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 정도전의 홍범구주와 이데올로기 정치학, 불씨잡변

정도전 지음(탁양현 엮음) | e퍼플 | 2018년 09월 0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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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三峯 鄭道傳의
洪範九疇와 Ideologie 政治學
그리고 佛氏雜辨



三峯 鄭道傳의 政治哲學을 大別하는 槪念은 洪範九疇와 Ideologie다. 정도전의 시대에, 세계의 覇權國은 두말할 나위 없이 中國이었다. 때문에 정도전은 政權의 簒奪을 위해 중국과의 外交로써, 그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 정도전의 시대는, 高麗王朝에서 朝鮮王朝로 易姓革命이 實行되었다. 그 혁명의 중심에 정도전이 있었다.
당시의 혁명은 理念革命의 성격이 짙다. 그 이념혁명의 주된 대상은 佛敎思想이었다. 그 실제적인 검증자료는 말할 나위 없이 佛氏雜辨이다. 정도전은 불교사상을 정치철학적으로 論破함으로써, 새로운 政權의 정당성을 모색한 것이다. 물론 佛敎만이 王朝交替의 빌미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혁명의 動力으로 삼으려고 했던 정도전의 시도는, 지극히 현대적인 革命論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삼봉 정도전의 혁명론은, 그 전반적인 이념적 바탕을 書經의 洪範九疇에 두고 있다. 나아가 정도전이 활용하는 홍범구주는 箕子朝鮮에 사상적 기원을 둔다. 때문에 정도전은 자연스레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을 기자조선에 두게 된다. 이는 역성혁명 당시 朝鮮이라는 國號가 결정된 까닭이기도 하다.

‘書經 甘誓’에서는, ‘五行’이 ‘서경’의 시대로부터 지극히 정치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임금’의 아들 ‘啓’는, ‘우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세습 받는다. 그런데 庶兄 ‘有扈氏’가 그 왕위계승에 不服하자 정벌을 감행한다. ‘계’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보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유호씨’가 ‘五行’의 원리를 저버리고, ‘三正’을 태만히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벌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水火木金土의 오행’의 원리나, ‘天地人 三才’의 바른 도리로서의 ‘삼정’은 지극히 철학적인 원리들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거부가 정벌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에서 ‘오행’과 ‘삼정’을 해석하여 자기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불복에 대한 보복이라는 실제적인 정벌 이유와는 특별한 연관이 없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계’는 만약 ‘命’을 따르지 않는다면, 정벌의 대상인 ‘유호씨’는 물론이며, ‘하’나라 朝廷의 신하일지라도 아주 가혹한 刑罰을 부과할 것임을 선언한다. 이러한 선언이 가능한 것은, ‘계’의 명령은 ‘天命’에 따라 ‘天罰’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경’의 시대에는 응당 이러한 논리를 信念하므로 정치보다는 종교에 가까운 측면이 있지만, 그 명령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철학적 원리를 거론하여 정치적인 결정을 하므로 지극히 정치철학적이다. 더욱이 가혹한 형벌의 부과가 가능한 것은 ‘오행’이나 ‘삼정’의 권위가 그만큼 강력했음을 示唆한다.

