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의 신비

도서정보 : 서우선 | 2019-07-29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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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실존 철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7-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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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철학은 무엇인가





1.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는 흔히 두 종류로 분별된다. 自我가 ‘스스로 그러하게’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어떤 ‘무엇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냐에 따르는 것이다.
東西古今을 막론하고서, 근대 이전의 철학사상들은 대체로 後者의 견해를 추종했다. 인간존재를 현실세계에 있도록 하는 ‘무엇’으로서 주로 想定되는 대상은 god, 道, idea, 空, reason, 理, sein, 氣, ideology 등 아주 다양하며, 이외에도 얼마든지 常存한다.
그런데 과연 인간존재는 어떤 ‘무엇’에 의해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역사 안에서 대부분의 인간존재들은, 어쨌거나 ‘무엇’엔가 의존하며 근근이 살아내는 나약한 存在者일 따름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 자신’의 實存에 대해 의문을 갖게되는 始發點이다.
인간존재는 분명 어떤 ‘무엇’에 의해 존재하지만, 정작 인간존재를 존재케 하는 것은, 인간존재 그 자체일 따름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21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존재 자체’마저도 온통 해체되어버린 상황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더욱 그 어떤 ‘무엇’에 대해 강렬한 추구를 갖는다. 설령 그것이 物神에 불과한 欲望이나 資本에 불과할지라도, 인간존재를 존재케 하는 ‘무엇’을 어떻게든 정립해 두어야만 한다고, 스스로 强迫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인간존재는 ‘스스로/저절로 그러하게’ 존재할 따름이다. 온갖 强制와 眩惑에 의해 ‘무엇에 의한 개돼지’ 신세일망정, 인간존재의 實存 그 자체가 ‘무엇’에 의해서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제아무리 잘난 인간존재일지라도, 결국 죽음의 그림자가 삶의 언저리에 찾아들 때면, 절대적인 ‘무엇’에 자연스레 의지케 된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삶의 현상이다. 다만 아직 청춘의 시절을 살아내는 청년들이, 이미 늙어버린 채로 그 ‘무엇’에 의존하는 꼬락서니는 당최 볼품없다.
필자 역시도 청춘의 시절을 살아냈고, 그 시절은 그야말로 ‘실존 그 자체’를 窮究하는 여행길이었다.
현실세계에선 일찌감치 제 몫을 챙기며, ‘틀딱’ 흉내 내는 ‘애어른’들을 성숙한 인간존재로서 분별한다. 그런 식으로 온갖 체제에 길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一回性의 限時的인 삶을 살아내면서, 청춘의 시절에 이미 늙어버린다는 건 아무래도 씁쓸한 노릇이다.
어느 빨갱이 철학자의 넋두리처럼, 청춘의 시절에 進步的이지 않다면 어찌 청춘일 수 있으며, 노년에 이르러서도 허황된 進步를 추구한다면 그야말로 바보이지 않겠는가.
톨스토이는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를 탈고하기 직전인 1869년 여름에, 자신의 친구이자 쇼펜하우어 책을 번역한 ‘아파나시 페트(페트 센신)’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많이 읽는 나는, 어째서 아직도 쇼펜하우어가 그토록 세상 사람들에게 덜 알려졌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 이유란 아마도, 쇼펜하우어가 토로했듯이, 세계에는 하찮은 인간들로 가득하기 때문이겠지요.”
절대적 ‘무엇’에 대한 의존 역시 그러하다. 청춘의 시절에는 응당 ‘나 자신’의 ‘실존 그 자체’를 고뇌해야 한다. 어찌 청춘의 시절에 信仰이나 理念 따위에 의존하며, 실존을 思索치 않을 수 있는가.
실존철학의 始祖 쇼펜하우어에 대한 톨스토이의 말처럼, 적어도 청춘의 시절이라면, 어느 누구도 하찮은 인간이어서는 안되는 법이니까.
최초의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일기가 지닌 형식은, 그의 글 중에서 가장 詩的이고 우아하다.
키르케고르는 그의 日記를 진지하게 기록했으며, 자신의 일기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신실한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1847년 11월 4일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나는 결코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作家로서, 어느 정도까지 나는 일반 사람들을 나의 친구로 삼아 왔다.
하지만 현재 내가 일반대중과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해서 보면, 나는 다시 한 번, 후손들을 나의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삼아야만 한다.
누군가에 대해서 웃고 있는 똑같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현실세계에서 자기 이외의 대부분의 집단대중은 群衆이기 십상이다. 그나마 ‘개돼지 군중’ 노릇을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그래서 고독한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인생길 여행자들은 항상 고독하다.
키에르케고르처럼 자기의 日記를 친구삼으며,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인생여정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그 깊은 고독 속에서 인간존재는 ‘참된 나(眞我)’의 實存을 만나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교회가 국가에 의해 조종되어온 이래로, 국가 교회의 관료적인 임무가, 구성원의 숫자를 늘리고, 구성원의 복지를 감독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 밑바탕에는, 좀 더 많은 구성원이 모여들수록, 성직자는 더 큰 힘을 갖게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기독교는 텅 빈 종교가 되었다. 따라서 정치적 구조로서의 국가 교회는, 개인에게 무례하고 해를 끼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기독교인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모른 채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교회는 종교 그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지 않는 믿는 사람들, 즉 사람들의 ‘돼지 떼 정신’에 따라서, 기독교를 단지 사교계의 전통 정도로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세계에서 인내는 무관심과 같고, 그것은 기독교에 반대하는 가장 끔찍한 공격이다. 국가적으로 설립된 교회의 교리와 그것의 조직은, 둘 다 정말 매우 좋다. 오, 그러나 우리 삶에서 실제로 그것들은 정말 가증스럽다.”
기독교 교회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는 모습에서, 키르케고르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철학자의 등장을 예견한다.
‘實存主義(Existentialisme)’는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문학적 흐름이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존재 개인은 단순히 思惟하는 主體만이 아니라(not merely the thinking subject), 나아가 행동하고 느끼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主體者(master)이다.
19세기 중엽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의하여 주창된 이 사상은, 후에는 야스퍼스, 가브리엘 마르셀 등으로 대표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보부아르 등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실존’이란 말은 이들의 思考樣態나 표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으나, 공통된 사상은 인간에 있어서 ‘實存은 本質에 先行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실존은, ‘人間’이라고 하는 관념적 개념으로 정의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실존주의는, 니힐리즘이 ‘自我’를 강조한 나머지 세계를 부정하기에 이르는데 반하여, 같은 ‘자아’의 실존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자아’와 세계를 연결지으려고 노력한다.
