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 시선

소강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12월 3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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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소강은 양대(梁代)에 가장 큰 문학 집단을 이끌면서 궁체시(宮體詩)를 발전시킨 주역이다. 궁체시는 염정시(艶情詩)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소강의 문학 집단에서 창작된 모든 시와 양대 이후 그 영향을 받은 시 전체를 가리킨다. 소강은 재능 있는 다작 시인답게 다양한 제재의 시를 지었다. 시의 각 제재는 특징적인 정취와 품격, 느낌과 내용을 가지고 있다. 염정, 규원, 영물, 연회, 산수, 변새, 불리, 유선으로 나눌 수 있으며, 더 구체화하면 여성적 관능미의 구현, 여성의 원정 표현, 주변 사물의 즉흥적인 묘사, 궁정 유락 생활의 반영, 불교적 구도의 세계, 산수의 감흥과 정취, 변방의 고통과 호방한 기개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시들의 대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적 관능미를 구현한 염정시다. 염정시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경쾌하고 요염하게 묘사한 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소강은 많은 시에서 여성의 관능적 아름다움,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그림으로써 독자에게 감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의 시에 나타난 관능미는 여성을 심미적 대상으로 삼은 양대 염정시의 특징과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화장하는 여인이나 그림을 보는 여인, 장식으로 꾸미고 단장한 여성의 외모와 수줍은 자태에 대한 묘사를 즐겼다. 이러한 소재는 감각적인 면을 다분히 가지고 있어 동시대 많은 시인들이 오락으로 여겨 즐겨 애용했다.
둘째, 여성의 원정(怨情)을 표현한 규원시다. 소강의 규원시의 가장 큰 특징은 비극적인 여성의 내면을 그리고 있지만 그녀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여인의 모습이 대체로 화려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들은 여인의 비극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관능미에 대한 묘사를 일부 포함하기도 한다. 사부(思婦)나 기부(棄婦)는 대부분 기다림과 적막에 익숙하면서도 규방 속에 화려한 모습으로 고립된 채 출현하고 있으며, 절망과 좌절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처한 환경을 최대한 수용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보인다. 이것은 소강이 단순히 악부를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규원시를 독창적인 내용으로 새롭게 발전시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셋째, 주변 사물을 즉흥적으로 묘사한 영물시다. 양대 문학 집단에서 오락적인 목적을 가지고 같은 제목을 놓고 함께 노래한[同題共詠] 시에는 자연물을 물화한 영물시가 많다. 그 이유는 송대에 산수시가 성행한 이후, 시인들의 관심이 산수에 국한되지 않고 전원으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문인들과 교유를 즐기며 문학 활동을 하던 소강은 주어진 주제를 놓고 제한된 시간에 창작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물의 실제적인 특징을 빠르게 포착해 문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로 인해 그의 영물시는 즉흥적으로 주변 사물을 의인화하고 사물의 외형을 모방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소강은 제(齊), 양(梁), 진(陳)의 시인 가운데 가장 많은 영물시를 지었다. 그의 영물시는 심각한 내용이나 깊이 있는 감정을 다루지 못한 반면 사물의 특징적인 면을 잘 포착하여 의인화하고 생동감 있는 묘사를 통하여 밝고 명랑한 시풍을 형성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넷째, 구도의 세계를 노래한 불리시다. 양대의 불교는 무제의 숭불 활동으로 크게 흥성했고 아들 소강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불교적인 수양은 아버지인 소연(蕭衍)에 미치지 못했지만 불교와 관련된 작품의 문학성은 아버지보다 뛰어났다. 당시의 모든 통치 집단이 향락적인 생활을 한 것을 생각한다면 소연 부자의 불교와 관련된 행동은 지극히 개별적이고 특수한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궁중에서 생활한 소강과 그의 형제들에게 불교 활동은 이미 그들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소강은 절 주변의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문학성이 뛰어난 불교 색채의 시를 다수 창작할 수 있었다. 양대의 불리시는 무미건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소강의 불리시는 완벽한 대구와 비유를 사용해 불리시가 문학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강은 사치한 궁정 생활과 근엄한 불교 생활 모두에 익숙하게 젖어 있던 시인이었다. 불교 생활을 통한 입신은 그의 시가 음탕하고 화려한 쪽으로 흐르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주기는 했지만, 그 예술성까지 완전히 빼앗지는 못했다. 때문에 그의 불리시는 무미건조하게 불리만을 말하기보다는 불리에 대한 비유를 적절히 사용해 예술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어떤 경우는 물색을 이용해 공(空)에 비유하고 어떤 경우는 맑고 깨끗한 경관을 노래해 초현실적인 불교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소강은 동태사, 흥업사, 광택사, 호굴산사 같은 구체적인 사찰과 그 주변 경치를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시의 현실성과 문학성을 함께 높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가무와 여색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제왕의 생활을 하면서 맑고 깨끗하여 경건하기까지 한 불교와 관련된 시를 씀으로써 인생의 고통과 번뇌를 씻어내고자 했다.

