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세계의 창조

영국 계몽주의의 숨겨진 이야기

로이 포터 | 교유서가 | 2020년 01월 2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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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근대 유럽의 18세기는 ‘계몽의 세기’ 또는 ‘이성의 시대’라고 불려왔다.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나 인간 정신의 해방과 진보를 추구한 계몽의 사상가들은 한낱 이성을 앞세운 몽상가들이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정치나 사회를 변혁했던 것일까? 계몽이란 그저 지식의 해방운동에 그쳤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 심성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던 것일까? 이 책은 인류 사상의 역사에서 돋보이는 영국 계몽주의의 선구적 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의 사고를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저자는 영국 계몽주의가 가증스러운 것을 타파하라고 부르짖지도 않았고 혁명을 불러오지도 않았다면서, 영국에는 볼테르가 투옥된 바스티유 감옥이 존재하지 않았고 비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누렸으며 이단자를 화형시키는 장작단의 불은 진즉에 꺼졌다고 지적한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 영국 사회는 이미 계몽을 이룩했고, 그렇게 이룩된 체제를 정당화하고 수호하는 작업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저자 로이 포터는 여기에 영국 계몽주의만의 ‘영국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것은 타도나 전복만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의 창출과 정당화에도 헌신하는 계몽주의, 혁명에 대한 ‘예방주사’와 같은 계몽주의다.

저자소개

지은이 로이 포터Roy Porter
1946~2002. 영국학사원 회원. 케임브리지대학 크라이스츠 칼리지에서 수학했으며,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 있는 웰컴 트러스트 의학사연구소 소장과 사회사 교수를 역임했다. 『광기의 사회사』(1988), 『인류 최대의 혜택: 인류 의학사』(1999), 『케임브리지 의학사』(2003), 『이성의 시대의 육체』(2004), 『의학의 역사』(2006) 등 의학사 분야와 『인간이 자연에 통달하다: 과학의 25세기』(1989), 『18세기 과학』(2003) 등 과학사 분야, 『18세기 영국 사회』(1990) 등 사회사 분야를 중심으로 100여 종의 책을 집필, 편집했다. 2002년 심장마비로 별세.


역자소개

옮긴이 최파일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서양사학을 전공했다. 역사책 읽기 모임 ‘헤로도토스 클럽’에서 활동중이며, 역사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의 좋은 책들을 기획, 번역하고 있다. 축구와 셜록 홈스의 열렬한 팬이며, 제1차세계대전 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글이 만든 세계』 『자유와 조직』 『제1차세계대전』 등이 있다.

목차소개

서론

1장 맹점?
2장 어느 이데올로기의 탄생
3장 쓰레기 치우기
4장 출판 문화
5장 종교 합리화하기
6장 과학의 문화
7장 인간 본성의 해부
8장 정치 과학
9장 세속화
10장 근대화하기
11장 행복
12장 양식良識부터 감성까지
13장 자연
14장 정신에 성별이 있을까
15장 교육: 만병통치약?
16장 속인
17장 부의 추구
18장 개혁
19장 진보
20장 혁명기: ‘요즈음의 철학’
21장 오래가는 빛?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역자 후기/ 도판 목록

출판사 서평

계몽주의는 혁명에 맞설 예방주사였는가
그것은 인류를 수렁에 빠트렸는가 꽃길로 이끌었는가
계몽주의의 진정한 발상지는 영국이었다

로크, 뉴턴, 하틀리, 흄, 스미스, 프리스틀리, 페인, 벤담, 고드윈, 울스턴크래프트…
18세기 영국의 지적인 삶에 대한 탁월한 서술, 서양 근대 지성사의 우뚝한 성취
영국 계몽주의의 선구적 위상에 주목한, 울프슨 역사상 수상작!

