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자서전 - 사르비아총서 107

안중근 | 범우사 | 2006년 02월 16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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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이번 펴내는 이 책은 안중근 의사 숭모회가 펴낸 '안의사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하여 다섯 권의 자료를 참고해 많은 부분을 보완했으며, 부록으로 옥중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과, 당시의 재판 상황과 피고들의 동정 등을 게재한 대한매일신보의 기사, 일본인들의 요청으로 남긴 유묵(遺墨), 옥중 서신과 최후 공판 기록, 의거 전후 기록 등을 수록하였다.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고 나라 사랑이 무엇인지를 자각하며 외국의 그 어느 위인전보다도 애정을 갖고 많이 읽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저자소개

황해도 해주읍 출생. 아명은 응칠(應七). 6세 때 가족이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 서당에 다니며 학문을 익히기 시작했으나 학문보다 사냥에 뜻이 있어 명사수로 성장하다. 16세 때 김아려(金亞麗)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다.이 무렵 동학란이 일어나 황해도 지방에서 기세를 떨치자 부친과 함께 포수들을 모집, 동학군을 격파하다. 17세 때 천주교에 입교, 온 가족이 천주교 신자가 되다. 27세 때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아버지와 상의, 집안이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옮기기로 하고 안 의사는 산뚱(山東)으로 가다. 가족은 진남포로 이주하여 만주행을 대기했으나 마음을 바꿔 귀국하여 교육과 실력배양을 위해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다. 29세 때 북간도를 경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가 그곳 청년회에 참가, 이듬해 의병 모집에 나서다. 30세 때 '대한의군(大韓義軍)'을 조직하고 참모중장 직을 맡다. 31세 때 우덕순, 조도선 등과 같이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계획,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와 가와카미 총영사, 모리 비서관, 다나카 만철이사 등을 살상시키다. 32세 때인 1910년 3월 26일 뤼쑨(旅順) 감옥에서 동양평화를 부르짖고 순국하다.

목차소개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1. 유년시절 일곱 개의 점이 있어 응칠 2. 갑오농민전쟁의 소용돌이 동학당의 폭행에 맞서다 3. 천주교에 입교 4. 의협청년 시절 5. 증인으로 문란한 검사에 항거 6. 대한제국의 혼란기 7. 을사보호조약의 비분을 삭이며 8. 학교를 설립, 인재 양성에 전력 9. 북간도에서 독립군 의병장으로 활약 10. 풍찬노숙과 기아를 극복 괴력으로 연해주 귀환 11. 이토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 거사 계획 12. 하얼빈 역두에 일곱 발의 총성 침략 원흉 이토를 쓰러뜨리고 대한만세 삼창 부 록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인심결합론(人心結合論) 유묵 소개 대한매일신보 게재 기사 옥중 서신 최후 공판 기록ㆍⅠ(5차─변론 및 최후 진술) 의거 전후 기록 연 보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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