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정치철학, 존 로크 장자크 루소 알렉시스 드 토크빌

탁양현 | e퍼플 | 2018년 10월 0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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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自由民主主義의 資本’과 ‘人民民主主義의 Kitsch’



周知하는 바와 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체제원리는, 응당 自由民主主義다. 자유민주주의는 근대 서양문화의 정치철학적 산물이다. 대한민국은 여러 이유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과연 그럴 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 현대의 자유민주주의는 人類史에 등장하는 어떤 체제원리보다도,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들을 가장 인간답도록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역사 안에는 너무도 다양한 통치철학들이 존재한다. 그 이론만으로 치자면, 자유민주주의를 능가하는 철학사상은 적지 않다. 동양의 정치철학의 경우에도, 孔孟이나 老莊의 帝王學的 통치철학은, 만약 그 이론대로만 실현될 수 있다면,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쉬이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이론이다. 諸子百家의 다양한 통치철학은 물론이며, 近代에 世界史를 搖動시켰던 맑스의 통치철학은 또 어떠한가.
맑스의 공산주의 통치철학은 실로 아름다운 정치적 이상향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주의적 상상일 따름임이, 역사로써 검증되었다. 朝鮮王朝를 주도했던 孔孟 전통의 朱子學的 통치철학 역시 그러했다. 공산주의 통치철학은 이상주의로써는 결코 현실세계를 나아지게 할 수 없음을 증명했고, 주자학적 통치철학은 그것보다 나은 통치철학이 작동하기까지 꼼짝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不條理의 엄청난 고통을 증명했다.
물론 현대의 자유민주주의라고 해서 萬病通治藥일 리는 전혀 없다. 현재의 자유민주주의도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인류사를 고찰할 때,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만큼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정치철학은 不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은, 근대 이후 널리 회자되는 대표적인 청소년 교육론이다. ‘에밀’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소년의 이름이다. 여기에서 ‘루소’는 지속적으로 自然主義 교육론을 주장한다. 어린이에게는 ‘자연적 완전함’이 내재하므로, 그것이 발현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강압적인 훈육을 부정하며 거부한다.
그런데 재미나게도 ‘루소’는, 자기의 자녀 5명을 죄다 고아원에 보내버린 냉혹한 아버지이다. 혈연마저도 자기의 생존을 위해 배척해버린 것이다. 그런 사람이 청소년 교육론을 집필했으며, 自然主義的 교육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실로 irony다. 그러나 자기의 罪過에 대한 自己處罰이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다소 납득이 되기도 한다.

여하튼, ‘루소’는 이데올로기적인 강압적 교육을 부정한다. 그것이 지닌 폭력성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인들은 훈육의 폭력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으로서, 북한의 ‘어린이 집단 매스게임’을 연상할 수 있다. 一絲不亂하게 기계처럼 작동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 도대체 그러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가혹한 강압적 훈육을 받았을지, 당최 상상이 되질 않는다.
‘루소’의 견해를 좇는다면, 북한의 ‘어린이 집단 매스게임’이야말로, 强壓主義 교육의 典型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를 비판하는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론이 人權主義 차원에서 지극히 타당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당초 ‘루소의 에밀’이, 자기 자식을 내버린 原罪를 지니고 있음 또한 묵과할 수는 없다.
이러한 원죄는,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援用한다면, 자본주의를 작동시켜야만 하는 不得已한 不條理와 닮아 있다. 現在的으로 자본주의는 분명 원죄처럼, 市場이라는 것에 본래 惡魔性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에 의하여 작동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항상 견제와 균형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반면에 북한의 主體思想 교육론은, 자기 어린이들을 집단적 강제 속으로 내던져, 예컨대 ‘어린이 집단 매스게임’처럼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이데올로기 작품을 제작해낸다. 나아가 그러한 원리가 작동하여 표현되는 體制理論이나 國家共同體라는 작품 역시 그러하다. 그러한 작품들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Kitsch라고 할 것이다. ‘키치’는 一見 ‘醜의 美學’이다.