즉, ‘내가 있다’고 하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그 ‘나’를 세계와 연결지음으로써, 그 전제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논리가 逆轉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파악할 수 있는가가 추구된다.
실존주의 철학은 카를 바르트, 에밀 브루너, 루돌프 불트만, 그리고 폴 틸리히와 같은 많은 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실존주의의 원류는 근대 시민사회가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19세기 중엽 이후, 대중사회적 상황 속에서 고독한 예외자로서의 입장을 관철한 두 거성,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와 독일의 ‘니체’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지성과 신앙의 차이에 괴로워하는 근대 지식인의 고뇌를 그린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에서도, 주체성의 회복에 의해 절망을 극복하려고 하는 실존적인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20세기 초엽에는 러시아의 ‘셰스토프’나 에스파냐의 ‘우나무노’ 등 철학자나, 오스트리아의 유태인 작가 ‘카프카’ 등이, 일상적인 삶의 저변에 숨겨져 있는 음울한 허무의 심연을 응시하면서, 본래적 자기의 주체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사상을 전개시켰다.
실존철학을 하나의 독자적인 철학으로서 등장시킨 것은, 제1차 대전의 패전국 독일에서의 심각한 사회적 위기감의 체험이었다.
이러한 체험의 철학적 반성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야스퍼스’의 ‘세계관의 심리학’(1919)이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실존철학의 탄생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저작이 되었다.
패전국 독일과 마찬가지의 사회적 불안이 세계 각국을 엄습하고, 사람들이 심각한 인간소외감의 포로가 됨에 따라, 인간의 주체성 회복을 주제로 하는 실존철학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 파급되기에 이르렀다.
실존철학을 탄생시키는 요인이 된 제1차 대전 후의 인간 소외적인 사회 상황은, 제2차 대전의 전후에는 더욱 심각해져서, 세계의 사람들을 불안과 절망 속으로 끌어들였다.
전쟁이 일으킨 잔혹한 살육, 비참하고 황폐한 생활, 인류 절멸 병기의 출현, 내일이 없는 인생에 대한 공포, 대중사회적 상황 밑에서의 생활 전면에 걸친 劃一化·水平化 등이 일상생활을 덮은 보편적인 사실이 되자, 실존주의는 널리 세인의 주목을 끄는 사조가 되고, 드디어 대중의 기분을 사로잡는 유행 사상으로서 무드화하는 경향이 생겼다.
‘實存(existence)’은 원래 이념적인 ‘本質(Essence)’과 대비하여 상용되는 철학용어로서 ‘밖에 서 있는(Sistere)’ 현실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실존은 첫째로, 이념적 본질 밖에 빠져나와 있는 현실적 존재를 의미한다. 현실적 존재에도 여러가지가 있으나,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현실존재는, 다른 것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독자적인 ‘지금, 여기’를 사는 이 현실의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실존은 둘째로, 인간으로서의 진실한 존재방식을, 현실의 생존방식을 통해 실현해 가는 自覺的 存在로서의 자기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자각적 존재는, 모두 이미 지정되어 있는 본질에 따라서, 그 현실의 존재방식이 결정되는 것에 반하여, 자각적 존재인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하므로, 현재의, 이 현실의, 자기의 생존 방식에 의해서 인간 독자의 본질, 그 인간을 그 인간답게 하는 개성이 시시각각으로 새겨져 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실존이 그 본질을 결정하고, 실존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자각적 자기가 진실한 實存이라는 이름에 맞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존에 의해 그 본질을 결정해 가는 존재는, 자유로운 존재이므로 실존의 본질은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자유는, 선택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 이전의 관념적 가능성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일정한 선택의 필연성을 스스로 인수하는 실존적 자유이다.
그것은 현실의 자기가 무력하며 더럽혀져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이러한 旣存의 일상적 자기를 넘어서서 ‘밖에 서 있는다’고 하는 무한의 自己超克과 自己超越이라는 과제를 적극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진실한 본래적인 자기 자신이 되려고 결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기성관념이 나타내는 형식적 보편성을 돌파하고, 유한한 단독적 자기의 입장으로 되돌아와 거기서부터 재출발함으로써, 현존하는 자기의 유한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脫自的인 자기초월의 결단이 인간 본래의 존재방식이며, 이러한 결단을 바탕으로 비로소 구체적인 진리도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무한한 자기초극의 노력으로써 진실한 자기를 실현하려 하고, 이러한 자기의 결단으로 선택하는 것이 근원적 진리라고 하는 실존철학의 주장은, 추상적 관념이나 객관적 제도나 대중문화의 노예가 되어, 개성과 주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인간들에게, 강력한 警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존철학은 모든 도그마의 절대화 경향에 반항하고, 인간실존의 진실을 우선시킴으로써, 현대 휴머니즘 철학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한다.
특정한 主義, 主張이나 衆愚的인 당파성에 의존해서 안이한 수면을 즐기려 하는 자에 대해, 자유로운 선택의 필요성과 책임감을 각성시키는 부단한 문제 제기자로서, 실존주의는 커다란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일상성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며, 선택의 자유와 책임의 강조만으로는 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향의 명확화는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상식이나 과학과의 적극적인 결합이 요구된다. 이러한 객관적 요구에 등을 돌리고, 실존의 주관적·내면적인 입장에서 절대화시켜 실존의 敎說體系를 쌓아 올리고 그 안에 묻혀 있으려 할 때, 실존철학은 본래의 體系外的인 실존성을 상실하고,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던 낡은 추상적 관념론의 입장으로 역전하는 위험성을 초래하게 된다.
여기에 실존철학의 커다란 한계가 있다. 실존철학의 탄생을 일찍이 간파하고 크게 평가했던 哲學史家 ‘하이네만’이, 실존은 사상의 방향을 설정해 주는 규제 원리일 수는 있어도, 사상의 내용체계를 만들어 가는 구성 원리는 아니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2. 쇼펜하우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독일의 철학자로서 實存主義의 始祖이다.
1788년 2월 22일,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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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의 기원, 그리스 철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7-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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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철학은 무엇인가


