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생태론의 혁명

정홍규 | 도서출판학이사 | 2018년 11월 2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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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도토리의 꿈

대구 가톨릭대학 기숙사 뒷산에는 도토리나무와 참나무가 많다. 바람이 불면 도토리가 후두둑 떨어진다. 길을 걷다가 도토리가 떨어지면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걸음을 멈추고 풀숲을 뒤진다. 흔히 경상도에서 꿀밤이라고 부르는 도토리는 떡갈나무 또는 참나무의 열매를 말하는데 다람쥐를 비롯한 산토끼와 멧돼지 등이 아주 좋아하는 먹거리다. 또 도토리는 공기놀이하는 아이들에게는 친구와 다름없다. 우리가 설익은 도토리를 까서 먹어보면 약간 떫지만 먹을 만하다.
이 도토리로 맛있는 묵을 만들었고, 배고픈 시절에는 거뜬하게 사람들의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도토리는 동물이나 사람 모두에게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도토리뿐만 아니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산비탈의 숲에는 도토리들이 여기 저기 ‘무상(無償)의 감사함’으로 떨어져 싹이 나고 성장한다. 수많은 도토리에서 그 작고 연약한 싹이 돋아나지만, 그 중 몇 알의 도토리만 살아남아 거대한 참나무로 성장하게 된다. 필자는 이 도토리와 참나무를 보면서 우리 자신들이 수많은 도토리 중 하나의 위치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숲속에서 찾아낸 도토리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떡갈나무 기적’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가톨릭 인본주의는 무상성(無償性)으로 무수히 산속에 떨어진 도토리처럼 자라왔다. 교부들에 의해서, 선교사들의 순교에 의해서, 혹은 우리들의 덕행에 의해서 인본주의를 뿌려 왔기 때문에 인류역사에 커다란 참나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지금 있는 곳에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무명의 도토리들의 기적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또 하나의 기적 즉 확장하는 인본주의 또는 ‘현대 인간중심주의 위기’를 재 극복하는 인본주의가 필요한 시대가 절박하게 요청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오늘날 이토록 황폐하게 된 것은 성경과 서구 전통이 자연세계가 아니라 인간만이 선택되었다는 특수성을 지나치게 과장했기 때문이다. 자연세계를 포함한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는 인본주의가 이 책의 키워드다. 무엇보다도 가톨릭 인본주의 안에서 ‘생태 스페이스’라고 함은 프란치스코 교종님이 지적하신 ‘통합 생태론’을 뜻한다. 21세기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 앞에서 가톨릭 인본주의가 오늘날 요구에 더욱더 잘 응답하려면 바로 ‘생태 스페이스’로 돌아가야 한다.
필자가 ‘제4회 이원길 가톨릭 인본주의상’ 반열에 서게 되고, 제 자신의 스토리를 공유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시대적 맥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것이 이 책을 펴내게 된 첫 번째 배경이다. 확장하는 인본주의의 비전이 무엇인지 깨달음으로써 또 다른 참나무의 기적을 위한 공간과 행동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배경은 바로 ‘지리학적 상상력’이다. 필자에게는 늘 들어도 듣고 싶은 명곡처럼 무한 리필 되는 것은 ‘생태학적 지리학’이다. 우리는 흔히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동안 사목현장에서 풀어낸 상상력과 창의성 그리고 프로젝트나 대안들은 필자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 아이디어는 어릴 때 자연과의 깊은 교감에서 나왔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장소의 패턴’이 정신과 육체에 가장 근본적 방식으로 각인된다. 자연과 나의 공감적 방식에서 나의 영감, 실천, 활동들이 나왔다. 점처럼 나의 활동들이 이것저것 다르게 보이지만 하나의 선으로 일관성 있게 연결되는 지점은‘통합 생태적 자아’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주다. 그 당시 고향 경주에서는 가축이 한집에 살았다. 그땐 ‘변소’라고 불렀던 화장실은 소와 사람이 같이 하는 공간이었다. 개와 닭도 우리와 함께 살았다. 닭이 콩깍지 더미에서 알을 낳으면 달려가서 방금 낳은 따끈따끈한 달걀을 가지고 왔다. 산에 가면 산딸기, 밭에 가면 감홍시가 달려 있었다. 밤에는 오리온과 카시오피아 별이 보이고, 겨울밤에 씽씽 불던 바람소리는 나를 무섭게 했다, 통합교육은 따로 과외를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진다. 산에 가서 나무하고, 소를 먹이고, 아궁이에 불을 넣고, 감을 따고, 보리타작을 하고, 냇가에 가서 통발을 놓아 미꾸라지를 잡았다. 한 가지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무만 보지 않고 숲을 보는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통합적 이해’를 배운다.