‘조선왕조’에서 ‘五行’에 대한 이해는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다. ‘조선왕조’ 前期 ‘徐居正’은 ‘四佳集’에서 이와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다. ‘서거정’의 ‘陰陽五行’에 대한 이해는,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에게서 일반적인 것이다. ‘서거정’은, ‘聖人’에 의해 제작된 ‘홍범구주’나 ‘주역’에 의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에 내재된 철학적 理致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실제로 점을 쳐서 ‘吉凶’이나 ‘善惡’을 결정하는 일은 排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행’이라는 것은 천지자연에서의 삶의 조화를 목적하여 도출된 철학적 사유방식이며, 그것으로써 운명을 점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점을 치더라도, 그것은 ‘홍범’에서 이르는 ‘稽疑’나 ‘庶徵’의 경우처럼 일종의 幾微이며, 그러한 기미를 잘 살펴서 ‘天命’을 좇아 ‘人性’을 올바르게 하는 삶의 방향을 摸索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서거정’은 태어난 歲月日時의 ‘四柱’로써 ‘세 가지 등급의 운명[三命]’ 따위를 거론하는 牽强附會를 例로 들어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도 ‘甘誓’의 시대처럼, 현실적으로 ‘오행’은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 ‘우임금’의 아들 ‘계’는 ‘禪讓’이 아니라 ‘世襲’으로써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러한 ‘夏’나라의 政治權力的 변화는, 이후 ‘중국의 왕조’들은 물론이며 ‘조선왕조’까지도 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측면은, ‘오행’의 해석과 활용에 있어 ‘감서’의 시대와 ‘조선왕조’가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짐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조선왕조’에서는 ‘오행’을 거스르면 ‘천벌’을 받게 된다는 논리를 확장하여 ‘道敎’나 ‘佛敎’를 비난하고, 지속적으로 배척한다. ‘조선왕조’가 政權의 정통성을 보장 받기 위해 ‘事大主義的 儒學’을 國是로 삼았으며, 때문에 ‘도교’나 ‘불교’의 경우처럼 ‘유학’ 이외의 학문으로 분류되는 것들을 異端이나 邪道로 규정하고서 탄압했음은 周知의 사실이다. 이는 ‘오행’ 개념을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월 10일 乙亥日 2번째 기사(1400년, 明 建文 2년)에는, ‘定宗’이 ‘經筵’에서 강론하는 내용이 있다. 이 記事로써,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이 ‘부처’를 귀신과 유사한 존재로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은 지극히 정치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定宗’은 자기의 실제적인 체험을 거론하며, 흔히 ‘샤머니즘’이나 ‘民間信仰’으로 분별되는 것에 대한 ‘河崙’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부처’가 주장하는 ‘慈悲’와 ‘不殺生’의 가르침은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륜’은 ‘부처’의 ‘자비’나 ‘불살생’은 당시 ‘西域’의 상황에서 유효할 따름이며, ‘불교’의 핵심 敎理인 ‘輪迴’나 ‘報應’ 역시 ‘유교’의 철학적 인식과는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이제 談論은 神話의 차원으로 飛躍한다. ‘정종’이 어떤 의도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정종’은 ‘부처’의 ‘誕生說話’와 ‘死後地獄說’에 대해서 묻는다. ‘정종’은 동생 ‘李芳遠’에 의해 왕위에 오른 탓에, 아무런 實權이 없는 왕이었다. 때문에 재위 2년 만에 寶位를 ‘이방원’에게 넘겨주고 ‘上王’으로 물러난 인물이다.
따라서 위의 기사 내용이 재위 2년에 발생한 일을 기술한 것이므로,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내재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없지 않다. 여하튼, ‘정종’의 질문에 대한 ‘하륜’의 답변은 표면적으로는 소박하며 신념에 차 있다. ‘부처’가 사람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거나, 사람이 죽으면 地獄으로 간다는 것은, 한갓 似而非의 惑世誣民에 불과하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음양오행’의 원리를 설명한다.
‘하륜’의 論理를 살필 때, 그가 발언하는 ‘음양오행’이 似而非的이지 않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음양오행’ 역시 신화적인 神異의 차원에서 작동할 때에는, 그 폐해가 별다를 게 없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하륜’은, 당시 ‘정종’의 정치적 立地나 ‘조선왕조’ 초기의 政局을 思慮한, 정치적 의도가 내재된 발언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한 답변에 대해 수긍하는 ‘정종’의 태도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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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조선왕조’의 정치철학적 설계자 ‘鄭道傳’은 ‘상’나라 ‘걸왕’을 정벌하고서 ‘주’나라를 세운 ‘무왕’ 그리고 ‘기자의 홍범’과의 정치적 관계 등에 착안하여, ‘기자’와 ‘홍범구주’를 ‘조선왕조’의 정치적 정통성을 정립하는 방편으로서 활용한다. 수천 년의 역사적 間隙을 극복하고서 ‘기자의 홍범’이 현실정치의 표면으로 다시 浮上한 것이다. ‘정도전’은 ‘朝鮮經國典’에서 그 정당성을 선언한다.
‘정도전’은, ‘기자’가 ‘주’나라 ‘무왕’에게 ‘홍범구주’로써 도덕정치의 큰 법칙을 설명하였고, 나아가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8조’의 법령을 지어 ‘朝鮮’에서 실시하였으므로, 이에 정치와 교화가 성하게 행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웠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정도전’의 선언은 ‘조선왕조’ 말기까지 유효하게 작동한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물론이며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이렇게 단순하고 간소한 ‘아홉 가지 정치법칙’을 만족시키는 정치를 실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기자’가 ‘홍범’으로부터 敷衍하였다는 ‘八條之敎’ 혹은 ‘八條禁法’은 ‘箕子朝鮮’에서 시행한 ‘여덟 가지 금지법규’인데, 현재에는 殺人禁止, 傷害禁止, 偸盜禁止 등이 전해진다.
‘팔조지교’ 역시 ‘홍범구주’처럼 지극히 간소하며 단순한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현재에 이르도록 정치의 근본이 되는 것이지만, 그렇게 간소하며 단순함에도 그것들을 실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으니, 근본을 이루는 일은 그만큼 至難한 작업임을 알 수 있다.