1. 그리스철학을 알아야 서양철학을 알 수 있다

그리스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하여, 고대 로마에까지 계승된 철학사상을 통틀어 말한다.
이러한 그리스철학을 알아야 서양철학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현대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현대에 이르도록 온갖 서양철학 전통은 플라톤철학의 脚註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그러한 플라톤철학을 탄생시킨 土臺가 바로 그리스철학이다.
이 시절은 동양철학의 百家爭鳴과 유사하게 각종 학파가 난립하여 대립적으로 자기의 철학사상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적 배경은, ‘페르시아 전쟁’이나 ‘펠로포네소스 전쟁’이 勃發하던 전쟁의 시대였다. 동양철학의 토대가 春秋戰國이었던 바와 유사하다.
東西洋 고대철학의 특징은, 공통적으로 도덕철학이라는 점이다. 인류의 역사문명이 태동하던 시절이므로 응당 도덕에 대한 강렬한 추구가 있었던 탓이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인류문명은 근대를 거치면서 법률이라는 새로운 체제로써 집단공동체를 규제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적인 法治가 실현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도덕에 대한 기묘한 鄕愁가 있다. 그래서 법률에 의해 현실세계가 작동함에도 도덕에 의한 二次的 尺度를 들이민다.
도덕이라는 것이 그릇될 리 없다. 이는 종교라는 것의 성격과도 相通한다. 도덕이나 종교라는 것은, 지극히 이상적인 이상향을 제시한다. 그러니 다소 절실한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 이후 현실세계의 인간존재에게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도덕이나 종교는, 중세 이전의 古代的 必要에 의한 사회적 체제일 따름이다.
특히 현대사회는 自由民主的 法治에 의해 잘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적 법치에 부합되는 생활을 하는 상태에서도, 일정한 所有를 넘어서면 道德的 名譽나 宗敎的 信望을 욕망한다.
이는, 인간존재가 지닌 본래적 原罪意識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존재의 심리적 조작을 부추기는 것이, ‘니체’의 분석처럼, 한갓 노예도덕에 불과한 프로파간다로써 현실세계를 조작하는 기독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니체’ 이후 현대의 기독교 역시 별다르지 않다. 하물며 동양사회의 이슬람, 佛敎, 儒敎 역시 말할 나위 없다.
法治와 맞서는 개념으로서 禮治를 맞세울 수 있다. 東西古今을 막론하고서 禮治의 의해 작동하는 집단공동체를, 아주 理想的인 것으로 쉬이 규정한다. 이야말로 人類史의 거대한 조작이며 착각이다.
도덕적 원리로써 통제되는 사회일수록 외려 더욱 가혹한 행태를 드러내기 십상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도덕은 어떠하며, 가깝게는 북한의 도덕은 어떠한가. 그러한 것들은 지극히 종교적인 도덕이다. 다만 國際社會的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며, ‘우물 안 개구리’들의 우상놀음일 따름이다.
우리 역사에서 朝鮮王朝는 또 어떠한가. 조선왕조는 世界史에서 특별취급을 해야 할만큼 괴상한 도덕사회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현대사회에서 갖은 선동질과 조작질을 해대고 있는, ‘빨갱이 PC左派’들의 道德主義 역시 비슷한 認識的 脈絡에 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21세기 法治社會가 이미 도래했는데도 여전히 도덕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인가.
그것은 도덕주의가 인간존재의 本性(無意識)을 歪曲하고 外面하면서, 당최 實現不可한 理想的(意識的) 人間像을 선전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時宜適切한 정치적 작동원리는 法治다. 굳이 禮治의 보완을 필요로 할 것도 없다. 만약 도덕적인 측면이 요구된다면, 법률로써 制定하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遵法에 대한 기괴한 貶毁로써, 禮治를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禮治야말로 時代錯誤的이며 非合理的 임을 是認하고 認識해야 한다.
근대 이전에 법치로써 불충분했던 것은, 법치를 실현할 만한 이론적 토대가 不備했던 탓이다. 그런데 근대를 거치면서 인류사회는, 법치로써 충분히 보다 나은 사회를 꾸릴만한 이론과 논리를 구성해 냈다.
예컨대, 人權, 自由, 個人, 市場 등의 개념들을 想起해 보라. 그러한 개념들은 대부분의 國家에서 법률로써 보장하고 있다. 그러니 법률만 제대로 지킨다면, 그 사회는 살만한 사회일 수 있다.
或者는 그러한 법률을 보완하기 위해 ‘종교적 도덕’ 혹은 ‘도덕적 종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법률을 보완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하면 된다.
