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의고적-7(우현고유섭전집)

고유섭 | 열화당 | 2007년 12월 01일 |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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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고유섭이 개성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개성 일대에 위치한 유적을 답사와 실측을 통한 조사로 완성한 고려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의 하나이다.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송도의 고적』은, 생전에 탈고를 마쳐 1946년 발간되었던 초판본에, 여기에 실리지 못했던 개성 유적 관련 글 몇 편을 함께 엮은 것이다. 송도는 오랜 세월 고려의 도읍지였던 지금의 개성을 일컫던 말로, 고려시대 정치·경제의 주무대임과 동시에 고려인들의 생활공간으로서 그 역사가 깊은 곳이다. 저자는 개성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고려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개성의 고적을 복원하고 있다. 이는 근대적인 안목으로 개성의 유적에 관해 탐구한 최초의 지지적(地誌的) 자료이며, 고려시대의 미술 중 개성을 비롯한 북한의 자료가 미비한 가운데 개성의 유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자 귀중한 증언이 된다.

한국미(韓國美)에 숨과 혼을 불어넣은 우현 고유섭

우리 미술사학의 역사는 길지 않다. 물론 일제 치하 이전 즉 근대적 학문체제가 이 땅에 유입되기 전에도 미술평론이라 부를 만한, 일부 서화가들 또는 그림에 관한 문인·학자들의 글이 존재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학문으로서의 ‘미술사 연구'라고 일컬을 만한 시도는 없었다. 일제기에 들어 비로소 조선미술에 대한 논문으로 국학자 안확(安廓)의 「조선미술」(1915, 『학지광』), 철학자 박종홍(朴鍾鴻)의 「조선미술의 사적 고찰」(1922-1923, 『개벽』)과 같은 글이 발표되긴 했지만, 미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던 이들의 글은 한국미술 전체를 아우르지 못했을뿐더러, 후속 연구도 뒤따르지 않았다. 이후 독일인 안드레 에카르트(Andre Eckardt)의 『조선미술사(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1929)나 일본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조선미술사(朝鮮美術史)』(1932)가 출간되어 최초의 '한국미술 통사'라는 문헌적 가치를 부여받기는 했지만, 조선인이 아닌 외국인의 관점으로 서술되었기에 이 또한 우리 미술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 요체를 드러내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견해다.
1925년 보성고보를 수석으로 졸업한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은 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가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미학·미술사를 전공하게 된다. 동경제국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뒤 베를린 대학에서 미학 및 미술사를 전공하고 온 우에노 나호테루(上野直昭) 교수로부터 ‘미학개론' '서양미술사' '강독연습' 등의 강의를 들으며 당대 유럽에서 성행하던 미학을 바탕으로 한 예술학의 방법론 배웠고, 중국문학과 동양미술사를 전공하고 인도와 유럽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다나카 도요조(田中豊藏) 교수로부터 '『역대명화기(曆代名畵記)』 강독연습' '중국미술사' '일본미술사' 등의 강의를 들으며 동양미술사를 습득해 나갔으며, 당시 총독부박물관의 주임을 겸하고 있던 후지다(藤田亮策) 교수를 통해 고고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3년간 경성제대 미학연구실 조수 생활을 하며 이 분야 공부를 더욱 연마했으며, 1933년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개성부립박물관장으로 부임하여 생을 마감하던 1944년까지 우리 미술사 연구에 매진했다. 이렇듯 고유섭은 근대적 학문체제 속에서 정식으로 미학.미술사를 전공하여 체계적인 방법론에 의해 우리 미술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고 집필활동을 한 우리나라 최초의 미학.미술사학자였다. 생전에는 일문으로 된 『조선의 청자』(1939) 단 한 권밖에 출간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조선미술에 관한 그의 첫 논문인 「금동미륵반가상의 고찰」(1931, 『신흥』 4호)을 시작으로 「불국사의 사리탑」(1943, 『개한』 15)까지 한국미술사 제 분야에 걸쳐 불과 12년 사이에 모두 80여 편의 논문을 써냈으니, 양으로만 따져도 한 해에 6-7편의 글을 발표한 셈이다. 하지만 더욱 그의 존재가 빛나는 것은, 당대 명성이 자자했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같은 일본인 학자들의 한국미술에 관한 일부 왜곡된 논의나 관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했을 뿐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선적 사고와 시각으로, 엄격한 학문적 관점으로 우리의 미술을 조명하고 규명했다는 점이다. 이렇듯 우리 미술사 연구의 문을 비로소 활짝 열어 젖힌 장본인이 바로 우현 고유섭이다.

