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백석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짧고도 영원한 사랑

김자야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2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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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백석, 열렬하고도 슬픈 생애에 신화가 된 사랑 이야기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시인 백석,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촘촘하게 복원하여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백석의 연인 김자야(金子夜, 1916∼1999)의 산문 『내 사랑 백석』이 2019년 김자야 여사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내 사랑 백석』은 20대 청년 백석의 꾸밈없는 모습과 섬세한 마음,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을 그를 깊이 연모한 여성 김자야의 필치로 전하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온 산문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운명>에서는 김영한이 기생 김진향으로 입적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성장기와 젊은 시인 백석과의 애틋한 첫 만남을, 2부 <당신의 ‘자야’>에서는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아호로 불리며 절정의 사랑을 나누었던 3년의 이야기를,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서는 팔순에 가까워진 노년의 자야의 심경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김자야 여사의 집필과 출간을 뒷바라지하여 끝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세상에 알린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를 덧붙였다. 멋쟁이였던 모던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시어에 얽힌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교사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만주로 떠나고 만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젊은 날의 백석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백석 연구의 서브텍스트로서도 그 의의가 각별하다.

저자소개

본명 김영한, 기명 김진향. 자야는 연인이었던 시인 백석이 지어준 아호이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자, 1932년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청년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졌다. 1938년 백석이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제의했으나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같은 해에 기자로 다시 서울로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렸다. 1939년 백석이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면서 이별했다.
1953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만학으로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이 있다.
스승 하규일 명인과 연인 백석을 추모하는 사업에 평생 매진했다. 『무소유』를 읽은 뒤 법정 스님에게 시가 천억 대의 서울 성북동 길상사 부지를 시주했고,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었다. 길상사가 문을 연 지 2년 만인 1999년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숨을 거두기 열흘 전,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느냐”는 이생진 시인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목차소개

작가의 말_추억을 위한 변명

1부 운명

내 나이 열여섯에
마누라! 마누라!
기생 진향

2부 당신의 ‘자야’

당신만 아는 이름 ‘자야’
‘모던 보이’와 북관의 여인들
‘바다’ 같은 사람
이별 연습
청진동 연가
나와 나타샤
삼우오三羽烏
사랑의 위기
방황
당신은 가고……
짝 잃은 외기러기

3부 흐르는 세월 너머

바람벽에 그려보는 얼굴
시인의 절규
꿈에 오신 당신
시 속에 당신 모습이
시전집 품에 안겨
여든 살의 청년
당신 곁으로

발문_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
백석 시인 연보

출판사 서평

백석, 열렬하고도 슬픈 생애에 신화가 된 사랑 이야기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백석의 연인, 김자야
“하마터면 놓쳐버릴 뻔했던, 사랑을 실은 흰 당나귀의 아름다운 이야기”

시인 백석,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촘촘하게 복원하여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백석의 연인 김자야(金子夜, 1916∼1999)의 산문 『내 사랑 백석』이 2019년 김자야 여사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내 사랑 백석』은 20대 청년 백석의 꾸밈없는 모습과 섬세한 마음,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을 그를 깊이 연모한 여성 김자야의 필치로 전하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온 산문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운명>에서는 김영한이 기생 김진향으로 입적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성장기와 젊은 시인 백석과의 애틋한 첫 만남을, 2부 <당신의 ‘자야’>에서는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아호로 불리며 절정의 사랑을 나누었던 3년의 이야기를,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서는 팔순에 가까워진 노년의 자야의 심경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김자야 여사의 집필과 출간을 뒷바라지하여 끝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세상에 알린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를 덧붙였다. 멋쟁이였던 모던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시어에 얽힌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교사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만주로 떠나고 만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젊은 날의 백석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백석 연구의 서브텍스트로서도 그 의의가 각별하다.


기생 복색을 입고 수필을 발표하기까지
학업의 꿈 놓은 적 없던 ‘문학 기생’의 삶

다른 사람들은 모두들 나를 부러워하였다. 특히 옷 입은 자태가 두드러진다든가, 절하는 맵시가 일품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말들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고, 오직 내 가슴속에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일념뿐이었다. (34쪽, ‘내 나이 열여섯에’)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나의 은인이신 옥중의 해관 선생님을 면회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기생의 복색을 다시 입고 함흥권번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내가 기생이 되어야 커다란 연회 같은 것에 참석할 수가 있었고, 또 그러한 기회에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를 만나서 신선생님의 특별 면회를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46쪽, ‘마누라! 마누라!’)

