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남자는 없다

도서정보 :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 2018-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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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는 어쩌다 욕이 되어버렸나?
‘한남’의 남성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이 만연한 사회, 한국 남자의 남성성을 분석하고 공론화하다.

한국 사회는 ‘남자다움’이란 규범성이 확고한 편이다. ‘남자아이들은 활동적이다’ ‘남자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다’ ‘널 좋아해서 괴롭히는 거야’ ‘남자는 울면 안 돼’ 등과 같은 말이 한국 남자의 몸과 마음에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다. 이 젠더 규범을 공유하면서 한국 남자들은 한국 사회를 활보하고 지배한다. 남자들만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을 보면 그 젠더 규범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야한 농담을 하고, 심지어는 강간을 모의하기도 한다. 정치인들, 직장인들의 룸살롱문화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상에서 여성을 공개적으로 살해하겠다고 협박을 하고서도 “여성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나는 당당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남자다움’이란 규범성의 잘못된 발화이다. 문제는 이 남자다움의 규범이 계속 학습되며 ‘사회화’되어 전승된다는 것이다. 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김치녀’ 등 여성 혐오 표현에 공감하는 비율은 청소년이 66.7퍼센트로 여타 세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온라인상에서 여성 혐오를 일삼는 ‘일베’ 이용자나 ‘여자도 군대 가라’고 외치거나 ‘역차별’논란을 일으키며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이들이 남성청(소)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 ‘남자다움’이란 규범성을 깨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은 영원히 되풀이될 것이다.

‘남자들은 다 그래’, 한국 남성들은 이 말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나쁜 남자’가 남자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쁜 남자’는 판타지이다. 그리고 ‘남자다움’ 자체도 일종의 판타지로 구성된 이데올로기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성차의 본질화를 경계하며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모두 자유롭게 떠다니는 인공물이자 언제나 생성되는 과정 중의 구성물이라고 설명한다. 즉 ‘남자다움’이라는 젠더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내려온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쁜 남자’도 ‘남자답다’도 모두 허구일 수밖에 없다. 『그런 남자는 없다』가 이 책의 제목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남자는 없다. ‘거칠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다정한 남자’ ‘대의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하는 남자’ 등, 남자다움에 대한 여러 규범을 구현한 ‘그런 남자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차이들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남자다움’이 허상이라면 ‘한국 남자’들의 ‘남자다움’은 무엇인가? 남성 주체의 욕망, 한국 남자들의 남성성에 대한 연구가 절실해 보이는 이 시점에 『그런 남자는 없다』는 한국 남자들의 남성성에 대한 이해의 지표를 제시한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에서 진행했던 ‘남성성 콜로키엄’에서 오고간 남성성 이야기를 묶은 이 책은 총 13명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남성성, 그중에서도 ‘한국의 남성성’에 대해 질문한다. 대한민국 남성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한국 남자들은 왜 이러는가? ‘한국 남자’는 어쩌다 욕이 되어버렸나?
이 책은 한국의 남성성이 어떻게 구성되고 변화하며 현재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를 고찰한다. 필자들은 대한민국 남성성에 대해 역사적이고, 사회문화적이며 젠더 수행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시도했다. 총 13개의 글은 각각 해방기 국가 재건 과정에서 생겨났던 우익 청년단에서부터 2000년대 이후 K-문학, K-영화와 디지털 미디어 등에 나타나는 다양한 남성성을 살펴본다. 이렇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다보면 ‘한국 남성성’의 위기와 그 변용을 포착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나타나는 여성 혐오 현상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남자는 없다』는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 『대한민국 남자의 탄생』에서는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전래동화)부터 일제 식민 시기와 해방 이후 대한민국 건국 초기까지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구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2부 『근대국가와 ‘만들어진 남자’』는 박정희 체제하에서 국민개병제 실시, 주민등록법 시행 등으로 더욱 공고해지는 대한민국의 남성성을 살펴본다. 이와 함께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주변부로 밀려난 성소수자, 장애 남성을 통해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탐구한다. 한편 한국 사회 내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군사주의적 남성성도 고찰한다. 3부 『IMF 이후 한국 남자의 초상』에서는 지금 현재, 각종 소설?영화?웹툰 등 미디어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짚어본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에서부터 한국문학계의 대표적 남성 작가인 이기호, 천명관, 김훈의 소설에서 한국 남성성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4부 『디지털 시대의 남자 되기와 여성 혐오』는 인터넷의 등장 이후 디지털 리터러시를 가진 남성 청년을 중심으로 디지털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남성성의 양상을 살펴본다. 특히나 디지털 미디어에서 격렬하게 벌어지는 젠더 갈등의 전장에서 여성 혐오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13,300 원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도서정보 : 임미리 | 2018-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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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열사로 호명된 133명의 저항적 자살자들
그들은 왜 죽음을 선택했고,
죽음으로써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열사 호명을 둘러싼 저항세력의 전략과 한계는 무엇인가?