왜 인류는 법률사회보다 도덕사회가 나은 사회라는 妄想을 갖게 되었는가. 물론 근대 이전에는 그나마 도덕사회가 나름대로 보완적인 역할을 했다. 아니 오히려 ‘도덕적 종교’가 권력을 점유한 시대였다.
그래서 그 편에 있는 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富貴榮華 好時節로 복귀하려는 劃策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빨갱이的 惑世誣民’에 의해 ‘개돼지 군중’ 취급 당하지 않으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人類史를 거대한 흐름을 살핀다면, 쉬이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이르도록 온갖 ‘종교적 도덕’들이 떠들어 대는 프로파간다는, 각 群像들의 利益을 위한 醜態일 따름이다. 그저 자기 편에 이익될 만한 것들만 정의롭게 나불거릴 뿐이다.
그런 입바른 소리를 누군들 못하겠는가. 그러니 허망하다는 것이다. 一言以蔽之하여 現在的 관점에서 볼 때, 法治야말로 가장 合理的이며 理性的이 道德的이다.
굳이 무슨 철지난 ‘도덕타령’ 할 것도 없다. 법률을 지키지 않으면, 법률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도덕적 책임 따위를 물을 것 없다. 법률적 책임이면 족하다.
‘개돼지 군중’이 되어서 도덕적 책임 따위를 떠벌이게 되면, 결국 온갖 기득권층의 프로파간다에 조작당할 따름이며, 그 피해는 결국 ‘개돼지 군중’의 몫이다.
예컨대, 근래에 한일 무역분쟁이 일어나서, 또 다시 ‘反日 프로파간다’가 작동하면서 ‘개돼지 군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렇게 ‘개돼지 군중’이 조작당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도덕적 책임 따위에 선동 당하기 때문이다.
國際政治의 ‘弱肉强食 정글’에서, 日帝强占에 대해 무슨 도덕적 책임을 논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당최 鬱憤이 풀리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국력을 키워, 일본보다 강대국이 되어서, 일본을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도덕주의란 것도 실상 强者의 논리일 따름이다. 그나마 弱者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실제적으로 법률임은 자명하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아주 꼴통 같은 猝富들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强者이며 富者인 자들이 도덕적 평판도 좋기 마련이다. 그러니 근대 이전에는 그런 계층들이 꼴 같잖은 도덕주의자 흉내를 냈던 것이다.
그러한 역사를 체험했다면, 이제 도덕주의를 벗어버릴 때도 되었다. 한물간 도덕주의에 관심을 가질 시간에, 법률주의가 좀 더 그럴듯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효율적이다.
그것이야말로 左派든 右派든, 죄다 떠들어 대는 도덕주의보다는 훨씬 나은 狀況의 摸索이다.
우리는 칼 마르크스의 共産主義야말로, 人類史에서 가장 대표적인 理想的 道德主義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박근혜’가 아주 도덕적이며 양심적이라는 사실을, 彈劾裁判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박근혜’의 賂物이나 國政壟斷 따위의 非道德性을 빌미 삼아 탄핵을 조작했던 ‘문재인 세력’이야말로, 철저히 비도적적이며 비양심적인 ‘빨갱이 세력’이라는 사실도 잘 알게 되었다.
정작 ‘박근혜’가 탄핵당한 실질적인 까닭은, 정작 ‘박근혜’가 너무 도덕적이고 양심적이었다는 점이다.
국가의 대통령은 道德君子를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 국가의 國益을 伸張시킬 政治家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박근혜’를 탄핵시키고서, ‘문재인’을 그 자리에 앉혔다.
그러다보니 애당초 ‘문재인’은 정치가로서 자질도 不備한데다, 이제는 도덕이나 양심마저도 상실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새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의 ‘트럼프’나 일본인들의 ‘아베’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道德主義의 가장 큰 弊害는, 多數決 輿論主義에 의해 조작된다는 점이다. 떼거리 여론의 선동에 의해 罪過를 판단케 되는 것이다. 흔히 그런 떼거리 集團主義는 人民民主主義의 人民裁判에서 활용된다. ‘문재인 세력’이 활용한 ‘박근혜 촛불 彈劾戰術’ 역시 그러했다.
自由民主主義의 다수결은 철저히 法治에 토대를 둔 다수결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人民民主主義의 다수결 방식에 선동 당한다. 그 원인이 허망한 도덕주의적 추구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체험했다면, 이제는 정말이지 道德主義라는 妄想으로부터 깨어날 때도 되었다.


