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집 - 스테디북 38

김소월 | 청목사 | 2005년 01월 06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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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국민시인' 김소월의 대표시들을 한 데 모은 시집. 「진달래꽃 」「금잔디」「산유화」 등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 보았을 주옥같은 명시를 다시 감상할 수 있다. 비교적 자세한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도 함께 실려 있다.

저자소개

아버지 김성도와 어머니 장경숙 사이의 남매중 장남. 본명은 정식. 백일후에 평북 정주군 곽산면 남단동 569번지 본가로 돌아옴. 1904년 아버지가 정주,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에게 폭행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킴. 이후 할아버지 상주의 훈도 아래 성장하면서 학문 수학. 1907년 할아버지가 사랑에 개설한 독서당에서 훈장을 초빙, 한문 수학. 1909년 사립 남산학교에 입학, 최인수, 오명한, 김상섭, 김의도 등을 사귐. 1915년 남산학교 졸업. 4월에 오산학교 중학 부에 입학, 이때 같은 학교에 재직하고 있던 스승 김억의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 (20년대 초에 발표한 대부분의 시편은 이때 쓰여진 것이라 함.) 1916년 구성군 평지동의 홍명희의 딸 단실과 결혼. 그녀는 소월보다 3세 연상이었음. 1919년 오산학교가 3·1운동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문을 닫게 되자, 졸업 예정자로서 졸업장을 받게됨. 장녀 구생 출생. 1920년 시 「낭인의 봄」,「야의 우적」,「오과의 읍」,「그리워」,「춘강」을 『창조』5호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 차녀 구원 출생. 1922년 배재고보 5학년 편입, 시「금잔디」,「엄마야 누나야」,「닭은 꼬꾸요」,「바람의 봄」,「봄밤」,「열락」,「진달래꽃」,「먼 후일」등을 『개벽』에 발표, 그 외에도 많은 시편을 발표함. 1923년 배재고보 졸업. 고향에 돌아와 한동안 아동교육에 종사. 도일하여 동경상대 입학(낙제했다는 설도 있음.) 9월에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이후 4 개월 간 서울 청담동에서 유숙, 나도향과 사귐. 시 「임의 노래」,「옛이야기」,「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가는 길」,「산」등을 『개벽』에 발표, 그 외에도 많은 시편을 발표함. 1924년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돕기 위해 낙향. 영변을 다녀온 후 김동인 김찬영, 임장화등과 『영대』동인으로 활동, 처가가 있는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으로 이사. 장남 준호 출생. 시 「산유화」,「생과 사」,「명주 딸기」,「옛임을 따라가다가 꿈 깨어 탄식함이라」등을 『영대』에 발표함. 1925년 시집『진달래꽃』을 매문사에서 간행(127편 수록). 1926년 구성군 남시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개설, 경영. 차남 은호 출생. 시 「잠」등 9편을 『조선문단』에 발표. 이 백의「밤가마귀」등 역시를 『조선문단』과 『가면』에 발표함. 1929년 시「저급의 생활」을 발표했으나, 일제의 검열로 일부분을 삭제 당함. 산문시 「길차부」,「단장1」을 『문예공론』에 발표, 이 무렵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통음을 함. 1934년 소월이 그리워하던 고향 곽산에 돌아가 조상에 성묘함. 이해 12월 24일 오전 8시 음독 자살한 시체로 발견됨. 1935년 『신동아』2월호에 「김소월씨 행장」과「김소월 조시」가 게재됨. 1939년 김억이 엮은 『소월시집』이 박문서관에서 간행됨(시80편, 시론1편 수록). 1961년 김영삼씨가 성문각에서 『소월 정전』을 간행함. 1966년 하동호, 백순재, 공편의 『못 잊을 그 사람』이 양서각에서 간행됨(시 201편 수록). 1968년 3월에 한국일보사에서 서울 남산에 시비건립. 1970년 소월의 숙모인 계희영 여사 편의 『소월 선집』이 장문각에서 간행됨.

목차소개

제1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제2부 진달래꽃 제3부 초혼 제4부 산유화 제5부 엄마야 누나야 제6부 금잔디 제7부 먼 후일 해설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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