6월 민주항쟁이 올해로 30주기를 맞았다. 이와 함께 ‘박종철’ ‘이한열’과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열사들의 이름도 다시 한 번 거론되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시작해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으로 폭발한 6월항쟁은 전국 30여 개의 도시로 확산되어 크고 작은 시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억울한 죽음이 학생운동은 물론 범국민적인 연대를 촉발한 것이다. 이처럼 6월항쟁의 시작점에는 투사 혹은 열사라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현 시대에 ‘열사’라는 이름은 어떤 면에서 이미 시효성을 상실했다. 특정 개인을 열사로 호명하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저항 방식으로서의 죽음/자살은 오늘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여기에는 IMF 시기를 거쳐 본격 도입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지배세력은 물론 저항운동진영 역시 크게 변화한 일련의 맥락들이 있다. 과거 압도적인 폭력으로 군림했던 지배세력의 통치가 합법의 탈을 쓴 매끄럽고 유연한 신자유주의적 통치로 전환하면서 저항운동은 하나의 가시적인 적 또는 권력을 상정할 수 없게 되었고 단일한 저항공동체로 결집하는 것 역시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이렇듯 전선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열사의 죽음 역시 예전처럼 강력한 사회적 파장을 형성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은 이처럼 열사의 죽음이 고유한 의미를 잃고 형해화된 현재의 상황에서 ‘열사 호명구조’라는 문제의식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죽음들을 탐구하고자 한다. 흔히 열사는 죽음으로써 저항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존재로 숱하게 언급되었지만 정작 이들의 죽음 자체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열사’라는 사회적 호칭 내지는 호명이지 결코 그 죽음 자체는 아니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관점을 따라 죽음을 삶의 한 방식으로, 그 중에서도 자살을 자살자가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는 실존적 결단으로 바라본다. 다시 말해 죽음은 자살자가 살아온 삶과 무관하지 않으며 세상과 관계하는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열사의 죽음을 탐구한다는 것은 열사들이 끝내 죽음을 감행하면서까지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이지, 또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메시지가 어떻게 읽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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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링, 일대일 어른친구

도서정보 : 러빙핸즈 멘토 17명 | 2018-09-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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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친구’가 되어주는 러빙핸즈멘토링!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성과가 잘 나지 않는’ ‘섣불리 참여하기도 힘든’ 멘토링의 어려움을 극복한 17명의 멘토들의 감동이 살아 있는 멘토링 사례집.

러빙핸즈는 2007년 2월 14일 설립된 NGO로서, 러빙핸즈 멘토라는 이름의 자체 멘토 양성교육을 받은 성인 멘토를 한부모 가정과 조손 가정의 아동 청소년 한 명과 1:1로 매칭하여, 아동 청소년이 성인이 되는 나이까지 4~10년 동안 장기적으로 정서 지원 멘토링을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멘토링 프로그램의 수료자가 무려 741명이나 되고, 226쌍이나 매칭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창립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동안 멘토들이 어떤 경로를 밟아 멘토의 길을 밟아 가고 있는지, 그 어려움과 보람은 어떠한지 17멘토의 입을 통해 생생한 체험담을 실어 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10명의 현재 활동 멘토의 이야기와 7명의 졸업 멘토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각자가 본인의 상황과 매칭 되었던 멘티들의 독특한 형편으로 인해 비슷하지만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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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여성 :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도서정보 : 스베냐 플라스펠러 | 2018-09-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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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약한 성을 자처하던 시대는 끝났다
‘힘 있는 여성’은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을 벗어던지고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다

독일의 주목받는 여성 철학자 스베냐 플라스펠러가
더욱 도전적이고 능동적인 새로운 여성성을 제안한다

독일 아마존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구매가격 : 7,000 원

관료제

도서정보 : 막스 베버 | 2018-09-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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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의 거장 막스 베버,
현대 사회의 관료제를 분석하다!
― 현대 사회 분석과 막스 베버의 방법론인 이념형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역작

막스 베버는 현대 사회학을 창시한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베버는 역사와 경제, 정치, 법제도, 종교, 철학 등 거의 모든 인문 사회과학적 현상들을 자기의 연구 주제로 끌어왔으며, 이러한 현상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방법론과 이론을 만들어내 현대 사회학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번에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관료제》는 관료제가 확산되고 있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통해 현대 사회의 합리화 경향을 짚어내고 있으며, 또한 이를 이념형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막스 베버의 방법론 이해를 위해서도 꼭 읽어야 하는 저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경제와 사회》 제2부 9장 〈지배 사회학〉의 2절 〈관료제 지배의 본질, 전제 조건 및 발전(Wesen, Voraussetzungen und Entfaltung derburokratischen Herrschaft)〉을 번역한 것이다. 베버의 관료제 이론에 대한 보충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두 개의 글을 부록으로 실었다. 하나는 《경제와 사회》 제1부 3장 〈지배의 유형〉의 2절 〈관료제의 행정 직원을 갖춘 합법적 지배(Die legaleHerrschaft mit burokratischem Verwaltungsstab)〉이며, 다른 하나는 막스 베버가 1918년 오스트리아 장교들에게 한 강연문 〈사회주의〉이다.