辭典에서 ‘키치(Kitsch)’를 찾아보면, ‘저속한 작품’ 혹은 ‘공예품’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형용사 ‘키치的’은 ‘천박한, 야한, 대중취미의’ 등의 의미를 갖는다고 되어 있다.
一言以蔽之하여 키치란, 겉으로 봐서는 예술품인 듯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천박한 싸구려 상품으로서, 당최 예술품일 수 없는 것이 바로 키치인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무수한 저작들 역시, 이러한 키치의 분별로부터 당최 자유로울 수 없음이 필자에게 깊은 아픔과 설움으로 다가서는 건, 또 무슨 까닭일까.
여하튼 키치라는 용어는, 그것이 지칭하는 개념처럼 매우 근대적인 것이다. 키치는, 1860년대에서 1870년대 사이에, 뮌헨의 화가와 畫商의 俗語로 사용되었으며, 하찮은 예술품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1910년대에 이르면, 느슨하고 널리 유통되는 호칭으로서, 국제적인 용어가 된다.

키치의 발생 배경은, 美學的으로는 낭만주의 예술에서, 사회적 배경으로는, 19세기 중반 부르주아 사회의 형성과 예술의 상업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말에는, 유럽 전역이 이미 급속한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파급 속도도 빨라, 중산층도 그림과 같은 예술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에 따라 미술품이나 그림을 사들이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키치는 바로 이러한 중산층의 문화욕구를 만족시키는, 그럴 듯한 그림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하던 개념이다.
이러한 상황은, 共産主義나 人民民主主義가 중산층 대중문화에 習合되어가는 상황과 유사성을 갖는다. 비록 귀족적 ‘금수저’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知的 역량을 지닌 文化大衆에게, ‘도덕적 인권주의’나 ‘이상적 평등주의’ 등은 분명 매력 있으며, 구매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美的 논의의 대상으로서 문화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현대에 이르면서, 고급문화나 고급예술과는 별개로, 대중 속에 뿌리박은 하나의 예술 장르로까지 개념이 확대되어, 현대의 대중문화와 소비문화 시대의 흐름을 형성하는 척도를 제공하기도 한다.
본래 키치가 가리키는 구체적 대상은, 古美術品을 모방한 가짜 복제품이나 유사품, 통속미술작품 등이다. 미켈란젤로의 ‘모세’와 같은 걸작품을, 석고나 플라스틱으로 복사한 ‘가정용품’에서, 잡지 표지를 장식하는 저급한 일러스트레이션에 이르기까지, 粗惡한 감각으로 만들어진 미술품과, 저속한 대중적 취향의 대중문화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상황은, ‘맑스’의 공산주의 작품을 모방하여 제작된,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본래의 共産主義는 실로 아름다운 정치사상적 예술작품임이 자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작품화되었을 때는, 고작 ‘러시아’나 ‘중국’의 社會主義體制쯤의 작품밖에는 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의 ‘주체사상’에 의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란 작품은 더욱 그러하다. 분명 그 原作으로서 원용된, ‘맑스의 공산주의’나 ‘조선왕조의 성리학’에 의한 정치철학적 작품들은,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북한 땅에서 실현되었을 때는, 결국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의 작품들처럼, 천박한 키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것이 키치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키치도 분명 類似예술작품이기 때문이며, 키치가 지니는 기괴한 매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하는 탓이다.