1부 <운명>에서는 백석을 만나기 직전 김영한 여사의 성장기와 기생 김진향으로서의 삶이 펼쳐진다. 어린 시절 불우했던 집안 사정, 기생으로의 입문, 일본 유학과 귀국, 백석과의 운명적인 만남까지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김영한은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집안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그녀는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보고자 열여섯의 나이로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으로 입문해 조선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 문하에서 여창가곡, 궁중무 등을 배우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는 『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하여 ‘문학 기생’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다가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길을 떠난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하지만 면회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함흥 땅에 주저앉는다. 1936년 가을, 그는 궁리 끝에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기생 복색을 입고 함흥권번으로 들어간다. 오로지 은인이던 해관 선생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기생이 되면 큰 연회 같은 곳에 나갈 수 있고, 그러면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들을 만나서 해관 선생님의 특별면회를 신청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한 믿음으로 다시 들어선 길이었다. 결국 해관 선생은 만나지 못했지만, 바로 그곳에서, 1936년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백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날은 내가 함흥권번에 소속이 되어 함흥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함흥관으로 나갔던 바로 첫날이었다. 영생고보의 어느 교사가 이임하는 송별회의 자리인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당신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의 은인이신 해관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타관 객지에 잠시 와서 머물고 있는 처지였고, 당신 역시 서울에서 그 바람 센 함흥땅으로 부임해와 있는 멋쟁이 시인 총각이었다. 어쩌다 우리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그렇게도 어이없이 사로잡히고 말았는지.(46쪽, ‘마누라! 마누라!’)

말없이 연거푸 기울어지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술상 아래쪽에서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당신의 말이 나의 귀를 놀라게 하고, 또 의심케 했다.(47쪽, ‘마누라! 마누라!’)

문학 기생 김진향의 사랑과 삶의 연대기에는 당대의 상황과 풍속, 일본에 대한 인상, 그리고 기생 개개인의 일상과 내면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특히, 기생 사회의 흥망성쇠, 일제하 기생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들은 왜곡된 인식에 근거한 기생상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비록 일제의 말살정책에 의해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당시 기생들은 한국의 전통 궁중 가무의 개척자였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일제에 의해 기생 사회의 미풍양속이 깡그리 압살되어버리기까지, 기생 사회와 조선 역사의 명암을 낱낱이 지켜본 그의 충정 어린 외침이 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백석의 인간적인 면모와
백석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기원

2부 <당신의 ‘자야’>는 백석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의 기록이다. 백석이 지어준 ‘자야’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청진동 시절 자야를 두고 ‘세 번’이나 새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냉엄한 신분제 시대의 사랑, 거리에서 지인이나 자야의 손님과 마주칠 때마다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이 시인과 기생 커플의 고뇌와 갈등, 백석 집안의 극렬한 반대와 자야의 방황, 자야에게 만주 신경으로 도망가자고 제안하는 백석의 사랑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조선생이 안절부절못하면서 말을 꺼냈다.
“참 말씀드리기 거북하지만, 백군이 지난해 십이월 이십사일에 집을 나와서 그날 바로 두번째의 장가를 들었다고 하는구려. 그래서 자기는 자야에게 도저히 면목이 없어 집에를 못 들어가겠으니, 나더러 제발 좀 같이 가달라는 것이었어요.”
한마디로 가소로운 웃기는 이야기였다.
조선생은 당신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친구로서 말할 수 없는 실망감도 느끼고, 또한 놀랍고도 괘씸한 마음에
“여보게!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 같이 가면 괜히 나까지도 혼이 난다네!”
하고는 겨우 당신을 떼어놓고, 혼자 달려오는 길이란다.
이 말에 내가 심히 충격을 받아서 얼굴이 핼쑥하게 되자, 그는 나를 위로해주기에 여념이 없다.(163쪽, ‘사랑의 위기’)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들의 연애사를 뛰어넘는다. 자야가 복원한 그들의 사랑과 고뇌, 갈등을 통해 백석과 백석 시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시작품 가운데는 꽃답고 영롱한 두 침자가 고스란히 살아 있고, 청순한 순정과 격렬한 열정의 너그러운 미소가 변함없이 남아 있습니다"(<작가의 말> 중에서)라는 회고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백석의 시 「바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에 흐르는 애틋한 정조의 실체는 그들의 애정전선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했다.

이처럼 백석에 대한 여러 정보와 인간적인 면모가 자야의 회고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는 억양이 짙은 평안도 말을 썼는데 이는 시집 『사슴』에 그대로 쓰이고 있어서, 자야는 “이 시집을 읽으면 꼭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 또 매사에 깔끔한 성격이었던 백석은 육류보다는 나물 반찬을 좋아했고, 심한 결벽증에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한편, 문학에 관한 화제에서만큼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고 한다.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는 백석의 시를 어루만지며 그들의 젊은 시절과 생사조차 알길 없는 백석을 그리워하는 자야의 애틋한 정이 고여 있다. 여든 살의 청년 백석을 꿈에서 만났는데, 백석이 자꾸만 허기가 지다고 호소하고 돈을 몇천 원만 꾸어오라고 재촉하더라는 대목은 애절하기 그지없다. 더불어 백석 시를 통해 백석을 그려보는 살뜰한 마음, 백석은 ‘월북 시인’이 아니라 ‘재북 시인’으로 보아야 마땅하다는 것, 제 손으로 백석의 시선집을 펴내겠다는 신념으로 동분서주하다가 뜻밖에도 한 후배 시인에 의해 발간된 『백석시전집』을 가슴에 안고 느꼈던 감격, 그리고 백석의 고희를 맞아 쓴 편지 등은 긴 세월이 흘러도 변색되기는커녕 더욱 짙고 단단해지는 자야의 순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꿈을 깨고 나니 비록 꿈일망정 시장하다고 애원하던 표정, 돈을 좀 꾸어오라고 재촉하던 그 처절하고 측은한 모습이 눈에 밟히었다. 그러한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나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애처롭고 가여운 연민의 정이 끓어올랐다. 내 심정은 그저 뒤숭숭하기만 했다.
이 낭군님은 도대체 어찌하여 밤마다 꿈마다 나의 속을 불로 지지는 듯 시달리게 하는 것인가. 틀림없이 북한에서도 당신의 형편이 좋지 않았을 것이리라.
내 마음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측은한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당신은 아마도 북한에서 실제로 겪은 여러 가지 참혹한 정황을 내 꿈에 나타나서 슬프게 하소연한 것만 같았다. 당신의 몸과 마음은 운명적으로 혈혈단신의 삶이었다.(163쪽, ‘꿈에 오신 당신’)