2. 개인의 등장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모두 奴隷制 사회였다. 東洋社會 역시 노예제 사회였다. 東西古今을 막론하고서 ‘자유로운 個人’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지극히 근대적인 사실이다.
그 이전의 역사는 죄다 신분제 사회였으며, 그런 사회체제에서 주요한 노동력으로써 작동한 것은 奴隸였다.
個人은 고유한 개체로서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국가나 사회, 단체 등을 구성하는 낱낱의 사람으로 풀이된다.
개인은 ‘individual’을 번안한 낱말인데, 사회, 문화 등 다른 여러 낱말과 같이, 개인 역시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번안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individual’은 ‘indivisible’에서 파생된 낱말로, 더이상 나뉠 수 없는 단수를 뜻한다.
서양에서 개인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人口調査와 形而上學에서부터이다.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단수로서 개인은, 固有個體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17세기에 이르러 個人主義가 발현되면서, 철학, 법률, 사회이론 등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개인의 고유한 특징을 個性이라고 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命題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나타내고 있다.
‘존 로크’와 같은 경험주의 철학자는, 개인의 인식이 ‘빈 書板(tabla rasa)’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주장한다.
‘헤겔’의 변증법에 의하면, 세계의 역사는 絶對理性의 발현과정이고, 개인은 이러한 역사 발전의 한 역할을 담지하는 존재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관점을 부정하면서, 개인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개인의 주체성과 능력을 강조하였다.
‘니체’ 또한 權力意志라는 개념으로서 개인의 욕구를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개인의 능력이 극대화된 영웅인 ‘超人(Übermensch)’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도 개인은 핵심적인 개념으로, 개인은 自由意志를 실현하는 주체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틴 부버’는 그의 저서 ‘나와 너’에서, 주체-객체가 맺는 관계를 두가지의 종류, 즉 ‘나-그것’과 ‘나-너’로 구분하면서, ‘나-그것’의 관계에서 ‘나-너’의 관계로 변화하는 개인의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佛敎에서는 無我論에 따라, 나에 대한 집착이 고통의 근원이라 파악하며, 개인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그의 저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을 쓰는 실용적인 분류라고 하였으며, 개인은 사회와 세계의 문화가 반영된 의식의 중심으로 간주된다.
근대 이후 개인은 인류 자체이며, 사회는 인간관계가 만들어낸 심리적 구조의 결과이다. 개인이란 인간의 경험, 지식, 행동의 총체적 결과이다. 그리고 인류의 모든 역사는, 개인의 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다.
대다수의 국가에서 개인은 법률행위의 주체이므로, 사람은 생존하는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또한 개인정보는 생존하는 개인에 관한 정보 가운데, 각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가리킨다.


