의 마그마’라는 호칭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겨났다. 또 다른 기자가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다며 자신을 칭하자 “내가 눈 덮인 산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마그마가 끓고 있는 휴화산과 같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마그마가 끓고 있습니다”라고 대응했고 이 역시 언론에서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되었다. 또한 언론에서는 김 전 총리를 중도저파라 지칭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광주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할 때인 2004년에 쓴 ‘중도저파’라는 글에서 연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승리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부단히 변화를 모색하되 극단에 치우쳐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며,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하며, 기존 가치의 존중과 새로운 가치에의 모색이 자연스레 교차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입니다. (…) 그래서 저는 모든 면에서 극단을 싫어합니다. 스스로 중도이기를 원합니다. 중도라 하더라도 중도좌파, 중도우파 중 어느 쪽이냐고 동문 한다면 소외계층을 보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도저파라고 서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득한 이득에 연연한 우파 특히 극우는 추하고, 현실을 무시하고 꿈만 꾸는 좌파 특히 극좌도 철이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p.87)



언론이 주목한 이들 키워드는 김 전 총리의 업무 스타일과도 일치한다. 좌우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며, 보여주기 식 행사를 지양하고 조용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는 김 전 총리의 스타일에 썩 어울리는 별명인 셈이다.
그가 ‘대타 총리’에서 ‘성공한 총리’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로 그에게 사심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김 전 총리는 감사원장이나 국무총리직을 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피하려고 노력하였다고 말한다. 총리직을 성실히 수행하고자 했을 뿐 별다른 욕심이나 의도를 갖고 일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총리직 수행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총리 직책을 탐하거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하지 않으니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었고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 말에는 김 전 총리의 겸손한 태도가 다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직책을 자기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삼거나 허례허식을 일삼는 경우를 그동안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그저 평소 본인의 성품이 겉치레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올곧은 때문일 것이다.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사례가 하나 있다. 종합청사에서는 총리가 출퇴근을 할 때면 청사관리소장과 방호대장이 마중과 배웅을 하였는데 김 전 총리는 이런 관행을 없애 들쭉날쭉한 총리의 일정에 맞춰 대기해야 하는 그들의 고단함을 단숨에 해소해 주었다.

울보 김 총리
김 전 총리는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이른바 고위관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총리에게 보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장관과 차관, 1급 상당의 실장으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관행 역시 없애고 사안의 필요성에 따라 누구라도 보고할 수 있게 하였다. 총리를 항상 따라다녀야 하는 경호원을 배려해 등산을 그만둔 사연이나 총리 공관 앞 길거리에서 경비를 서는 경찰관을 위해 투명한 초소를 짓게 한 사례 등도 김 전 총리의 스타일을 짐작하게 한다.
김 전 총리는 울보 총리로도 나름 유명세를 탔는데 그가 울먹이는 모습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전사 장병?희생자 1주기 추모식’이 열리던 날 대전 국립현충원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펼쳐든 경호팀장에게 우산을 치우라고 말한 김 전 총리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고스란히 비를 맞았으며 흐느꼈다.



엄숙한 행사의 주재자인 제가 우산을 챙겨 쓴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대로 비를 맞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의 아픔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진 전사자 묘역 참배도 비를 맞으며 진행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p.93)



이 외에도 파라과이 한국학교에서 학예회 영상을 보다가 눈물을 흘렸고 서울소년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소년원생들의 합창을 듣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순직한 소방대원의 빈소를 찾아 어린 아들을 위로하다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심지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조차 파독 광부와 간호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나서 “어떻게 그 사람들을 잊을 수 있겠”냐며 울먹였다.
단호할 때는 단호했지만 부드럽고 섬세했던 김황식 전 총리. “불통 이미지를 갖고 있는 MB 정부에 따뜻한 소통 이미지의 김 총리가 있다는 건 다행”이라는 당시 여권 관계자의 말처럼 그가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총리라는 직책의 특성상 나라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한 사회에 온기를 더해줄 수는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김 전 총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떤 총리가 좋은 총리일까,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갈리겠지만 그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 책 속으로