못다 한 사랑 위로하는 마지막 필생의 사업
팔순 노구로 복원한 시인 백석의 삶과 사랑

우리가 오늘날 백석과 자야의 내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까지, 책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이동순 시인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책 말미에 수록된 이동순 시인의 발문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을 통해 김자야의 원고 집필과 완성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오전 나는 연구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첫 느낌에도 매우 단정하고 기품 있는 할머니의 음성이었다.
그녀는 백석 시인과 가까웠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언젠가 한번 만나기를 청했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곧 상경하여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을 ‘자야’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이 이름은 백석 시인이 지어준 것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그녀는 백석 시인과 관련된 자신의 생애를 조용히, 그러나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흘러간 20대 초반, 어여쁘던 처녀 시절에 함경도 함흥에서 시인 백석과 처음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 3년간 서울 청진동의 한 작은 집에서 혼례를 치르지 않은 부부로서 함께 산 적이 있노라고.
나는 대뜸 모든 내력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함흥 시절에 쓴 백석 시의 애틋함과 고뇌와 갈등 따위가 일시에 정돈된 풍경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흠모하던 한 선배 시인의 풍모와 직접적인 체취를 새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에 나는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버렸다.(이동순 발문,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 중에서)

이동순 시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자야에게 백석과의 사연을 정리해보기를 강력히 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김자야는 이미 1930년대 중반 파인 김동환이 발간하던 잡지 『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한 바 있었고, 한때 기생 신분이긴 했으나 일본 유학까지 갔다 온 인텔리 여성에다가 1953년 만학으로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까지 졸업한 학구파였다. 김자야가 이 원고에 쏟아 부은 공력과 노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원고 집필은 1992년 봄부터 이후 4년간이나 쉬지 않고 틈틈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하여 이동순 시인은 200자 원고지 앞뒤에 종서로 빽빽하니 써내려간, 낭군 백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원고를 받아내었다. 그때 김자야는 이미 팔순이 가까운 노구였다. 그는 이 글을 쓰면서 때때로 밤을 새우기가 여러 번, 심지어는 건강에 무리가 왔고, 이로 말미암아 두어 차례 입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내 사랑 백석』의 완성은 그야말로 난산(難産)이었다.

백석의 시가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라고 말하는 자야는 이 책을 낸 것이 일생일대의 큰 기쁨이라고 하지만, 시인 백석과 백석 시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얻게 된 우리 모두의 기쁨이다.

이동순 시인은 “김자야의 문체는 1930년대식 어법과 문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당시의 진기한 어휘나 고전적 문투 등의 이채로운 언어습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며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를 짚어준다.

책의 종장에서 자야는 노구를 이끌고 백석과 함께 살던 청진동 집 앞으로 간다. 추억마저 희미해져가는 두 사람의 옛집을 되짚어가다가 문득 터져나오는 자야의 슬픔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정신을 수습하고 본즉, 그곳은 이미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오랜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사라진 옛 기억을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어디선가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빌딩을 짓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허름한 싸구려 보신탕집이 왼편 옆 모퉁이에 을씨년스럽게 붙어 있었고, 굳게 잠긴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곳은 개발지구로서 머지않아 지금의 윤곽마저 아주 사라져버릴 운명에 놓여 있었다. (…)
쓸쓸히 돌아서는 무거운 발길. 나오다가 멈추어 돌아보고, 또 한참을 걸어나오다간 다시 뒤돌아다본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 그립던 우리들 옛사랑의 맞춤의 둥지가 갑자기 곧 두 사람이 함께 묻혀버린 황막한 무덤으로 보였다. 나는 그 착각이 한없이 서러웠다.
그토록 많은 세월은 모두 흘러서 지금쯤 어디를 가고 있는지?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고, 나는 왜 여기서 이 옛 추억의 골목을 혼자 헤매고 있는 것일까?
이 허망한 내 가슴속을 그 어떤 말로도 나는 표현할 길이 없다. 가눌 수 없는 상실감과 허탈감으로 털퍼덕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오열을 나는 겨우겨우 억눌러 참았다.(300~301쪽, ‘당신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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