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의 나라 북한

북한의 국가 권력과 주민들의 삶

강진웅 | 오월의봄 | 2018년 10월 1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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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다양한 얼굴을 가진 북한, 도대체 어떤 국가인가?
1930년대 만주 항일무장투쟁부터 21세기 고난의 행군까지
북한 주민의 시선을 통해 북한 사회와 국가 권력을 들여다보다

북한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안내서

진정 남북 관계에 평화가 오고 있는 걸까? 2017년만 해도 북한은 6월에 6차 핵실험을 했고, 11월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형 15형을 발사했다. 그럴 때마다 남북 관계는 얼어붙었고, 곧 전쟁이라도 날 분위기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2018년 김정은의 신년사가 있었고, 2월에 열린 평창올림픽에 북한은 선수단과 응원단은 물론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들을 파견했다. 그런 뒤 2018년 3월 남한 특사들이 북한을 방문해 4월에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근 몇 달 동안 남북 관계는 이처럼 숨 막히게 흘러갔다.

그런데 시시때때로 바뀌는 북한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북한은 도대체 어떤 국가이길래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띠는 것일까? 남북 교류가 활발한 시점에 출간된 [주체의 나라 북한]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북한이라는 국가를 심층 분석한 책이다. 1930년대 만주 항일무장투쟁부터 21세기 고난의 행군, 최근의 탈북 행렬까지 북한의 국가 권력은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며 국제사회에 그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체주의 국가’의 전일적 폭력의 이미지는 물론 만주 빨치산의 전통을 활용한 ‘유격대국가’의 모습, ‘어버이 수령’의 사회적 담론을 확장시킨 ‘가족국가’의 모습, 그리고 21세기 고난의 행군을 헤치며 장관의 파노라마를 보여준 ‘극장국가’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이런 다양한 얼굴의 북한을 바깥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비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여전히 핵무기로 미제와 맞설 자세를 견지하고 있듯이, 내부 주체들의 시선에서 보는 북한은 또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이런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모두 세뇌와 감시의 산물로 이해한다면 북한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만 머무르고 만다. 저자 강진웅은 북한이라는 국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이 살아가는 일상과 그 사회의 내면을 탐색했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시점에서 북한 사회와 국가 권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많은 탈북자들을 만나 진술을 들었고, 다른 출판물에 나오는 탈북자들의 수기와 진술도 참고했다. “이 책에서 필자는 북한 사회에 대한 냉대와 무지를 극복하며 북한을 치유하려는 우월감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에서 북한과 함께하고자 하는 이해의 마음과 분석을 학문적, 실천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주체의 깃발 아래 다양한 형체를 보여주는 국가 권력의 모습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주민들의 삶의 세계를 분석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하나의 시각과 편견에만 치우쳐 있는 기존 북한 연구의 고질적인 폐단을 극복했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 북한 사회의 변화 양상을 담았고, 새로운 시각과 열린 마음으로 북한을 읽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북한의 국가 권력을 관통하는 핵심이 민족주의라는 맥락 속에 이해되어야 하며, 이러한 권력이 북한 주민들의 삶에 스며들어 형성된 산물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통일무용론이 확산되고 있고, 고질적인 이념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 책은 북한 사회와 한국 사회를 동시에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줄 것이다.

저자소개

저 : 강진웅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공부했고,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일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박사후연구원 및 사회학과 강사에 이어 고려대학교 HK교수를 거쳐 현재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학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와 북한의 사회 변동을 연구하고 있으며 열린 관점에서 한반도의 통일 문제와 다문화 시대의 사회 갈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민족주의 이론과 한국 사회의 변동에 관한 저서를 구상 중이며 다문화 교육, 한류, 통일 정책 등을 분석하고 있다.

목차소개

북한 사건 연표
들어가는 말
자료의 활용에 관하여

1장 | 주체의 나라
1_ 민족주의의 야누스
2_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3_ 주체사상의 규율화
4_ 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제일주의

2장 | 항일무장투쟁의 전통과 유격대국가
1_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전통
2_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3_ 혁명 전통의 인간 만들기
4_ 선군정치와 21세기 고난의 행군

3장 | 가족국가의 통합과 해체
1_ 근대 속의 전통
2_ 가족국가의 발전
3_ 절대 권력의 윤리화
4_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4장 | 반미주의와 미시파시즘
1_ 위로부터의 반미주의
2_ 주민들의 삶과 미시파시즘
3_ 도전받는 반미 권력과 미시파시즘의 변화