귀중한 논제를 던지는 눈부시게 창의적인 저작! _뉴욕 타임스
포터의 책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_피터 게이,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우리 모두는 ‘계몽의 자식들’이다
근대 유럽의 18세기는 ‘계몽의 세기’ 또는 ‘이성의 시대’라고 불려왔다.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나 인간 정신의 해방과 진보를 추구한 계몽의 사상가들은 한낱 이성을 앞세운 몽상가들이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정치나 사회를 변혁했던 것일까? 계몽이란 그저 지식의 해방운동에 그쳤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 심성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던 것일까? 이 책은 인류 사상의 역사에서 돋보이는 영국 계몽주의의 선구적 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의 사고를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저자는 영국 계몽주의가 가증스러운 것을 타파하라고 부르짖지도 않았고 혁명을 불러오지도 않았다면서, 영국에는 볼테르가 투옥된 바스티유 감옥이 존재하지 않았고 비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누렸으며 이단자를 화형시키는 장작단의 불은 진즉에 꺼졌다고 지적한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 영국 사회는 이미 계몽을 이룩했고, 그렇게 이룩된 체제를 정당화하고 수호하는 작업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저자 로이 포터는 여기에 영국 계몽주의만의 ‘영국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것은 타도나 전복만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의 창출과 정당화에도 헌신하는 계몽주의, 혁명에 대한 ‘예방주사’와 같은 계몽주의다.

영국 계몽주의의 출발점은?
저자 로이 포터는 스튜어트 왕가를 몰아내고 의회의 제한을 받는 군주정이라는 혼합 정체를 수립한 1688년 명예혁명에서 영국 계몽주의의 출발점을 찾는다. 또한 그후의 ‘혁명적 협정’은 인신과 소유의 안전을 보장하고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폭넓은 관용과 여러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헌정 체제를 사실상 자유화했다고 본다. 1697년 출판에 대한 사전 검열이 폐지됨에 따라 언론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가 크게 확대되었는데, 로크는 종교적 관용을 설파했고, 합리성으로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정제했으며, 이러한 작업은 다시금 다음 세대의 이신론과 더 나아가 무신론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았다. 세상은 세속화되고 탈주술화되었다. 베이컨은 새로운 학문 연구 방법론을 역설했고, 뉴턴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과학은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에도 적용되는 새로운 해석틀로 기능하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양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홉스 등의 철학자들은 감각주의와 경험주의를 토대로 인간의 본성과 자연, 도덕과 사회에 대한 새롭고 급진적인 시각들을 제시하면서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과 같은 새로운 학문의 초석을 놓았다.

장기 18세기 영국 사회의 근대성
또한 ‘장기 18세기’ 영국 사회는 절대왕정의 전복과 더불어 상업화, 산업화, 소비사회의 출현과 같은 근대성의 여러 측면을 경험했다. 계몽주의는 이러한 근대적 변화들을 가져오고, 이해하고,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때로는 문제화하는 시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화는 새로운 딜레마를 야기했다. 토지 소유에 바탕을 둔 독립적 시민들의 덕성virtu과 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공공선을 강조한 고전 공화주의나 시민적 인문주의 전통은 더이상 활력 넘치는 상업사회를 뒷받침해줄 수 없었다. 여기서 흄은 상무정신과 공무 참여 같은 시민적 덕성보다는 사치스러운 쾌락, 즉 사적 욕망의 추구가 근면을 낳고, 근면이야말로 학문과 예술, 상업, 다시 말해 문명을 낳는다고 역설함으로써 새로운 상업사회를 옹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제어되지 않는 개인들의 사적인 목표 추구가 도덕의 붕괴나 공적 질서의 전복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즉 ‘자기애’와 ‘상호 의존성’의 결합은 사적 이익의 추구가 자연스럽게 공공선을 도모함을 입증해보였다. 이로써 영국 계몽주의는 자기 해방과 쾌락 추구를 긍정하면서 개인의 자유로운 행복 추구를 보장하는 사회적 안정과 조화, 균형을 약속했던 것이다.