인문출판의 전범(典範)이 될 ‘우현 고유섭 전집'의 완정본(完整本)

그간 우현의 저술로서 간행된 책은 『조선의 청자』(東京, 寶雲舍, 1939; 진홍섭 역, 『고려청자』, 을유문화사, 1954), 『송도고적』(박문출판사, 1946), 『조선탑파의 연구』(을유문화사, 1947), 『조선미술문화사논총』(서울문화사, 1949), 『전별의 병』(통문관,1958), 『조선미술사급미학논고』(통문관, 1963), 『조선건축미술사 초고』(등사본, 고고미술동인회, 1964), 『조선미술사료』(등사본, 고고미술동인회, 1966), 『조선탑파의 양식변천 각론 초고』(등사본, 고고미술동인회, 1967) 등 모두 9종이며, 이 책들이 판본을 바꿔 가며 중복 출판되었다. 이 중 저자가 생전에 출판을 목적으로 집필한 것은, 『고려청자』와 『송도고적』 두 권뿐이며, 나머지는 우현의 문도(門徒)인 황수영(黃壽永, 1918- )·진홍섭(秦弘燮, 1918- )을 중심으로 한 후학들이 1946년부터 1967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차례로 정리 출간한 것들이다. 그리고 1993년 통문관에서 ‘고유섭 전집'(전4권)을 발간했으나, 여기에는 『조선건축미술사 초고』 『조선미술사료』 『조선탑파의 양식변천 각론 초고』 등이 빠져 있어 '전집'이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또한 지금까지의 모든 유저(遺著)들과 마찬가지로, 난해한 문장들을 한글 표기 없이 한자(漢字) 그대로 노출했고, 인용 한문구절도 번역 없이 실었으며, 주석작업도 시도되지 않았기에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연구자들도 읽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열화당에서 새로운 ‘우현 고유섭 전집'의 기획에 착수한 것은 그의 탄생 100주년을 두 해 앞둔 2003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마흔 해라는 짧은 생을 살고 간 우현이 남긴 업적은, 6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못다 정리될, 못다 해석될 방대하고 심오한 세계였기에, 원고의 수집과 정리, 그리고 분석에 따른 전집의 구성에만도 두 해가 훌쩍 넘어갔다. 그리하여 그의 유저(遺著)들은 물론이고 그 밖의 수많은 미발표(미완성) 유고, 소장하던 미술사 유물.유적 관련 사진도판, 카드 기록, 직접 그린 도면과 소묘, 지도, 자료사진, 일기, 장서목록, 그리고 그에 관한 여러 지인들의 회고까지, 우현 고유섭이라는 한 인간이 남기고 간 모든 업적과 그에 관한 자료들을 전집에 포함시키는 방대한 기획에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원칙, 즉 우현의 전작(全作)과 모든 관련자료들을 모아 '전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구성으로 재편하여 보여준다는 것과, 난해한 글을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에 의해 이 전집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제1.2권 『조선미술사』 상.하, 제3.4권 『조선탑파의 연구』 상.하, 제5권 『고려청자』, 제6권 『조선건축미술사』, 제7권 『송도의 고적』, 제8권 『우현의 미학과 미술평론』, 제9권 『조선금석학』, 제10권 『전별의 병』 등 전10권의 새로운 전집을 구성했고, 4년이 흐른 오늘 그 중 1차분으로 제1.2권 『조선미술사』 상.하, 제7권 『송도의 고적』 등 세 권을 선보이게 되었다.
새로 선보이는 ‘우현 고유섭 전집'은 본문을 국한문 병기(倂記) 체제로 바꾸었고, 인용 한문 구절의 번역문을 실었으며, 우현이 소장하던 사료적 가치가 높은 미술사 도판을 내용에 맞게 선별하여 편집했다. 그 밖에 각권에 대한 해제 수록, 어려운 한자어나 용어에 대한 어휘풀이 작업, 그리고 수록문 출처, 도판목록, 고유섭 연보, 찾아보기 등을 덧붙였다. 더불어 정갈함과 고풍스러움을 살리면서 한 권 한 권에 무게감을 주는 장정으로 꾸며, 명실공히 '우현 고유섭 전집' 완정본이 되도록 정성을 다했다.
열화당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이 전집은 우현 고유섭의 방대한 학문적 성과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사료적 가치는 물론, 그 속에 깃들인 우리 미술문화에 대한 한없는 애정, 이에 대한 학문적 체계 수립의 열정 등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으로, 인문출판의 한 전범(典範)이 될 것이며 우리 미술사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부디 이 전집이 오늘의 한국미술사 연구의 줄기를 올바로 세워 나가는 밑거름이 되고, 또 이 전집으로 우리의 미술사가 다시금 조명되기를 바란다.

저자소개

저자: 고유섭
1905년 2월2일, 경기도인천용리(龍里)에서 태어났다. 1918년 인천공립보통학교졸업, 1925년 경성보성고등보통학교졸업하였다. 경성제국대학예과문과B부에 입학하였고 1927년 경성제국대학법문학부철학과에 입학했다. 미학 및 미술사학을 전공하였다.1929년 10월 28일 이점옥과 결혼하였으며 1930년 「예술적활동의본질과의의」라는 학사논문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였다. 『조선의청자(朝鮮の靑磁),『조선탑파의연구』,『전별의병』등의 저서가 있다. 1944년 40살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였으나 짧은 생애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쳐 많은 예술인들이 그를 기억한다. 1974년에는 그의 삼십주기를 맞아 한국미술사학회에서'우현기념비'를세웠으며 2005년에는 탄생백주년을기념하여인천문화재단에서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목차소개