키치에 대한 평가는, 산업사회의 소비문화를 수용하는 대중들의 삶의 태도를 표현하는, 특정 철학적 미학적 범주라는 광범위한 영역에까지 개념이 확대되면서, 키치가 가진 사회적 기능과 성격에 주목하게 되었다.
키치는, 본래의 기능을 거부하는 특성, 충동이나 수집의 특성, 값이 싸야 하며 축적의 요소를 가지는 특성, 낭만적 요소를 포함하며 상투성과 쾌적함의 요소를 가지는 특성, 여러 요소들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중층성의 특성 등을 가진다.
키치가 가진 이러한 사용기능에 사회적 기능이 부과되어 키치가 존재하므로, 키치를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키치는, 처음에는 ‘이발소그림’과 동의어였다.
허름한 이발소의 벽면을 차지한 싸구려 액자 속에는,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 돼지나, 가을 추수가 끝난 전원풍경, 밥짓는 연기가 굴뚝으로 뿜어나오는 해질녘 시골집의 풍경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염원하는 행복의 이미지들이 들어 있었다.
이발소그림과 같은 키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서나 내용을 담고 있는, 미적 수준에서는 한없이 저급한 그림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이제 키치는, 단지 이발소그림과 같이 미적으로 저급하거나 조악한, 그러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가장 밀착된 특수한 장르화뿐 아니라, 자본주의 문화 일반, 나아가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가리키는, 대단히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그것이 마치 자본적 시장이 지니는 惡魔性처럼, 키치가 지니는 악마성이다. 심지어 키치는, 미학적인 퀄리티를 갖는 데 실패한 저급한 예술품이나 문화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 ‘우수한’ 특정 작품들의 어떤 경향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고급예술의 맥락 안에서, 이제 ‘키치的’이라는 의미는, 어떤 작품들의 성향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미적 개념이다. 키치를 지향하는 작품들은, 팝아트 이후 고급예술 전반을 장악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지배적인 경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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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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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미적 기만성이나 비도덕성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어차피 지배 계급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나 매한가지다. 근대 산업사회의 대중문화를 문화산업으로 규정한, ‘아도르노’와 같은 좌파사상가들이 보기에, 문화산업으로서의 예술은, 시장의 필요에 의해 통제되고 정식화되며, 대중들은 그러한 상업적인 예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키치는 전체주의 사회에 걸맞는 예술 형식이다. 1937년, ‘히틀러’ 정권이 뮌헨에서 현대예술을 퇴폐예술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예술을, 위대한 독일 예술로 명명해서 나란히 전시하고, 전시 후 현대예술 전시회에 걸렸던 작품들을 불태운 일화는, 1930년대 엘리트 비평가들이 보기에, 키치가 어떻게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는가를 입증한 역사적 사실이다.
키치는 사전에 모든 대답이 미리 주어져 있고, 따라서 어떤 질문도 배제하게 만드는 ‘멸균된 세계관’, 이른바 전체주의적 세계관을 대변한다. 현재적으로 ‘멸균된 세계관’이 가장 잘 작동하는 유일한 체제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인민민주주의’라는 類似예술작품이다.
건강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다양한 집단적 관심들이 경쟁하고, 서로 협상하면서 합의를 도출해 내려 노력할 것이지만, 키치의 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주의, 의심, 아이러니 같이, 현대예술이나 아방가르드 예술에 중요한 용어들은, 키치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이들은 키치의 생존을 위해 모두 삶으로부터 추방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쿤데라’는, “딱 하나의 정치적 움직임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을 때는, 언제이건 우리는, 전체주의적 키치의 영역 안에서 살게 된다”고 지적한다. 키치로서의 대중예술 혹은 문화산업은, 지배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대중의 여가조작과 연관되어 있는 탓이다.
예술을 감상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금전적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한 서민노동자 대중은, 자신들의 여가시간을 때우기 위해, 정형화되어 있고, 소화되기 쉬우며, 이미 다 조리되어 있는 문화경험을 요구하는 것이다. 산업사회는 인간의 物化를 심화시키면서도, 그 물화를 오히려 충족, 행복, 성취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물화 상태로부터 탈출을 좌절시키는, 여러 장치, 기술,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소비사회에서 욕망은,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사회적으로 모방된다. 욕망은 결핍감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 결핍감 자체를 사회적으로 대량생산하고, 그 결핍감을 메우려는 것이 후기산업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욕망이 삭제되어버린 ‘멸균된 세계’에서는, 오히려 욕망이 키치 그 자체로서 작동한다.

비록 ‘칼리니스쿠’와 같은 이론가는, ‘아도르노’와 같은 좌파 이론가들이, 키치의 등장을 노동자 대중의 여가와 연관짓는 것은, 너무 협소한 이해 방식이라 지적하면서, 부르주아지와 중산계급, 나아가 부유한 상층계급의 사람들에게도, 키치에 대한 애호가 존재함을 역설한다.
키치는 상층계급이나 하층계급을 모두 만족시키는, 근대 사회 전체의 생활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여 년의 실험이 끝난 후, 키치의 세계는 붕괴되었고, 붕괴를 피한 일부 세계는 부득이한 변화를 도모해야만 한다. 그러한 변화는 또 다른 키치의 顚倒가 될 것이다.
20세기 초 파시즘의 시대를 살았던 ‘아도르노’가, 키치를 특수한 계급의 문화로 봄으로써, 저항의 가능성을 모색하려 했다면, 20세기 후반 키치가 자본주의 문화 전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시대에 ‘칼리니스쿠’는, 키치에 대한 저항이나 비판의 불가능성을 짐짓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키치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밖’을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키치는 현대예술의 傳寫로서의 낭만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어쨌거나 불행, 반복, 권태로서의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키치의 낭만주의적 경향은, 키치의 주된 매력이다.