철저한 개인주의야말로 영국 계몽주의 한 특징
영국 계몽주의가 프랑스나 독일의 계몽주의와 구별되는 또다른 점은 철저한 개인주의다. 로크는 통치자에 맞서 개인적 권리들을 역설했고, 흄은 시민적 덕성보다 사적인 삶을 더 중시했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사적인 선을 공공선으로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개인 행위자를 옹호했다. 벤담은 모두가 평등하며 각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판단한다고 주장하면서 개인적인 쾌락 계산의 공리를 정식화했다. 그렇듯, 계몽인들은 인류 행복의 추구라는 꿈을 꾸었지만 그저 ‘꿈꾸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길을 모색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던 세계는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 바로 오늘날 우리 대다수가 동참하는 세속적 가치 체계, 인류의 하나됨과 개인의 기본적 자유들, 그리고 관용과 지식, 교육과 기회의 가치를 옹호하는 세계였다. 우리는 모두 ‘계몽의 자식들’이며, 그들 계몽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 셈이다.

*

현대의 정치적 렌즈를 통해 사후적으로 계몽주의를 바라보는 태도는 치명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목적론을 낳는다. (…) 최근의 연구 동향은, 순수하고 단일한 운동이라는 과거의 본질주의적 전제들을 (…) 전성기 다원주의로 대체하는 해체적 분위기다. 몇몇 슈퍼스타들에 대한 오래된 강조 대신에 이제는 계몽된 더 넓은 집단이 E. P. 톰슨의 ‘영국인의 특이성’을 설명하는 시각에서 연구되고 있다. 오늘날 무신론과 공화주의, 유물론의 전사들만이 ‘계몽된’이라는 형용사를 얻을 자격이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다름 아닌 톰슨이 분명히 말했을 법한 대로, ‘후세의 어마어마한 우월적 태도’로부터 영국 계몽주의를 구해낼 때가 무르익었다. _1장에서

프랑스 혁명과 이후 19세기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혁명들의 진통을 피해 간 영국에는 계몽주의 전통이라고 부를 만한 게 과연 존재할까? 본서 『근대 세계의 창조』는 여기에 힘주어 ‘예’라고 대답하는 책이다. 1783년, 베를린 수요 클럽이 토론 주제로 던진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칸트는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무지라는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는 답변했다. 그것은 ‘감히 알려고 하는’ 자세, 독립적으로 사고하려는 자세다. 우리가 칸트의 답변을 계몽주의에 대한 정의로 받아들인다면, 이미 ‘누구의 말도 믿지 마라’는 모토를 채택하여 설립된 영국의 왕립학회는 칸트가 말한 계몽을 추구하고 또 구현하고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_역자 후기에서


언론 리뷰

호화롭고 자극적인 책. 포터는 능수능란하다. _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영국 계몽주의’ 같은 용어는 모순어법일까? 이 책이 지닌 힘의 일부는 독자가 그와 같은 질문을 첫 장章에서부터 더이상 던지지 않게 된다는 데 있다. 포터는 논증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훌륭하게 선별한 증거를 확실하게 주지시킨다. _가디언

그 시대의 지적인 삶에 대한 탁월한 안내서. 엄청난 양의 학구적 정보를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한다. 그 시대를 이해하고, 선명하게 바라보며, 당당하고 눈부신 당시의 시대정신을 사랑하고 공감하는 보기 드문 미덕을 지닌 책. 뛰어나고 명료하며 경탄스럽다. _옵저버

훌륭하다. 포터는 논제를 활기차게 제시하며 적절한 인용으로 서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_선데이 텔레그래프

늘 그렇듯이 눈부시고 활기 넘친다. 뛰어난 스타일로 긴 분량을 이끌고 가며, 인상적인 학식이 돋보이는 대단히 풍성한 책. _파이낸셜 타임스

도발적이고 통찰력 있는 책. 지금과 같은 웹 시대에, 최초로 ‘근대적’인(비록 전적으로 계몽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세기의 서로 맞물린 활기찬 네트워크를 되돌아본다. _선데이 타임스

로이 포터는 그가 계몽주의의 프랑스화라고 보는 것으로부터 계몽주의를 구해내고, 계몽주의에 대한 영국의 기여를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사명을 띠고 있다. 그는 그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한다. 현명한 구성과 명료하고 매력적인 스타일, 일반화와 사례 간의 적절한 균형, 그리고 미묘한 차이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갖춘 즐거운 책이다. _포트워스 모닝스타 텔레그램