당시 정치 상황에서 이른바 대타로 등장했음이 분명했고, 관행대로 으레 일 년 남짓 재직하다 교체되겠거니 생각했고 또 제가 기대했던 자리가 아닌지라 준비도 부족했습니다. 나중에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B 학점과 C 학점 사이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자에게 그 정도 학점으로는 취직하기 어렵다는 핀잔(?)을 듣기도 하였으나 우리 때는 취직에 지장 없었던 학점이라고 대꾸하며 웃었습니다.(p.14)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2010년 9월 저를 찾아와 국무총리직을 맡아달라는 대통령의 뜻을 전했습니다. 저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맡을 수 없다고 사양하였습니다. 하나는, 대법관으로 재직하다 임기(6년)를 못 채우고 감사원장에 임명되었는데 또다시 임기(4년)를 못 채우고 국무총리로 옮겨 간다는 것은 가벼운 처신으로 보여 국민을 불편하게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상태에서도 병역 면제 사유인 부동시가 그대로 남아 있어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과 총리 모두가 병역을 면제받은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며 새삼스레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p.20)

작은 에피소드 하나입니다. 질의하는 의원들 중에는 예의를 갖추어 총리님?장관님 호칭하며 질의하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총리?장관이라 호통치듯 호칭하며 질의하는 의원이 있습니다. 저는 전자에 대해서는 ‘의원님께서는’, 후자에 대해서는 ‘의원께서는’이라고 호칭하였습니다. 제 마음속에 정해둔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 의원이 이를 눈치챘는지 “‘님’ 자 붙이세요”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 속마음을 아셨나? 그러면 이 의원께서도 총리님이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이와 관련하여 상호 간에 더는 공방이 없이 그냥 웃고 지나갔습니다.(p.40)

“존재감이나 색깔이 없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존재감이나 색깔이 없는 것이 나의 존재감이자 색깔입니다. 컬러를 찾으려면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누구와 싸움도 하고, 국민에게 근사한 말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슬비 같은 총리가 되겠습니다. 이슬비는 조용히 내리지만 땅속으로 스며들어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마침내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소나기는 시원스럽게 내리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쓸어내 버립니다. 나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p.84~85)

그런 의미에서 승리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부단히 변화를 모색하되 극단에 치우쳐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며,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하며, 기존 가치의 존중과 새로운 가치에의 모색이 자연스레 교차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입니다. (…) 그래서 저는 모든 면에서 극단을 싫어합니다. 스스로 중도이기를 원합니다. 중도라 하더라도 중도좌파, 중도우파 중 어느 쪽이냐고 동문 한다면 소외계층을 보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도저파라고 서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득한 이득에 연연한 우파 특히 극우는 추하고, 현실을 무시하고 꿈만 꾸는 좌파 특히 극좌도 철이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p.87)

엄숙한 행사의 주재자인 제가 우산을 챙겨 쓴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대로 비를 맞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의 아픔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진 전사자 묘역 참배도 비를 맞으며 진행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p.93)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자 팬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공보실에서 팬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날 것을 건의하여 팬 미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내실 있는 대화를 위하여 인원수를 30명 정도로 제한하고 중학교 학생부터 68세의 아동문학가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장소는 광화문 근처 소박한 식당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질문을 받고 응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질문은 다양했습니다. 어느 주부는 “많은 이슈와 분쟁 속에서 저 같으면 한 번쯤 욱했을 텐데”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거칠게 반격하고 싶은 때도 있지만 제가 욱하면 국민이 불안해진다고 답변하였습니다. 국회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총리와 의원 간에 볼썽사나운 장면을 국민이 목격하였고 그때 느꼈을 국민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저의 태도와 답변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팬 미팅은 그 후 두 번을 더 하였습니다. 점심을 하고 함께 창덕궁을 산책하는 방식으로 하고 또 1, 2차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1, 2차 미팅 때 틈나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한 번쯤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p.174~175)

총리실이 12월 24일 세종시로 이사하였습니다. 아직도 청사는 물론 아파트나 편의 시설 등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 황량하고 어수선하였습니다. 총리 공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달 기거할 곳이니 꼭 필요한 가방 두 개 분량의 물품만을 갖고 입주하였습니다. 후임 총리께서 새집으로 쓰시도록 나는 몸만 들어갔다가 나올 터이니 집에 못 하나 박지 말라고 지시하였습니다.(p.403~404)