‘브로흐’는, 낭만주의 이전에, 美的 理想은 절대적이고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것이었지만, 낭만주의 시기에 미적 이상은, 초월성의 흔적을 상실하고, 작품 자체에 내재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原理的 顚倒에 의해, 현대의 ‘인민민주주의’라는 키치가 잉태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키치가 노스탤지어에 경도되어 있다는 점 역시, 낭만주의와의 친화성을 보여 준다. 즉, 키치는 역사적 현실이나, 동시대적 현상을 몇몇 상투어로 대치하면서, 낭만주의적 세계관과 연관을 맺고 있는 정서적 욕구들에 근거하여 번성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키치는, 낭만주의의 진부한 형태라 할 수 있으며, 키치적 정서를 낭만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키치의 역사적 전개 과정, 부르주아 대중사회에서 키치의 미적,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대한 규명은, 키치의 他者로서의 예술의 순수성, 도덕성을 옹호하는 데 적극 이용되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 예술을 절대화하고 신화화하는 과정에 대한 반발이나 반작용이 등장하면서, 현대예술 역시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 간 예술이었다는 지적이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藝術史的 변천을, 동아시아 政治史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문화혁명에 비견할 수 있다.
문화혁명은, 키치가 原本을 제거해버리는 simulacre的 격변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모더니즘 이론의 지나친 득세가, 모더니즘의 제도화, 보수주의화를 초래하게 되면서, 그러한 모더니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등장하게 되는 현상 역시 그러하다.
모더니즘의 순수성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20세기 후반, 다양한 진영의 다양한 관점(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페미니즘 등등의)에 의해 비판되었는데, 키치와 연관해서 살펴볼 것은, 우선 모더니즘의 시대에, 현대예술 또는 아방가르드와 키치는, 상호 배타적인 예술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참조하면서 작용한 예술이었다는 사실이다.

‘랭보’에서 시작해서 ‘다다’와 超現實主義를 거치면서, 혁명적 ‘아방가르드’들은, 자신들의 전복적인 목표를 위해, 키치에서 직접 차용한 다양한 요소와 기술을 사용했다. 키치는, 아방가르드가 일종의 유행이 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가장 섬세한 시인과 지식인 집단 내에서, ‘부정적’ 명성을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
逆으로 키치는, 성공한 아방가르드를 모방하고 차용함으로써 이득을 취해 왔다. 키치 예술가는, 아방가르드의 비관례성(새로움)이,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나 널리 수용되거나, 심지어 상투형이 될 정도에 이르렀을 때에만, 아방가르드를 모방하고 복제했다. 이런 점에서 키치는, 지속적으로 資本的 아방가르드 안에서 재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적 아방가르드가 인민민주주의적 키치를 사용하고, 반대로 인민민주주의적 키치가 자유민주주의적 아방가르드의 장치를 이용했음은, 키치와 아방가르드를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전통으로 보는 엘리트들과 달리, 명료한 이분법을 통해 설명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1960년대 등장한 ‘팝 아트’로 인해, 이제 20세기 후반의 예술은, 모더니즘 예술과의 급진적인 단절 속에서 이해되게 된다. 미국의 ‘저급한’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고급문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팝 아트’(광고전단, 수프 깡통, 영화 스타와 같은 대량 소비문화의 요소들을 이미지화) 이래, 키치의 부정적인 함의는 재고의 대상이 된다.
대표적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은, 코카콜라 병, 캠벨 수프 깡통,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대중문화의 일상적인 이미지를 담아냄으로써, “천박함, 반복과 단조로움, 권태감을 자아내는 세상의 시시한 것들에, 축복의 세례를 내린다”고 선언한다.
저급예술 혹은 대중문화의 고급예술의 진영으로의 진입을 알린 팝 아트의 국제적인 성공은, 미학적 양식으로 專有된 키치의 영향력이나 의의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사실이다. 팝 아트가 등장하던 1960년대에, ‘수잔 손탁’은, ‘camp’라는 용어를 통해서, 대중문화나 팝 아트를, 기존의 진지한 아방가르드 예술과는 다른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하려고 했다.
‘손탁’에 의하면, 아방가르드로서의 현대예술 혹은 고급예술은 진리, 아름다움, 진지함에 천착하면서, 예술을 도덕적 교훈이나 도덕적 판단에 종속시킨 예술이다.
그와 달리 경박한 것, 과장된 것, 탐미적인 것, 미학적으로 부적절한 것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경향으로서의 캠프 혹은 캠프 취향은, 내용에 대한 스타일의, 도덕에 대한 미적인 것의 승리를 알리는 사건이다. 즉, 아방가르드 예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진지함과 도덕에의 종속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예술의 탐미적이고 유희적인 특성을, ‘손탁’은 캠프를 이론화하면서 정식화하려 했다.
이러한 캠프 현상은, 현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명 ‘강남좌파’라는 일련의 사회적 경향성으로서 발현되고 있다. 참으로 기괴하지만, 지극히 실제적인 江南左派的 搖動의 목적은, 철저한 自己欺瞞에 의한 自己滿足일 따름이며, 결코 진정한 예술작품을 목적하는 행위일 수 없으므로, 응당 키치로서 분별되어야 함이 정당하다.