5장 | 사회주의 생명정치
1_ 전체 인구와 개별 신체의 통제
2_ 과학적 보건위생
3_ 산업 경영과 노동 규율
4_ 주체형 인간 만들기

6장 | 전체주의의 질곡
1_ 전체주의
2_ 해방 정국의 사회 통제
3_ 전후 숙청과 굴라크 체제
4_ 성분과 감시의 사회
5_ 공포정치

7장 | 극장국가의 명암
1_ 국가와 문화
2_ 영도예술과 혁명가극
3_ 극장국가의 상징적 연출
4_ 유격대국가의 극장국가화

8장 | 경제난의 시련
1_ 식량난
2_ 장마당의 등장과 사적 경제 활동
3_ 국가 통제의 약화와 사회적 아노미
4_ 경제난과 젠더

9장 | 탈북과 한국 정착
1_ 시민권과 정체성
2_ 한국의 탈북자 정책
3_ 한국인과 탈북자
4_ 탈북자들의 정체성 분화

10장 | 한국과 북한
1_ 적대적인 분단체제와 종족적 민족주의
2_ 남북 화해와 갈등
3_ 북한 인권
4_ 다문화 한국과 탈북자

나가는 말
미주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주체의 나라, 그리고 민족주의 국가

북한 사회는 주체과학, 주체예술, 주체농법, 주체의학, 주체체육 등 모든 것이 주체로 통하는 ‘주체의 나라’이다. 김정은 정권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아 주체의 전통을 그대로 지속하고 있다. 3대가 만들고 가꾸고 있는 주체사상은 민생단 사건에서 비롯되어 해방과 전쟁을 거쳐 중·소의 외압과 내부 파벌을 척결하는 과정에서 김일성이 세운 이념이자 정치로서, 또한 김정일이 계승한 이론이자 과학으로서 김정은에게까지 계승되어 주민들의 일상에 침투한 신념 체계이자 규율된 정체성이다. 항일무장투쟁에서 주체 사회주의로 달려온 북한의 근대성에서 만주의 유격대 체제가 근대국가의 구조로 정착되었고, 세포가족이 가족국가에 통합되는 한편 적대계층에 대한 탄압과 전체주의적 폭압이 노출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의 집합적 기억을 주조하며 반미주의의 철옹성을 쌓은 북한은 경제난 이후에는 선군정치와 고난의 행군을 벌여 핵 위기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고, 21세기 〈아리랑 축제〉의 향연을 통해 ‘불멸의 태양민족’의 후예로서 ‘강성대국의 건설’을 희원했다.
북한은 해방과 전쟁을 거쳐 국내외의 복잡한 정세에 맞서 주체와 반미의 나라로 발돋움했다. 1990년대 초부터는 ‘사회주의 없는 사회주의 국가’, 즉 온전한 민족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주체’의 얼굴을 발전시키며 폐쇄적인 민족주의 국가로 치달은 북한의 여정은 유격대국가, 가족국가, 반미국가, 생명정치, 전체주의, 극장국가 등의 모습이 다양하게 뒤엉켜 나타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저자 강진웅은 북한의 국가 권력을 관통하는 핵심이 ‘민족주의’라고 말한다. 곧 민족 독립과 내적 독재라는 ‘민족주의의 야누스’를 답습했다고 말한다. 민족주의는 한국전쟁 이후 주체 노선과 반미주의와 함께 발전했고,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붕괴한 직후에는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민족의 얼굴을 한 주체 사회주의에 정착한 순간 북한은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다.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독자 노선을 추구하며 고립되어갔고, 장기적인 분단체제와 군사 경쟁으로 인해 경제가 기울었으며 외부의 적들과 싸우기 위해 내부 독재를 강화해야 했다. 두 얼굴의 민족주의에서 북한은 미래와 개방의 길이 아닌 과거와 폐쇄의 길을 택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과거의 상처를 현재화하고 미래로까지 확장하려 했던 것이다. 다수의 제3세계 신생 독립국가들에서처럼 북한의 근대성은 독립을 위한 민족 자주의 길을 제시했으나, 국가 건설 이후에는 민족의 가치를 절대화하며 내부의 이단자를 탄압하는 독재의 길로 권력화되었다.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
1장은 북한에서 다양한 얼굴의 원초적 배경이 되는 주체사상이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과정을 탐색한다. 구체적으로 주체사상이 항일무장투쟁에서 시작되어 사회주의적 애국주의와 주체 노선을 거쳐 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제일주의라는 민족주의의 얼굴로 변화된 과정을 분석한다. 그동안 북한은 전체주의, 봉건왕정, 세습국가, 깡패국가, 범죄국가, 불가능한 국가 등 다양한 부정적 수식어로 회자되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난으로 공장의 국가 재산을 빼돌려 인민재판을 받거나 목숨을 걸고 탈북한 후 중국에서 체포, 송환되어 강제노역에 처해지고 성경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을 당한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실상은 이제 그리 낯선 모습만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연이은 핵실험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 3대 세습은 서구와 한국 언론의 비난과 조롱의 표적이 되어왔다. 그러나 수많은 아사자를 낳고 부시가 붙여준 ‘악의 축’이라는 불명예를 안으면서도 북한 정권은 전근대적인 공포정치를 감행하며 미국과의 대결 속에서 선군정치를 강행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모부를 하루아침에 숙청하고 이복형마저도 외국 공항에서 암살하는 등 벼랑 끝 외교로 위태로운 정권을 이어가는 북한의 모습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북한의 폭력성과 이에 대한 서구와 남한의 오랜 반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닫힌 사회의 내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접근 불가능한 사회를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노력과 함께 좀 더 큰 틀에서 그 사회를 다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체제와 이념의 정당성 문제와는 별개로 우리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북한의 통치와 정권의 안팎을 동시에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북한의 행위와 체제가 그들 나름의 상식과 논리에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보천보전투, 토지개혁, 한국전쟁, 주체사상, 우리식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로 이어지는 북한의 역사적 경로와 정치적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내외의 비판을 무릅쓴 북한의 처절한 몸부림이 그들 나름의 내적 논리와 정당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항일무장투쟁의 전통과 유격대국가
2장은 주체의 나라 북한이 유격대국가를 발전시키면서 항일무장투쟁의 전통을 사회적으로 재구성한 측면을 분석한다. 항일 빨치산의 혁명 전통은 권력의 신성화 작업을 통해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고, 북한 정권은 정치, 경제, 군사, 출판, 문예, 교육, 일상생활 등 사회의 전 분야에서 항일유격대의 전통을 계승하며 현재화하고자 노력했다. 1974년 김정일에 의해 제기된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국가적 구호는 국가와 사회, 전 인민의 삶을 좌우하는 사상적 슬로건이었던 것이다. 항일무장투쟁의 전통은 국가의 지도 이념이자 규율의 수단이었고, 주민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문화적 현상이었다.