제가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의 처리 안건으로 총리 및 장관 등에 대한 훈장 수여 안건이 들어 있었습니다. 일정 기간 이상 공직에 근무하다 퇴직하는 공직자에게 훈?포장을 수여하는 것처럼 총리나 장관에게도 훈장을 수여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보통 임기 말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 다음 정부가 집행하는 것이 통례였고, 예외적으로 다음 정부가 초기에 의결하여 집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관행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 대한 훈장 수여를 스스로 의결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안건 처리를 보류하고 다음 정부의 처분에 맡기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다른 국무위원들도 제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정부는 이를 처리하지 않았습니다.(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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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협력의 동반자

도서정보 : 신봉섭 | 2021-06-18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0여 년간 현장을 누벼온 전문가
전통적인 북중관계의 허상을 파헤치다!

★북중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전법!
★북중관계를 결정짓는 핵심요인은 이데올로기 아닌 전략적 이익!






◎ 도서 소개

북한과 중국은 영원한 혈맹?
북중관계, 그 갈등과 협력의 역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관전법!

올해는 북한과 중국이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한 지 꼭 60주년 되는 해이다. 그동안 북중관계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대부분 미시적인 분석에 치우쳐 통시적인 맥락을 짚어내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미중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지도의 미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북중관계에 대한 냉철한 직시와 객관적인 접근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북중관계의 전개와 정책 결정 과정을 ‘전략적 선택’의 관점에서 접근한 『갈등과 협력의 동반자: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공생』이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되었다. 공직 생활 33년간 중국 대륙과 홍콩, 대만의 재외공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동북아 안보문제뿐 아니라 특히 북중관계의 상호 불신과 갈등, 협력과 거부, 관여와 이탈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가까이에서 통찰할 수 있었던 저자가 만년에 취득한 박사 논문을 기본으로 하여 현장 관찰에서 얻은 경험을 함께 반영한 결과물로 내놓은 책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부터 현재까지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전개되어온 정책 결정과 대응이 국제체제적으로 어떤 배경에서 비롯되고, 양자관계는 상호 어떤 긴장과 갈등 과정을 반복해왔는지를 전략적 선택과 공생관계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통시적인 북중관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직접 도식화한 도표만 해도 32개에 이른다. 국문, 영문, 중문, 일문으로 된 논문과 단행본, 언론자료 등 수백 편에 이르는 참고문헌은 이 책에 객관성과 정확성을 더해주고, 동시에 독창성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왜 다시 북중관계인가! 북핵 실험과 북미, 북중의 잇따른 정상회담 등 널뛰는 국제정세
북중관계에 대한 연구는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연구는 북중관계의 성격을 동맹이나 ‘전통적 우의’라는 틀 속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미시적인 분석에 치우쳐 협력과 갈등이라는 변화무쌍한 북중관계의 객관적 실체와 정치적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1950년 ‘항미원조’ 명분으로 연합전쟁을 치르며 혈맹관계를 맺은 북한과 중국은 지금도, 여전히, 혈맹관계인가. 북한은 2006년 10월 이래 여섯 차례 핵실험을 강행했다. ‘중국의 문 앞에서 사달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던 중국은 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혹은 발휘하지 않는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다섯 차례 몰아치기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의 특사에게 외교적 결례를 범하며 굴욕을 안기는 등 냉랭한 기류가 이어지던 양국이었다. 