저자소개

소강(蕭綱, 503~551)은 양 천감(天監) 2년 10월에 무제(武帝) 소연(蕭衍)의 셋째 아들로 현양전(顯陽殿)에서 태어났다. 2세(천감 3년, 504년) 때 왕자로 책봉되어, 4세(천감 5년, 506년)부터 28세[중대통(中大通) 2년, 530년]까지 진안왕(晉安王)으로 있었다. 29세(중대통 3년, 531년)부터 46세[태청(太淸) 2년, 548년]까지는 황태자로 동궁에서 생활했다. 47세(태청 3년, 549년)부터 49세[대보(大寶) 2년, 551년]까지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진안왕, 황태자, 황제라는 뚜렷한 신분상의 변화를 겪었다. 그의 생애와 문학 활동은 동궁 생활을 분기점으로 크게 진안왕 시기와 황제 시기를 포함한 동궁 태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양서(梁書)≫의 기록을 보면 소강은 6세(천감 7년, 508년)부터 글을 지었으며, 7세 때 이미 시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서리(徐?)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스승인 서리 시풍의 영향으로 염정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11세 때부터 공적인 일을 친히 처리하고 지방의 공무를 잘 처리해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이때 소강을 수행했던 유견오(庾肩吾)는 소강의 문학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로 옹주(雍州)뿐만 아니라 동궁까지 소강을 수행하며 문학 활동을 함께했다. 이 시기에 소강은 나이가 어리고 문학적인 역량이 부족하여 습작 수준의 시를 지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호소하거나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소강은 21살에 옹주자사가 되어 20대의 대부분을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보냈다. 궁체시에 민간의 가무를 묘사한 작품이 많은 것은 소강이 가무의 고향인 옹주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탁월하게 지방 행정을 처리해서 다른 곳으로 옮긴 후까지도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문학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이 시기에 그는 지방의 자사(刺史)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주로 여행이나 임지의 자연 경관을 읊은 산수시와 강남 민가를 모방한 염정시 몇 수와 변새시를 창작했다.
동궁태자(東宮太子) 시기는 29세부터 47세까지의 18년간으로, 531년부터 황제에 오르기 전인 548년까지를 말한다. 소강은 29세에 형 소명태자(昭明太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황제의 부름을 받아 황태자의 자리에 오른다. 소명태자의 죽음은 그를 양 정치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지만, 모방의 차원에만 머물던 그의 문학적인 경향을 변화시켜 염정시풍의 많은 시를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삶을 정치 중심에서 문학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소강은 평소에 문학을 애호해 동궁에 자유롭게 문인들을 초대하여 교제하면서 가볍고 에로틱한 시작을 즐겼다. 동궁태자 시기는 진안왕 시기에 단련된 문학적인 능력을 토대로 문학 발전에 앞장섰던 기간이다. 그는 이 시기에 ≪법보연벽(法寶聯璧)≫, ≪옥대신영(玉臺新詠)≫과 같은 책을 편찬하도록 명령했으며, 34세에는 [여상동왕서(與湘東王書)]를 써서 당시의 문학적 경향을 논했다. 그는 여기에서 유가의 교조적인 창작을 반대하고 시를 지을 때 자유롭게 감정을 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창작된 소강의 문학 작품은 염정과 영물, 유연 등 궁정 생활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황제 시기는 549년부터 551년까지로 황태자에서 황제로 등극한 2년간이다. 이 시기 소강의 정치적 지위는 높아졌다. 그러나 문학적인 성취에서 보면, 수백 편의 시문을 지었지만 현존하는 작품들이 적어 황태자 시기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유폐된 후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노래했던 그의 많은 시문들은 사후에 그것을 본 왕위(王偉)에 의해 삭제되었다. 소강은 47세 되던 해에 후경(侯景)에 의해 태종(太宗) 간문제(簡文帝)로 추대되었다. 후경은 실권을 가지고 소강을 꼭두각시 황제로 만들었으며, 태청(太淸) 5년, 대보(大寶) 2년(551년) 8월, 간문제를 폐위하고 진안왕으로 강등시켜 영복성(永福省)에 유폐시켰다. 그해 겨울 10월, 후경은 왕위, 팽준(彭儁) 등을 보내 소강을 살해했다. 그때 소강의 나이 49세였다. 소강은 2년간 황제로 재위했으나 반년 동안만 실제로 양나라를 통치했다. 나머지 기간에는 후경의 지배 아래 유명무실한 황제로 있었기 때문에, 의례적인 경우에 국한된 기록만이 남아 있다. 유폐된 후 그가 지은 많은 작품들 중에 부(賦) [연주(連珠)] 3수, [피유술지시(被幽述志詩)] 4편, 절구 5편, [제벽자서(題壁自序)]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그의 작품으로는 고문 190여 수, 시 285수가 있다.