캠프로서의 예술은, 기존의 도덕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도덕을 제시하려 한, 현대예술의 진지함을 넘어선다. 캠프족은 진지하게 굴지 말고, 놀 것을 제안한다. 삶의 무의미함이나 변혁 가능성에 대한 어떤 믿음도 포기한 캠프족은, 예술의 가치를 遊戲에서 찾는다.
가벼움, 경박함, 도덕적 엄숙주의에 대한 거부, 스타일에의 탐닉이 캠프의 특징이다. ‘손탁’이 말하는 캠프가, 고급예술 진영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새로운 예술인지, 대중문화를 포괄한 후기 자본주의 시대 문화 전체를 말하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손탁’은 캠프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 풍요로움이라는 정신병리를 견뎌낼 수 있는 사회의 문화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캠프는 ‘아도르노’가 말한 문화산업에 의한 자본주의 내 문화 전체의 잠식과 일면 유사하다.
‘손탁’은 단순히 캠프로서의 자본주의 문화 전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캠프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을 통해, 캠프의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캠프 개념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키치를 아방가르드 예술의 他者로서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편협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키치나 캠프 개념은, 오늘날 예술이 자본주의 사회와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러니 자본주의와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을 계속 견지하려는 이들이라면, 키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우리를 매혹시키려 드는 키치의 유혹을 무시하고서, 키치의 他者를 말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키치의 유혹에 순순히 항복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비판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계속 자리할 것이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서민대중에게, 自由民主主義라는 資本的 예술작품과 人民民主主義라는 複製的 키치에 대한 理解는, 그래서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대해 명료히 분별할 수 없다면, 분명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의 이득’을 도모한다며 실행하는 일이, 외려 모두의 삶을 해체해버리는 破裂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소개

▣ 목차





제1장. 존 로크(1632~1704)
1. ‘명예혁명’과 ‘존 로크’
2. 가톨릭교도 ‘제임스 2세’의 갈등 국면
3. ‘토리당’과 ‘휘그당’의 동맹
4. 개신교도 ‘윌리엄’의 정치공작
5. ‘윌리엄’과 ‘메리’의 정치적 명분
6. ‘윌리엄’과 ‘레오폴드 1세’의 협약
7. 군대와 자금을 마련하다
8. ‘암스테르담 의회’가 영국 침공을 공식 승인하다
9. ‘교황의 바람’과 ‘개신교의 바람’
10. 네델란드 함대가 잉글랜드에 당도하다
11. 많은 귀족들이 ‘윌리엄’을 지지하다
12. 런던에서 반 가톨릭 폭동이 발생하다
13. ‘제임스 2세’가 패배하다
14. 런던시민들이 가톨릭교도들을 핍박하다
15. ‘윌리엄’이 런던에 입성하다
16. ‘제임스 2세’가 프랑스로 망명하다
17.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가 공동 집권하다
18. 명예혁명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권력 다툼이다
19. ‘권리선언’이 ‘권리장전’으로서 재승인 받다
20. ‘권리장전’은 왕권에 대한 의회의 우위를 선언한 것이다
21. ‘크롬웰’과 ‘명예혁명’
22. 제1차 영국과 네델란드 전쟁
23. 사실상 ‘명예혁명’은 여러 전쟁을 유발한 유혈혁명이었다
24. ‘명예혁명’은 시민사회와 산업혁명을 유도했다
25. 후대에 여러 국가 헌법의 모범이 되다
26. ‘권리장전’과 미국 헌법
27. ‘권리장전’의 내용
28. ‘존 로크’의 ‘인간오성론’
29. ‘존 로크’의 제반 사상
30. ‘관용에 관한 에세이’
31. 옥스퍼드 기독교 대학에서 공부하다
32. 보수주의자 ‘존 로크’
33. 후원자 ‘샤프츠베리’ 백작을 만나다
34. ‘샤프츠베리’ 백작의 죽음
35. ‘존 로크’의 ‘타블라 라사’
36. 모사설의 관점에서 본 ‘타블라 라사’
37. ‘타블라 라사’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반론
38.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이 되다
39. ‘존 로크’의 ‘통치론’
40. ‘올바른 理性(recta ratio)’을 견지하다
41. ‘자연 상태(the state of nature)’는 조율 가능하다
42. ‘홉스’의 절대왕정을 거부하다
43.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예견하다
44. 자기보존을 목적하는 자연권
45. ‘소유권의 불가침성’이라는 문제
46. 자유주의의 초석이 된 저항권
47. 가족에 토대를 둔 시민적 덕성
48. ‘존 로크’의 제국주의적 편견
49. ‘사회계약론’과 ‘존 로크’
50. 사회계약을 맺게 되는 까닭
51. 사회계약은 권리이며 동시에 책임이다
52. 사회계약에 대한 ‘푸코’와 ‘들뢰즈’의 반론
53. 사회계약의 고대적 기원
54.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론’
55.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
56.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57. 국제법의 기초가 된 자연법 사상