<조선미술사 -上 총론편>

<朝鮮美術史 總論篇> 발간에 부쳐 열화당
解題-개방과 자득의 장엄한 미술사학 최열

조선미술사 서(序)

제I부 조선미술약사
총론
제1편 삼국 이전 시대

제II부 조선미술총론
조선 고미술(古美術)에 관하여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
조선문화의 창조성
조선 미술문화의 몇낱 성격
우리의 미술과 공예
조선 고대의 미술공예
조선 고적(古蹟)에 빛나는 미술
조선미술과 불교
조선 조형예술의 시원
고대인의 미의식
삼국미술의 특징
고구려의 미술
신라의 미술
약사신앙(藥師信仰)과 신라미술
신라와 고려의 예술문화 비교시론(比較試論)
불교가 고려 예술의욕에 끼친 영향의 한 고찰

주(註)
어휘풀이
수록문 출처
도판 목록
고유섭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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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술사 하 - 각론편>

<朝鮮美術史 各論篇> 발간에 부쳐 열화당
解題-20세기 조선미술사학의 빛나는 성취 최열

제I부 建築美術
백제건축
김대성(金大城)
고려의 불사건축(佛寺建築)
조선 탑파(塔婆) 개설
조선의 전탑(塼塔)에 대하여
조선의 묘탑(墓塔)에 대하여
불국사(佛國寺)의 사리탑(舍利塔)
소위 개국사탑(開國寺塔)에 대하여
「소위 개국사탑에 대하여」의 보(補)

제II부 彫刻美術
조선의 조각
금동미륵반가상(金銅彌勒半跏像)의 고찰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
강고내말(强古乃末)

제III부 繪畵美術
조선의 회화
고구려의 쌍영총(雙楹塚)
고려 화적(畵跡)에 대하여
고려시대 회화의 외국과의 교류
공민왕(恭愍王)
안견(安堅)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 소고(小考)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김홍도(金弘道)
거조암(居祖庵) 불탱(佛幀)
신세림(申世霖)의 묘지명(墓誌銘)

제IV부 工藝美術
신라의 공예미술
박한미(朴韓味)
연복사종(演福寺鐘)에 관한 약해(略解)
고려도자
고려도자와 조선도자
청자와(靑資瓦)와 양이정(養怡亭)
양이정(養怡亭)과 향각(香閣)
화금청자(畵金靑瓷)와 향각(香閣)
문헌에 나타난 고려 두 요지(窯址)에 대하여

조선미술사 초고 총목(總目)

주(註)
어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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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목록
고유섭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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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의 고적>

<松都의 古蹟> 발간에 부쳐 -열화당
解題―개성 그리고 고려문화를 찾아나선 예술기행 -이기선
송도고적도(松都古蹟圖)

서(序)
1. 송도 고적 순례
2. 고려의 경(京)
3. 개경의 성곽
4. 광명사(廣明寺)와 온혜릉(溫鞋陵)
5. 일월사(日月寺)?광명사(廣明寺) 변(辯)
6. 소격전(昭格殿)과 귀산사(龜山寺)
7. 구재학(九齋學)과 중화당(中和堂)
8. 안화사(安和寺)의 전망
9. 중대(中臺), 본시 법왕사(法王寺) 터
10. 수덕궁(壽德宮) 태평정(太平亭)
11. 순천관(順天館)의 연혁
12. 봉은사(奉恩寺)와 국자감(國子監)
13. 흥국사(興國寺)와 그 부근
14. 수창궁(壽昌宮)과 민천사(旻天寺)
15. 연복사(演福寺)와 그 유물
16. 유암산(由巖山)의 고적
17. 묘련사(妙蓮寺)와 삼현신궁(三峴新宮)
18. 영창리(靈昌里) 쌍명재(雙明齋) 계회지(契會地)
19. 숭교사(崇敎寺)의 운금루(雲錦樓)
20. 개국사(開國寺)와 남계원(南溪院)
21. 흥왕사(興王寺)의 역사
22. 부소산(扶蘇山) 경천사탑(敬天寺塔)
23. 취적봉(吹笛峯) 천수사(天壽寺)
24. 판적요(板積窯)와 연흥전(延興殿)
25. 현화사(玄化寺)와 청녕재(淸寧齋)
26. 복흥사(復興寺)의 쌍탑 고적과 원통사(元通寺)의 법화경서탑(法華經書塔)
27. 서교(西郊) 서쪽의 국청사(國淸寺)
28. 백마산(白馬山) 강서사(江西寺)의 포경(浦景)
29. 고려왕릉과 그 형식
30. 현릉(玄陵)?정릉(正陵) 및 운암사(雲巖寺)
31. 왕륜사(王輪寺)와 인희전(仁熙殿)
32. 선죽위교석로하(善竹危橋石老하)
33. 박연설화(朴淵說話)
발(跋)
재판 발

附―그 밖의 개성 관련 글
1. 고대 정도(定都)의 여러 조건과 개성
2. 선죽교 변(辯)
3. 고려 구도(舊都) 개성의 고적
4. 개성박물관을 말함
5. 개성부민(開城府民)의 실공(失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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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개성 특수지형도>(조선총독부,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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