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 스테디북 46

정약용 | 청목사 | 2005년 01월 1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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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다산 정약용의 저서로,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들의 바른 길을 적은 계몽서이다. 부임육조, 율기육조, 봉공육조, 애민육조, 이전육조, 호전육조, 예전육조, 병전육조, 형전육조, 공전육조, 진황육조, 해관육조 등의 내용을 소개하고 각 항목마다 간단하게 해설을 하고 있다.

저자소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1762년(영조 38)에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지금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4남 1녀 가운데 4남으로 출생했으며 1836년 향리에서 서거하였다. 본관은 나주이며 관명(冠名)은 약용(若鏞), 자는 미용(美鏞)·송보(頌甫), 호는 사암(俟菴)·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이다. 어머니 해남 윤씨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후손으로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는 다산의 외증조부이다. 22세에 경의진사가 되었으며 암행어사·참의·좌우부승지 등을 거쳤고『내강중용강의』(內降中庸講義),『내강모시강의』(內降毛詩講義) 등 유학경전에 관한 저술을 하였으며, 1789년 주교(舟橋) 준공 때 규제를 만들었고, 1792년 수원성의 규제를 짓고 ’기중가도설’(起重架圖設)을 지어 4만 냥을 절약하였다. 1800년 정조가 죽자 고향으로 돌아가 경전을 강(講)하면서 당(堂)에 여유(與猶)라는 편액을 달았으며 이때『문헌비고간오』(文獻備考刊誤)를 완성하였다. 정조가 승하한 다음해에 책롱사건(冊籠事件)으로 체포, 투옥되었으며 출옥되자마자 포항 장기에 유배되어 전라남도 강진으로 이배될 때까지 9개월간 머물렀다. 강진군에 있는 다산학의 산실이 된 다산초당에서는 11년간 있으면서 방대한 저술을 하였다. 『주역심전』(周易心箋),『상례외편』(喪禮外篇)을 비롯해서『시경강의』(詩經講義)『춘추고징』(春秋考徵)『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맹자요의』(孟子要義)『대학공의』(大學公議)『중용자잠』(中庸自箴)『악서고존』(樂書孤存)『방례초본』(邦禮艸本, 뒤에『경세유표』로 개명)『목민심서』(牧民心書) 등을 차례로 저술하였고, 1818년 고향으로 돌아와『흠흠신서』(欽欽新書)『상서고훈』(尙書古訓) 등을 지어 그의 6경4서와 1표2서를 완결지었다. 회갑 때는 자서전적인 기록인 ’자찬묘지명’을 남겼다. 실학의 집대성자로 일컬어지는 다산은 국가 체제의 전반적인 개혁안으로서『경세유표』를 지었는데 이 책은 실학의 국가개혁론으로는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자소개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어문학회에 근무한다.

목차소개

부임 육조 赴任六條 율기 육조 律己六條 봉공 육조 奉公六條 애민 육조 愛民六條 이전 육조 吏典六條 호전 육조 戶典六條 예전 육조 禮典六條 병전 육조 兵典六條 형전 육조 刑典六條 공전 육조 工典六條 진황 육조 賑荒六條 해관 육조 解官六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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