베버는 현대 사회의 합리화 경향에 주목하면서 권력과 지배의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그는 지배자의 권위와 명령을 정당화하는 근거에 따라서 지배를 합법적 지배, 전통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로 구분하였다. 합법적 지배는 규칙(법)이 형식상 올바른 절차를 통해서 제정되었기 때문에 정당하며, 그 규칙에 따라 지명된 지도자의 지배는 정당성을 갖는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는데, 관료제는 이 합법적 지배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다. 관료제는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체계화된 조직이다. 관료는 위계질서 속에서 비인격적인 규칙에 따라 행동하며, 그의 업무와 권한은 엄격하게 한정되어 있다. 베버가 제시하는 이념형으로서의 관료제 개념은 국가의 행정 기구만이 아니라 사경제의 기업체, 종교 단체, 군대, 정당 등 모든 대규모 조직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관료란 국가 공무원으로서의 관리뿐만 아니라 사기업의 관리직 사원, 그 밖에 여러 기능적인 단체의 직원도 포함한다. 관료제는 현대 사회에서 법, 정치, 산업 등의 합리화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점점 더 확산되는데, 그 이유는 관료제 조직이 그 어떤 다른 조직 형태보다 기술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다. 즉 관료제 조직은 전문 지식을 수단으로 삼아 업무를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베버는 관료제의 확산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결과도 지적했다. 그는 현대 사회의 끊임없는 관료제화가 이 세계에 비인간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버는 현대의 대규모 조직에 대한 이념형적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관료제화가 가져오는 정치사회학적 결과도 다루었다. 베버는 현대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관료제화 현상을 인간의 ‘활동의 자유’ 문제와 연결시켜 진단했다. 베버가 연구를 할 당시보다 관료제화가 더욱 고도화된 오늘의 현실을 돌아볼 때, 베버의 관료제론은 지금도 여전히 새롭게 연구되어야 할 고전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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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현장에서

도서정보 : 김선수 | 2018-09-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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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헌법의 현장에서』에는 그간 김선수 변호사가 맡은 12개의 헌법재판(7건의 공개변론 사건과 5건의 서면심리 사건) 변론기가 정리되어 있다. 이 사건들 중에는 청구인을 대리해 법률이나 공권력 행사의 위헌을 주장한 사건도 있고, 피청구인을 대리해 합헌을 주장한 사건도 있다. 김선수 변호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사건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한 것과 ‘공소 제기 후 수사기록 복사 거부 처분 취소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결정을 한 것이 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헌소원 사건에서 김선수 변호사는 합헌을 주장했는데, 청구인인 현대자동차가 취하해서 최종적인 결정을 받지는 못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중앙선관위의 대통령에 대한 선거중립 위반 경고조치 취소 사건’, ‘언론관계법 날치기 부작위 권한쟁의 사건’ 등 나머지 사건에서는 모두 김선수 변호사가 원하는 결정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건에서 김선수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하는 소수 의견이 나왔고, 후에 법 개정으로 해결된 것도 있다. ‘전교조 사립학교법 제55조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받았지만 후에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해결되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제도 조항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이 선고되었지만 후에 법률 개정과정에서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헌법재판소가 과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파악할 수 있고, 김선수 변호사가 그곳에서 다수 의견에 맞서 어떻게 고군분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국가공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에 묻혀 뜻대로 성과를 이루지 못한 사건들이 더 많았다. 그 사건들을 통해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한계 등을 논의하고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비판하는 부분은 날카롭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0년 동안 국가안보와 관련된 쟁점에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보다는 국가안보를 더 강조했고, 노동권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또 사회권 보장에 소극적이었고, 조세법률주의와 관련해서 조세 정의보다는 재산권 보호에 더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1987년 헌법에 의해 탄생된 헌법재판소가 과연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는 것인지 강하게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한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사립학교법 제55조 위헌심판 사건 결정의 다수 의견을 그대로 원용했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언제라도 퇴행할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인 모양이다.”(전교조 사립학교법 위헌심판 사건)
“두 번에 걸친 권한쟁의심판청구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한계만 확인했다. 박재승 변호사님은 헌법재판관들의 천박한 인식 태도와 소극적 자세에 대해 한탄했다.”(언론관계법 날치기 처리 권한쟁의심판 사건)
“이 나라에서는 언제나 공무원이나 교사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으려나? 김이수·이정미 두 재판관의 의견이 다수 의견이 되는 날이 그날이 될 텐데 그때는 언제나 오려나?”(전교조 시국선언 관련 사건)
“헌법재판소가 현대자동차의 재정 상황까지 염려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 없이 판결 선고를 지연함으로써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했다.”(파견법 위헌소원 사건)
“지엠 회장이 한국의 고용경직성 내지 통상임금에 관해 언급한 것은 한국의 노동법제와 사법제도를 무시하는 천박한 자본가의 입장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말 한마디에 대통령과 장관 등 한 나라가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규범적 판단을 해야 하는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조차 이런 말에 반응하는 것이 너무도 서글펐다.”(파견법 위헌소원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의 구체적인 경위, 해산심판 진행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비서실, 비서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
“노동사건에서 역사의 진보는 없는가?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은 1996년 결정의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을 거의 답습했다. …… 법이 개정되는 그날까지 위헌 주장은 계속될 것이다.”(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제도 조항 및 필수유지업무제도 조항의 위헌소원 사건)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 최고의 규범적 판단을 하는 사법적 기관이라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그 구성에서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노동절 제외한 공휴일 규정 위헌확인 소원 사건)