CCTV가 없었던 그 시대, 마을은 따뜻하였고 열려있는 공동체였다. 모든 것이 동시적으로 제 자리에 있었고. ‘시간과 공간’이 우리에게 존재해 있었다. 마을에서는 동무들과 땅따먹기를 하면서 놀았다. 강아지와 개에게 친밀감을 느끼듯이
거주지와의 친밀감을 이루며 살았다. 이렇게 필자가 어렸던 시절에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져 있었다. 우리의 먹거리인 밀사리는 제철이었고, 우리가 먹는 것은 어느 곳에 자랐는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우리의 밥상에는 시간과 그 지역 공간이 가득했다. 시간과 공간이 있는 자리는 ‘우주적 동시성’이다.
2003년부터 시작한 영천 보현산 자락의 우리 오산 자연학교는 시간과 공간이 있는 식탁, 자연식 유기농 식사를 하였다. 지금도 그 원칙은 변함이 없다. 지금 TV에서 벌어지고 있는 먹방은 무시간 무공간이다. 쿡방에도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후다닥 만들어 내는 식품이 많다. 유사 이래 이렇게 무질서한 식탁은 처음이다. 필자가 가는 본당마다 유기농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시간과 공간이 있는 밥상이 도시나 농촌에게 생태적으로 가장 근본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장소와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환경에 따라, 지리학적 배경에 따라 관계에 대한 우리의 감성이 성장하거나 떨어진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자연의 풍경은 마음의 풍경에 분명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에는 거주지나 장소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깊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장소에 대한 모독은 마
음과 정체성을 손상시킨다. 거주지나 장소 그리고 대지를 모독하는 것은 신성모독에 가깝다. 장소를 파괴하는 것은 상상력과 경이로움을 억압한다. 하느님의 성사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생태적 빈곤이나 영혼의 빈곤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거주지와 다시 연결하는 것은 시급한 교육적 과제이다. 변화는 동기부여와 교육적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필자가 시골에 대안학교를 만들었던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의 먹거리, 공기와 물, 흙 등에 수천 개의 화학첨가물과 유전자 조작식품을 섞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회사의 로고나 광고를 세뇌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식물과 동물의 이름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일주일에 평균 6시간을 쇼핑에 할애하지만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은 겨우 40분이라고 한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우리 아이들을 숲속에, 야생에, 대지에 접촉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가 자연 생태계, 먹거리, 공공 정체성, 휴식의 공간, 살림, 생태 공동체를 혁신적인 가치로 삼는 것은 고지식하거나 유토피아적 생각이 아니다. 우리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의 인본주의가 우리보다 앞서 성공을 거둔 지속가능한 지구 생명공동체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인간이 존재한 기간보다 더 오랫동안 생태계를 유지하였던 지구의 생물권을 존중할 필요가 절실하다.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 현재 우리 세계 시스템은 여러 관점에서 보더라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엄청난 재앙이 도사리고 있고 언제 터질지 시간은 촉박하다. 우리로서는 하나 뿐인 행성 지구를 포기할 수도 없고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다.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이다. 불가능한 일이 갑자기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이 순간들은 대단히 드물고 소중한 기회다. 그렇다고 하여 생태위기는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다. 한 분야에 국한 된 문제는 하나도 없다. 한 가지 접근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통합적 마인드’가 절실히 필요하다. 통합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좋아하는 비빔밥이나 밥상보에 비유할 수 있다. 할머니의 밥상보처럼 작은 천 조각 하나가 다른 조각들과 연결될 때, 각각의 지혜가 다른 지혜와 비벼질 때 아름다움이 창조된다. 강물은 수많은 지류의 집단적인 힘을 끌어 모아야만 강력한 물살을 만들어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지금까지 인간종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공감과 협동의 인본주의’ 아니었던가? 공감 즉 아파하는 연민의 마음, 협동의 인본주의 즉 세계적 연대의 영성이다. 인간 최상의 면모를 보여 주는 인본주의가 이 행성지구를 구하기 위하여 우주적 동시성으로 통합 생태적 부름에 지금 응답할 때이다.