그렇다면 2018년 이후 북중관계는 정상화된 것인가. ‘전통적 우의관계’로 완전히 복원된 것인가. 양국이 내세우는 ‘전통적 우의관계’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 해답이 모두 이 책에 들어 있다. 어쩌면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궁금할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살짝 엿보자면, 중국은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분리해 접근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일관한다. 이는 ‘북한’이라는 전략 자산과 ‘북핵’이라는 전략적 부담 사이의 안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중국에게 있어 북한과 관련한 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영향권이 한반도 북부까지 확대되고, 북한이 지정학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북핵문제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을 취해 북한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적절히 조절하여 북한 붕괴를 방지하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북중관계의 전개와 정책 결정 과정을 ‘전략적 선택’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양자 간 전략이익 공유의 구조를 규명하고, 나아가 북?중 갈등과 협력의 모순적인 상관관계를 ‘이익균형’의 틀 속에서 설명한다. 즉 북?중 양국 관계에는 ‘공생의 공간’과 회귀 구심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북중관계를 지배하는 내재 규율과 그 본질적 특성
전략이익을 공유하는 공생의 공간 그리고 ‘전략적 공생’
이 책은 북중관계의 성격을 먼저 전체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보고, 그 속성이 양국의 정책 변화에 반영되는 형태를 전략적 선택의 틀 속에서 재해석함으로써 북한과 중국의 상호관계를 지배하는 내재 규율과 그 본질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를 규명한다. 서론에서는 이론적 근거와 개념적 정의, 연구설계의 분석틀을 소개하고, 1부와 2부는 각각 중국과 북한이 역사적 전개 속에서 상대국에 대해 실행에 옮겼던 주요 정책을 중심으로 상호 전략적 선택과 대응의 성격을 주요 시기별로 분류하여 고찰하고 있다. 이 같은 동태적 접근을 통해 북중관계의 특징과 기본 영향요인을 선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인물, 국가, 국제체제라는 세 가지 분석 수준을 이용하는데, 국제체제 요인은 지정학, 냉전 질서와 세계화, 동북아의 특수한 외교환경 등을 포괄하고, 국내 정치적 요인은 국가이익과 정체성, 국가이념과 대외전략, 외교정책 결정 등의 요소를 포함하며, 정책결정권자 개인적 요인은 최고권력자의 행동을 중심으로 개인적 선호, 인식, 경험, 상대국 지도자와의 친분 등을 주목한다.
3부는 1부와 2부에서 검토한 중국과 북한의 상호 전략적 선택의 행동을 바탕으로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친 핵심요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정리하고 있다. 전략적 이익균형의 관점에서 북중관계를 결정하는 핵심요인 간 상관성을 분석하고, 실제 양국 간 상호 정책적 대응과 이익 배분 과정에 나타나는 동태적 함의를 해석하려는 것이다. 이어서 4부에서는 특정 국가 간 관계 설정이 기본적으로 게임의 법칙에 의해 작동된다는 관점에서 ‘전략적 선택’의 구조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선택과 대응의 상호 구조에는 전략이익을 공유하는 공생의 공간이 있으며, 공생의 공간을 지배하는 논리가 바로 ‘전략적 공생’이라는 결론을 추출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대북한 역할은 군사개입, 동맹 파트너, 방관자, 조정자, 균형자, 전략적 후견국 등의 형태로 변화를 겪었고, 북한의 대중국 역할은 동맹, 자주, 이탈, 편승, 거부, 전략적 접근의 형태로 반전을 거듭해왔지만, 결국 양국 간 상호 정책 결정의 바탕에는 각 시대별 국가이익의 총합에 기초한 전략적 선택의 원칙이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북중관계의 미래 전망은?
저자는 북한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표면적인 현상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두 나라 사이의 ‘밀당’ 역시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그동안 북중관계의 수많은 우여곡절과 불신의 역사를 감안하면, 양국 관계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이다. 북중관계는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 않는 것처럼, 반대로 ‘나쁜 시절’도 오래가지 않는다. 중국과 북한은 전략이익을 공유하는 ‘공생의 공간’에서 선택적 관여와 선택적 편승을 교환하는 전략게임을 반복하며 유연한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ship’를 지속 유지해 나갈 것이다.”(491쪽)