3. 근대 이전 노예제 사회

東西洋을 막론하고서, 근대 이전의 집단체제는 대부분 奴隷制를 바탕으로 작동했다. 그저 노예라는 명칭이 農奴, 奴婢, 賤民 등으로, 시대와 상황에 따라 相異하였을 따름이다.
그리스철학이 정립되던 시기에도, 각 폴리스국가들이 노예제를 바탕으로 형성된 체제였음은 周知의 사실이다.
‘奴隷制(slavery)’란 先史時代 이후,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재산, 가축처럼 취급하는 것을 말하며, 그렇게 재산, 가축처럼 취급되는 인간을 ‘奴隷(slave)’라 한다.
노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戰爭 따위의 까닭으로,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타인의 소유의 객체가 되는 자, 또는 계층, 계급을 의미한다.
풍토, 관습, 전통의 相違에 따라 지역차는 있으나, 有史 이래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는 노예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근대 유럽에서는 天賦人權 사상에 따라, 유럽 각국의 국민들에 대하여는 노예제가 폐지되었으나, 타인종에 대한 노예무역은 한동안 광범하게 행하여졌다.

-하략-

구매가격 : 4,000 원

고양이가 좋아(I LIKE CATS)

도서정보 : Mallory McInnis | 2019-07-25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스크래치투성이 소파, 집 안 곳곳 굴러다니는 솜뭉치 털.
때로는 내 베개를 독차지하기도 하지.
하지만 너와 함께여서 그런 일상이 더욱 특별해!

고양이의 일상을 일러스트로 담다
본격 고양이 집사를 위한 안구힐링 일러스트북
도도하지만 은근한 애교쟁이, 때로는 미스터리하지만 입가에 웃음을 떠나지 않게 만드는, 고양이의 매력에 폭 빠진 고양이 집사들. ‘맞아, 그렇지!’라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면 당신의 카톡 프로필 사진과 인스타그램도 이 귀여운 생명체들로 도배되어 있을 것이다.
≪고양이가 좋아≫는 변덕스럽지만 매력적인 고양이의 모습을 담을 일러스트북이다. 침대 위에서 가르랑거리거나 털뭉치에 집착하는 모습,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고양이의 꼬리 움직임의 모습 등 여러 명의 아티스트의 눈에 비친 고양이의 일상을 각각의 개성 넘치는 그림으로 담아냈다.
일러스트와 더불어 고양이 애호가로 소문난 유명 인사의 말도 곳곳에 인용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각 문장들은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양이에 대한 마음을 일러스트 못지않게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지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싶다면, 눈에 넣어도 아프질 않을 ‘우리 냥이’를 부둥켜안고 털로 뒤덮인 소파 위에 누워보자. 그리고 새침하지만 재치 넘치며 사랑스러운 고양이들로 가득한 이 책으로 눈을 정화해보자.

구매가격 : 10,500 원

쑥 한 줌의 시간

도서정보 : 이정혜 | 2019-07-2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자라면서 나는 ‘누구랑 닮았다’는 말을 아주 싫어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로 살고 싶은 소망이 강했던 것 같다. 신이 우리 모두를 각각 하나의 특별한 창조물로 빚은 만큼 삶도 각각 ‘자기답게’ 살아야 할 권리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나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건데 나답게 살지 못한 시간들이 수없이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만의 철학을 고수하지 못한 채 남의 눈치를 보며 좋게 보이는 사람들의 생각을 흉내내려고 노력했다. 줄기와 가지가 흔들리고 때론 나의 뿌리까지 통째로 뽑힐 것 같아 나는 죽기살기로 붙잡았다. ‘나답게’ 살기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선생으로 밥벌이를 하며 글쓰기는 내 삶에 큰 도움도 안 되는 부업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고백하건데 이 부업이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방부제 같은 역할을 해주어 나는 버릴 듯 말 듯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돌아다보니 내가 글을 쓸 때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철학으로 나답게 사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첫 수필집 ‘햇살이 쌓이는 뜰’을 내고 수필집으로는 두 번째다. 이 또한 나답게 살려는 몸부림임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썼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답게 잘 살아야 우리답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담았으니 읽는 이들이 그 마음을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
긴 시간 아낌없는 격려를 주신 동화작가 김상삼 선생님, 눈이 침침하지만 아내의 원고를 기꺼이 읽어주며 평까지 곁들어준 남편 그리고 영원한 독자 민하, 나현, 기도로 매일 축복해 주시는 부모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구매가격 : 11,000 원