유격대국가의 또 다른 얼굴, 가족국가
3장에서는 유격대국가의 또 다른 얼굴로서 발전한 가족국가의 모습을 탐색한다. 국가와 사회의 내재적 순응과 통합을 이룬 가족국가의 모습은 유교문화적 접근의 논자들이 주로 분석한 탐색 대상이었다. 전통적인 유교문화가 사회주의의 근대성에 발현된 것으로 평가한 유교문화적 접근은 전통적인 효가 근대적인 충으로 확대되어 국가가 하나의 ‘사회주의 대가정’을 형성한 것으로 보았고, 이러한 국가-사회의 통합은 정치 권력과 유교문화가 공명한 결과로 해석되었다. 브루스 커밍스와 이문웅 역시 가족국가의 문화적 권력이 사회로 침투하여 국가와 사회, 국가와 개인의 내재적 순응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아래로부터 국가 권력이 정당화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내재적 통합을 이룬 가족국가 체제는 경제난의 시련을 겪으며 세포가족이 이탈하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

반미주의와 미시파시즘
4장에서는 북한의 국가 권력이 반미주의를 통해 사회로 확장된 과정을 탐색하며, 반미 권력이 주민들의 일상에서 재구성된 미시파시즘을 분석한다. 전체주의적 접근에서 주로 묘사하듯이, 사회주의 국가 권력은 어떠한 잡음과 마찰 없이 관철되는 전지전능한 실체가 아니라 항시 내적인 긴장을 표출하는 역동적인 변화의 산물이다. 기든스의 지적처럼, 현대 국가의 전체주의적 통치totalitarian rule는 국가가 사회로 침투하여 개인을 지배하는 고도로 합리화된 통치 방식이었다.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체제 역시 문명과 폭력을 내포한 모순적인 근대성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사회구조와 체계에서 개인의 정치적 의식과 행위로 이어지는 파시즘의 미시적 작동 방식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의 국가 권력 역시 폭압의 거시 정치를 행사했지만, 반미의 미시파시즘, 항일무장투쟁 전통의 합리화, 주체사상의 규율화에서 결국 드러나듯이 규율 권력의 기제를 동원한 미시 정치 또한 행사했다. 따라서 미시파시즘의 프리즘을 통해 북한의 반미 권력이 주민들의 삶에 어떻게 침투해 재생산되었는가를 경제난 전후를 비교하며 탐색해보고 있다.

사회주의 생명정치
5장에서는 북한의 사회주의 생명정치를 탐색한다. 소비에트 시스템에서 출발한 근대 북한의 체제는 주체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인구, 보건위생, 산업 경영, 주체 형성 등 근대 생명정치의 기제를 국가 건설과 사회 동원에 활용하고자 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지배하에서도 북한 정권은 과학적 국가 경영과 개인 주체의 규율적 통제라는 생명정치의 기제를 강화했고 이를 통해 서구의 근대국가가 지향했던 문명화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6장에서 드러나듯이 북한의 사회주의 생명정치는 문명화의 이면에서 국가 인종주의를 야기하며 전체주의적 폭력과 굴라크 체제를 형성했다.