◎ 책 속으로

* 마오쩌둥이 김일성과 직접 대면한 것은 1950년 5월 13일 김일성이 무력 남침계획에 대한 마오쩌둥의 동의를 얻기 위해 중국을 비밀 방문했을 때가 처음이다. 첫 공식회담에서 마오쩌둥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인상은 두 가지 점에서 심기가 불편했다. 첫째는 김일성이 스탈린을 추종하면서 마오쩌둥의 독자적인 권위를 별로 존중하지 않는 언행을 보인 점이다. 김일성은 이미 4월 10일 스탈린과의 모스크바 회담에서 허락을 받은 무력 남침계획을 전달하면서 마오쩌둥에게 동의를 얻고자 했다. 이를 사전에 알지 못하고 있던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전달한 스탈린의 의견을 반신반의했다. 저우언라이 총리 겸 외교부장을 한밤중에 소련 대사관에 직접 보내서 스탈린에게 친전 전문으로 문의 확인한 이후에야 비로소 김일성의 전언을 받아들였다. 마오쩌둥은 자신을 빼고 스탈린과 김일성이 군사행동을 결정한 데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모스크바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김일성이 이에 아랑곳 않고 회담이 끝나자 모든 의제에 관해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소련 대사에게 선언을 하면서 득의양양得意揚揚해하는 태도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당시 곤혹스런 입장의 마오쩌둥으로서는 김일성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을 리 없다.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첫 공식회동은 이렇게 마음속에 응어리를 남기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마오쩌둥과 불편하게 헤어진 김일성은 귀국 이후 마오쩌둥에게 전쟁 준비나 개전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더 이상 알리지 않았다. 소련의 무기 운반도 중국의 ‘창춘長春철도’를 이용하지 않고 해상으로 선박을 이용하여 북한에 들여왔다. 그리고 김일성은 전쟁 발발 후 사흘째 되는 날 비로소 무관 한 명을 보내 전황을 중국 측에 통보하였다. 이에 대해 마오쩌둥은 자신의 통역인 스저師哲에게 “그들은 우리의 이웃인데도 전쟁 발발 문제를 우리와 논의도 없이 겨우 이제야 통보를 해왔다”고 노기를 보였다. 훗날 두 사람의 관계는 물론 북중관계가 내막적으로 원만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서부터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74~75쪽)

* 2002년 북한의 신의주특구 설치 좌절에 대한 일화는 북중관계의 허虛와 실實, 그리고 양국 간 민감한 이익 충돌과 불신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2001년 1월 상하이上海를 방문한 김정일로부터 신의주특별행정구 구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러한 구상이라면 신의주보다 개성이 더 나을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인접한 단둥, 다롄과 경쟁관계가 되는 신의주보다는 한국에 가까운 황해도 지역에 개방특구를 설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의 충고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러한 조언을 듣지 않고 2002년 9월 신의주특별행정구 지정을 발표하고,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한 양빈楊斌 어우야歐亞그룹 총재를 초대 행정장관에 임명했다가 결국 중도 하차함으로써 타격을 받았다.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에 임명된 양빈은 신의주로 출발 직전인 10월 4일 새벽 중국 공안당국에 연행됐다. 중국 외교부는 4일이 지나서야 기자 브리핑에서 “불법 활동에 관여한 혐의로 양빈을 조사 중”이라고 확인해주면서도 “양빈사건과 신의주특구는 관계가 없다”고 관련성을 부인했다. (123~124쪽)

* 1975년 4월 18일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은 중난하이中南海 관저에서 마오쩌둥과 마주 앉았다. 당시는 미국의 베트남전 철수가 임박한 가운데 캄보디아에서는 전날 크메르루주 반군 지도자 폴 포트가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정권을 수립한 데 이어, 2주 후 베트남전에서는 사이공이 함락되던 시점이었다. 션즈화沈志華 교수에 따르면, 김일성은 마오쩌둥과의 비밀회동에서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위대한 승리를 얻어 우리는 매우 기쁘다”며 한반도에서도 무력통일을 시도하고 싶다는 뜻을 마오에게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마오는 (백내장으로) 눈이 좋지 않다며 화제를 돌리고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대화를 끊었다. 이렇게 마오쩌둥은 무력통일의 꿈을 버리지 못한 김일성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구체 발언 기회를 차단했으며, 제2차 한국전쟁 발동 의지를 가지고 방중했던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마오쩌둥의 냉담한 태도를 보면서 김일성은 제2의 남침을 하더라도 미국과 관계 개선을 시작한 중국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직감하고 귀환했을 것이다.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제2차 한국전쟁 의도를 외면했던 이유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 분위기에 장애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소 대립으로 안보위협에 직면한 중국은 미국과의 제휴로 위기를 돌파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공동의 이익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도차이나 공산화 도미노에 편승하여 제2의 한국전쟁을 시도할 목적으로 방중했던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반대에 부딪혀 남침 구상이 좌절됐다. 이 회담을 계기로 김일성은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은밀히 핵개발을 진척시키는 등 독자 노선을 걸었다. (210~211쪽)