달구벌 벽사진경 당정마을 지신밟기

도서정보 : 권태룡 | 2019-07-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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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서촌 자락에 당정이라는 마을이 있다. 당정마을은 팔공산(八公山) 기슭의 산림과 아래쪽의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비옥한 땅에 대대로 논농사와 밭농사로 생업을 이어온 마을이다. 이 마을사람들은 예로부터 음력 정초가 되면 땅의 신(神)을 위로하는 벽사진경을 펼치는데, 바로 요사스런 귀신(鬼神)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기운을 불러들이는 의식(儀式)의 하나인 ‘당정마을 지신밟기’이다.

‘당정마을 지신밟기’는 온 마을 사람들이 지신밟기패들을 앞세우고 마을 곳곳을 두루 돌아가며 풍물(風物)을 크게 울려 마을의 안녕(安寧)과 풍작(豊作)을 기원(祈願)하고, 집집마다 주둔해 있는 가신(家神)을 위로하여 각각의 가정에 다복(多福)을 축원(祝願)하는, 풍물(風物)과 소리로 한바탕 어우러지는 대동의식(大同儀式)이며, 대동놀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식(儀式)을 깊이 들여다보면 마을이라는 공동체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개개인의 간절한 소망(所望)과 더불어 농업을 위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본바탕인 땅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볼 수 있다.

‘당정마을 지신밟기’는 이러한 무형적인 행위를 통한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의 소리이고 놀이이다. 또한 우리민족의 정서(情緖)를 잘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예술이며,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文化遺産)이기도 하다.

필자는 지난해 잊혀져가는 지역의 문화유산인 『팔공산 메나리 공산농요와 서촌상여』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바 있다. 이어 두 번째로 팔공산을 중심으로 널리 행해졌던 ‘당정마을 지신밟기’를 기록하고 보존하고자 한다. 

이번 작업은 1994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당정마을 지신밟기’를 가까이서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와 노래 등을 담았으며, 더불어 그 기간 동안 함께 녹음해온 소리를 토대로 채보작업을 완성하였다. 또한 부족한 부분은 ‘당정마을 지신밟기’의 마지막 상쇠인 송문창 선생의 구술증언과 기타 보충 증언, 현지 답사와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여 완성하게 되었다. 

아무쪼록 이 자료가 팔공산 지역을 배경으로 생성된 『달구벌 벽사진경 당정마을 지신밟기』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나아가서 우리 민족음악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책이 나오기까지 고증에 힘써주신 송문창 선생님과 악보 채보에 도움을 주신 서정미,김수정 선생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구매가격 : 9,600 원

설레고 두근거려

도서정보 : 이예나 | 2019-07-24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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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사랑의 시작을 그리는
네이버 그라폴리오 누적 조회수 85만의
인기 작가 이나나의 첫 그림 에세이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를 뜻하는 이라는 제목으로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들을 그려온 이나나 작가의 그림들이 핑크빛 표지를 입고 달달한 그림 에세이로 출간되었다. 어떤 이들의 설레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그림에는 특별한 사랑이 아닌 평범하지만 사랑스럽고 설레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하굣길의 동행, 화사하게 날리는 벚꽃 잎 사이로 보이던 그녀의 얼굴, 버스 뒷자리에서 까무룩 들어버린 잠에 빌린 그의 어깨…. 닿을 듯 말 듯, 알 수 없어서 더욱 두근거리게 만드는 핑크빛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온통 핑크빛
너와 나의 썸 무드, 그 순간의 분위기를 담다

서로에게 머무르는 시선, 조심스러운 몸짓, 수줍게 떨리는 목소리…. 누군가를 좋아하면 나타나는, 감출 수 없는 사랑의 증상들이 있다. 당신에게도 나타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소소한 순간들을 잡아 몽환적인 색감의 그림으로 풀어냈다. 책장을 가만히 넘기다보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던 순간, 첫 데이트, 첫 스킨십, 달큰한 장면들을 가만 떠올리게 만든다. 또 누군가에게는 그런 핑크빛 설렘을 꿈꾸게 만든다.


사랑을 기다리는 이에게는 설렘과 기대를,
곁의 소중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전해줄 선물 같은 책

“일상 속에 행복의 조각들이 늘 숨어 있다지만
종종 한 조각도 발견하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 무심코 펼쳤을 때 미소 짓게 만드는
선물 같은 책이 되었으면 해요.

훗날,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는 순간에 이 책이
시작하던 우리를 떠올리게 해준다면 좋겠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의 첫 장에는 선물하고픈 이의 이름을 적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다양한 색감으로 사랑의 빛깔을 표현해 보기만 해도 황홀한 그림들에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글이 더해져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특별히, 아직 연인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 있는 이에게 선물하면 말하기에 망설여지는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을 적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익숙해진 마음도 다시 뛰게 만드는 선물 같은 책이 될 것이다.