위와 같은 인용구에서 볼 수 있듯이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항거로 1987년 출범했으므로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이 쟁취한 민주화의 소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모든 권한의 원천은 국민이 되어야 하며,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의 다수파를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 소수파의 인권과 활동을 옹호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장하는 것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취지와 달리 헌법재판소는 한국 사회의 다수파를 대변하고 있고, 더군다나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현실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김선수 변호사는 강도 높게 비판한다.

“세기적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이를테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이 정당해산제도를 채택하고, 헌법재판소 관장사항의 하나로 정당해산심판이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 제도가 실제로 활용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당해산심판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형식적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소수 정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이 되기 어려운데도 굳이 강제적으로 소수 정당을 해산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최종변론기일에 다음과 같이 구술변론했다.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의 파괴는 정권을 장악한 다수파의 전횡에 의해 자행되었지, 소수 반대파에 의해 행해진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소수 반대파에 대한 다수파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가 달라졌습니다. …… 이 사건 심판의 결과는 우리나라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소수 반대파를 포용하고 관용함으로써 성숙된 선진 민주주의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소수 반대파를 배제함으로써 암흑과 후진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 그 결정권은 이제 아홉 분의 헌법재판관님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이유를 들며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을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입니다. 국가권력이 소수 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는 그런 야만적인 수준의 국가가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소위 국격國格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 둘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서입니다. 이 사건에서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질 경우 어떠한 비이성적인 광풍이 몰아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 셋째, 우리 국민의 자존自尊을 위해서입니다. 누차 말씀드렸지만 이 사건 심판청구는 우리 국민들의 민주적 역량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제기된 것입니다. …… 넷째, 청구인 즉,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당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형사적·행정적 대응수단을 통해 국가의 안전과 사회를 방위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합니다.
다섯째,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서입니다. 피청구인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없고, 가난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제시하고 연대하고 같이 투쟁해온 정당입니다. …… 여섯째,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를 위해서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소수 반대파 정당을 해산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존립 원천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결국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 결정을 “세기적 참사”라고 말하며 대한민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통합진보당이 사용하는 용어나 주장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이 정당이 북한을 추종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선수 변호사는 최종변론기일에 다음과 같이 변론하며 비판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 먼저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금지어禁止語가 된 좋은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만약 해산결정이 내려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내포하는 ‘자주, 민주, 통일’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폐기될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주, 민주, 통일’,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곧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 되고, 이를 위한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어 정당조차도 해산시킬 정당한 이유가 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떳떳하게 그러한 단어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2014년 11월 최종변론이 있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서둘러 해산결정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전에 당선된 그날(12월 19일)을 선고기일로 잡았다. 심판청구 시점부터 계산하면 13개월 정도만”에 모든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결정문에는 기본적인 사실 관계도 잘못 적혀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서둘러 해산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에 “비서실장,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라고 적혀 있는 구절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지 않을까?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의 구체적인 경위, 해산심판 진행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비서실, 비서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헌법재판소의 위상은 다시 한 번 점검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했는가

김선수 변호사는 에필로그에서 ‘헌법재판소 30년 평가’와 ‘개헌 시 헌법제판제도 개성 방안’을 밝히고 있다. 우선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30년 동안 표현의 자유 신장, 여성의 지위 향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신장 등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쟁점에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보다는 국가안보를 더 강조했고, 노동권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또 사회권 보장에 소극적이었고, 조세법률주의와 관련해서 조세 정의보다는 재산권 보호에 더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관습헌법 법리를 동원하여 행정수도 이전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한 것은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김선수 변호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소수 의견’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는 여러 요인 또는 시대적 한계로 인해 주요 의견이 되지 못한 소수 의견들이 많았다. 특히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장에 충실한 소수 의견은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지켜준 희망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1기 헌법재판관이었던 변정수 재판관과 2012년부터 2018년 8월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김이수 재판관의 소수 의견은 국민들이 헌법재판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변정수, 김이수 두 재판관께 크게 빚졌다고 할 수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기(2011년 9월~2017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116건 중 39건(33.6%)18)이 13:0으로 같은 견해를 취함으로써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으로 말미암아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것에 비추어 보면 헌법재판소의 소수 의견은 더욱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김선수 변호사는 개헌 이루어지면 헌법재판제도가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개선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심판사항 확대, 현행 헌법에 언급되어 있는 헌법재판관의 자격 요건 중 ‘법관 자격’ 삭제, 헌법재판관 모두를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 헌법재판소장 임명 제도 개선, 헌법재판관의 임기와 연임 개선 등이 그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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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 태어나서