* 김정일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대한 반감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덩샤오핑을 수정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1983년 6월 후계자 신분으로 비밀 방중을 마치고 귀국한 김정일은 즉시 노동당 중앙위 제6기 7차회의를 소집하여 귀국보고를 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이제 사회주의가 완전히 없어졌다. 수정주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중국의 4개 현대화 노선도 ‘자본주의로의 길’이며, 수정주의 노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격렬하게 비판했다. 이 소식은 중국에도 전해졌고, 이에 대한 덩샤오핑의 노기는 대단했다. 덩샤오핑의 입장에서는 아직 후계자에 불과한 풋내기 김정일이 사회주의 혁명의 대선배인 중국 지도자를 ‘수정주의자’로 꾸짖는 무도함을 용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애정 깊은 북한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이에 덩샤오핑은 그해 여름 ‘베이다이허北戴河 휴가’로 위장한 채 다롄의 방추이다오棒槌島 별장에 가서 김일성과 극비 수뇌회담을 가졌다. 김정일의 행동에 대한 덩샤오핑의 엄중한 지적을 받은 김일성은 귀국 후 잘 타일러 사죄 방중을 시키겠다는 약속과 함께 덩의 양해를 구했다.
사죄를 위한 중국 재방문을 완강하게 거부하던 김정일은 마지못해 그해 9월 중국을 재차 방문했다. 자리 권유를 마다하고 시종 선 채로 덩샤오핑의 이야기를 경청한 김정일은 선전深?경제특구 현장을 학습한 이후에야 귀국했고, 중국 측은 김정일 후계에 대한 승인의 뜻을 평양에 통보했다. (244쪽)

* 제3차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과의 갈등을 해소하려 노력했지만, 김정은이 2013년 말 장성택을 포함한 친중 경협파 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면서 그러한 노력은 완전 물거품이 되었다. 특히 장성택 처형의 근거 중에 하나였던 “나선특구를 외국에 팔아먹은” 혐의는 바로 나선지대에 투자한 중국을 지칭하는 것이란 점에서 북중 경협사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2014년 7월 3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여 ‘한중 공동성명’에서 ‘북핵 불용’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는 중국의 대한반도 외교사에 기록될 만한 상징적인 ‘사변’으로서 시진핑의 북한에 대한 불편한 심기의 표출이라는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은 시진핑의 방한과 북중관계의 악화에 대해 불신과 반감을 드러냈다. 2014년 7월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는 “일부 줏대 없는 나라들이 미국을 맹종해 구린내 나는 꽁무니를 따르면서 저저마다 가련한 처지에 이른 박근혜를 껴안아보려고 부질없이 왼심(조바심)을 쓰고 있다”고 비꼬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동조하면서 한국과는 정상외교를 행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비난이다. (263~264쪽)

* 그런데 중국에게 있어 북핵문제는 ‘양날의 검’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해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세력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중국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다. 강하게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핵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게 가까워지고 북중 간에 마찰이 일어난다면 북한은 거꾸로 중국을 위협할 수도 있다. 중국이 북한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이유이다. 북한이 친미국가가 되는 것은 중국에게는 가장 부담스러운 시나리오다. 시진핑이 2018년 3월 말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서둘러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극진하게 환대하고, 40일 만에 또다시 다롄에서 회동을 가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핵을 개발하는 것도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이고, 궁극적으로 핵으로 안전보장을 구매하려는 대상국도 미국이다. 역설적이게도 북한은 친미를 위해 반미를 해왔다. 미국이 ‘전략적 인내’를 한다면서 들은 척을 안 하니까 ‘벼랑 끝’까지 모험을 고집한 것이다. (463~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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