구매가격 : 9,660 원

문학하는 마음

도서정보 : 김필균 저/신재환, 김준연, 김애란 사진 | 2019-07-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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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계속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문학이라는 이름의 꿈과 현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어떤 마음에 관하여

“문학으로 먹고살 수 있나요?”
14년 차 문학 편집자가 오늘의 한국문학에 던지는 솔직한 질문들

『문학하는 마음』은 15년 가까이 문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김필균의 첫 책으로, 지금은 출판사를 나와 프리랜스 편집자로 활동 중인 그가 오늘의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젊은 문학인 열한 명을 직접 만나 묻고 듣고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이 판에서 리셋은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저자는 지금까지 일로 관계를 맺어온 이들을 필드 바깥으로 불러내 문학과 삶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 시인, 소설가, 그림책 작가, 에세이스트 등 창작자부터 평론가, 서평가, 문학 기자 같은 한국문학을 펴내고 널리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까지 이른바 ‘문학판’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인터뷰이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여기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학하는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다.

‘내게는 ‘꿈’이었던 ‘문학’을 ‘직업’으로 가진 열한 명의 인터뷰이. 동경과 호기심이 뒤섞인 추측과 진실 사이에서 우리의 인터뷰는 진행되었다. 그들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으나, 경제적인 혹독함을 얘기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단단한 마음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_서문에서

이렇듯 『문학하는 마음』은 우리가 문학을 이야기할 때 자동적으로 소환되는 ‘세계’라는 은유 대신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세상’이라는 현실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그 경계 위에서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들을 인터뷰이들 앞에 하나둘 꺼내 보인다. 하지만 결국 그 솔직한 질문들이 가닿는 곳은 그들의 “단단한 마음”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터뷰를 글로 옮길 때에야 나는 편집자의 위치로 돌아왔다.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한 원고를 쓰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이것이 내가 쓰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길이 보였다”고 고백한다. 열한 명의 인터뷰이가 ‘말’로 건네준 원고를 최대한 성실하게 ‘글’로 편집하는 일, 그것이 바로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 이러한 그의 태도 역시 또 하나의 ‘문학하는 마음’이며, 결국 이 책은 열두 개의 ‘문학하는 마음’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웃음도 눈물만큼 힘이 세다고 여기는 그림책 작가, 글쓰기가 마냥 신나는 놀이 같다는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 아침저녁으로는 출퇴근길에 시달리고 월요일을 싫어하는 대신 금요일을 사랑하며 글을 쓰겠다는 시인, 장래 희망이 전업 작가인 소설가, 희곡이 꼭 문학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극작가, 자기만의 글을 쓰려면 과감히 투잡을 뛰라고 강조하는 에세이스트, 여성이기에 겪는 부당함 앞에서 나중에 누가 웃는지 보자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글을 쓴 웹 소설 작가, 자신의 글은 결국 자신을 위한 거라고 말하는 문학 평론가, 일이 끊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으로 쓰고 또 써온 서평가, 월급을 받는 만큼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시인이자 문학잡지 편집자, 당장 내일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더라도 문학을 담당한 경험은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 문학 기자…. 이들이 펼쳐 놓는 다채로운 마음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그놈의 문학병’이 옮”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제철소 「일하는 마음」은
다양한 분야에서 ‘판’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을 직접 만나 묻고 듣고 기록한 인터뷰집 시리즈이다. 일과 사람 사이를 잇는 여러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개인의 노동과 삶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피고 읽어내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구매가격 : 11,200 원

에로틱 조선

도서정보 : 박영규 지음 | 2019-07-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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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 박영규의 신작으로, 성이라는 금기를 깨고 조선의 관능적인 이면을 낱낱이 파헤친다. 춘화와 음담패설, 스캔들을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조선의 성 풍속도를 생생하게 복원한 책이다.

조선시대의 대표 육담집 『어면순』과 『조선왕조실록』에서 저자가 채집한 각종 음담패설과 스캔들, 그리고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춘화가 수록되어 있다. 해학과 관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사료들은, 뜨거운 본능과 파격적인 성애가 꿈틀거렸던 '조선의 밤'이 실재했음을 증언한다.

구매가격 : 12,600 원

도학자와 연문학

도서정보 : 김태준 | 2019-07-2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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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자(道學者) 연문학(軟文學)>
당시에는 한 번에 70여종의 소설이 흘러들어온 것이다.
특히 수호전(水滸傳)은 조선 고대 문예에 영향을 끼친 일은 크며 허균 같은 인물은 이것을 100번이나 읽고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집구석에서는 이를 많이 읽으면서 일반에게는 읽지 말라고 권장하였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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