도서정보 : 한승태 | 2018-08-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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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 부문 수상.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시사인>, <환경책큰잔치> 2018 올해의 책 선정. 작가 한승태가 한국 식용 동물 농장 열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자기 자신과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함께한 닭, 돼지, 개 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노동에세이이자 ‘맛있는’ 고기(닭, 돼지, 개)와 ‘힘쓰는’ 고기(사람)의 경계에 놓인 비망록이다.

전작 《인간의 조건》을 통해 꽃게잡이 배에서 편의점에 이르는 여러 일터에서 체험한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를 기록했던 저자는,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는지 4년 동안 일하면서 경험했다. 시작은 “내가 알고 있던 동물이 그곳에는 없었다”는 단순한 충격과 공포로 인한 호기심이었지만, 닭, 돼지, 개 농장을 거치면서 생명의 존엄과 윤리에 대한 문제부터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노동하는 인간의 삶을 담은 담담한 에세이이면서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부터 한국 식용 고기 산업 생태계의 단면에 대한 사회적 관찰까지 다양한 화두들을 제기하고 작가 나름의 그에 대한 생각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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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계급과 사회

도서정보 : 이광수 | 2018-08-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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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中樞)계급과 사회》1921년 발표한 단편 기고로 ‘노아(魯啞)’라는 저자의 필명으로 적었다.
대관절 중심인물이나 중추계급에 필요가 왜 있는가?
사회의 전체 인원을 대표하거나, 또는 통솔하고 지도해 나갈 사람은 한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정치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며 경제적 생활, 종교적 생활, 예술적 생활, 교육과 과학 등 인류 생활의 각 부문에 모두 이를 대표하고 지도 통솔하는 중추계급이 필요하다. 또 이런 각 부문의 생활을 총괄한 한 민족의 생활 전체에도 그 중심이 될 계급이 있어야 할 것이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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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과 그의 시대

도서정보 : 김덕련 | 2018-08-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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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법 기술자, 민주주의 파괴자 김기춘

그렇다면 김기춘은 ‘한국의 아이히만’일까? “그도 ……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일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창이던 2017년 1월 한 인터넷 신문에 김기춘을 이렇게 평가하는 글이 실렸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이 김기춘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김기춘도 과연 성찰 없이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데만 그쳤을까?

김기춘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아이히만과는 달리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반민주 행위를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김기춘의 이데올로기를 한마디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극우 반공주의다. 극우 반공주의는 오늘의 김기춘을 만든 토양이고, 김기춘과 같은 사람들에게 권력과 부를 안겨준 토대이기도 하다. 김기춘과 같은 사람들이 한사코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세력을 짓밟으려고 한 것도 이 극우 반공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

김기춘은 극우 반공주의에 바탕을 둔 공안 통치를 지향했고, 그 과정에서 공작 정치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 헌법 제작에 관여하고 유신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시절 비판 세력을 강경하게 탄압하며 공안 정국 조성에 앞장섰으며, 초원복집에서 민주주의 파괴 음모를 꾸몄다. 국회의원 시절과 박근혜 정권의 비서실장 시절에도 일관되게 극우 반공 체제를 위해 활동했다.
김기춘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사람이자 ‘법비法匪’(법으로 도적질하는 무리)로 규탄되는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하면서 오늘날 안 좋은 의미의 ‘검찰 공화국’을 구축한 주역이기도 하다. 그가 수장으로 있을 때 검찰은 국민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권력, 자본을 위한 검찰이 되었고, 이는 지금 검찰이 ‘적폐 세력’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틀 김기춘’ 우병우가 국정 농단에 관여한 것에 더해 ‘법꾸라지(법+미꾸라지)’ 행태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검찰 공화국’이라는 현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병우의 ‘법꾸라지’ 대선배 격인 김기춘이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키고도 법적으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은 것 역시 ‘검찰 공화국’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김기춘에게 1차 전성기를 열어준 유신 독재

김기춘은 1939년 거제도 장목면에서 태어났다. 거제도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2명의 대통령(김영삼, 문재인)을 배출한 고장. 김기춘의 집은 그 동네에서 괜찮게 사는 축에 들었다. 공부도 곧잘 했던 그는 거제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교육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법관이 되기 위해 1958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공부에 매진해 3학년 때 고시 사법과 시험을 쳤고, 이듬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기춘은 자신의 대학 시절을 나라 전체가 어렵고 가난했지만 낭만이 있던 시절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 시기(1958~1962년)는 이승만 정권 말기, 4월혁명 시기, 5?16쿠데타 후 들어선 군사 정권 전반기에 해당한다.