최상의 지성사. _리치먼드 타임스 디스패치

놀랍도록 생산적이며 인상적인 커리어의 정점. _스코츠먼


책 속으로

테리 캐슬은 “포스트모더니즘 연구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18세기는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편집증과 억압, 광기의 조짐이 보이는 시대다”라고 냉담하게 평가한다. 1997년 에릭 홉스봄은 유사한 맥락에서 “요즘에는 계몽이 피상적이고 지적으로 순진한 것에서부터 서구 제국주의에 지적 토대를 제공하기 위해 가발을 쓴 죽은 백인 남성들이 기획한 음모로 치부되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볼테르는 역사를 우리가 죽은 자들을 골탕 먹이는 각종 수법들로 가득한 상자에 비유했고, 누구도 객관성이란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반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푸코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인 독해는 의도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믿으며, 어째서 그리고 왜 그러한지를 아래에서 보여주겠다. (18∼19쪽)

우리 시대는 복잡한 수정주의가 특징이다. 오랫동안 ‘이성의 시대’는 영미 학자들에 의해 무미건조하거나 젠체하는 막간, 볼테르 같은 똑똑이들과 루소 같은 괴짜들의 시대로 폄하되었다. 그러나 더 근래에 들어서 계몽주의는 근대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운동으로서 인정을, 때로는 악명을 얻어가는 중이다. 미국 역사가 피터 게이는 필로조프들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근대적 삶의 문제들과 씨름한, 두려움을 모르는 비판가들로 복귀시켰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몽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 풍요로워졌다. 우리는 이제 계몽주의가 게이가 기린 ‘일단의 필로조프들’을 훨씬 넘어서는 것임을 안다. 오늘날 문화사가들은 신문과 소설, 인쇄물과 심지어 포르노그래피에 자극받은 독서 대중 전반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끓어올랐음을 지적한다. (30쪽)

대륙의 석학들은 정치와 윤리, 인식론, 미학, 심지어 문학 분야에서 영국의 혁신으로 크나큰 자극을 받았다. 디드로는 ‘영국인이 없었다면 프랑스에서 이성과 철학은 지금도 매우 한심한 유아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36∼37쪽)

근대성을 형성하는 데 영국 사상가들이 수행한 역할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문인들과 그들의 독자들 사이의 접촉과 순환 회로에 대한 훌륭한 지도 작업이 필요하다. 런던과 에든버러, 더블린 사이, 메트로폴리스와 지방 사이,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사이, 종교적 문화와 세속적 문화 사이, 남성 문화와 여성 문화 사이 순환 고리 모두를 추적해야 한다. (42쪽)

전체적으로 클럽과 동호회, 지부의 급증은 언론 매체와 싸구려 글쟁이들의 증대와 맞물려, 각양각색의 공중 전반에 서비스를 제공하며 융성하는 인쇄술 기반 정보통신 사업으로서 문화를 신장시켰다. 런던은 근대적 생각과 가치들을 선보이고, 정치적·예술적 신조를 과시하고, 새로운 것을 홍보하는 무수한 여타 공적인 플랫폼을 지원했다. 근대성을 홍보하는 이러한 연단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극장이었다. (80∼81쪽)

그러한 확신들을 형성하는 데 인쇄 매체는 비록 양날의 검이긴 해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인쇄된 말은 예를 들자면 입에서 입으로, 대대로 전해지는 가르침에 내재한 부정확성과 불안정성, 과장과 대조적으로 명백하고 안정적인 사실을 보증하는 것으로 칭송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쇄된 말은 단단하고 견고한 사실로 이루어진 베이컨적 과학을 보완했다. 그러나 인쇄된 책은 쉽게 맹목적 숭배의 대상이 되고 저자들은 권위로 화석화되었다. (107쪽)

출판물의 폭발적 인기는 새로운 부류의 문인들을 낳았다. 노동 분업의 이론가 애덤 스미스는 “부유한 상업 사회에서는 사고하거나 추론하는 일도 다른 모든 고용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하나의 특정 사업이 된다”고 생각했다. 부상하는 새로운 직업 유형 가운데에는 비평가, 즉 저 문필 공화국의 판관이자 검열관, 개혁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비방의 대상이기도 했다. (152쪽)