‘書經’의 經書的 의미는 책이름인 ‘書’에 담겨있는데, ‘서’는 ‘성인의 말씀[曰]’을 ‘붓[聿]’으로 적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인의 발언은 물론이며, ‘성인’의 말씀일지라도, 모든 것이 기록될만한 자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성인’의 발언일지라도 ‘天下’의 ‘다스림[治]’에 연관된 것이어야만 기록할만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 바로 ‘서경’이다.
그리고 그런 ‘서경’에서도, 정치철학적 핵심을 담고 있는 것이 제4권 ‘周書’의 제6편 ‘홍범’이다. ‘서경’은 모두 4卷(혹은 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堯舜’의 시대를 기록한 ‘虞書’다. 제2권은 ‘夏’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夏書’다. 제3권은 ‘商’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商書’다. 제4권은 ‘周’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周書’다. ‘홍범’은 제4권 ‘주’나라의 역사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홍범’은 ‘상’나라의 遺臣 ‘箕子’와 ‘주’나라의 開祖 ‘武王’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물론 ‘기자’가 ‘홍범구주’를 정돈한 것은 ‘요순’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니, ‘서경’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이해함이 타당할 것이다.
‘서경’은 ‘漢代’ 이후에 ‘尙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尙’은 숭상한다는 의미보다는 ‘上’과 통하여 ‘上代의 書’라는 뜻을 갖는다. ‘송대’에는 다시 ‘書經’이라 불리게 된다. 그리고 ‘서경’의 주석서를 ‘書傳’이라고 한다. 때문에 현재에도 ‘書經’을 ‘書傳’ 혹은 ‘商書’라고 混用한다. 이렇게 ‘書經’은 모두 4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편 5話, 2편 4화, 3편 17화, 4편 32화로서, 총 4편 58화이다.
‘채침’은 ‘서경집전’에서, ‘서경’의 의미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二帝三王’의 정치는 ‘道’에 근본을 두었고, ‘二帝三王’의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두었으므로, 그 마음을 알면 ‘도’와 ‘정치’를 진실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묘한 ‘하나’로서 ‘中道’를 지킴은 ‘堯舜禹’가 서로 전수한 ‘心法’이고, ‘中’을 세우고 ‘極’을 세움은, ‘商’나라 ‘湯王’과 ‘周’나라 ‘武王’이 서로 전수한 ‘심법’이기 때문이다.
‘德’과 ‘仁’과 ‘敬’과 ‘誠’이 글자는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하나이며, 모두 이 마음의 묘함을 밝힌 것이다.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마음으로부터 표출되는 바를 엄하게 하였고, 백성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말미암아 베풀어짐을 삼갔으니, ‘禮樂’과 ‘敎化’는 이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典章’과 ‘文物’은 이 마음이 드러난 것이며,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나라가 다스려져서 천하가 평안해짐은, 이 마음이 미루어 확대된 것이니, ‘마음의 덕’이야말로 성대하다는 것이다.
‘서경집전’은, ‘書經’이 ‘동아시아 문명권’의 政治哲學書로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텍스트이므로, 기술된 내용의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것이다. 이를 참조할 때, ‘채침’은 ‘서경’의 해석에 있어 ‘人文主義’의 측면에 집중한다. ‘인문주의’란, ‘홍범’의 ‘天命主義’를 벗어나 ‘人間文明’의 실현을 지향함이다. 즉, ‘하늘의 명령’을 극복하고서 ‘인간의 문명’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南宋’의 ‘性理學’이 추구하는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후 ‘홍범’을 정치철학적 國是로 삼으며, ‘성리학’을 학문적 ‘道統’으로 삼는 ‘조선왕조’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진다. 이러한 분위기가 그릇된 것은 아니며, ‘조선왕조’ 시절까지도 충분히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홍범의 정치철학’이 현대사회에서 의미를 갖는 측면은, ‘天命’과 ‘人文’의 조화에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 ‘인문주의’를 짐짓 ‘인간중심주의’와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인문’은 ‘인간중심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 이후, 인류는 철저히 인간중심주의적 성향을 선호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 ‘神中心主義’으로부터 벗어나 ‘人間中心主義’를 실현하여, 서구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으며, 현대문명을 일군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크게 그릇되지 않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環境破壞, 物質羨望, 生命輕視 등은, 인간중심주의적 편향에 의한 폐해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중심주의’에 의해 오히려 非人間化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홍범의 정치철학’을 논함에 있어, ‘書經의 洪範’과 ‘箕子의 洪範’에 대한 차이를 明瞭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서경의 홍범’은 ‘經書로서의 서경’에 포함된 ‘홍범’이라는 篇名이다. 이는 歷史學的이고 書誌學的인 의미가 크다. 그런데 ‘기자의 홍범’은 지극히 政治學的인 개념으로서 작동한다. 특히 ‘조선왕조’에게 그 의미는 各別하다.
‘조선왕조’의 정치철학을 설계하고 정립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箕子의 洪範’에 대하여 규정한다. ‘기자’는 ‘武王’에게 ‘홍범’으로써 ‘도덕정치’의 큰 법칙을 설명하였다. 나아가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8조’의 법령을 지어 나라 안에서 실시하였다.
이에, 정치와 교화가 성하게 행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웠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이름이 천하의 후세에 이처럼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국호를 다시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에, ‘箕子의 善政’ 또한 마땅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하므로, ‘明’나라 ‘天子’의 덕이 ‘周’나라 ‘武王’에게 부끄러울 게 없는 것처럼, 우리 ‘전하(이성계)’의 덕 또한 어찌 ‘기자’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장차 ‘홍범’의 학문과 ‘8조’의 법령을 ‘조선왕조’에서 다시 시행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렇게 ‘서경’이라는 原典으로부터 분리된 ‘기자의 홍범’은, 하나의 정치철학적 개념으로서 작동한다. 이러한 ‘홍범’은 역사적인 史實이나 실제적인 事實과도 큰 연관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조선경국전’의 선언은 일종의 정치적 선동이며, 그것이 목적하는 바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곧 ‘기자의 홍범’이다. 따라서 ‘서경의 홍범’과 ‘기자의 홍범’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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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소개