고시 합격 후 해군·해병대 법무관으로 재직하면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64년 광주지검, 1967년 부산지검, 1969년 서울지검을 거쳐 1971년에 법무부 법무과에서 일했다. 그리고 이듬해 자신을 출세의 발판을 마련해준 유신 헌법 제작에 관여하게 된다. 유신 헌법을 만드는 데 앞장선 헌법학자 한태연은 이렇게 주장했다. 박정희가 유신 헌법의 핵심 내용을 구상하고 신직수와 김기춘이 그 뜻을 받들어 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원하는 형태로 유신 헌법안을 만든 주동 인물 중 한 명이 33세의 젊은 검사 김기춘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김기춘은 한태연의 주장을 부정했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뒤져보면 김기춘은 평검사 신분으로 박정희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등 유신 헌법과 관련해 비중 있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뒤 김기춘은 1973년 4월, 유신 쿠데타 후 첫 번째로 이뤄진 대규모 검찰 인사에서 법무부 과장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했고, 1974년에는 중앙정보부로 발령을 받았다. 유신 독재는 그렇게 김기춘에게 1차 전성시대를 열어줬다. 그래서일까. 김기춘은 회고록에서 유신 쿠데타가 박정희의 “우국충정”의 소산이며 “국론을 통일하여 국력을 결집하고 정부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강변하며 유신 독재를 비호했다.

중앙정보부로 옮긴 후 김기춘의 활동 내용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시기는 1974년 8월이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국립극장에서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절명한 것이다. 김기춘은 그 문세광을 직접 신문해 자백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세광 신문은 김기춘에게 엄청난 출셋길을 열어줬다. 문세광의 신문이 있은 지 한 달 후인 1974년 9월, 김기춘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영전했다. 35세의 나이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요직 중의 요직을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중책을 맡긴 박정희 정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유신 독재 수호에 적극 나서게 된다.

대공수사국장 시절의 대표작,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 사건

1975년 11월 22일 각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대규모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을 적발했다’는 중앙정보부 발표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북괴가 그들의 공작원을 유학생으로 가장”해 한신대, 부산대, 고려대, 가톨릭의대 등 학원에 침투시킨 것을 적발해 일당 21명을 검거하고 관련 용의자를 계속 수사하고 있다는 발표였다. 간첩단의 주축으로 주로 지목된 사람들은 일본에서 유학 온 교포 학생들이었고, 이들과 가깝게 지낸 재학생들도 사건에 휘말렸다.

같은 날 신문 사회면의 한쪽에 이 사건과 관련된 ‘일문일답’ 내용이 크게 실렸다. 이 ‘일문일답’을 통해 기자들에게 사건을 상세히 설명한 사람이 바로 김기춘이다. 이 ‘일문일답’에서 김기춘은 이번 사건이 “최근 수년간 대학가에서 벌어졌던 데모가 북괴 간첩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임을 증명한 케이스”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학원 소요의 배후에는 북괴 간첩이 있다”는 것이 이 사건의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당시는 유신 독재 철폐 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이 위기를 돌파해야 했는데,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안보 불안감’ 조성이다. 박정희 정권은 간첩 사건을 비롯한 각종 공안 사건을 터뜨리며 반대 세력을 탄압했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없는 간첩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후일 11·22사건도 당연히 조작된 간첩 사건으로 밝혀졌다. 11·22사건 피해자들이 체포, 고문, 사형 선고를 비롯한 중형, 옥살이, 재심을 거치는 동안 김기춘은 장관, 국회의원을 거쳐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김기춘에게 이 사건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김기춘은 영화 [자백]에서 조작 간첩 제조 문제에 대해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한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수사한 사건 중에 과거사 조사나 의문사 조사 대상에 오른 게 없다. 권력 남용해서 인권 유린하고 고문했으면 오늘날 김기춘은 없다. 그 점을 자부한다.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궁정동 총성으로 막 내린 1차 전성기

1979년 2월, 김기춘은 4년 5개월에 걸친 중앙정보부 생활을 마무리하고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에서 박정희를 보좌하게 된 것은 김기춘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였다. 유신 헌법 제작 과정에서 박정희에게 직접 보고하고, 8·15 저격 사건 후 문세광 신문을 통해 이미 깊은 인상을 심어준 김기춘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회고록에 김기춘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총애와 가르침, 격려를 받았다”고 썼다.