계몽주의는 자연의 구조 자체에 대한 새롭고 급진적인 설명의 승리를 확보했다. 1660년 이후로 대학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원소와 체액, 실체와 성질, 목적인으로 이루어진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그리고 그 경쟁 학설인 영적 우주에 관한 르네상스의 신플라톤주의적 비전과 비의적 비전은 수학적으로 표현 가능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 물체의 운동이라는 자연 모델에 마침내 밀려났다. 이 기계론적 철학의 등극, ‘과학혁명’에서 핵심 패러다임의 전환은 다시, 계몽된 사고에서 매우 두드러지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새로운 권리 주장을 승인했다. (229쪽)

정념들의 문명화 능력에 대한 흄의 신뢰에서 계몽된 낙관주의가 공공연히 드러난다. 통치와 자유는 불화하지 않는다. 권위가 없다면 자유도 없다. 따라서 흄의 비전에서 문명의 진전은 성인이나 영웅을 요구하지 않는다. 비인격적 힘들이 누구도 개인적으로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인간들로 하여금 집단적으로 성취하게 이끈다. (315쪽)

우리가 여기서 막스 베버가 ‘세계의 탈주술화’라고 부른 것을 선취하게 된다 할지라도, 지구 행성은 아직 테니슨과 여타 빅토리아 시대 정직한 의혹자들을 얼어붙게 만든, 무의미한 마그마 응고 덩어리로 환원되지는 않았다. 포프를 안내인 삼아 조지 왕조 시대 사람들은 자연을 신적인 기교의 걸작품으로 독해했다.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자연의 신을 우러러보았다. (456쪽)

그럼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새로이 발견된 태평양 섬들의 원주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기독교는 원시인들을 함이나 카인의 이교도 자손들로 간주해왔고, 그러한 멸시적 태도는 쉽게 세속화되고 합리화될 수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유목 생활은 그들을 스코틀랜드 철학의 4단계 문명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놓은 한편, 로크주의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농업을 발달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확연하게 허비한 토지를 유럽인들이 몰수해도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543쪽)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직원들의 행복을 백배로 증대하고픈 그 기업가의 소망을 반영하여 학교와 박물관, 음악당, 무도장이 건설되었다고 사우디는 언급했다. 그러므로 오언은 산업화라는 기획 안에서 포괄적이고 자애로운 통제를 상상하고 실현하며 교육과 규율로써 그의 ‘인간 기계’들에 대해 엘베시우스적 관심을 드러내는바, 그것은 계몽사상의 논리적 종착점이었다. (654쪽)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성과 그 기원들에 관한 탐구를 재개했다. 언제, 왜, 어떻게 ‘근대적’ 자아와 ‘근대적’ 사회가 생겨났는가?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자기 형성’ 인간으로까지 뿌리를 거슬러가야 할까, 아니면 우리의 탐구를 더 후대로 끌어와야 할까? 이 책은 근대적 정신 상태의 탄생에서 18세기가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하며, 영국의 사상가들이 그러한 과정에서 두드러졌고 아닌 게 아니라 시기적으로 일렀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의 계몽주의를 운위하는 것은 말이 될 뿐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난센스일 것이다. (717쪽)

그러한 회의론자들에 맞서, 나는 (…) 로크와 뉴턴, 애디슨과 스틸, 흄과 스미스, 하틀리와 벤담, 프라이스와 프리스틀리, 그리고 여타 많은 이들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새로움을 두고 다투는 어떤 경쟁에서든 영국의 작가들은 확실히 대륙의 동료들과 견줄 만하다. 만약 계몽주의에 ‘아버지’가 있다면 로크의 친부 주장이 다른 누구의 주장보다 더 설득력이 있으며, 벤담은 전 세계적인 호소력을 발휘할 운명인 공리주의의 가장 혁신적인 주창자였다. 앤서니 콜린스보다 더 자유로운 자유사상가도 없었고, 조지프 프리스틀리보다 더 고집 센 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자도 없었으며, 한편으로 아나키즘의 창시자인 윌리엄 고드윈은 제일 원칙들로부터 정치적·도덕적 삶을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재고하는 놀라운 임무를 자처했다. (7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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