전체주의의 질곡
6장에서는 숙청, 처벌, 감시, 통제로 이어지는 북한의 얼굴 중 가장 어두운 단면인 전체주의의 모습을 분석한다. 북한은 야누스적 근대성, 문명화, 생명정치 속에서 폭압의 권력을 배태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극단화되어 공개처형 등 전근대적인 처벌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소비에트 시스템에서 사회주의 생명정치를 추구하며 주체의 인간형을 창출하려 했던 북한 역시 전체 인구를 과학적으로 통제하며 주민들을 전방위로 동원하는 가운데 외세와 외세에 기댄 내부 파벌들과 정치적 이방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해 말살하는 폭압의 권력을 행사했다. 탈북의 물결과 공포정치의 전횡에서 드러난 북한의 사회주의 근대성은 생명 권력의 야누스와 전체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극장국가의 명암
7장에서는 북한의 국가 권력이 문화를 활용해 상징적으로 사회를 동원하는 극장국가의 얼굴을 탐색한다. 1970년대 초 영도예술에서 비롯된 북한의 극장국가적 특성은 현재 대내외적 위기를 돌파하며 유격대국가의 자부심을 형상화하는 〈아리랑 축제〉에서 잘 드러난다. 태양민족의 위대함을 설파한 극장국가의 의례와 공연은 21세기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장관의 권력을 구가하며 주민들을 재결집하고 있다. 식량난과 핵 위기 상황에서 전체주의적 폭압의 기제를 강화하는 한편 의례문화에서 생성된 상징 권력을 통해 유격대국가의 위상을 회복하며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난의 시련
8장에서는 경제난의 시련을 거치며 변화한 북한 사회의 모습을 분석한다. 유격대국가, 가족국가, 극장국가 등의 얼굴을 드러낸 북한의 체제는 1990년대 중반 주민들의 대량 아사와 탈북 사태를 빚은 식량난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로써 북한 체제에 중요한 분기점이 형성된다. 유격대국가의 폭력성이 노골화되고 가족국가의 세포가족이 이탈하면서 철옹성 같은 반미 권력이 이완되기 시작한 것도 모두 이 때문이었다. 이 책의 인터뷰 응답자들 대부분은 식량난 이후에 북한을 탈출했고, 순수하게 경제적인 이유로 탈북한 응답자들이 전체의 반을 차지한다. 8장에서는 경제난의 여파와 함께 변화된 북한의 사회상을 살펴보고,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의 삶과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정체성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식량 위기는 동북아시아에 수많은 탈북 난민을 양산해왔고 이들 대부분은 한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2017년 현재 약 3만 명의 북한 이탈 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명시되어 있듯이 한국 정부는 북한을 대한민국의 일부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자들은 한국의 법적 시민권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법적, 정치적 시민권의 문제와는 별개로 탈북자들은 국가와 개인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더 복잡한 사회적 과정을 거치며 실질적인 한국 시민이 된다. 혈통을 중심으로 한 법적 시민권과 별개로 실제 현실에서 탈북자들의 사회적 시민권은 다양한 방식에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냉전에 기반을 둔 남북 관계가 지배적이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정부는 ‘자유귀순용사’로서 탈북자들을 정치적으로 환영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그 이면에서는 ‘괴뢰 적성국가’의 국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병행했다. 그러나 식량난 이후 급증한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거버넌스에 중요한 변화가 일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탈북자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계속 축소되었지만 대신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 체계를 바탕으로 탈북자들의 자립적 정착을 지원하는 거버넌스가 새롭게 모색되었다. 소수의 정치적 망명자들에 대한 기존의 보안기관 중심의 하향식 지배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시민사회의 확장된 네트워크 안에서 탈북자 개인의 삶을 관리하는 미시적 규율의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9장에서는 이러한 거버넌스하에서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정체성을 동화, 통합, 혼돈, 저항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한반도의 냉전적 분단체제, 한국과 북한
10장은 분단체제와 남북 관계라는 틀에서 한국과 북한의 문제를 다룬다. 냉전과 탈냉전의 역사적 굴곡을 거치며 북한은 남한과 화해, 협력을 추구하면서도 경쟁하고 반목해왔다. 1972년 남북공동성명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핵실험에서 촉발된 갈등에서 드러나듯 남북한은 여전히 분단정치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뿔 달린 공산 괴뢰’와 ‘미제 승냥이 놈들’에 대한 상호 간 악마화는 한반도의 냉전적 분단체제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어두운 그림자는 2000년대 초반 남북 화해와 통일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를 낳은 신냉전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10장에서는 냉전과 탈냉전을 거친 남북 관계 및 민족 갈등과 화해의 문제를 다루며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성찰하고 21세기 다문화 한국의 변화에서 탈북자들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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