▣ 목차



서설: 삼봉 정도전의 홍범구주와 이데올로기 정치학 그리고 불씨잡변
1. 불교의 윤회설에 대한 비판
2. 불교의 인과설에 대한 비판
3. 불교의 심성론에 대한 비판
4. 불교의 작용이 곧 ‘성’이라는 논변에 대한 비판
5. 불교의 심적론에 대한 비판
6. 불교가 ‘도’와 ‘기’를 잘 알지 못함에 대한 비판
7. 불교가 인륜을 저버림에 대한 비판
8. 불교의 자비에 대한 비판
9. 불교가 규정하는 ‘참과 거짓’에 대한 비판
10. 불교의 지옥설에 대한 비판
11. 불교의 화복론에 대한 비판
12. 불교의 걸식에 대한 비판
13. 불교의 선종과 교종에 대한 비판
14. 유가와 불가의 같고 다름에 대한 논변
15. 불법이 중국에 들어옴에 대한 논변
16. 불교를 섬겨 ‘화’를 얻음에 대한 논변
17. ‘천도’를 버리고 ‘불과’를 논함에 대한 비판
18. 불교를 극진히 섬길수록 왕조의 연대가 단축되었음에 대한 논변
19. 이단을 물리침에 대한 논변
20. 저자의 후기
21. ‘권근’의 서문
22. ‘윤기견’의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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