극심한 혼돈으로 치닫던 유신 독재는 1979년 10·26사건으로 무너졌다. 김기춘이 청와대로 옮긴 지 8개월 만이었다. 새로운 독재자 전두환이 등장했고, 김기춘의 1차 전성시대도 막을 내렸다. 김기춘은 전두환이 집권하던 시기에 청와대를 떠나 검찰에 복귀했다. 1986년 대구고검장, 1987년 법무연수원장으로 있다가 노태우 정권 첫해인 1988년 12월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2차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앙정보부에서 갈고 닦은 실력, 공안 정국 조성으로 펼치다

김기춘이 검찰총장이 되었을 때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요구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김기춘이 이끄는 검찰은 시대착오적인 극우 반공 체제를 수호하는 데에만 앞장서게 된다. 5공 비리 수사를 큰 틀에서 일단락 지으며 청와대의 고민을 덜어준 김기춘은 얼마 후 노태우 정권에 큰 ‘선물’을 안겨준다. 유신 독재 시절 4년여 동안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하며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공안 정국 조성에 앞장선 것이다. 1989년 북한을 방문한 문익환, 임수경 등을 구속한 것은 물론 민주화 운동 세력들도 좌경 용공으로 몰아 광범위하게 잡아들인 것이다.

그 결과 노태우 정권은 안정을 찾았고, 공안 정국 조성에 앞장섰던 김기춘과 검찰의 정권 내 위상도 높아졌다. 민주화 운동 세력과 야당에 밀리며 취약했던 노태우 정권의 버팀목 구실을 톡톡히 한 김기춘은 1991년 법무부 장관이 된다.

김기춘을 법무부 장관으로 불러들일 무렵 노태우 정권은 또다시 궁지에 빠져 있었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백골단에게 맞아 죽은 후 거리는 연일 반정부 시위대로 뒤덮였다. 그런 속에서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박창수가 의문의 죽음(5월 6일)을 맞고 학생, 노동자, 빈민 등 10여 명이 정권 퇴진 등을 요구하며 연이어 분신하면서 ‘5월 투쟁’으로 불리는 반정부 흐름은 고조됐다. 5월 25일에는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이 난무한 시위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김기춘에게 부여된 임무는 정권 안보를 지키는 구원 투수 역할이었다. ‘5월 투쟁’에 대한 김기춘의 기본 대응 전략은 또다시 공안 정국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와는 다른 방법을 썼다. 이전에는 이념 공세를 퍼부으며 민주화의 대세를 뒤집으려 했다면 이번에는 민주화 운동 세력 전체를 패륜 집단으로 몰아가는 데 더 초점을 맞췄다. “어둠의 세력”을 창조해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궁지에 몰렸던 노태우 정권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기춘은 공안 정국 조성에 앞장선 1989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노태우 정권을 구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주도하며 정권 수호, 체제 유지의 주력임을 과시했다. 김기춘 검찰총장 시기에 그 기반이 마련된 ‘검찰 공화국’은 이 사건을 거치며 굳히기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비리와 범죄로 점철된 박근혜 정권, 그 중심에 김기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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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대선을 사흘 앞둔 1992년 12월 15일, 정주영의 국민당이 증거 사진과 함께 하나의 녹음테이프를 세상에 내놓았다. 테이프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두 달 전까지 법무부 장관이던 김기춘과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었다. 민자당 후보 김영삼의 대선 승리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한다는 등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바로 ‘초원복집 사건’이었다. 오늘날 초원복집 사건은 ‘김기춘’, ‘지역감정 조장’과 연관돼 간략히 거론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사건은 극우 반공 세력의 속마음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 김기춘은 1992년 12월 29일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재판을 거쳐 감옥에 가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김기춘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처벌받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출세의 길로 나아갔다. 1995년 KBO 총재에 취임했고, 1996년에는 국회의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2008년까지 12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한동안 정치권에서 멀어진 김기춘은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자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2013년 8월 74세의 김기춘은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었고,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릴 만큼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거짓, 조작, 공안 통치로 점철된 박근혜 정권의 민낯은 더욱 뚜렷해졌다. 전교조는 법외 노조 통보를 받았고, 통합진보당은 해산됐으며, 블랙리스트가 광범위하게 작성·실행됐고, ‘세월호 죽이기’ 공작이 자행됐다.