역자소개

정근희는 충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부대학교, 건양대학교, 우송정보대학, 나사렛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한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관심이 많아 위진 규원시(閨怨詩)와 양대 소강 시를 연구했으며, 지금은 소강 시를 완역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논문으로 [소강 시 연구(蕭綱詩硏究)](2006, 박사 학위논문), [소강 염정시 연구(蕭綱艶情詩硏究)] 등이 있으며, 역서로 ≪천추흥망?명대편≫(따뜻한손출판사, 2011)이 있다.

목차소개

여성적 관능미의 구현
낮잠 자는 아내를 노래하다 詠內人晝眠詩
춤을 노래하다 2수(그 첫 번째) 詠舞詩二首(其一)
춤을 노래하다 2수(그 두 번째) 詠舞詩二首(其二)
미인이 새벽에 화장하다 美人晨粧詩
미인이 그림 보는 것을 노래하다 詠美人看畵詩
악부 [대수수]를 모방하다 賦樂府得大垂手
염가편 18운 ?歌篇十八韻
다시 3운 又三韻
아름다운 이에게 주다 贈麗人詩
저녁 경치에 출행하다 晩景出行詩
상동왕의 [명사열경성]에 화답하다 和湘東王名士悅傾城詩
미녀 편 美女篇
밤에 기녀의 노래를 듣다 夜聽妓詩
뱃노래 櫂歌行
미소년 ?童詩
수유를 꽂은 여인 茱萸女
미인에게 장난으로 주다 戱贈麗人詩
춤을 노래하다 詠舞詩
강남농 3수(그 첫 번째) 강남곡 江南弄三首(其一) 江南曲

여성의 원정(怨情) 표현
홀로 지내는 원망 獨處怨
미인을 불쌍히 여기다 傷美人詩
원가행 怨歌行
버림받은 첩을 노래하다 詠人棄妾詩
창부 원정시 12운 倡婦怨情詩十二韻
사랑하는 임이 있어 有所思
가을 밤 규방에서 그리워하다 秋閨夜思詩
자류마 紫?馬
생이별 生別離
[석양 창문에 앉다]를 모방하다 擬落日?中坐詩
새벽에 그리워하다 曉思詩
시름에 잠겨 규방에서 거울을 보다 愁閨照鏡詩
침실에서 그리워하다 2수 金閨思二首

주변 사물의 즉흥적인 묘사
갓 핀 복숭아꽃을 노래하다 詠初桃詩
등나무를 노래하다 詠藤詩
나무 속의 풀 樹中草
농등(籠燈)을 노래하는 절구 詠籠燈絶句詩
호랑나비를 노래하다 詠?蝶詩

불교적인 구도의 세계
십공시 6수(그 첫 번째) 덧없음과 같다 十空詩六首(其一) 如幻
십공시 6수(그 다섯 번째) 그림자와 같다 十空詩六首(其五) 如影
동태사 부도를 바라보다 望同泰寺浮圖詩
황태자의 [유광택사시]에 화답하다 遊光宅寺詩應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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