“통합 생태론은 사회 윤리에서 핵심적이고 통일적인 원리인 공동선의 개념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공동선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의 조건의 총화입니다”

- 교종 프란치스코 회칙 <찬미 받으소서> 156항

저자소개

2007년부터 경북 하양 일대의 중생대 백악기 호수에서 형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VIP로 모셨다. 2014년부터 ‘토종 유채꽃’을 금호강 유역에 뿌리기 시작, 유채꽃으로 꿀벌과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같은 해에 ‘에밀 타케 신부와 왕벚나무’의 깊은 인연을 재발견, 왕벚꽃이 우리나라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토종임을 쟁점화시켰다.
2003년 영천 ‘오산자연학교’를 시작으로 통합 초중고 산자연학교, 산자연중학교, 대경대 부설 UPAS 종합 예술학교 인가에 이어 2015년에는 대구가톨릭대학의 ‘사회적경제특수대학원’을 대구시와 공동으로 설립하였다. 설립된 5개의 학교를 통하여 창의성과 혁신정신을 바탕으로 한 ‘통합 생태론’을 파급했으며, 현장 중심의 실천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민간 협력의 전초기지로서 2011년부터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인 ‘커뮤니티와 경제’(대구)와 ‘지역과 소셜 비즈’(경북) 법인 이사장직을, 현재에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회적경제대학원 원장, 대경대학 이사, (NPO)푸른평화 대표를 맡고 있다. 특히 경주 중수로 월성 원전과 고준위 핵폐기물로부터 탈핵운동을 펼치며 ‘천년고도 경주’를 아름다운 문화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오산에서 온 편지》 《마을로 간 신부》 《한국가톨릭교회의 생태의식》 등이 있다.

목차소개

프롤로그 도토리의 꿈

1부 _사회적 경제와 통합 생태론
희망의 경제학/사회적 경제의 성공은 인성과 영성의 융합/사회적 경제, 교육이 핵심 포인트이다
대학이 창조해야 할 경제 플랫폼/커뮤니티 카페와 사회적 경제/무상의 감사함 없이는 경제정의도 없다/대학의 소리 없는 경제혁명/소셜 엔도르핀/유채꽃 생태혁명과 3E/청년의 관점에서 경제를 재구성하다

2부 _대학자 힐데가르트 성녀와 통합 생태론
빙엔의 힐데가르트 수녀/힐데가르트 르네상스/덕행별곡(Ordo Virtutum)/힐데가르트의 우주론/힐데가르트가 우리 시대에 주는 선물


3부 _에밀 타케 신부와 통합 생태론
왕벚나무의 발견과 제주도의 원조元祖밀감
에밀 타케신부의 선교여정과 삶
1)선교사로서 조선에 파견
2)영·호남 지역 선교
3)제주도 사목
4)남해안 지방 선교
5)유스티노 신학교 시기
6)그 이후
한국 식물분류학의 대가 에밀 타케 신부
에밀 타케 신부의 업적 재조명

4부 _프란치스코 교종과 통합 생태론
생태 회칙 <찬미 받으소서>/통합 생태론의 영성/용감한 문화적 혁명/창의적 대안으로서의 협동조합/통합 생태적 회개/생태 영성과 교육

□에필로그•통합 에콜로지를 찾아가는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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