제2장. 장 자크 루소(1712~1778)
1.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2.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3. 5명의 아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다
4. 정치제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
5. 비극 연애소설 ‘신 엘로이즈’
6.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혹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7. 관능적 낭만주의를 표현하다
8. 등장인물과 줄거리
9. 인간 교육론 ‘에밀’
10. 자연주의 교육론
11. 온갖 비난에 대한 자서전 ‘고백록’
12. ‘惡人만이 홀로 있다’
13. 사상가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
14. 性善論者 ‘장 자크 루소’
15. 자기 고백
16.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17. ‘일반의지’와 ‘전체의지’
18. 인간 불평등 기원론
19. 인간 불평등의 원인
20. 고독한 평등주의자
21. 자연으로 돌아가라

제3장.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
1. 정치철학자 ‘토크빌’
2. ‘미국의 민주주의’
3. ‘민주주의의 위협’과 ‘민주주의의 위험’
4. 정치가 ‘토크빌’
5. ‘프랑스 혁명’과 ‘토크빌’
6. 王政에서 共和政으로의 혁명
7. 자본가 계급의 浮上
8. 왕실과 귀족과 성직자 계급의 특권을 붕괴시켜라
9. 황폐화된 프랑스 경제
10. ‘앙시앵 레짐(舊體制)’
11. 소수 지배계급의 권력 독점
12. ‘부르주아지’의 등장
13. ‘목걸이 사건’과 ‘마리 앙트와네트’
14. 啓蒙主義와 ‘부르주아지’
15. 특권 계급의 기득권에 대한 집착
16. 계급 간의 권력 투쟁
17.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바스티유 감옥’ 습격
18. ‘프랑스 인권 선언’
19. ‘프랑스 인권 선언’의 내용
20. 파리 여성들의 ‘생존권 투쟁’
21. 특권 계급이 붕괴되다
22. 가톨릭교회의 붕괴
23. 가톨릭과 왕당파의 ‘방데 반란’이 일어나다
24. ‘방데 반란’의 원인
25. ‘방데 반란’의 진행 과정
26. ‘프랑스 혁명 전쟁’이 일어나다
27. 반혁명파 학살이 자행되다
28. 보통 선거가 제도화되다
29. 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다
30. ‘루이 16세’가 처형되다
31. ‘자코뱅’의 독재정치가 시작되다
32. 황제 ‘나폴레옹’의 등장
33. ‘프랑스 혁명’은 思想革命이다
34. ‘프랑스 혁명’의 국내정치적 발생 원인
35. ‘프랑스 혁명’의 국제정치적 발생 원인
36. 군중이, 집단이 지닌 底力을 깨닫다
37. 自然權과 市民權으로 구성된 人權 개념
38. ‘프랑스 혁명’에 대한 ‘토크빌’의 평가
39.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토크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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