박근혜 세력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도, 헌법도 거리낌 없이 짓밟았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보다 최고 권력자의 심기 경호가 우선이었고, 극우 반공 체제를 강화하는 일이 훨씬 중요했다. 이는 경제 민주화 과제를 내팽개치고, 재벌 위주 정책을 통해 특권층의 주머니를 더 두둑하게 해준 것과 이어져 있었다. 그러한 틀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김기춘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고, 촛불 항쟁이 일어났으며, 박근혜도 김기춘도 구속되었다. 2018년 현재 김기춘은 79세의 고령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수감돼 있고, 유죄가 확정될 경우 몇 년간 옥살이를 해야 하는 처지다. 그리고 다시는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 잡을 가능성은 없다. 김기춘이 다시 권력자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 공화국’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저자 김덕련은 김기춘 전성시대를 가능케 한 토양이 바뀌지 않으면 김기춘 같은 사람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전쟁 같은 노동을 매일매일 견뎌내며 허리띠를 졸라맨 “이 땅의 일하는 사람들”이 쏟은 노력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역사를 볼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다. 이것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오늘날에도 한국인의 다수는 전쟁 같은 노동을 매일매일 견뎌내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 땅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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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에 바칩니다

도서정보 :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2018-08-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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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비정규직 사회헌장]

우선 비정규직 사회헌장을 만들기 위해 현장의 노동자들이 한데 모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어떤 권리가 필요한지를 하나씩 모아 담았다. 18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과 노동을 이야기했고, 활동가 6명이 각각의 조항에 담긴 의미를 풀어썼다. 그 결과 비정규직 사회헌장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반영되었고, 법과 제도로 요구하는 권리뿐 아니라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까지 포함했다.
이 책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선언문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차별과 고용 불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해고되어서 이전의 관계로부터 강제로 단절되어버린 노동자, 일자리를 구하면서 불안정한 노동을 반복하는 노동자,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빼앗겨버린 이주노동자, 그리고 영세한 자본 구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이 모든 불안정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한 선언문이다. 안정된 노동의 권리,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나갈 권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유지하고 공동체의 삶을 누릴 권리는 노동자 모두의 권리이며 함부로 침해당할 수 없는 권리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자신이 처한 비참함의 원인을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정부나 기업에게 묻지 않고 자기 자신 탓으로 여기며 체제에 순응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껏 지켜봐왔던 것처럼 정부는 절대 노동자의 편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순응하는 시민들과 언론도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이 책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는 노동자가 스스로 ‘투쟁’해야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 권리 찾기를 선언하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가 존중되고,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노동”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라져버린 소중한 노동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나서야 진정한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차별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다”

1부에서는 “비정규직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침해받고 있는 현실을 하나씩 지적하고 있다. “함부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삶을 파괴해서도 안 된다. 일터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존중하는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 이런 권리가 일터에서 당연하게 존중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비정규직은 단지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일상의 차별과 권리의 침해로 노동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노동자들이 이런 현실을 수용하지 않아야 하고, 노동자의 권리에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사소한 인권 침해에도 계속 문제 제기하고 싸워나갈 때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도 변화할 것이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2조: 차별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8조: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9조: 장시간 노동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0조: 우리에게는 공간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1조: 존중받는 호칭이 필요하다.

“비정규직도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 권리는 있어야 한다’는 짧은 문구는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다. 마땅한 현실이 되어야 하지만, 마땅한 현실이 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는 여전히 ‘인간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져야지’ 대신에, ‘당신은 비정규직이니까 안 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이 더 쉽게 돌아다닌다. 2부의 현장 노동자들의 글들을 읽다보면 노동 현장에 필요한 기본과 상식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은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것, 업무 내용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비정규직이 갖지 못한 이런 권리를 회복하는 길은 법원으로 가는 소송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투쟁과 연대라는 것을 노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조: 고용 안정의 권리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3조: 비정규직이라고 보조 업무만 하면 안 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3조: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7조: 비정규직도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

3부에서는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려면 법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법은, 특히 노동과 관련된 법은 가진 것 없고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갈수록 불리하고도 엄격하게 작용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이들을 권리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법과 제도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에는 더 많은 이윤과 노동자 통제를 위해 법 위에 군림하는 기업이 있다.
근로기준법을 끌어안고 몸을 태웠던 전태일 열사의 시대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절규는 다르지 않다. 그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노동 관련 법이 만들어졌고, 적지 않은 법에 ‘보호’라는 포장이 덧붙여졌음에도 현실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법으로 혹은 이름뿐인 존재감으로 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하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 규정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라는 요구조차도 함께 싸워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4조: 진짜 사용자가 책임져야 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5조: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4조: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5조: 손실 비용은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비정규직도 알 권리가 있다”

4부에서는 노동자의 삶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아직 법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법을 고정불변의 규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법에는 세월이 담겨 있고, 많은 이의 피와 땀이 묻어 있다. 8시간 노동제, 아동노동 금지, 노동3권…… 지금 우리를 보호하는 많은 권리들은 노동자들이 19세기부터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이다.
생활임금, 노동시간, 알 권리, 문화생활, 정치 활동…… 삶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직 법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들의 이름이다. 특히 ‘노동조합’이란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없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런 권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법을 넘어서는 권리들을 외쳐야 하는 이유, 그것은 ‘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의 또 다른 이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만들 약속의 새로운 이름이기 때문이다. 법을 넘어서는 권리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노동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6조: 누구나 생활할 만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7조: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2조: 비정규직도 알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6조: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8조: 정치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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